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바꾼 책, 그속의 ‘대권의 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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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독서왕은 노회찬…‘수첩공주’ 박근혜, 메모는 필수
이명박 “남몰래 방문앞에 책 갖다주던 여학생 못잊어”
대선 주자들은 책이 많다. 살아서 그 삶이 책이 되는 이들이니, 본인을 주제로 한 책이 많고 스스로 쓴 책도 숱하다. 저마다의 서재에는 책이 가득하다. “책 한 권이 내 삶을 바꿨다”고 말한다.
이들은 바쁘다. 새벽부터 시작된 일정은 밤 10시, 11시를 훌쩍 넘긴다. 일분일초가 금쪽같다. 시간 관리의 귀재들이다. 그 금쪽같은 시간을 아껴 책을 읽는다. 책읽기에도 저마다의 비법이 있다. 이들의 삶 속에 녹아든 책을, 살면서 책을 읽어온 방법을 들어봤다. ‘책 속에 (대권의) 길이 있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전 시장, 박근혜 전 대표, 홍준표·원희룡·고진화 의원, 범여권의 손학규 전 경기지사,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천정배 전 장관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권영길·노회찬·심상정 의원이 답했다.
대선 주자들의 한달 독서량은? <한겨레>가 물어본 결과, 평균 4.38권이었다. 우리 국민 평균 한달 독서량(0.99권, 국립중앙도서관 2006년 통계)의 4.4배다. 독서왕은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 틈만 나면 뭐든 읽는다. 이틀에 한 권꼴이다. 서울대 앞에서 <광장서적>을 운영했던 이해찬 전 총리는 “제가 책장사 출신”이라며 책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이전엔 매달 10권 정도 읽었지만, 지금은 한 권 읽기도 힘들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이렇게 바쁜 이들이니 책 읽을 시간 만들기는 눈물겹다. 이동하는 차 안, 사무실, 잠들기 전의 침대가 서재이고, 책상이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책으로 새벽을 연다. 일과 중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도 화장실에서 책과 함께 ‘쾌변’한다. 한명숙 전 총리도 화장실에 책 한 권씩 여퉈두고 조금씩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고진화 한나라당 의원은 밥 먹은 뒤 낮잠 대신 책을 든다.
다들 속독의 달인들이다. 빠르게 훑거나(속독) 내리 읽은(통독) 뒤, 중요한 부분만 다시 읽어본다. 정동영 전 의장은 경제적으로 책을 읽는다. 책 목차와 서론을 읽고, 결론부터 거꾸로 읽는다. 절반만 읽어도 다 읽은 효과를 본다는 설명이다. 이해찬 전 총리는 “필요한 부분만 뽑아서 빨리 읽는다”고 했다. 반대로 민주노동당의 대선 주자 3명은 겉표지부터 뒷표지까지 읽는다. 심상정 의원은 끝까지 작파하는 형이고, 권영길 의원은 꼼꼼한 정독파다. 노회찬 의원은 좋으면 곧바로 한번 더 읽는다.
중요한 부분을 밑줄 긋고 메모해 두는 것은 대선 주자도 마찬가지. 박근혜 전 대표는 ‘수첩공주’ 답게 수첩에 메모한다. 천정배 전 법무장관은 아예 해당 페이지를 복사해 보관한다.
정 시간이 없으면 신문이나 인터넷의 서평으로 대신하는 이들도 많았다.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은 보좌관에게 책을 주고, 10장 정도의 축약본을 만들어 받아 본다.
책에 얽힌 기억을 들어보자.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회고. “중학교 시절, 경기중학교는 도서관 시설이 좋았고 개가식이었다. 아침에 1등으로 들어가려 친구들과 경쟁하느라 밤이 짧았다.” 새벽부터 도서관을 찾았다는 자랑이다. 이명박 전 시장은 중·고등학교 시절의 로맨스까지 덤으로 얹혀 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집엔 교과서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웃의 한 여학생이 가끔 우리집 단칸방 방문 앞에 책 한 권씩 갖다 놓곤 했다. 나는 고맙다는 쪽지와 함께 그 여학생 집 문 앞에 책을 놓고 왔다.” 그렇게 책은 오갔다. 그 여학생과의 로맨스는? 실망스럽게도 한번도 얼굴 맞대고 본 적이 없단다.
삶을 바꾼 것도 책이었다. 천정배 전 장관은 군 법무관 시절 황석영의 <어둠의 자식들>을 읽고 충격에 빠져 한동안 넋을 잃었다. 이 영향으로 군부독재 치하에서의 길을 고민하던 그는, 검사의 길을 접고 변호사를 선택한다. 손학규 전 지사는 고1 때 읽은 유달영의 <새역사를 위하여> 때문에 농과대학을 갈 뻔 했다. 덴마크가 패전의 상처를 딛고 세계 최고의 낙농국가로 거듭난 과정을 그린 책이었다. 나라를 제대로 세우려면, 농업이 아닌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마지막에 정치학과로 진로를 바꿨다. 정동영 전 의장도 리영희 선생의 <우상과 이성>을 읽은 당시의 충격을 이렇게 털어 놓는다. “베트남과 미국, 그리고 중국에 대한 시선은 쇼킹했다. 머리 속 고정관념이 깨지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느꼈다.”
책은 어둠 속의 구원이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월간 에세이> 5월호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갑자기 잃고 힘들었던 젊은 시절, 나를 돌아보며 마음의 중심을 잡아가게 해준 책이 펑유란(馮友蘭)의 저서 <중국 철학사>였다. 당시는 숨쉬는 것조차 힘이 들었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고 적었다. ‘크리스천아카데미 사건’(1979년)에 휘말려 수감된 한명숙 전 총리가 고문상처에 바른 외용약은 <디트리히 본 훼퍼 옥중서간집>이었다. “내가 고통을 당하는 것, 매맞는 것은 그리 심한 고통이 아니다. 참으로 괴롭게 하는 것은, 내가 고난을 당하는 동안 밖이 너무 조용하다는 사실이다.” 이 한 구절은 죽음을 생각하던 한명숙을 삶으로 이끌었다.
<전태일 평전>을 내 인생의 책으로 꼽은 심상정 의원이 인상깊은 책으로 공병호의 <10년 후 한국>과 <10년 후 세계>, 그리고 피터 드러커의 <위대한 혁신>을 선택한 것도 눈에 띤다.
책은 이들 정치인들의 삶을 일곱 색깔로 굴절시켜온 프리즘이자, 삶에 간섭해온 파동이었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 사람들아, 책을 읽자꾸나.”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독서왕은 노회찬…‘수첩공주’ 박근혜, 메모는 필수
이명박 “남몰래 방문앞에 책 갖다주던 여학생 못잊어”
대선 주자들은 책이 많다. 살아서 그 삶이 책이 되는 이들이니, 본인을 주제로 한 책이 많고 스스로 쓴 책도 숱하다. 저마다의 서재에는 책이 가득하다. “책 한 권이 내 삶을 바꿨다”고 말한다.
이들은 바쁘다. 새벽부터 시작된 일정은 밤 10시, 11시를 훌쩍 넘긴다. 일분일초가 금쪽같다. 시간 관리의 귀재들이다. 그 금쪽같은 시간을 아껴 책을 읽는다. 책읽기에도 저마다의 비법이 있다. 이들의 삶 속에 녹아든 책을, 살면서 책을 읽어온 방법을 들어봤다. ‘책 속에 (대권의) 길이 있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전 시장, 박근혜 전 대표, 홍준표·원희룡·고진화 의원, 범여권의 손학규 전 경기지사,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천정배 전 장관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권영길·노회찬·심상정 의원이 답했다.
대선 주자들의 한달 독서량은? <한겨레>가 물어본 결과, 평균 4.38권이었다. 우리 국민 평균 한달 독서량(0.99권, 국립중앙도서관 2006년 통계)의 4.4배다. 독서왕은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 틈만 나면 뭐든 읽는다. 이틀에 한 권꼴이다. 서울대 앞에서 <광장서적>을 운영했던 이해찬 전 총리는 “제가 책장사 출신”이라며 책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이전엔 매달 10권 정도 읽었지만, 지금은 한 권 읽기도 힘들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이렇게 바쁜 이들이니 책 읽을 시간 만들기는 눈물겹다. 이동하는 차 안, 사무실, 잠들기 전의 침대가 서재이고, 책상이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책으로 새벽을 연다. 일과 중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도 화장실에서 책과 함께 ‘쾌변’한다. 한명숙 전 총리도 화장실에 책 한 권씩 여퉈두고 조금씩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고진화 한나라당 의원은 밥 먹은 뒤 낮잠 대신 책을 든다.
다들 속독의 달인들이다. 빠르게 훑거나(속독) 내리 읽은(통독) 뒤, 중요한 부분만 다시 읽어본다. 정동영 전 의장은 경제적으로 책을 읽는다. 책 목차와 서론을 읽고, 결론부터 거꾸로 읽는다. 절반만 읽어도 다 읽은 효과를 본다는 설명이다. 이해찬 전 총리는 “필요한 부분만 뽑아서 빨리 읽는다”고 했다. 반대로 민주노동당의 대선 주자 3명은 겉표지부터 뒷표지까지 읽는다. 심상정 의원은 끝까지 작파하는 형이고, 권영길 의원은 꼼꼼한 정독파다. 노회찬 의원은 좋으면 곧바로 한번 더 읽는다.
중요한 부분을 밑줄 긋고 메모해 두는 것은 대선 주자도 마찬가지. 박근혜 전 대표는 ‘수첩공주’ 답게 수첩에 메모한다. 천정배 전 법무장관은 아예 해당 페이지를 복사해 보관한다.
정 시간이 없으면 신문이나 인터넷의 서평으로 대신하는 이들도 많았다.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은 보좌관에게 책을 주고, 10장 정도의 축약본을 만들어 받아 본다.
책에 얽힌 기억을 들어보자.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회고. “중학교 시절, 경기중학교는 도서관 시설이 좋았고 개가식이었다. 아침에 1등으로 들어가려 친구들과 경쟁하느라 밤이 짧았다.” 새벽부터 도서관을 찾았다는 자랑이다. 이명박 전 시장은 중·고등학교 시절의 로맨스까지 덤으로 얹혀 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집엔 교과서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웃의 한 여학생이 가끔 우리집 단칸방 방문 앞에 책 한 권씩 갖다 놓곤 했다. 나는 고맙다는 쪽지와 함께 그 여학생 집 문 앞에 책을 놓고 왔다.” 그렇게 책은 오갔다. 그 여학생과의 로맨스는? 실망스럽게도 한번도 얼굴 맞대고 본 적이 없단다.
삶을 바꾼 것도 책이었다. 천정배 전 장관은 군 법무관 시절 황석영의 <어둠의 자식들>을 읽고 충격에 빠져 한동안 넋을 잃었다. 이 영향으로 군부독재 치하에서의 길을 고민하던 그는, 검사의 길을 접고 변호사를 선택한다. 손학규 전 지사는 고1 때 읽은 유달영의 <새역사를 위하여> 때문에 농과대학을 갈 뻔 했다. 덴마크가 패전의 상처를 딛고 세계 최고의 낙농국가로 거듭난 과정을 그린 책이었다. 나라를 제대로 세우려면, 농업이 아닌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마지막에 정치학과로 진로를 바꿨다. 정동영 전 의장도 리영희 선생의 <우상과 이성>을 읽은 당시의 충격을 이렇게 털어 놓는다. “베트남과 미국, 그리고 중국에 대한 시선은 쇼킹했다. 머리 속 고정관념이 깨지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느꼈다.”
책은 어둠 속의 구원이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월간 에세이> 5월호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갑자기 잃고 힘들었던 젊은 시절, 나를 돌아보며 마음의 중심을 잡아가게 해준 책이 펑유란(馮友蘭)의 저서 <중국 철학사>였다. 당시는 숨쉬는 것조차 힘이 들었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고 적었다. ‘크리스천아카데미 사건’(1979년)에 휘말려 수감된 한명숙 전 총리가 고문상처에 바른 외용약은 <디트리히 본 훼퍼 옥중서간집>이었다. “내가 고통을 당하는 것, 매맞는 것은 그리 심한 고통이 아니다. 참으로 괴롭게 하는 것은, 내가 고난을 당하는 동안 밖이 너무 조용하다는 사실이다.” 이 한 구절은 죽음을 생각하던 한명숙을 삶으로 이끌었다.
<전태일 평전>을 내 인생의 책으로 꼽은 심상정 의원이 인상깊은 책으로 공병호의 <10년 후 한국>과 <10년 후 세계>, 그리고 피터 드러커의 <위대한 혁신>을 선택한 것도 눈에 띤다.
책은 이들 정치인들의 삶을 일곱 색깔로 굴절시켜온 프리즘이자, 삶에 간섭해온 파동이었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 사람들아, 책을 읽자꾸나.”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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