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불교관련

석가의 4대성지

淸潭 2006. 11. 10. 20:24
 

석가의 4대성지

 

룸비니

룸비니는 석가모니의 탄생지다. 원래는 석가모니의 부모인 정반왕(淨飯王)과 마야부인(摩耶夫人)의 고향 데바다하의 중간에 있던 원림(園林)의 이름이다. 한역(漢譯) 불전(佛典)에는 남비니(藍毘尼) 등으로 음역되고 있다. 마야부인이 출산을 위해 고향으로 가던 중, 이 원림에서 무우수(無憂樹)가지를 붙들고 석존을 오른쪽 옆구리로 출산했다고 한다. 1897년에 네팔 변경에 있는 루민디라는 마을에서 ?석존 탄생지에 참배하였다?는 아쇼카왕의 비문(碑文)이 발견됨에 따라 이 곳이 석가탄생의 유적지임이 확인되었다.

보드가야(Bodhgaya) 득도한곳

보드가야(Bodhgaya)의 불교행사인 칼자차크라(Kalachakra) 주간을 알리는 야경사진이 현지 인도신문의 톱(Top) 기사로 실렸다.(The TIMES of INDIA 2003. 1.15) 현란하게 불을 밝힌 대탑은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등대처럼 찬연하다. 그 빛을 향해 하루를 지새우고 동트자마자 마하보디 사원(Mahabodhi Temple)으로 향했다.

때마침 칼라차크라 행사(1.12~1.18) 중이어서 붉은 승복의 티베트 승려들이 물결을 이루고, 사원 입구엔 수많은 걸인과 좌판 상인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다. 티베트의 5종파중의 한 수장인 까르마파님이 설법한다 하여 그를 친견하려는 행렬이 끝없는데 서양인들의 모습도 많이 눈에 띤다.

중국으로부터 핍박을 받고 망명정부를 가져야 했던 티베트의 역사. 그들의 눈물겨운 삶과 달라이라마 생애를 다룬 영화 ‘쿤둔’을 몇해전 나는 아내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보았었다. 그런데 박해자와는 다르게 이 슬픈 티베트의 삶과 종교를 존중해주는 오늘의 인도는 넓은 아량을 지녔다고 할 만하다. 사실 모두 힌두교가 된 마당에 불교 유적지의 보호와 타 종교 행사를 크게 보도하고 간섭하지 않는 구석이 돋보인다.

보드가야. 고타마 싯다르타가 마침내 깨달음을 얻은 곳. 가야(gaya)에서 니란자라강을 따라 남쪽으로 11km 정도의 위치에 마하보디사원의 대탑(52m)이 있고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은 자리에 보리수와 금강좌(金剛座)가 놓여있다.

그 어느날 새벽이었다. 생사(生死)의 근본인 무명(無明)이 소멸되면서 동쪽하늘에는 샛별이 떠오르고 있었다. 순간 싯다르타는 홀연 깨달음(正覺)을 이루어 붓다(Buddha; 진리를 깨친 사람)가 되었으니 형언 할 수 없는 법열(法悅)에 겨워 세상을 향해 외쳤다.

“아! 번뇌는 모두 사라졌다.
번뇌의 흐름도 사라졌다.
이제 더 이상 태어남의 길을 밟지 않으리니,
이것을 번뇌의 마지막이라 말하리라.”

오늘날 대탑의 위용과 거대한 보리수는 실제 옛것은 아니지만 붓다의 성불지로 진리와 깨달음의 길을 따르려는 승려와 신도들로 화엄의 물결을 이루고 있다.

거대한 대탑의 장식중에는 부처조각상으로 안치된 것이 많이 눈에 띄는데 실제 대탑은 힌두사원의 양식을 수용한것이라 한다. 즉 B.C250년경 아쇼카왕에 의해 건립된 사원은 그 후 많은 변모를 보이다가 무슬림 침공(A.D 1158년)으로 밀림과 흙속에 파묻혔다. 그리고 최근 1884년 인도정부의 발굴로 재개되었고 1953년 ‘보드가야 사원 경영위원회’가 발족되어 오늘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이런 사정을 종합해 보면 대탑보다는 사원 입구에 부러진 아쇼카석주가 도리어 초기 불교의 유산으로 기려진다. 보리수 또한 세월을 거듭하여 이교인들의 훼손과 수명을 다했으므로 그 손자나무 묘목으로 끈끈이 이어져 온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수 만개의 유황램프 일산화탄소 때문에 보리수가 서서히 죽어 간다하니 시급한 대처가 있어야겠다.

행사 물결은 이 같은 사정 속에서도 펄럭이는 오색 깃발아래 뜨거운데 그 찬탄과 찬미는 오체투지(五體投地)의 하심(下心)으로 더욱 빛난다. 검붉은 승복을 입은 티베트 승려들의 저 숭고한 신심(信心)을 무엇으로 형용하랴.

아예 물병을 몇 통씩 곁에 두고 널빤지 위에 손가락지를 낀 채 행사기간 내내 온몸을 던지는 티베트승들의 모습을 보니 왠지 눈시울이 뜨겁다. 무엇이 저토록 간절한가. 국토를 잃은 겨레의 애환이, 그들의 소망이 저 기도속에 담겨 있는 한 그들의 역사는 다시 씌어질 것이다.

행사장 주변은 2층의 난간으로 수많은 승려와 순례객이 대탑을 돌며 탑돌이 중이다. 또한 여러 양식의 작은 탑이 빼곡하고 보리수를 향해 절하는 승려들의 발원, 오색 깃발이 대탑을 가로 지르며 출렁이는 장면은 그대로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이다.

한편 보리수 아래서 발견되는 불족석(佛足石)은 붓다께서 깨달음을 얻은 후 첫발을 내디딘 곳을 기념하여 새겨놓은 것이다. 그 대각(大覺)을 이룬 현장, 붓다의 발자취를 찾아 온 혜초스님은 감격에 겨워 5언 싯귀를 남겼다.

마하보리사를 이 이역만리가 멀다하지 않고 왔노라!
이제 저 카시에 있는 녹야원을 어찌 멀다 하리오?
단지 걸린 길들이 험한 것이 근심일 뿐,
가고자 하는 내 뜻은 바람에 휘날린 적이 없노라.

아~ 아~ 팔성지의 스투파는 정말 보기 어렵구나!
이미 겁탈당하고 불타버려 온전한 모습이 없네!
어찌 계림(신라)에서 온 이 사람의 바램이
다 성취되기를 바랄 것이랴마는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이 모습이
그대로 부처님 모습이 아니겠누! (도올 김용옥 역)

비록 오늘의 대탑은 힌두의 양식을 반영한 것이라고는 하나 이미 보드가야의 상징이요. 세계유산이 된 만큼 미래속에서는 불교 문화유산으로 더욱 존중 받을 것이 자명하다. 모든 대상은 의미 부여를 통해 되살려지고 그 가치가 존중되며 역사로 자리매김 되기 때문인즉.

이렇듯 생각을 여미고보니 대탑은 하늘을 찌르고 우주의 정기를 하나로 모아내는 상징물로 우뚝 솟아있다. 그 조형물 아래 만인의 기도가 화엄물결 이루어 붓다의 깨달음을 기념하는 마당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나그네도 대탑과 보리수를 바라보며 그 날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 기도를 향한 실천의 삶을 지금 살아내고 있는지, 언젠가 내게도 작은 깨달음이 도래(到來)할 그 날이 있을는지. 오늘도 그 그리움과 기다림속에서 먹을 갈고 붓을 든다.

녹야원

범어로 사르나트. 석가모니가 최초로 설법한 곳이다. 선인론처(仙人論處)?선인주처(仙人住處)?선인녹원?선인원(仙人園)?선원?녹원(鹿苑)?녹림(鹿林) 등 여러 가지로 불린다. 석가모니가 35세에 성도(成道)한 후 최초로 이곳에서 설법했을 때 아야다교진여(阿若多?陳如) 등 5명의 비구(比丘)를 제도(濟度)했다고 한다. 탄생(誕生:룸비니)?성도(成道:부다가야)?

구시나가라   열반에든곳

입멸(入滅:구시나가라)의 땅과 더불어 불교(佛敎) 4대 성지의 하나로 일컬어진다. 다메크탑(塔)을 비롯한 많은 불교 유적과 사원(寺院) ?박물관 등이 여러 곳에 남아 있다. 박물관에는 아쇼카왕의 석주두(石柱頭)를 비롯하여 많은 유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특히 네 마리의 사자상(獅子像)으로 된 주두(柱頭)는 인도미술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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