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슬픔/이중톈 지음·강경이 옮김/440쪽·1만6000원·에버리치홀딩스
봉건 제후국들의 세력이 커지자 서한(西漢) 황실의 보전과 안녕을 위해 중앙집권 강화를 꾀하는 당대 개혁가 조조(晁錯). 어사대부의 높은 관직에 있던 그는 황제인 경제(景帝)에게 번국(藩國)의 관할지를 삭감하는 ‘삭번’을 주청한다.
번국의 하나인 오(吳)나라 승상을 지낸 원앙이 나서 “오와 초(楚)는 모반을 일으킬 힘이 없다”고 반대한다. 하지만 조조는 삭번을 밀어붙였고 제후국들은 반란을 일으킨다. ‘오초칠국의 난’이다. 위기에 몰린 황제는 “조조를 죽이고 환수한 영토를 되돌려 주면 반란을 조용히 평정할 수 있다”는 원앙의 간청을 수락해 조조를 처형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누가 간신이고 충신인지 분명하지 않다. 조조는 분명 선견지명이 있었고, 정의롭고 강직한 인물이다. 그렇다면 원앙은? 그 역시 올곧고 후덕한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왜 조조는 죽음을 맞이했는가. 학식과 재주는 뛰어났지만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몰랐다. 가문에 대한 위협을 느낀 조조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삭번책 철회를 당부했지만 거부당하자 독약을 마신다. 현실감각이 없는 공상세계에 빠져 있던 조조는 무엇을 할 것인지만 고민했지 ‘어떻게’가 없었다.
중국 CCTV ‘백가강단’ 프로그램에서 ‘초한지 강의’를 통해 ‘역사대중화’의 깃발을 올린 이중톈 샤먼대 교수. 그는 중국 역사의 물줄기가 뒤바뀌는 결정적 순간을 파고들어가 난세(亂世)의 영웅과 간웅들의 행적을 세밀하게 뒤쫓는다.
그의 분석은 매우 신랄하면서도 명쾌하다. 우리는 중국 역사의 영웅과 간신을 이분법적으로 파악하는 데 익숙해져 있지만 저자는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역사는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세력과 세력, 노선과 노선의 투쟁임을 설파한다. 그 속에 숨겨진 진실이라는 속살을 아프게 들춰낸다.
송(宋)대의 부국강병책인 ‘희녕변법’을 주창했던 왕안석의 실패도 마찬가지다. 그의 개혁안인 청묘법, 방전균세법, 치장법 등은 모두 그 시대에 필요한 묘책들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자치통감의 저자인 사마광, 소동파의 반대 때문만은 아니었다. 제도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악덕 관리들은 개혁을 부정부패의 계기로 삼았다. 그는 열정적이고 머리를 갖춘 개혁가였지만 현실에는 어두웠다. 도덕적이었지만 불행하게도 개혁의 결과는 도덕성과 무관했다.
아편전쟁에 나선 청대 관리들은 거짓 보고로 일관했다. 영국군에 대패하고도 ‘승전’이라고 황제에게 보고했다. 섬나라 오랑캐에게 패했다는 보고는 곧 죽음이었다. 그들은 살기 위해 거짓 보고라는 ‘아편’ 속으로 빠져 들었다.
책은 많지만 한 번 잡으면 결코 놓기 싫은 책을 만나긴 쉽지 않다. 소설이 아닌 인문학 관련 책은 번역서일 경우 더더욱 어렵다. 하지만 책을 잡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독서삼매경에 푹 빠져 들 만큼 이 책은 매력적이다.
국가 경영을 꿈꾸는 정치인, 기업을 경영하는 오너, 리더를 지향하는 모든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책을 덮으면 ‘어떻게’는 없고 ‘무엇’만 판치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절로 한숨이 나올 것이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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