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빈 바랑

모피코트는 어디로 갔나?

淸潭 2008. 2. 2. 17:37
 


 

모피코트는 어디로 갔나?

 

미움처럼 사람의 에너지를 갈취해 가는 도둑이 있을까?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속에는 커다란 가시 하나가 솟아 있어 매우 불편한 날이었다.

오랜만에 불경공부를 하러 간 날이었다.

그 모임은 우리 모임과는 좀 다른 분위기였고 낯선 분들이 여러분 모이셨다.

수인사가 끝나고 나는 불경에 눈을 두고 있었지만,불편한 내 마음의 가시에 걸려 있었다.

한 주간 명상한 내용들을 돌아가며 나누기 시작했다.

한 부인의 차례가 돌아오자 “다른 사람들이 미워질 때마다 꺼내보는 사연이 있습니다”하고 조용히 이야

 

기를 시작하셨다.

부인의 친정 어머님이 암으로 판정을 받은 날은 매우 쌀쌀한 겨울이었다.

어머님이 죽을 병에 걸렸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파 대기실에 망연자실해 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주변에 모였던 가족과 친지들이 “밥 먹구 오자구”하며 밥을 먹으러 갔다.

‘아! 사람이 죽어가는 데도 산 사람은 먹어야 하는구나’하며 식구들의 뒷모습을 좀 원망스럽게 쳐다보다

 

가 어머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대기실 의자에 누워계신 어머니께 덮어드렸던 어머니의 모피코트 한 자락이 바닥으로 흘러내려가 있었

 

다.

그런데 그 코트 자락을 올려드리면서 ‘이 모피코트는 내 남편이 박봉에 한푼 한푼 모아 해드린 것이니 내

 

꺼지’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순간 그 부인은 너무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금 어머님의 죽음을 앞에 두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그 후 그 부인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미움이 생길 때마다 모피코트를 떠올리며

 

‘내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생각하면 입이 다물어지고 타인에 대해 관대해진다고 했다.

모두들 진지하게 귀담아 듣고 있었는데,한분이 농담삼아 “그래,그 모피코트는 누가 가졌어요?” 하고 짓

 

궂은 질문을 했다.

한바탕 웃음이 번졌다.

큰올케는 체격이 너무 커서 입지 못하고 결국 그 부인에게로 모피코트가 왔지만,

 

부인은 그 코트를 볼 때마다 죄책감이 떠올라 입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던 어느날 그 집에 도둑이 들어와 그 모피코트를 훔쳐갔다.

그래서 그 부인은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고 한다.

그 부인의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내 마음 속의 가시는 사라져 있었다.

나도 남몰래 펼쳐보는 나만의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매일 만나는 사람들,그리고 손만 뻗으면 만질 수 있는 가족들 사이에서 미움은 자연발생적이

 

다.

그러나 미움의 화살을 내쏘기 전에 나만의 사연을 하나 펼쳐 볼 수 있는 자성의 시간을 갖는다면,

 

최소한 몇 분만이라도 화살을 자신에게 돌려본다면,내 속에 솟아난 가시에 스스로 찔리는 어리석은 짓은

 

안 할 것이다.

 

한순(나무생각출판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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