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古意) 8수 / 권필(權韠)
석주집 제1권 / 오언고시(五言古詩)
앵무새는 얼마나 펄펄 나는가 / 隴鳥何翩翩
동쪽에서 와서 대궐로 들어가니 / 東來入紫宮
임금이 돌아보면서 웃고는 / 君王顧之笑
금사로 만든 조롱에 넣었어라 / 貯以金絲籠
밤에는 고요한 난간에서 자고 / 宵眠曲檻靜
낮에는 넉넉한 낟알을 쪼고 / 晝啄香稻豐
붉은빛 부리로 아침에 말하고 / 紅觜語朝日
초록색 깃털을 봄바람에 흔든다 / 綠羽搖春風
그러다 하루아침에 백량이 불타니 / 一朝柏梁火
그만 몸이 잿더미가 되고 말았지 / 委質灰燼中
사람들은 그 처음을 부러워하지만 / 人皆羨其始
나는 홀로 그 마침을 슬퍼하노라 / 我獨悲其終
어찌 옛날에 살던 산의 짝이 / 豈若故山侶
숲 속에서 외로이 우느니만 하랴 / 孤鳴松桂叢
어떤 사람이 동로를 떠나서 / 有客別東魯
명성 얻으려 장안에 들어갔지 / 求名入長安
장안에는 큰 집들도 많고 / 長安多甲第
가무 소리가 구름에 닿았으며 / 歌舞靑雲端
벼슬아치 한길에 많이 다니니 / 衣冠散廣陌
검과 패옥 소리 맑게 울리었지 / 劍佩聲珊珊
홀연 말 탄 사람 오기에 보니 / 忽見車騎來
햇살에 금안장이 번쩍거리는데 / 白日輝金鞍
바로 평소에 친하던 벗이라 / 認是平生親
나아가 만나려다 머뭇거렸지 / 欲進仍盤桓
한 번 성명을 말하고 싶어도 / 願一道姓名
기상에 눌려 나서지 못하고 / 氣象不可干
날이 저물어 묵는 집에 돌아와 / 日暮歸邸舍
베개를 만지며 눈물만 흘렸어라 / 撫枕涕汍瀾
후세의 사람들에게 이르노니 / 傳語後來人
이 길은 정녕 무엇보다 어렵다네 / 此路誠獨難
어떤 소년이 원유를 좋아하여 / 少年喜遠游
검을 잡고 서쪽 변새로 가는데 / 按劍出西塞
길가에 한 쌍의 옛 무덤이 / 道傍雙古冢
볼록볼록 마주 보고 있었지 / 纍纍正相對
말하길 고죽군의 아들인데 / 云是孤竹子
무덤이 황폐한 지 천 년이라네 / 蕪沒向千載
소년이 비분강개한 나머지 / 慷慨爲悲吒
침통한 슬픔에 오장이 찢어질 듯 / 沈慟傷五內
서성이며 차마 못 떠나가는데 / 盤桓不忍去
흰 해는 참담한 빛으로 저무누나 / 白日慘將晦
상주 시대는 이미 멀어졌으니 / 商周今已遠
옳고 그름이 필경 어디에 있는가 / 是非竟何在
그윽한 난초에 큰 꽃이 피니 / 幽蘭生都房
빼어난 빛깔 어찌 그리 고운지 / 秀色一何嫩
비와 이슬이 밤낮으로 적셔 주니 / 雨露日夜滋
가지와 잎이 홀연 화단에 가득해라 / 枝葉忽盈畹
걱정스러운 건 제결이 울어서 / 竊恐鵜鴂鳴
봄날 속절없이 저무는 것이지 / 靑歲坐成晩
지금 사람은 허리춤에 찰 줄 모르고 / 今人不知佩
옛사람은 이미 멀어지고 말았어라 / 古人亦已遠
하늘의 운수가 진실로 이와 같다면 / 天運苟如此
난초의 일은 누구에게 원망하리오 / 持此欲誰怨
단혈에서 봉황이 태어나니 / 鳳皇生丹穴
한 번 날아 구주를 가로지른다 / 一擧橫九州
아침에 낭풍의 산봉우리 떠나 / 朝辭閬風岑
저녁에 창해의 물을 마시도다 / 夕飮滄海流
문왕이 세상을 떠난 지 오래니 / 文王久已沒
그 언제나 한번 와서 노닐까 / 何當一來遊
아 저 울타리 사이의 참새는 / 嗟彼籓籬雀
짹짹거리며 무엇을 찾고 있나 / 啾啾安所求
걸어서 성곽 북문을 나가서 / 行出郭北門
날 저물녘 강가를 거니노라 / 日暮游江皐
찬 서리에 온갖 풀들 시들고 / 凝霜被百草
매서운 바람은 성나 울부짖는다 / 烈風聲怒號
들판은 어쩌면 저리 쓸쓸한가 / 原壄何蕭條
눈에 보이느니 우거진 쑥대뿐 / 極目唯蓬蒿
어찌 같이 온 사람 없으랴만 / 豈無同來人
괴로운 내 마음 아무도 모르네 / 莫知我心勞
그리운 님은 만 리 밖에 있으니 / 所思在萬里
아득히 풍랑에 길이 막혔어라 / 茫茫隔風濤
외로운 기러기는 서남쪽으로 날아 / 孤鴈西南翔
구슬픈 소리로 울며 짝을 찾누나 / 哀鳴求其曹
이 광경을 보고 길게 탄식하며 / 見此長嘆息
눈물을 흘려 찬 옷깃 적신다 / 淚下沾寒袍
꾀꼴꾀꼴 우는 골짜기의 새 / 嚶嚶谷中禽
푸릇푸릇 우거진 강가의 풀 / 芊芊江上草
깊은 규방에 있던 고운 여인은 / 皎皎深閨女
성 남쪽 길에서 뽕잎을 따누나 / 採桑城南道
길 가던 이가 보고 머뭇거리며 / 行者爲躕躇
함께 말할 제 안색이 환했건만 / 共言顔色好
중매쟁이가 죽은 지 오래라 / 蹇脩沒已久
좋은 인연 일찍 맺을 수 없어 / 佳期苦不早
마침내 독수공방 외로운 신세 / 終然守幽獨
흘러가는 세월만 탄식할 뿐일세 / 歎息年光老
저녁 해는 어쩌면 저리도 환하여 / 夕日何暉暉
나의 가을 정원에 해바라기 비추나 / 照我秋園葵
가을 해바라기는 저녁 해 향하지만 / 秋葵共夕日
다시 얼마나 오래 그럴 수 있으랴 / 能復幾多時
홀연 돌개바람 세차게 일더니 / 忽有回風發
뜬구름이 와서 해를 가리누나 / 浮雲來翳之
은혜로운 햇빛이 중도에 막히니 / 恩光中道隔
이를 보는 사람도 마음이 슬퍼진다 / 對此令人悲
[주-D001] 백량(柏梁) :
한 무제(漢武帝)가 장안성(長安城)에 건립하여 연회를 베풀고 시를 읊는 장소로 쓰던 백량대(柏梁臺)를 가리킨다. 이 누대는 높이가 20장(丈)이고 향백(香柏)으로 전각의 들보를 만들어 향기가 수십 리까지 퍼졌다 한다. 백량궁(柏梁宮)이라고도 한다.
[주-D002] 동로(東魯) :
춘추 시대 노(魯)나라를 가리킨다. 노나라가 산동(山東) 지역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여기서는 도성에서 먼 지방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주-D003] 고죽군(孤竹君)의 아들 :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형제를 가리킨다. 《사기(史記)》 권61 백이열전(伯夷列傳)에 “백이와 숙제는 고죽군의 아들이다.” 하였다.
[주-D004] 상주(商周) 시대는 …… 있는가 :
상주는 은(殷)나라와 주(周)나라이다. 백이와 숙제가 은나라에 대한 절의(節義)를 지켜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고 굶어 죽었으나 세월이 흐르고 나면 덧없는 옛일이 될 뿐이니, 지금에 와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 할 것이 있느냐는 뜻이다.
[주-D005] 제결(鵜鴂)이 …… 것이지 :
제결은 새 이름으로 접동새라고도 한다. 이 새는 음력 5월 또는 7월에 우는데 추분(秋分) 전에 울면 초목이 시들어 버린다고 한다. 여기서는 사람의 재능을 난초에 비겨서 세상에 쓰이지도 못하고 시들까 걱정한다는 것이다.
[주-D006] 허리춤에 찰 :
지조가 고결함을 뜻한다. 굴원(屈原)의 이소(離騷)에 “가을 난초를 엮어서 허리춤에 차노라.〔紉秋蘭以爲佩〕” 하였다.
[주-D007] 낭풍(閬風) :
신선이 산다는 곤륜산(崑崙山) 꼭대기에 있는 봉우리로, 낭풍전(閬風巓) 또는 낭풍대(閬風臺)라고 한다. 굴원의 이소(離騷)에 “아침에 내 백수를 건너려고 낭풍에 올라서 말고삐를 매었네.〔朝吾將濟於白水兮 登閬風而緤馬〕” 하였다.
[주-D008] 문왕(文王)이 …… 노닐까 :
봉황은 성인이 나올 때 세상에 나타난다는 신령한 새이다. 그래서 순(舜) 임금 때에 와서 춤을 추었고, 성군(聖君)인 주(周)나라 문왕(文王) 때 기산(岐山) 아래에 날아와 울었다고 한다. 《國語 周語上》 그 이후에는 봉황이 나타났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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