불교이야기/부처님 마음

[천불만다라] 73. 해서는 안될 일

淸潭 2009. 7. 21. 14:55

[천불만다라] 73. 해서는 안될 일
남에게 이익주는 이가 가장 먼저 행복해진다
기사등록일 [2009년 07월 21일 10:07 화요일]
 

해서는 안 될 일은 하지 않음이 최상
악행은 뒤에 가서 뉘우친다.
해야 할 선행은 하는 것이 상책
선행은 나중에도 후회가 없다.  
                                - 『법구경』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조계사 원심회 김장경 회장

우리가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데에 해서는 안 될 일은 무엇이 있을까? 먼저 나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도 하고 손해가 되기도 하는 음식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요즈음 음식은 그대로 건강을 담보하는 척도가 되고 있다. 음식에 관해서는 『법구경』 325번 게송을 설하게 된 동기에서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먹고 잠만 자면 윤회 못 벗어”

꼬살라국 빠세나디국왕은 대식가여서 한 번에 약 반말정도의 밥과 기타음식을 먹었다고 전한다. 그날도 밥을 잔뜩 먹고 부처님을 찾아뵙고서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동안 식곤증에 시달려서 애를 쓰다가 부처님께 식곤증을 참기 어려운 것에 대해서 하소연을 하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빈둥거리며 먹기만 하고 잠만 자고 있는 어리석은 자는 사육하는 살찐 돼지와 같아서 결코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라고 경책하셨다. 빠세나디국왕은 이 경책을 거울삼아서 음식을 절제하고 매일 음식량을 줄여서 자신을 가다듬음으로써 평안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생사윤회를 벗어나기 위하여 경각심으로 정진에 힘썼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 몸에 이익이 되는 음식물조차도 올바르게 섭취하지 않으면 도리어 악이 되는 것이다. 일차로는 몸을 손상하고 게을러지며 더 나아가서는 진리에 나아가는 것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게 된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올바르게 하지 않고서는 진리의 길이 별도로 없다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먼저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을 가다듬는 일부터 올바르게 가꾸어 가야한다.

다음은 대인관계를 생각해 보자.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떠한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일생은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훌륭한 스승을 만나면 거룩한 가르침을 얻을 것이고, 진실한 벗을 만나면 삶이 진지해 질 것이다. 좋은 동반자를 만나면 삶이 기쁨으로 충만해지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제자를 만나면 스승의 삶이 완성될 것이다. 그 반대도 가능하다.

여기에서 잠시 생각해 보자. 사람과의 만남은 객관적으로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일차적으로 나누어지겠지만, 더 근원적인 일은 『화엄경』에 ‘일체가 오직 이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一切唯心造)’라는 말씀과 같이 사람과의 만남에서 나의 됨됨이에 좌우되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다면 사람을 만났을 때에도 상대가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기에 앞서서 진지하게 상대방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하려고 노력해야 될 것이다. 일생을 남에게 해악(害惡)만 끼치고서야 일생을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남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 무엇인가를 살피면서 일생을 살아갈 수 있다면 제일 먼저 자신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면 몸에 온갖 병이 발생하여 결코 행복한 삶을 지켜가기 어려울 것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해악을 끼친다면 누가 나 자신을 좋아하겠는가? 집에서도 길에서도 어느 곳에 있더라도 누가 보거나 보지 않거나 관계없이 해서는 안 될 일은 하지 않음이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사는 최상의 방법임을 깨닫게 된다. 뒤에 뉘우쳐도 때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매순간에 남에게 이익 되고 스스로 행복한 삶을 찾아서 정진할 일이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가장 시급

이제 앞에서의 이야기와는 정반대로 ‘해야 할 선행은 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하는데 우리의 일상 속에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해야 할 선행은 무엇이 있을까? 불교에서 항상 강조하고 있는 것은 선행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이에 있는 자신의 몸으로 짓는 선행인 것이다. 요즈음 우리사회는 연로한 부모에 대한 배려나 선행이 부족한 것 같다. 모두가 미리 늙어 보면 노인에 대한 배려도 깊을 텐데, 미리 늙어 볼 수 없으니 노인에 대한 배려는 당초부터 무리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경험하지 못한 일이라고 해서 모른다고 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마음속에 지혜가 있고 행위에는 자비가 있어서 비로소 만물의 영장인 사람인 것이다. 지혜로 미래를 살펴보면 우리의 앞날이 보인다. 미래의 자신을 보살피는 마음으로 현재의 연로한 부모에게 공경과 보살핌을 다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선행일 것이다.

다음에는 길을 가다보면 불편한 몸으로 용하게도 외출을 한 장애인을 만날 때가 있다. 불편한 몸으로도 외출을 한 그분들을 만날 때면 마음으로부터 존경의 염이 솟구친다. 한 10여 년 전의 일이다. 성한 사람도 오르기 어려운 강원도 설악산 봉정암을 목발에 의지하여 한발 한발 옮기고 있는 다리가 불편한 분을 산을 내려오는 길에서 만난 적이 있다. 봉정암을 다녀오는 나로서는 오르고 내려올 길이 얼마나 험악한지를 익히 잘 알기에 일순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그리고 오직 무사히 다녀오시길 기도할 뿐이었다. 그분의 모습이 아직도 나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우리는 몸이 불편한 분을 거리에서나 가정에서 함께할 때 그분들의 마음이 되어서 보살펴야 한다. 자만에 찬 눈초리로 구경하듯 내려다보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 따듯한 눈초리나 말 한마디를 보냄으로서 용기와 격려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살펴나가면 우리의 주변에는 해야 할 선행이 너무나 많음에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주위에 가득한 선행은 실천하는 사람에게만 다가와서 선행의 주인이 되게 한다.
 
본각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1007호 [2009년 07월 21일 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