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인곡당(법장스님)

[맑고 밝은 삶으로] 염불행자

淸潭 2008. 3. 2. 22:13

염불행자

 

우리들 마음에 부처님을 모시고 언제 어디서나 부처님을 생각하면 불국토가 따로 없이 지금 이 자리가 정토세계(淨土世界)입니다.
달마 스님(達磨大師)께서 관심론(觀心論)에 말씀하시기를 “염불이라는 것은 정념(正念)을 닦는 것이다. 참 뜻을 깨달으면 정(正)이 되고 깨닫지 못하면 사(邪)가 된다. 정념은 반드시 서방정토의 극락세계를 얻지만 사념은 피안에 이르지 못한다. 불(佛)이란 몸과 마음을 살펴 악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고 염(念)이란 생각하는 것이니 계행(戒行)을 가져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아는 것이 정념이다. 그러므로 염이란 마음에 있는 것이지 말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염불을 수행문으로 하여 정진하고자 하시는 대중께서는 금강석같이 변함없는 신심을 발하여 태산 같은 서원을 세우고 과거세부터 지어온 모든 죄장을 참회하며 모름지기 간절한 마음으로 원에 따른 불보살님의 명호를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은 번뇌로 뒤엉킨 숲을 헤매면서 단순히 반복적으로 소리만 높여서 외운다면 헛된 공만 들이는 것이니 이런 염불은 참으로 안타까운 결과를 만들어 갈 뿐입니다.
부처님께서도 금강경(金剛經)에서 이르시기를 “상(相)이란 다 허망한 것이다. 형상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찾으려 한다면 이런 사람은 그릇된 도를 행하는 것이니 여래(如來)를 볼 수 없다.”고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깊이 명심하여 염불을 할 때에는 부디 상에 집착하여 상에 떨어지지 말고 오로지 마음으로 불보살님을 흠모하여 불보살님의 덕행을 찬탄하며, 우리도 불보살님의 행업(行業)을 지어나갈 것을 서원하며, 불보살님의 자비정신을 깨닫고 이어가는 수행을 해야 할 것입니다.
또 염불을 하면서도 바른 뜻을 깨닫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니 그 옛날 설산동자(雪山童子)처럼 한 구절의 법문을 듣기 위해 나찰에게 몸을 던져주는 구도의 정열로 불보살님의 무량한 가르침을 낱낱이 배우고 전하며 불보살님의 서원이 깃든 행이 아니면 따르지 않고 불보살님의 가르침이 아니면 전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순간 순간에도 오직 불보살님만을 닮아가려는 염불행자의 길을 가야 합니다.
몸과 마음을 모두 불보살님께 의지하여 염불하면 언젠가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봄 기운에 눈이 녹아내리고 새싹이 돋아나듯 악업은 절로 녹고 선업은 자라나며 공덕은 드러나서 먹구름이 걷히면 맑은 하늘에 감추어져 있던 태양이 있던 그 자리에서 그대로 빛을 내듯 무명의 어리석음이 사라지면 우리 마음 속에 있던 불보살님의 덕성이 태양처럼 눈부신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기도행자들에게는 가피에 더디고 빠른 것이 있지만 불보살님의 명호에 따른 공덕에는 더디고 빠른 것이 없으며 기도행자들의 정성에는 차이가 있고, 업장의 차이는 있지만 불보살님의 가호 가피력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불보살님의 자비 감로수와 보배 구슬은 모든 중생에게 항상 평등하게 내려주시지만 중생들의 업의 그릇이 각각 다르고 복의 주머니가 각각 달라서 담아지는 양이 다른 것이며 불보살님의 자비광명은 언제나 어디에나 똑 같이 비추어도 어리석은 염불행자는 지혜의 눈을 뜨지 못하여 스스로 장님 신세가 되어 그 빛을 보지 못할 따름인 것입니다.
밀린다왕문경(彌蘭陀王問經)에 보면 밀린다 왕이 나가세나 스님(那伽摩那尊者; 나선 비구)에게 염불에 의한 구원에 의심을 품고 묻기를,
“나가세나 스님, 당신들은 가령 어떤 사람이 백년 동안 악행을 했더라도 임종에 이르러 한 번이라도 부처님을 생각할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천상에 태어날 수가 있다고 말하는데 나는 이 말을 믿지 않습니다. 또 당신들은 한번 살생을 했더라도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이 말도 믿지 않습니다.”라고 하니,
스님께서는 “왕이시여,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작은 돌이라도 배가 없이 물 위에 뜰 수 있을까요?” 하시니 대왕은 “스님,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니
스님께서는 “왕이시여, 백 대의 수레에 실을 만큼 많은 돌이라도 배에 싣는다면 물 위에 뜨겠습니까?” 하시니
대왕은 “스님, 그렇습니다. 물 위에 뜰 것입니다.”라고 하니 스님께서는 “왕이시여, 염불한 선업은 마치 배와 같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시니
이에 대왕은 그 뜻을 이해하고 “잘 알았습니다. 스님!”이라고 하며 대화를 마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불보살님의 원력은 반야용선(般若龍船)이 되어 염불행자를 태워 불국토에 나게 하시는 가피가 확실하니 부지런히 염불을 해야 합니다. 제가 아무 것도 모르고 오직 모든 것을 불보살님께 의지하던 시절의 기도 경험을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때는 20대 초반 여름 수덕사(修德寺)에서 새벽부터 일어나 마당 쓸고 공양 짓고 하루종일 지게 지고 돌 나르고 나무하고 밭일하고 저녁 예불 후에는 밤늦도록 콩 고르며 지내던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 무렵 선원의 스님들처럼 참선 좀 하려고 고단한 몸을 가지고 방에 앉아있으면 왜 그렇게 졸음이 오는지 벽에 등을 기댄 채 잠이 들었다가 새벽 도량석 소리에 겨우 정신이 들면 어찌나 속이 상하고 세월 가는 것이 안타깝던지 하루는 작심하고 대웅전에 밤에 들어가 오직 일념으로 관세음보살님께 잠 좀 없애 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새벽녘에 나직하고도 부드러우면서도 너무도 또렷하게 “법장아! 너는 잠 안 잘 때는 늘 공부만 하느냐?” 하는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어머니의 음성과 같이 포근하면서도 위엄이 충만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분명 꿈을 꾸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 때 저는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력에 무어라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며 앞으로 깨어있을 때 바른 생각만을 하겠다는 발원을 하면서 한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이 몸을 다 던져 절을 올렸습니다.
사실 그 때 저는 깨어있는 하루 종일 번민과 시비로 시간을 녹이고 있을 때가 조는 시간보다 더 많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잠이 많은 것을 탓하지 않고 깨어 있을 때 온갖 시비분별을 버리고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을 챙기다 보니 어느 날 낮에 들리는 화두가 밤에도 들리고 새벽에 깰 때도 들리고 하는 경지가 와서 그 때 더욱 더 관세음보살님의 가르침을 분명히 깨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깨어 있을 때 물은 차고 불은 뜨겁고 돌은 무겁고 솜을 가볍다고 느끼기 때문에 꿈속에서도 똑같이 물은 차고 불은 뜨겁고 돌은 무겁고 솜은 가볍다고 느끼는 것이니 공부도 그와 같이 깨어 있을 때 애를 쓰면 꿈속에서도 애를 쓰는 것이고 염불도 깨어 있을 때 하는 만큼 꿈속에서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염불행자의 길을 가는 분들도 신심이 부족하고 어리석다 보면 평생 염불 수행을 하겠다고 서원을 세운 불자들도 조금 염불이 이어지면 스스로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해서 장애를 일으키는데 공부라는 것은 정진이 좀 된다 싶을 때 더욱 힘을 써야 하는 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높은 사다리에서 내려올 때 위에서는 조심조심하다가 나머지 한두 칸을 남겨놓고 방심해서 뚝 떨어져 다치는 것처럼 염불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일(如一)하게 정성을 다하여야 합니다.
오늘 관음기도에 입제하신 염불행자 여러분들께서는 부디 넓고 큰 원을 세우시고 순간순간의 마장에 속지 마시고 순일하게 정진을 해 나갑시다. 염불행자들이 가는 길에 불보살님의 가피는 충만하여지시고 일체 마장은 제하여 지기를 불보살님 전에 향 사르고 축원합니다.

- 무이회 철야정진법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