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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古意) 8수 / 권필(權韠)

淸潭 2025. 1. 15. 08:26

고의(古意) 8 / 권필(權韠)

석주집 제1 / 오언고시(五言古詩)

 

앵무새는 얼마나 펄펄 나는가 / 隴鳥何翩翩

동쪽에서 와서 대궐로 들어가니 / 東來入紫宮

임금이 돌아보면서 웃고는 / 君王顧之笑

금사로 만든 조롱에 넣었어라 / 貯以金絲籠

밤에는 고요한 난간에서 자고 / 宵眠曲檻靜

낮에는 넉넉한 낟알을 쪼고 / 晝啄香稻

붉은빛 부리로 아침에 말하고 / 紅觜語朝日

초록색 깃털을 봄바람에 흔든다 / 綠羽搖春風

그러다 하루아침에 백량이 불타니 / 一朝柏梁火

그만 몸이 잿더미가 되고 말았지 / 委質灰燼中

사람들은 그 처음을 부러워하지만 / 人皆羨其始

나는 홀로 그 마침을 슬퍼하노라 / 我獨悲其終

어찌 옛날에 살던 산의 짝이 / 豈若故山侶

숲 속에서 외로이 우느니만 하랴 / 孤鳴松桂叢

 

어떤 사람이 동로를 떠나서 / 有客別東魯

명성 얻으려 장안에 들어갔지 / 求名入長安

장안에는 큰 집들도 많고 / 長安多甲第

가무 소리가 구름에 닿았으며 / 歌舞靑雲端

벼슬아치 한길에 많이 다니니 / 衣冠散廣陌

검과 패옥 소리 맑게 울리었지 / 劍佩聲珊珊

홀연 말 탄 사람 오기에 보니 / 忽見車騎來

햇살에 금안장이 번쩍거리는데 / 白日輝金鞍

바로 평소에 친하던 벗이라 / 認是平生親

나아가 만나려다 머뭇거렸지 / 欲進仍盤桓

한 번 성명을 말하고 싶어도 / 願一道姓名

기상에 눌려 나서지 못하고 / 氣象不可干

날이 저물어 묵는 집에 돌아와 / 日暮歸邸舍

베개를 만지며 눈물만 흘렸어라 / 撫枕涕

후세의 사람들에게 이르노니 / 傳語後來人

이 길은 정녕 무엇보다 어렵다네 / 此路誠獨難

 

어떤 소년이 원유를 좋아하여 / 少年喜遠游

검을 잡고 서쪽 변새로 가는데 / 按劍出西塞

길가에 한 쌍의 옛 무덤이 / 道傍雙古

볼록볼록 마주 보고 있었지 / 纍纍正相對

말하길 고죽군의 아들인데 / 云是孤竹子

무덤이 황폐한 지 천 년이라네 / 蕪沒向千載

소년이 비분강개한 나머지 / 慷慨爲悲

침통한 슬픔에 오장이 찢어질 듯 / 沈慟傷五內

서성이며 차마 못 떠나가는데 / 盤桓不忍去

흰 해는 참담한 빛으로 저무누나 / 白日慘將晦

상주 시대는 이미 멀어졌으니 / 商周今已遠

옳고 그름이 필경 어디에 있는가 / 是非竟何在

 

그윽한 난초에 큰 꽃이 피니 / 幽蘭生都房

빼어난 빛깔 어찌 그리 고운지 / 秀色一何嫩

비와 이슬이 밤낮으로 적셔 주니 / 雨露日夜滋

가지와 잎이 홀연 화단에 가득해라 / 枝葉忽盈

걱정스러운 건 제결이 울어서 / 竊恐鵜鴂

봄날 속절없이 저무는 것이지 / 靑歲坐成晩

지금 사람은 허리춤에 찰 줄 모르고 / 今人不知佩

옛사람은 이미 멀어지고 말았어라 / 古人亦已遠

하늘의 운수가 진실로 이와 같다면 / 天運苟如此

난초의 일은 누구에게 원망하리오 / 持此欲誰怨

 

단혈에서 봉황이 태어나니 / 鳳皇生丹穴

한 번 날아 구주를 가로지른다 / 一擧橫九州

아침에 낭풍의 산봉우리 떠나 / 朝辭閬風岑

저녁에 창해의 물을 마시도다 / 夕飮滄海流

문왕이 세상을 떠난 지 오래니 / 文王久已沒

그 언제나 한번 와서 노닐까 / 何當一來遊

아 저 울타리 사이의 참새는 / 嗟彼籬雀

짹짹거리며 무엇을 찾고 있나 / 啾啾安所求

 

걸어서 성곽 북문을 나가서 / 行出郭北門

날 저물녘 강가를 거니노라 / 日暮游江皐

찬 서리에 온갖 풀들 시들고 / 凝霜被百草

매서운 바람은 성나 울부짖는다 / 烈風聲怒號

들판은 어쩌면 저리 쓸쓸한가 / 何蕭條

눈에 보이느니 우거진 쑥대뿐 / 極目唯蓬蒿

어찌 같이 온 사람 없으랴만 / 豈無同來人

괴로운 내 마음 아무도 모르네 / 莫知我心勞

그리운 님은 만 리 밖에 있으니 / 所思在萬里

아득히 풍랑에 길이 막혔어라 / 茫茫隔風濤

외로운 기러기는 서남쪽으로 날아 / 孤鴈西南翔

구슬픈 소리로 울며 짝을 찾누나 / 哀鳴求其曹

이 광경을 보고 길게 탄식하며 / 見此長嘆息

눈물을 흘려 찬 옷깃 적신다 / 淚下沾寒袍

 

꾀꼴꾀꼴 우는 골짜기의 새 / 嚶嚶谷中禽

푸릇푸릇 우거진 강가의 풀 / 芊芊江上草

깊은 규방에 있던 고운 여인은 / 皎皎深閨女

성 남쪽 길에서 뽕잎을 따누나 / 採桑城南道

길 가던 이가 보고 머뭇거리며 / 行者爲

함께 말할 제 안색이 환했건만 / 共言顔色好

중매쟁이가 죽은 지 오래라 / 蹇脩沒已久

좋은 인연 일찍 맺을 수 없어 / 佳期苦不早

마침내 독수공방 외로운 신세 / 終然守幽獨

흘러가는 세월만 탄식할 뿐일세 / 歎息年光老

 

저녁 해는 어쩌면 저리도 환하여 / 夕日何暉暉

나의 가을 정원에 해바라기 비추나 / 照我秋園葵

가을 해바라기는 저녁 해 향하지만 / 秋葵共夕日

다시 얼마나 오래 그럴 수 있으랴 / 能復幾多時

홀연 돌개바람 세차게 일더니 / 忽有回風發

뜬구름이 와서 해를 가리누나 / 浮雲來翳之

은혜로운 햇빛이 중도에 막히니 / 恩光中道隔

이를 보는 사람도 마음이 슬퍼진다 / 對此令人悲

 

[-D001] 백량(柏梁) :

한 무제(漢武帝)가 장안성(長安城)에 건립하여 연회를 베풀고 시를 읊는 장소로 쓰던 백량대(柏梁臺)를 가리킨다. 이 누대는 높이가 20()이고 향백(香柏)으로 전각의 들보를 만들어 향기가 수십 리까지 퍼졌다 한다. 백량궁(柏梁宮)이라고도 한다.

[-D002] 동로(東魯) :

춘추 시대 노()나라를 가리킨다. 노나라가 산동(山東) 지역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여기서는 도성에서 먼 지방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D003] 고죽군(孤竹君)의 아들 :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형제를 가리킨다. 《사기(史記)》 권61 백이열전(伯夷列傳)백이와 숙제는 고죽군의 아들이다.” 하였다.

[-D004] 상주(商周) 시대는 …… 있는가 :

상주는 은()나라와 주()나라이다. 백이와 숙제가 은나라에 대한 절의(節義)를 지켜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고 굶어 죽었으나 세월이 흐르고 나면 덧없는 옛일이 될 뿐이니, 지금에 와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 할 것이 있느냐는 뜻이다.

[-D005] 제결(鵜鴂) …… 것이지 :

제결은 새 이름으로 접동새라고도 한다. 이 새는 음력 5월 또는 7월에 우는데 추분(秋分) 전에 울면 초목이 시들어 버린다고 한다. 여기서는 사람의 재능을 난초에 비겨서 세상에 쓰이지도 못하고 시들까 걱정한다는 것이다.

[-D006] 허리춤에 찰 :

지조가 고결함을 뜻한다. 굴원(屈原)의 이소(離騷)가을 난초를 엮어서 허리춤에 차노라.秋蘭以爲佩〕” 하였다.

[-D007] 낭풍(閬風) :

신선이 산다는 곤륜산(崑崙山) 꼭대기에 있는 봉우리로, 낭풍전(閬風巓) 또는 낭풍대(閬風臺)라고 한다. 굴원의 이소(離騷)아침에 내 백수를 건너려고 낭풍에 올라서 말고삐를 매었네.〔朝吾將濟於白水兮 登閬風而馬〕” 하였다.

[-D008] 문왕(文王) …… 노닐까 :

봉황은 성인이 나올 때 세상에 나타난다는 신령한 새이다. 그래서 순() 임금 때에 와서 춤을 추었고, 성군(聖君)인 주()나라 문왕(文王) 때 기산(岐山) 아래에 날아와 울었다고 한다. 《國語 周語上》 그 이후에는 봉황이 나타났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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