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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 名句 2.

淸潭 2017. 2. 6. 20:21

古典 名句 2.

 

117. 나무가 오래 자라면    하륜(河崙)의[명자설(名子說)

[木之生久則必聳乎巖壑 水之流久則必達乎溟渤]

 

나무가 오래 자라면 반드시 산중에 우뚝하며

물이 오래 흐르면 반드시 바다에 도달한다

<해설>

이 글은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걸쳐 관직 생활을 하였던 하륜(河崙 : 1347 ~ 1416)이 지은 것으로, 아들의 이름을 ‘구()’라고 지으면서 그 이름의 뜻을 적은 글입니다.
예전에는 이름을 지어주거나 자() 또는 호()를 지어줄 때에 그 의미를 함께 기록하여 적어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름이나 자, 호의 의미처럼 살아 달라는 기원의 뜻을 담았던 것입니다.
이 글은 ‘나무와 물이 그러하듯이 학문도 꾸준히 오래 하다보면 반드시 성취가 있게 될 것’이라는 의미인데, 아들이 항상 자신의 이름이 지어진 뜻을 생각하며 게으름 없이 학문에 힘써서 날로 진보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당부와 바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글쓴이의 아들 하구(河久)도 이름 지은 뜻에 걸맞게 꾸준히 노력하여 중군도총제(中軍都摠制) 등의 벼슬을 지냈다고 합니다.
글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118. 버려두면 돌이요   권필(權韠)의 『석주집(石洲集)

[捨則石 用則器]

 

버려두면 돌이요 쓰면 그릇이네

 

<해설>

이 글은 조선조 중기의 문인 석주(石洲) 권필(權필[韋+畢], 1569-1612)이 작은 돌솥에 새긴 명()입니다.
그 돌솥은 여종이 밭을 일구다가 찾아낸 것인데, 흙을 털고 이끼를 긁어낸 다음 모래로 문지르고 물로 씻어내고 하였더니 빛이 나고 말쑥한 것이 제법 사랑스러워서 곁에 두고 차를 끓이거나 약을 달이는 그릇으로 요긴히 쓰게 되었습니다.
돌을 갈고 문지르면서 석주는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솥아 솥아, 애초 돌로 태어난 지는 얼마이며, 장인이 깎아 그릇으로 만들어 인가에서 사용된 지는 또 얼마이며, 땅 속에 묻혀 있으면서 세상에 쓰여지지 못한 것은 또 얼마인가. 이제 오늘 내 것이 되었구나.
이 명을 지은 것은 1595년으로 임진왜란을 막 겪은 때입니다. 비록 스스로 벼슬길을 접긴 했지만, 나라가 큰 일을 당했는데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 것은 유교 사회의 지식인으로서 매우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석주는 강호(江湖)의 유랑 생활로 한을 달랬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현명한 임금이 자신을 알아보고 유용하게 써 줄 것이라는 기대는 버리지 않았습니다. 우연히 얻은 돌솥에 그러한 작자의 간절한 마음이 새겨진 것입니다.

이로부터 6년 뒤 중국 사신이 왔을 때, 석주는 백의(白衣)로 제술관이 되어 양국의 이름난 문사들 사이에서 문재(文才)를 한껏 발휘하였습니다. 선조(宣祖)는 그의 시를 향안에 두고 음송하였다고 합니다.

글쓴이 /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

 

119.철인은 바보처럼    박팽년(朴彭年)『박선생유고(朴先生遺稿)

[哲人之愚 默焉而其心已融 不愚而愚 有焉若無]

 

철인은 바보처럼 마음 깊이 알면서도 아무 말 없네.

어리석지 않으나 어리석은 듯하고,

무언가 있는데도 없는 듯하네.

<해설>

이 구절은 조선 초기 문신이며 사육신의 한 사람인 취금헌(醉琴軒) 박팽년(朴彭年 : 1417 ~ 1456)의 《박선생유고(朴先生遺稿)》에 실린 우잠(愚箴) 중 일부를 번역한 글입니다.

저자의 친구 강희안(姜希顔 : 1417 ~ 1464)이 어리석을 우() 자를 넣어 경우(景愚)라는 자()를 썼는데, 저자는 그를 두고 '안자(顔子)를 배운 사람'이라고 칭찬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서로 권면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해서 이 잠을 짓는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에서는 남의 말을 가져다 제 말인 양 쓰고,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하는 사람을 가리켜 “그 사람 참 똑똑하다.”고 말하는가 하면, 묵묵히 마음으로 이해하고 자기의 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을 보고 “그 사람 참 멍청하다.”고 하는 일이 많습니다.

어리석지 않은데도 어리석은 듯하고 자신의 장점을 내세우지 않는 철인(哲人)의 모습이 작은 일에도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바보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는 체하고 말 잘하는 똑똑한 사람은 넘쳐나는데, 사물의 이치에 통달하여 마음이 한가한 사람은 귀한 세상에 대고 저자는 묻습니다. 무엇이 진짜 어리석은 것이냐고.

글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120.사람을 등용함에 있어   유형원(柳馨遠) 『반계수록(磻溪隨錄)

[用人 惟其賢才 勿論其門地]


사람을 등용함에 있어 오직 인품과 재능을 살필 것이요 출신 집안은 논하지 말라

<해설>

유형원(1622 ~ 1673)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사회의 폐단을 혁파하여 백성을 구제할 것을 주장하는 등 개혁적인 사고를 하였으며, 이런 그의 사상은 조선 후기 실학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유형원은 그의 저술인 《반계수록》에서 국가 제도 전반을 면밀히 고찰하여 불합리하고 잘못된 곳을 일일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위의 글은 인재 등용에 관한 잘못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조선 사회는 상하 신분의 귀천이 있었으며, 관리 임용에 있어 문벌에 따른 차별도 존재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유형원은 관리를 등용함에 있어 오직 그 사람의 인품과 재능만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개인의 능력과 상관없이 출신을 따지는 행태를 통렬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주장을 편 사람으로, 《홍길동전》의 저자로 알려진 조선 중기의 학자 허균(1569 ~ 1618)이 있습니다. 그는 〈유재론(遺才論)〉에서, “예전에는 초야(草野)에서도, 병사들 중에서도, 항복한 적장에서도, 창고지기에서도, 도둑의 무리에서도 인재를 등용하였는데, 지금은 출신을 따지며 인재를 버려두고는, 인재가 없음만을 탄식한다.”고 안타까워한 바 있습니다.

사람을 등용함에 있어서 무엇으로 원칙과 기준을 삼아야 할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글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121. 해동청에게 새벽을 알리는 일을   〈만언소(萬言疏), 《토정유고(土亭遺稿)
 [
海東靑 使之司晨 則曾老鷄之不若矣 汗血駒 使之捕鼠 則曾老猫之不若矣]

해동청에게 새벽을 알리는 일을 맡긴다면 늙은 닭만도 못하고,

한혈구에게 쥐 잡는 일이나 시킨다면 늙은 고양이만도 못하다

<해설>

〈만언소〉는 토정(土亭) 이지함(李之함, 1517~1578) 57세 때 처음 포천 현감이 되어 곤궁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구제하는 방책을 진달한 상소입니다.

해동청은 고려에서 바다를 건너왔다 하여 중국에서 붙인 우리나라 매 이름입니다. 이덕무(李德懋)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매 중에 가장 뛰어나고 털빛이 흰 것을 송골(松骨)이라 하고 털빛이 푸른 것을 해동청(海東靑)이라 한다.” 하였습니다.

한혈구는 천리마의 일종입니다. 《한서(漢書)》 〈무제기(武帝紀)〉에, “한 무제때 장군 이광리(李廣利)가 대원(大宛)을 정벌하고 한혈마(汗血馬)를 노획해 돌아와서 서극천마가(西極天馬歌)를 지었다.” 하고 그 주(), ‘땀이 어깻죽지에 피처럼 나므로 한혈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천하가 알아주는 좋은 매에게 닭이 하는 일을 맡기거나, 천하가 알아주는 좋은 말에게 고양이가 하는 일을 시킨다면 일이 잘 될 리가 없습니다. 이어 토정은 되묻습니다.

“하물며 닭이 사냥을 할 수 있겠으며, 고양이가 수레를 끌고 다닐 수 있겠습니까?[況鷄可獵乎 猫可駕乎]

, , , 고양이는 모두 나름대로 기재(奇才)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맡는다면 도리어 천하의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람을 적재적소에 쓰는 것이 결국 백성을 살리는 길이라고 토정은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일개 작은 고을의 현감에 불과하지만 명색이 자목관(字牧官)으로서 이렇게 임금께 간언한 것입니다.

글쓴이 /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

 

122. 애초에 여기 온 뜻    조현명(趙顯命), 벌을 보노라니[蜂箴],《귀록집(歸鹿集)

[爾智足尙 始來何意 滿園芳花 翩其逝矣]

너희 꾀야 제법이라 할 수 있으나

애초에 여기 온 뜻 무엇이더냐?

정원 가득 핀 꽃으로

훨훨 날아가거라.

<
해설>

위의 구절은 조선 후기 문신 귀록(歸鹿) 조현명(1690~1752)의 문집인 《귀록집》에 실린 봉잠(蜂箴)의 일부를 번역한 글입니다.
저자가 떡을 먹으려고 그릇에 꿀을 덜어놓자 어디선가 벌 세 마리가 날아왔습니다. 한 마리는 그 곁에서 입을 대었다 떼었다 하고, 한 마리는 머리를 처박고서 나뒹굴어 자빠지고, 한 마리는 높이 맴돌면서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그 벌들에게 일침을 놓습니다.
  
“애초에 너희가 여기 온 뜻이 무엇이냐?
삶의 목적을 잊은 채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저 죽는 줄도 모르고 덤벼드는 모습을 딱하게 여겨 친절하게 일러주기도 합니다.
  
“정원 가득 핀 꽃으로 훨훨 날아가거라.
저자는 옳은 길이 아닌 줄 알면서도 이익만 있으면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벌의 모습을 빗대어 충고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윙윙 꽃 사이를 누비며 꿀을 모으는 데 온 정신을 쏟는 벌들의 모습이 더욱 눈부신 봄날입니다.

글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123. 반드시 사람으로서   이재(李縡), 〈사람은 배우지 않아서는 안된다[人不可以不學說]〉중에서

[必行所當爲人之實事而後 方可以副爲人之名 不爾則名雖人而實非人]

반드시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실제의 일을 행한 뒤라야

사람이라는 이름에 걸맞을 수 있는 것이니

그렇지 않으면 이름은 비록 사람이라 할지라도

실제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
해설>

이 글은 조선 후기 학자인 이재(1680~1746)의 문집 《도암집(陶菴集)》에 나오는 것으로, 사람이 짐승과 구분되기 위해서는 배움을 통하여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체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라는 아주 당연한 이 말은, ‘왕의 남자’라는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유명해진 공길이가 실제 역사에서 연산군에게 퍼부었다는 《논어》의 명구,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臣臣父父子子]”와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실제를 담지 못하고 있는 이름뿐인 이름은 제 이름이 아닌 것입니다.
요즘 우리는 가끔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모습은 분명 사람인데 사람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짓을 하는 존재들. 그들을 과연 사람이라고 불러야 할지, 짐승이라고 불러야 할지.

이 글에서 이러한 고민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은 무리일까요?

글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124. 집안을 부유하게 함은    이규보(李奎報), ‘인씨묘지명(印氏墓誌銘)’ 중에서

[肥其家不係財 秉德之靜專 功於國不必身 有子之才賢]

집안을 부유하게 함은 재물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고요하고 전일한 덕을 지니면 되네

나라 위해 공 세움은 꼭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재주 있고 현명한 아들을 두면 된다네

<
해설>

《동문선(東文選)122권에 실린 이 글은 이규보가 한림원(翰林院) 동료인 김공수(金公粹)에게 부탁받아 지은, 그의 어머니 인씨의 묘지명 중 일부입니다. 위의 말은 부인이 덕으로 집안을 부유하게 하였고 재주 있는 아들을 두어 나라에 공을 세웠다는 뜻이 되니, 당시로는 부인께 드리는 최고의 찬사일 것입니다.

인씨의 남편은 상장군(上將軍)과 재상을 역임한 고려의 이름난 무신 김원의(金元義, 1147~1217)입니다. 그는 성품이 바르고 청렴했던 것으로 높이 평가받은 인물입니다. 그리고 아들 공수는 과거 급제 후 직한림원(直翰林院)이 되었으니 학문과 재능을 인정받은 셈입니다. 이는 인씨 부인이 내조와 자녀 교육 두 가지 역할을 모두 훌륭히 해냈다는 것을 뜻합니다.

가세가 비교적 넉넉한 편인데도 인씨 부인은 상장군이 재상에 오를 때까지도 길쌈일을 쉬지 않았습니다. 자제들이 만류하면 “이것은 내 직분이다. 이는 마치 너희들이 책과 붓을 잠시도 떼놓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답하였다고 합니다.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자녀는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었을 것입니다.

글쓴이 /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

 

125. 먹을거리는 하늘이다    정조대왕(正祖大王), 《홍재전서(弘齋全書)》중에서

[君非民 孰與爲國 故曰君人者以百姓爲天 民非食 罔以資生 故曰民以食爲天]

임금이 백성이 아니라면 누구와 더불어 나라를 다스리겠는가?

그러므로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삼는다’고 하는 것이다.

백성은 먹을 것이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고 하는 것이다.

<
해설>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는 말은 원래 중국의 《사기》〈역이기열전〉에 나오는 말인데, 정조가 신하들과의 대화에서 이를 인용하며 부연한 것입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하늘을 가장 중히 여기고 무서워해야 합니다. 공자도 《논어》에서 “하늘에 죄를 얻으면 도망갈 곳이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백성들이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기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목숨이 달려있기 때문이며, 임금이 백성을 하늘로 여기는 이유는 백성이 없으면 왕 노릇 할 대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지상정으로 볼 때에 목숨과 바꿀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임금이 백성의 하늘을 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백성들은 더 이상 그 임금을 임금으로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통치자가 백성을 위하여 가장 우선시할 것이 무엇인지를 정조대왕은 이미 200여 년 전에 분명히 제시하였던 것입니다.

옮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126. 마음을 보존하는 법   이익(李瀷), 수식잠(數息箴), 《성호전집(星湖全集)

[凝神默坐 思慮不作 數我呼吸 爲存心則]

정신을 모으고 고요히 앉아 이런저런 생각 일으키지 말라.

나의 들숨 날숨 세어 보면서 마음을 보존하는 법을 삼으라.

<
해설>

조선 후기 학자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의 문집인 《성호전집(星湖全集)》에 실려 있는 수식잠(數息箴)의 일부를 번역한 글입니다.

마음을 하나로 모아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는 것[主一無適]이 경() 공부입니다. 경 공부는 일상의 모든 순간에 하는 것이지만, 특히 정좌(靜坐)는 바른 자세로 앉아 마음을 안정시켜 성품을 수양하는 중요한 공부법입니다.

저자는 가만히 숨 모아 밀물 일듯 들이쉬고, 봄기운 펴지듯 양기 불어 내쉬며 자연스럽게 천천히 호흡하라고 권합니다. 하나에서 백까지 세어 나가다 보면 마음의 눈이 또렷해진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도 분명히 아는 사실을 어른들이 모르는 척 눈 감을 때가 많습니다. 맑은 차 한 잔 하고 조용히 호흡하면서, 어린아이처럼 맑은 마음의 눈을 되찾았으면 합니다.

옮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127.사람의 악덕중에   윤증(尹拯), 〈이조 판서 박공 신도비명(吏曹判書朴公神道碑銘)〉에서
[
人之惡德 莫甚於躁 千罪萬過 皆從此出]

사람의 악덕 중에 조급증이 으뜸이니

온갖 허물이 모두 여기서 나온다.


- <
해설>

이 말은 조선 후기의 문신 박태상(朴泰尙, 1636~1696), 내실은 없이 남보다 앞서려고 분쟁만을 일삼는 습속을 경계한 말로, 윤증이 지은 신도비명에 실려 있습니다. 실제로 박태상은 이조 참의가 되어 인사를 맡자 조급히 승진하려는 풍조를 힘써 억제하여 사로(仕路)를 맑게 하였다고 합니다.

조급함은 옛 사람들이 인물을 평가하는 잣대로 가장 많이 쓴 말 중의 하나입니다. 선현들이 공부하는 사람이나 위정자에게 지침을 제시할 때에도 맨 먼저 조급증을 없애야 한다고 가르쳤으니, 성정이 조급하냐 안정(安靜)되었느냐에 따라 일의 성패(成敗)와 화복(禍福)이 나누어진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 선생은 주자(朱子)의 “위공(魏公) 한기(韓琦)는 마음이 안정되었기 때문에 글씨가 단정하고 근엄한데, 형공(荊公) 왕안석(王安石)은 마음이 조급하기 때문에 대단히 황망한 기운이 있다.”고 한 글을 인용하면서, 안정됨과 조급함의 차이로 인하여 그 결과 온 천하가 복을 누리기도 하고, 온 천하가 화를 받기도 하였다고 논하였습니다.

‘바삐 먹으면 목에 걸린다’는 평이한 속담이 새삼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글쓴이 /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

 

128. 독한 약에 병 낫고    신흠(申欽) 조정에 임할 때 경계해야 할 일[臨朝箴]《상촌선생집》

[瞑眩瘳疾 脂韋成痍]

독한 약에 병 낫고 알랑거리는 말에 다친다

<
해설>

이 글은 조선 중기 학자 상촌(象村) 신흠(1566 ~ 1628)의 문집인 《상촌선생집》에 실린 원춘 사잠(元春四箴) '조정에 임할 때 경계해야 할 일[臨朝箴]'의 일부입니다.

저자는 만물이 생동하는 봄에, 임금에게 덕을 쌓고 업을 닦으라는 뜻으로, 조정에 임할 때 경계해야 할 일[臨朝箴], 한가로이 거할 때 경계해야 할 일[燕居箴], 학문에 힘쓸 일[進學箴], 건도(乾道)를 본받을 일[體乾箴] 등 네 가지로 잠()을 지어 올렸습니다.

이 글에서 저자는 신료를 모으기 위해 애써 노력하라고 하면서, '독한 약에 병이 낫고, 알랑거리는 말에 다친다'고 충언(忠言)을 올리고 있습니다. '좋은 계책을 수용하고, 기쁜 마음으로 행하라'고 하면서 '사람을 잘 취해야 왕도(王道)가 열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귀에는 거슬려도 곧은 말이 일을 성공으로 이끌며 당장 듣기는 좋아도 아첨하는 말이 일을 망치니, 의견이 다른 신하도 포용해야 훌륭한 정치를 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정책을 결정하는 지도자에게 꼭 필요한 덕목은, 귀에 대고 알랑거리는 말을 칼날 피하듯 피하고, 거슬리는 말을 보약 마시듯 기꺼이 들이키는 자세가 아니겠냐고 상촌 선생이 '2008년 대한민국'에 대고 외치는 것만 같습니다.

옮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129. 처음에 잘못을 하였더라도  김창협(金昌協) [曾子受季孫之簀論] 《농암집(農巖集)

[其始也過而其終也能改 則惟其改之爲貴而其過不必掩也]

처음에 잘못을 하였더라도

후에 과실을 고쳤다면

그 고친 것을 귀하게 여길 뿐이니

그 과실을 감출 필요가 없다

<
해설>

공자의 제자인 증자가 임종을 맞이하였습니다. 증자의 제자들이 옆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동자가 증자가 누워있는 자리의 깔개를 지적하였습니다. 그 깔개는 당대의 실권자인 계손씨가 선물한 것인데 증자의 신분에는 맞지 않는 사치스러운 물건이었던 것입니다. 증자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의 몸을 부축하라 하고는 깔개를 바꾸고서 바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일화를 두고 증자가 신분에 걸맞지 않은 깔개를 사용한 점을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을 앞두고서도 자신의 잘못을 고쳤던 증자를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말을 바꾸기도 하고, 무언가 감추기도 하고, 새로운 거짓말을 하면서 결국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자기편의 잘못에 대해 무조건 감싸주려고 이치에 맞지도 않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김창협은 글의 말미에서, 과실을 고치지 않고서 변명하고 감추기만 한다면 처음에는 과실이었지만 결국 악행이 되고 만다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과실이 크면 클수록 더욱더 과감히 고쳐야 할 것입니다.

글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130. 우애(友愛)에 대하여    최현(崔晛), 우애잠(友愛箴) 《인재집(認齋集)

[兄之骨 是父之骨 弟之肉 是母之肉]

형의 뼈는 아버지의 뼈요

아우의 살은 어머니의 살이네

<
해설>

이 글은 조선 중기 학자 인재(認齋) 최현(1563 ~ 1640)의 문집인 《인재집(認齋集)》에 실린 우애잠(友愛箴)의 일부를 번역한 것으로, 경상도에서 어떤 형제가 재판까지 걸어가며 크게 싸우자 그들을 일깨우기 위하여 저자가 써서 보여준 글입니다.

저자는 아우가 어릴 때 형이 업고 다닌 것, 아우가 숟가락을 잡지 못할 때 형이 밥을 떠먹인 것, 한 상에서 밥 먹고 끌어안고 잠든 것, 함께 울고 웃던 것들을 떠올려보게 합니다. 그러고 나서 결혼 후 제 살림을 챙기느라 사욕이 싹터 원수처럼 욕하는 사이가 되고, 결국 남보다도 못해지게 된 상황을 안타까워합니다.

그리고 이들 형제에게 명합니다.

“마음을 너그럽게 먹어 의()를 높이고 재산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마음에 노여움을 담아 두지 말고 원망을 쌓아 두지 말게나.

저자가 이 글을 써서 보여주자 형제는 감동을 받아 서로 자책하고, 결국 소송을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형제는 부모가 남겨주신 가장 큰 유산이라고 합니다. 형의 손을 붙잡고 걸음마를 배우고, 밥을 떠서 아우에게 먹여주었던 그 때를 떠올리면, 덜 중요한 것들로 인해 가장 중요한 것을 잃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옮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131.아무리 총명한 사람이라도    이이(李珥)《율곡전서(栗谷全書)》 年譜 중에서

[人雖至愚 責人則明 雖有聰明 恕己則昏]

매우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남을 꾸짖는 데에는 밝고

아무리 총명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용서하는 데에는 어둡다

<
해설>

조선시대 선조조 초기에 유신(儒臣) 중심의 조정 관료들이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으로 갈라져 분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론(黨論)이 심각해지자 율곡(栗谷) 이이는 중재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결국 조정책은 실패하고, 이이는 대사간을 사직하고 해주(海州)로 돌아갔습니다.

위 글은 이이가 해주에서 이발(李潑)에게 쓴 편지에 인용된 글입니다. 얼마 전 서인의 영수인 정철(鄭澈)이 서인을 지나치게 두둔한 일이 있었는데, 이이는 이발과 함께 정철의 마음을 돌리려고 갖은 애를 다 썼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발이 오히려 서인을 가혹하게 비난하므로 이발에게 아래의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이발은 동인의 중심 인물이었습니다.

“지금 그대가 심의겸(沈義謙)을 소인이라 지적하고 서인을 사당(邪黨)이라고 몰아붙이니, 심모는 그렇다치고 서인이 모두 다 나쁘겠는가. 오늘 그대가 동인을 두둔하는 것이 계함(季涵, 정철의 자)이 서인을 두둔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어찌하여 계함을 책하던 것으로 자신을 책하지 않는가.

위의 구절은 본래 중국 송나라 명신 범순인(范純仁)이 자제들을 경계한 말로, 《소학(小學)》 〈가언(嘉言)〉에 들어 있습니다. 이이는 《소학》을 '학문을 시작할 때 맨 먼저 배워야 할 책'으로 꼽았습니다. 위 편지를 쓴 것은 《소학집주(小學集註)》를 완성한 그 해였습니다.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 자신을 꾸짖고,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한다면

분쟁이나 반목이 생길 리가 없습니다.

속수무책인 채 낙향한 이이는 이 뜻을 유신들에게 일깨워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옮긴이 /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

 

132. 물길을 거슬러    윤증(尹拯) 빙군의 시에 차운하다[和聘君韻]

[爲學聞如逆水舟 登難退易使人憂]

학문이란 듣자니 물을 거스르는 배와 같아

진보는 어렵고 퇴보는 쉬워 시름겹게 하네

<
해설>

흐르는 물길 위에 놓여있는 배는
물길을 거슬러 힘껏 노를 저어 나아가지 않으면
바로 떠내려가 버리고 맙니다
학문도 물을 거스르는 각오로 정진하지 않으면
시대의 흐름 속에 발맞추지 못하고 도태되고 말 것입니다
학문에서뿐만 아니라
시대는 항상 변화하면서 흘러가고 있습니다
나 자신에 매몰되어 주위를 둘러보지 못한 채
지금의 모습에 안주하여 변화하지 않는다면
결국 현재의 자리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저 멀리 아래로 떠내려가 버리고 말 것입니다

옮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133. 밥 먹을 때는 함께 씹고    이황(李滉)《퇴계선생문집》 [先府君行狀草記]에서

[食與俱嚥 寢與俱夢 坐與俱坐 行與俱行]

밥 먹을 때는 함께 씹고,

잠 잘 때는 함께 꿈꾸며

앉을 때는 함께 앉고,

걸을 때는 함께 걸었다

<
해설>

위 글은 퇴계(退溪) 이황의 아버지 이식(李埴: 1463~1502)이 독서에 대해 자식들에게 남긴 유훈(遺訓)입니다. 자신은 이처럼 글을 읽는 데 있어서 한시라도 글을 마음에서 떼놓지 않았으니, 이렇게 하지 않고 여유 부리며 세월을 허송한다면 어찌 성취할 수 있겠느냐고 엄히 훈계하고 있습니다.

이식은 가풍(家風)을 이어 과거 공부보다는 경사(經史)와 제자백가(諸子百家)를 탐구하는 데에 평생을 보냈습니다. 그리하여 비록 벼슬길의 영예는 얻지 못하였지만 크게 학업을 이루어 당시 학자들의 추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유훈은 아들을 대학자로 만든 자산이 되었습니다
.

옛 선비들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手不釋卷], 밥 먹는 것조차 잊으며[忘食] 글을 읽었다고 합니다. 위의 글을 읽다 보면 전심전력으로 학문에 매진하는 학자의 자세가 더욱 절실히 느껴집니다
.

옮긴이 /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

 

134. 보리밥 뻣뻣하다 말하지 마라    정약용(丁若鏞) 사치를 경계하는 글[奢箴]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보리밥 뻣뻣하다 말하지 마라. / 毋曰麥硬
앞마을에선 불도 못 때고 있으니. / 前村未炊
삼베옷 거칠다 말하지 마라. / 毋曰麻麤
헐벗은 저들은 그마저 없으니. / 視彼赤肌

<
해설>

이 글은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 '사잠(奢箴)' 중 일부를 번역한 것입니다. 즐거움은 누구나 다 누리는 것이고 복()은 누구나 다 받는 것인데, 왜 누구는 추위에 떨고 굶주리며 누구는 비단옷에 맛있는 음식을 먹느냐고 문제를 제기합니다.

더구나 직접 짜지도 않으면서 오색영롱한 비단옷을 입고, 사냥하지도 않으면서 살진 고기를 실컷 먹어서야 되겠느냐고, 무위도식하며 사치하는 이들을 꾸짖습니다. 이어서 한 입 즐길 정도면 다른 집 열 집을 거둘 수 있고, 하루 먹는 양이면 누군가 한 달을 먹고 살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일깨워줍니다
.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기아와 질병으로 15초마다 한 명의 어린이가 죽어 가고 있고, 매년 600만 명이 결막 질환으로 시각장애인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반면 너무 많이 먹은 게 원인이 되어 병들고 죽는 일도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

만 원짜리 모기장 하나면 한 가족이 말라리아에 걸리는 것을 막을 수 있고, 2만원이면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이 30명에게 고단백 영양식을 먹일 수 있고, 5만원이면 600명의 어린이에게 실명 예방용 비타민A 캡슐을 1년간 공급할 수 있다고 합니다
.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하는 것이라며 모른 척하고 살 것이 아니라, 남의 불행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다행스럽게 여길 것이 아니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쉽고도 귀한 일들에 정성을 쏟을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

옮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135. 그릇의 크기에 따라   이승소(李承召) 경해당기(傾海堂記) 중에서

 

그릇이 큰 사람은 작게 받아들일 수 없고 / 器之大者 不可以小受
그릇이 작은 사람은 크게 받아들일 수 없다 / 器之小者 不可以大受


<
해설>

이 글은 조선 전기의 문신인 이승소(李承召:1422~1484)가 홍윤성(洪允成)의 국량을 높이 평가하며 한 말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능력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미 한계에 도달한 사람이 있으며, 앞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각자의 그릇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작은 그릇을 가진 사람은 조금 채우고 나면 아무리 더 담고 싶어도 더 이상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큰 그릇을 가진 사람은 담는대로 모두 받아들여 차후에 큰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 다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역량도 살피지 않고 무작정 채우려고만 들지 말고 우선 그릇을 키우는 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인재를 등용하는 데 있어서는 그 사람의 그릇이 어떠한지를 잘 살펴 그에 걸맞는 일을 맡겨야 할 것입니다. 그릇이 작은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면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를 낼 수 없을 것이며, 그릇이 큰 사람에게 작은 일을 맡기면 이 역시 제대로 일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옮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136. 이상(理想)을 드높여라    최창대(崔昌大) 막힘없음에 대하여[達箴]《곤륜집(昆侖集)

(理想)을 드높여라. / 志尙要激昻

송골매 하늘 높이 날아오르듯. / 意氣要奮發

기개를 떨쳐라. / 激昻則如霜鶻之橫雲霄

신마(神馬)가 재갈을 거부하듯. / 奮發則如神駒之謝銜


<
해설>

※ 위의 글은 원문의 순서를 바꾸고 내용을 축약하여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을 직역(直譯)하자면, “이상을 드높여야 하고 기개를 떨쳐야 하니, 드높이는 것은 송골매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것과 같고, 떨치는 것은 신마가 재갈을 마다하는 것과 같다.”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조선 후기 문신 곤륜(昆侖) 최창대(1669 ~ 1720)의 ‘달잠(達箴)’ 중 일부를 번역한 글입니다. 저자는 막힘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조건으로 몇 가지를 열거하고 있는데, 위의 글은 그 첫 구절에 자리한 내용입니다. 위의 글에 이어서 저자는

봄날의 훈풍처럼 기상을 화평하게 할 것 / 휘영청 빛나는 가을 하늘 달처럼 가슴을 탁 트이게 할 것 / 박옥(璞玉)을 다루듯 품행을 갈고 닦을 것 / 명주실로 비단 짜듯 치밀하게 연구할 것 / 콸콸 흐르는 냇물 막힘없듯 재능을 발휘할 것 / 은산(銀山) 철벽(鐵壁) 꿈쩍 않듯 절조를 굳게 지킬 것 등을 이야기하고, 이 몇 가지에 능한 사람이라야 ‘막힘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곤륜 선생이 제시한 ‘달인의 조건’을 보며, 자유란 자기 완성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 과정 속에 있는 것이라는 정직한 가르침을 마음 깊이 새겨 봅니다.

옮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137. 백발은 시에 쓰이면 새롭고    이수광(李睟光)《지봉유설(芝峯類說)

[白髮花林所惡而用於詩則新 富貴世情所喜而入於詩則陋]

백발은 미인들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시에 쓰이면 새롭고

부귀는 세인들이 좋아하는 것이지만 시에 들어오면 누추하다

<
해설>

위 글은 조선 후기의 문인 지봉(芝峯) 이수광(1563~1628)이 《지봉유설》에서 옥봉(玉峯) 백광훈(白光勳, 1537~1582)의 일화를 기술한 조목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옥봉은 유명한 시인으로 한 글자 한 구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내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작(詩作)에 전념하였기에 사람들이 더욱 귀중히 여겨 작품마다 회자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명성과는 달리 집안도 빈한하고 변변한 벼슬도 못한 탓에 옥봉의 행색은 늘 초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봉유설》에 실린 일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옥봉이 한번은 공산(公山)에 유람한 적이 있었는데, 공산현감은 유명한 시인을 환영하기 위해 온갖 준비를 갖추고 기생들도 단장시켜서 데리고 맞이하러 나갔습니다. 그러나 막상 당도한 인물을 보니 의관이나 외모가 아무 볼품 없는 일개 선비에 불과하였습니다. 모두 실망한 가운데 한 기생이 “지금 백공을 보니 바로 조룡대(釣龍臺)구료.” 하자, 함께 있던 사람들이 크게 웃었습니다. 조룡대는 경승지라 일컬어지던 곳인데, 실제로는 별로 볼만한 것이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비유한 것입니다. 여기서 지봉은 위에 인용한 혹자의 말을 빌려 이 일화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뛰어난 시인과 그가 남긴 작품은 당대뿐 아니라 후대까지 오래오래 존경 받고 음송됩니다. 세상에서보다 시 안에서 더욱 빛나고 우대받는 단어가 또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봅니다.

옮긴이 /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

 

138. 오면 다시 가고   윤원거(尹元擧) 가면 돌아오지 않음이 없다[無往不復]

사물은 오면 가지 않음이 없고

때는 가면 돌아오지 않음이 없다

物無有來而不往
時無有往而不復


<
해설>

음양(陰陽)으로 설명되는 천지자연의 이치로 볼 때, 사물이건 시간이건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는 것은 없습니다. 달은 차면 이지러지고 이지러진 뒤에는 다시 차게 되며, 해가 뜨면 달이 지고 달이 뜨면 해가 지기 마련입니다.

인간사도 어찌 자연의 이치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맞닥뜨려진 상황이 영원할 듯하지만 인생이라는 기나긴 여정 속에서는 바로 한 순간일 뿐입니다.

순간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는 마음을 언제나 경계하고, 오늘과는 다른 내일이 존재한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옮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139. 나는 재주와 지혜가 낮아서   허목(許穆) 《기언(記言)》 중에서

[吾才智下 每臨事加勉 幸無大過]

나는 재주와 지혜가 낮아서

일을 대할 때마다 더욱 노력하였더니,

다행히 큰 허물이 없었다.

<
해설>

위 글은 미수(眉叟) 허목이 평소 교유하였던 사심(師心) 이정호(李挺豪 : 1578~1639)의 말을 인용한 것입니다. 미수는 이 말을 과불급(過不及)의 경계로 삼아 종신토록 마음에 새겼다고 합니다.

이정호는 성균관 유생으로 있다가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출하자 은거하여 학문에만 전념하였습니다. 인조가 재주와 학식이 있는 선비를 불러 기용함에 동몽교관이 되었고, 이후 통례원 인의, 공조 좌랑을 거쳐 황간 현감을 지냈습니다. 그러나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의 치욕을 보고는 다시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겠다는 뜻을 담아 만각(晩覺)이라고 호를 바꾸고 한산(韓山)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냈습니다.

미수는 〈자서(自序)〉에서도 만각의 독실한 행실을 따라가지 못함을 자탄하였으며, 만각과 친분이 두터웠던 설옹(雪翁) 허후(許厚)는 그의 제문(祭文)에서 ‘심오한 학문과 확고한 실천’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성실함이 없으면 천하 만사를 이룰 수 없다고 선인들은 말합니다. 만각이 동료와 후배 학자에게 성덕군자(成德君子)로서 크게 인정을 받은 것은 겸손한 자세로 끊임없이 자신을 면려한 때문일 것입니다.

옮긴이 /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

 

140. 때에 맞게 말하고 때에 맞게 행하라    유도원(柳道源) 해야 할 일 네 가지[四當箴]중에서《노애집(蘆厓集)

當動而動 動亦無尤 當言而言 言亦無吝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이면 움직여도 허물이 없고

말해야 할 때 말하면 말해도 후회가 없다

<
해설>

이 글은 조선 후기 학자 노애(蘆厓) 유도원(1721~1791)의 사당잠(四當箴) 중 일부를 번역한 글입니다. 이 글에 이어서 “해야 할 일을 하면 해서 이룸이 있다.[當做而做 做亦有成]”는 구절과, “구해야 할 일을 구해야 하니 내 안에 있는 것을 구해야 한다.[求有當求 求在我者]”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글 바로 앞에는 ‘하지 말아야 할 일 네 가지[사막잠(四莫箴)]’를 적은 재미있는 글이 있습니다. “움직였다 하면 허물을 불러들이니 움직이지 않는 게 상책. 말했다 하면 후회스러워지니 말하지 않는 게 상책. 했다 하면 되는 게 없으니 안 하는 게 상책. 구했다 하면 비굴해지니 구하지 않는 게 상책.[動必招尤 莫如勿動 言必致吝 莫如勿言 做必無成 莫如勿做 求則自屈 莫如勿求]”이라는 내용입니다.

저자는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자신의 인격 수양을 위한 위기지학(爲己之學)에 전념하여 경구(警句)를 벽에 써 붙여 놓고 항상 애송하였다 합니다.

세상살이에서 상처받거나 지쳤을 때 사막잠(四莫箴)처럼 푸념을 하다가도 다시 사당잠(四當箴)을 외며 마음을 가다듬던 저자의 모습을 떠올리며, 삶 속에서 수행의 끈을 놓지 않고 부단히 노력한 선비들의 생활 태도를 기려 봅니다.

옮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141. 언로(言路)가 막히면    이이(李珥)의 상소 중에서《율곡전서(栗谷全書)

士氣旣挫 言路旣塞 / 則直士色擧而遠遯 佞人伺隙而競進

선비의 기상이 꺾이고 언로가 막히면

곧은 선비가 기미를 살펴보고는 멀리 숨어버릴 것이며

말만 잘하는 자들이 그 틈을 타 앞 다투어 나올 것입니다

<
해설>

조선 초기의 명신이자 학자인 율곡(栗谷) 이이(李珥 : 1536~1584)의 상소 중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이는 다른 글에서, “언로가 열렸느냐 막혔느냐에 나라의 흥망이 달려있다.[言路開塞 興亡所係]”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예부터 잘 다스려진 나라에서는 말을 바르게 해야 하고, 도가 행해지지 않는 나라에서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무도한 나라에서 바른 말을 하였다가 자칫 화를 입을까 걱정하였기 때문입니다. 바른 말 때문에 화를 입을까 걱정을 해야 하는 나라는 이미 정도(正道)를 잃은 나라입니다.

학자들의 자유로운 사고가 막혀 어용학자만 판을 친다거나, 바른 말이 행해지지 못하고 아첨하는 말만 세상에 떠돈다면 어긋나도 너무 많이 어긋난 것이 아닐까요?

옮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142. 떠나가신 어버이를 추모하며    강희맹(姜希孟)의 《사숙재집(私淑齋集)》에서

祿足以養而不得養 / 恩足以榮而不得榮

녹봉이 어버이를 봉양하기에 충분하나 봉양할 수가 없으며,

은전(恩典)으로 영화롭게 할 수 있는데 영화롭게 해 드릴 길이 없네

<
해설>

홍문관 박사 조위(曹偉)가 고향에 내려가 영친연(榮親宴)을 베풀려고 하면서 강희맹에게 전송하는 글을 지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강희맹은 기꺼이 〈홍문관박사조태허영친서(弘文館博士曹太虛榮親序)〉를 지어 조위를 축하해 주면서 아울러 자신의 감회를 서술하였으니, 위 글은 여기에 나온 구절입니다.

영친연은 과거에 급제한 자의 부모를 영화롭게 해 주기 위해 나라에서 베풀어주는 잔치를 말합니다. 강희맹도 대과에 장원 급제하여 영친연을 베풀 기회가 주어졌지만, 아버지가 아들을 깊이 생각하는 마음에서 굳이 사양하였으므로 후일 더 영화롭게 해 드릴 기회가 있으리라 여기고 뒤로 미루었습니다. 그 뒤 당상(堂上)에 오르고 육경(六卿)에까지 올라 명예와 은총이 더욱 높아졌지만, 어버이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이에 강희맹은 어버이를 봉양할 때를 부질없이 보내버린 회한을 평생 가슴에 품게 되었습니다.

“아, 예로부터 지금까지 누구인들 부귀하게 되어 어버이를 봉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마는, 혹 부귀하게 될지라도 어버이가 살아계시지 않으면 어찌하겠는가.” 하며 강희맹은 자기의 애통함을 거울삼아 더욱 시간을 아끼고 정성을 극진히 하여 후일에 유감이 없게 하기를 친구 조위에게 당부하였던 것입니다.

옮긴이 /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

 

143.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곽종석(郭鍾錫)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마음을 다잡는 글[處困箴]《면우집(俛宇集)

貧欲汝之昭儉而振淸 / 病欲汝之攝生而養命

가난은 네가 검소함 빛내 청렴을 떨치라는 것

병은 네가 섭생 잘해 생명을 잘 지키라는 것


<
해설>

이 글은 구한말의 유학자 면우 곽종석(1846 ~ 1919) 선생의 처곤잠(處困箴) 중 일부를 번역한 것입니다.

어려움에 처하면 편안함을 찾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저자는 편안히 처하는 데 독이 있으며, 슬픈 일도 복되고 경사스러운 데서 비롯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손가락질하며 욕하고 업신여겨도 그것은 네 언행을 다듬으라는 것이며, 어려운 일이 부딪쳐 와 마구 뒤흔들어대도 그것은 네 덕성을 튼튼히 하라는 것이라고 자신을 다독거립니다.

그리고 만 마리 말이 날뛰듯 어지럽게 부딪쳐대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홀로 굳건히 중심을 잡으면 지혜로운 통찰이 날로 깨어날 것이라고 확신하며 자신을 추스립니다.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좌절하지 않고 자신을 단련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겪으며 언행을 다듬고, 덕성을 기르고, 청렴을 떨치고, 생명을 지키는 능력을 키울 수만 있다면 언젠가는 '고통은 쓰나 그 열매는 달다.'고 웃으며 이야기할 날도 오지 않을까요?

옮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144. 구름은 지나가는 것일 뿐    이만부(李萬敷) 잡서변(雜書辨)

太陽中天 而片雲過之

태양은 저 높은 하늘에 있고

조각구름은 그저 지나갈 뿐

<
해설>

조선 중기의 학자인 이만부(李萬敷 : 1664~1732)는 이 글에서, 옳지 않은 이단의 학설이 한 때 유행하더라도 결코 진리를 손상시킬 수 없음을 태양 아래를 지나가는 구름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구름이 지나가면 일시적으로 태양이 가려지기는 하지만 구름은 그저 지나갈 뿐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름이 지나가는 그 순간에 보이는 것은 구름뿐이지만, 구름은 태양을 손상시킬 수도 없으며 잠시 후면 흩어져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구름만을 좇지 말고, 그 뒤에 영원히 빛나는 태양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옮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145. 호랑이가 산중에 있으면   이서우(李瑞雨) 이하진 묘갈명(李夏鎭墓碣銘)《송파집(松坡集)

虎在而藜藿植 龍亡而鰍

호랑이가 산중에 있으면 산나물이 자라나며,

용이 큰 못에서 사라지면 미꾸라지가 춤을 춥니다.

<해설>

위 글은 경신년(1680, 숙종6) , 대사간에 제수된 이하진(李夏鎭)이 잘못된 시정(時政)을 논하는 상소에서 한 말로, 이서우가 그의 묘갈명에서 인용하였습니다. 당시 허목(許穆), 홍우원(洪宇遠) 등 중신들이 숙종의 뜻을 거슬러 조정을 떠나게 되자 이러한 간언을 올린 것입니다.

이 글의 의미는 ‘훌륭한 신하를 내치면 장차 소인배가 득세하여 나라가 어지러워질 것임’을 임금에게 경계한 것입니다. 《한서(漢書)》개관요전(蓋寬饒傳)에는, “산에 맹수가 있으면 여곽을 그 때문에 뜯지 못하고, 나라에 충신이 있으면 간신이 그 때문에 일어나지 못합니다.[山有猛獸 藜藿爲之不采 國有忠臣 姦邪爲之不起]”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강개하고 학덕이 높았던 개관요가 억울하게 죄를 받자 당시 간원이 그를 변호하는 글에서 한 말입니다.

나라에 큰 인물이 자리 잡고 있어야 만사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해악(害惡)이 싹트지 않는 것입니다.

옮긴이 /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

 

146. 만학(晩學)의 즐거움   정호(鄭澔) 노학잠(老學箴) 병서(幷序) 《장암집(丈巖集)

以燭照夜 無暗不明 / 燭之不已 可以繼暘

촛불로 어둔 밤 비추더라도 어두움이 밝아지니

계속해서 비추기만 하면 밝음을 이어갈 수 있네

<
해설>

이 글은 조선 후기 문신 장암(丈巖) 정호(鄭澔)의 노학잠(老學箴) 중 일부를 번역한 글입니다. 저자는 63세인 경인년(庚寅年 1710, 숙종 36)에 죄를 지어 궁벽한 곳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는데, 이 시기에 글을 읽으면서 느낀 바가 있어 이 잠()을 지었다고 합니다.

중국 춘추 시대 진() 나라의 악사(樂師) 사광(師曠)이 “어려서 배우는 것은 해가 막 떠오를 때와 같고, 젊어서 배우는 것은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것과 같고, 늙어서 배우는 것은 밤에 촛불을 든 것과 같다.[幼而學之 如日初昇 壯而學之 如日中天 老而學之 如夜秉燭]”고 하였는데, 저자는 이 말을 인용하고는, 어려서 배우거나 젊어서 배운다면야 더없이 좋지만 늙어서 배우더라도 늦었다고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어 위의 “以燭照夜 無暗不明 燭之不已 可以繼暘” 구절과 함께 “해와 촛불이 다르다지만 밝기는 마찬가지이고, 밝기는 마찬가지라지만 그 맛은 더욱 값지다.[暘燭雖殊 其明則均 其明則均 其味愈眞]”라고 말하여 늙어서 배우더라도 배우는 것은 배우는 것이고, 배우는 맛은 오히려 젊을 때보다도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공부도 다 때가 있다.”는 말이 젊어서 학문에 힘쓰라고 격려하는 말이라면, “늙어서 배우는 맛은 더욱 값지다.”는 말은 공부에는 끝이 없으며, 학문하는 즐거움은 배우는 것과 삶의 경험이 맞물릴 때 더 커진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말입니다.

옮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147. 어려움에 대처하는 방법    이인로(李仁老)《파한집(破閑集)

智者見於未形 / 愚者謂之無事 泰然不以爲憂

지혜로운 사람은 일이 드러나기 전에 살피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 일 없다고 말하며

태연히 걱정하지 않는다

<
해설>

고려 중기 무신정권기의 문인이었던 이인로(1152~1220)가 지은 문학비평서인《파한집(破閑集)》에 실린 글의 일부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려운 지경에 처하지 않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이 일어나기 전에 기미를 살펴 미리 대처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부터 군자의 바른 처세로 “기미를 보고 일어난다[見幾而作]”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국가의 운영에 있어서도 미리 대처하지 못하면 그에 따른 여파는 온 백성에게 미치는 법입니다. 백성들의 수고로움은 군왕 한 사람에게 달려있다고도 하였습니다. 국가의 정책은 백성을 풍요롭게 할 수도 있고, 나락에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평상의 아래쪽은 불이 타오르고 있는데 아직 엉덩이가 뜨겁지 않다는 이유로 무사태평 걱정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믿으라고만 한다면, 장차 불길에 휩싸여야 할 죄 없는 백성들이 너무 불쌍하지 않을까요?

일이 커지고 어려워지기 전에 미리 살피고 대비하는 국가 정책으로 온 국민이 활짝 웃기를 기대해봅니다.

옮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148. 자식에게 일러주는 네 가지 덕()   최석정(崔錫鼎) 〈시아사덕잠(示兒四德箴)〉《명곡집(明谷集)

謙者德之基 / 勤者事之幹 / 詳者政之要 / 靜者心之體


겸손함은 덕의 기초이고

부지런함은 일의 근본이고

세밀함은 다스림의 요체이고

고요함은 마음의 본체이다

<
해설>

이 글은 조선 후기 학자 명곡(明谷) 최석정(崔錫鼎, 1646~1715)이 ‘자식에게 일러주는 네 가지 덕에 관한 잠[示兒四德箴]’을 짓고 그 아래에 풀어 쓴 글 중에 있는 내용입니다. 저자는 슬하에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두었는데, 곤륜(昆侖) 최창대(崔昌大, 1669~1720)가 그의 아들입니다.

저자는 자식에게 ‘교만하면 덕을 해치니 교만해서는 안 된다. 게으르면 일을 덮어두니 게을러서는 안 된다. 생각을 소홀히 하면 놓치는 게 있으니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기운이 들뜨면 지나침이 있으니 기운이 들뜨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훈계합니다.

그리고 교만함과 게으름과 소홀함과 들뜸을 다스릴 수 있는 요체로 겸손함과 부지런함과 세밀함과 고요함을 말하면서, 이 네 가지 덕을 행한 뒤에야 자신을 지키고 사물에 응접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어떤 일을 당부하는 것은 세상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소중한 열쇠를 건네주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명곡 선생은 마음을 고요하고 겸손하게 간직하고, 일을 부지런하고 꼼꼼하게 처리하라는 당부가 담긴 사랑의 열쇠를 자식들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옮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149. 한창때에 힘쓰지 않으면    김정(金淨) 〈십일잠(十一箴)〉《충암선생집(冲庵先生集)

馳波赴壑 百年易盡 / 盛壯不力 腐草俱泯

빠른 물살이 구렁으로 치닫듯이 한 백 년 금세 지나가니,
한창때에 힘쓰지 않으면 썩은 풀과 한가지로 사라져버린다.

<해설>

조선 중종조의 문신 김정(金淨, 1486~1521)이 한창 학업에 전념하던 스무 살 때, 앞으로의 인생에 지침으로 삼을 열 한 개 조목의 잠언을 지었습니다. 그 가운데 위 글은 편하게 노는 것을 경계한 일락잠(逸樂箴)의 한 구절입니다.

하루살이가 온종일 들끓다가 세찬 바람이 한 번 지나가면 온데 간데 없어지는 것처럼, 만물은 생겨났다가 한 순간에 다 없어집니다. 이 때문에 성인, 현사(賢士)들은 남보다 재주가 월등한데도 편하게 스스로 즐기며 노는 법이 없습니다. 짧은 하루를 아까워하고,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을 한탄하며, 항상 학문을 이루지 못할까 두려워합니다. 그리하여 좋은 이름이 오래오래 전해지는 것입니다.

반면에 우매한 사람들은 젊었을 때에 앞날이 먼 것을 믿고 하루하루를 향락으로 지내다가, 늘그막에 이르러서야 이룬 것이 없음을 뉘우칩니다.

김정은 이것을 ‘마치 뱀이 달아나 구멍에 들어가고 있는데 남아 있는 꼬리를 잡아당겨 빼내려 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였습니다. 지나간 세월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니, 한 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옮긴이 /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

 

150. 내 것이 아닌데도 취하는 것은   김창협(金昌協)〈잡기명(雜器銘)〉 중 반우(飯盂) 《농암집(農巖集)

非義而食 則近盜賊 / 不事而飽 是爲螟

합당하지 않은데 먹는다면 도적에 가까운 것이고

일하지 않고 배부르게 먹는다면 버러지인 것이다

<
해설>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이었던 김창협(1651-1708)이 밥그릇에 새겨 넣어, 밥을 먹을 때마다 경계로 삼았다고 하는 글입니다.

힘이 있거나 교활한 사람들은 내 것이 아닌 데도 취하여 자기 것으로 삼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누군가는 자신의 것을 빼앗기고 있다는 뜻입니다. 빼앗기는 사람은 물론 힘없고 선량한 사람들이겠지요. 그리고 일하지 않고 배부르게 먹기만 하는 사람이란 역시 남을 착취하여 자신의 배만 불리는 사람일 것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았다면 제아무리 지체가 높고, 고상한 척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결국 도적인 것이며, 힘을 보탬이 없이 남의 것을 축내기만 한다면 버러지인 것입니다. 도적은 법으로 다스리고, 버러지는 없애버려야 할 것입니다.

옮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151. 진정한 용기는   이황(李滉)〈서답기명언논사단칠정(書答奇明彦論四端七情)〉《퇴계집(退溪集)

眞勇 不在於逞氣强說 而在於改過不吝 聞義卽服也

진정한 용기는 기세를 부려 억지 소리를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허물 고치기에 인색하지 않고 의리를 들으면 즉시 따르는 데 있는 것이다

<
해설>

위 글은 사단(四端)ㆍ칠정(七情)과 이()ㆍ기()의 문제에 대해 변론한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의 편지에 퇴계(退溪) 이황(1501~1570)이 답한 글에 있는 구절입니다. 고봉이 자신의 논의를 굽히지 않자 퇴계는 주자(朱子)의 용기를 예로 들었습니다.

“주자는 조금이라도 자기 의견에 잘못이 있거나 자기 말에 의심스러운 곳이 있음을 깨달으면 즐거운 마음으로 남의 말을 받아들여 즉시 고쳤으니, 비록 말년에 도()가 높아지고 덕()이 성대해진 뒤에도 변함없었습니다.

하물며 성현의 도를 배우는 길에 갓 들어섰을 때에는 어떠했겠느냐고 고봉에게 반문하며, 퇴계는 20여 년 아래의 젊은 후배에게 위와 같이 타일렀던 것입니다.

옮긴이 /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

 

152. 흥할 것이냐, 망할 것이냐   이익(李瀷)〈흥망계사검(興亡繫奢儉)〉《성호사설(星湖僿說)
與其下損 寧上損也

아래를 더느니 차라리 위를 덜어라

<해설>

위 문장은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星湖) 이익(1681~1763) 선생의 〈검소하면 흥하고 사치하면 망한다[興亡繫奢儉]〉라는 글에 들어있는 구절입니다.

저자는 재화(財貨)에는 한정이 있는 만큼 누군가가 이익을 보게 되면 누군가는 손해를 보게 되어 있으며, 다 같이 이익을 보는 이치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치가 그렇다면 아랫사람에게서 더는 것보다는 차라리 윗사람에게서 더는 것이 낫다고 주장합니다.

백성의 생명은 재화에 달려 있고, 재화는 백성에게서 나오는데, 재화가 위로 흐르면 말단(末端)이 차고 근본(根本)이 비기 때문에 백성이 먼저 죽고 나라가 그 뒤를 따르게 된다고 엄중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곱게 물든 잎들이 무심히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는 계절입니다. 자연은 위를 덜어 아래에 보태는데, 사람들은 아래를 덜어 위에 보태려 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옮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153. 스승과 벗   이선(李選) 세 고을 학생들에게 고하는 글[告諭三邑諸生文]《지호집(芝湖集)

莫曰無師 求之方策 有餘師矣 / 莫曰無友 靜對黃卷 有其友矣
※ 方策과 黃卷은 모두 책을 뜻하는 말.

스승이 없다 말하지 말라

책에서 찾으면 많은 스승이 있을 것이다

.벗이 없다 말하지 말라.

조용히 책을 펼치면 그곳에 벗이 있을 것이다.

<
해설>

이 글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선(1631~1692)이 제주도에 순무사(巡撫使)로 파견되었을 때에 고을 학생들의 학업을 격려하며 적은 것입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교통이 편리하지도 못했고, 물산이 풍부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바다 건너 제주의 학습 여건은 그리 좋지는 않았을 것이며, 학생들은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에 저자는 이들을 다독이며, 책이라는 스승과 벗이 있으니 부족하게 생각하지 말고 더욱 학업에 정진하여 큰 인물이 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언제나 쉽게 책을 접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내가 다가서기만 하면 언제나 나의 스승도 되어 주고, 나의 벗도 되어줄 것입니다.

옮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154. 술이 맛은 달지만   심수경(沈守慶) 차임석천감자운(次林石川甘字韻)《청천당시집(聽天堂詩集)

曾聞大禹飮而甘 嗜酒全身十二三

일찍이 들으니, 우임금은 마셔보고 달게 여겼다지만

술 좋아하고 몸 온전한 이는 열에 두셋뿐이다

<
해설>

이 글은 조선 중기의 문신 심수경(1516~1599)이 자손들에게 술을 경계시키는 뜻으로 지은 시 중의 일부입니다.

술은 하()나라 때에 의적(儀狄)이 처음 만들었다고 합니다. 맛이 좋으므로 우()임금에게 바치자 우임금이 맛을 보고는 ‘후세에 반드시 술로 인해 나라를 망치는 자가 있을 것이다.’ 하며 의적을 멀리하고 두 번 다시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익(李瀷)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우임금이 이미 술로써 나라를 망칠 사람이 있을 것을 알았다면, 처음 제조했을 때에 어찌 엄형으로 다스려 온 세상에서 근절시키지 않고 물리치기만 했단 말인가. 이는 너무 관대한 처분이 아니었던가. 후세에 주지(酒池)ㆍ조제(糟堤)가 생긴 것은 모두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여, 술을 국법으로 금지할 것을 강하게 주장하였습니다.

*
주지(酒池)ㆍ조제(糟堤) : 술로 만든 연못과 누룩으로 만든 언덕. () 나라 주왕(紂王)이 총애하던 달기에게 미혹되어 주지와 조제를 만들어 온갖 향락을 누리다가 마침내 멸망하였다는 고사가 있음.

옮긴이 /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

 

155. 백성이 새로워지면    이수광(李睟光) 〈스스로 새로워지기 위해 경계하는 글[自新箴]〉《지봉집(芝峯集)

我民旣新兮 邦命亦新

백성이 새로워지면

나라의 운명도 새로워지네

<
해설>

조선 중기 학자 지봉(芝峯) 이수광(15631628)의 문집에 실린 자신잠(自新箴)의 한 구절입니다. 저자가 66세가 되던 무진년 새해를 맞아 지은 것으로, 노쇠함은 더욱 심해지는데 학문은 새로워지는 것이 없다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이 잠을 지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새해가 밝아 만물이 다 새로워지는 때에 새로워지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거울을 닦아 광채를 내듯 덕을 닦고, 나뿐만 아니라 백성과 함께 새로워지면, 나라의 운명도 새로워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라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길은 백성이 새로워지는 데 있고, 백성이 새로워지려면 나부터 새로워져야 하며, 내가 새로워지는 길은 덕을 닦는 데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덕을 닦아 나를 새롭게 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허물을 고치면 새로워지고 착한 일을 하면 새로워지네.

옮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156. 사물을 대하면서    이희경(李喜經) 《설수외사(雪岫外史)》중에서

天下之物 貴不可偏愛 賤不可偏棄

세상의 사물은

귀하다고 지나치게 좋아해서도 안 되고

하찮다고 지나치게 버려두어도 안 된다.

<
해설>

조선후기 대표적인 실학자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제자인 설수(雪岫) 이희경(1745~1805)의 글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귀한 것만을 좋아하여 일상의 물건을 만들면서도 귀한 재료를 사용한다면, 귀한 것은 더욱 귀해져 정작 꼭 필요한 데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하찮고 흔한 재료를 가공하여 잘 사용할 수 있을 때 세상의 물자는 풍부해지고 누구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얻기 힘든 금은보화보다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공기, , 흙이 우리에게는 더욱 소중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작은 사물이라도 모두 각각의 쓰임이 있습니다. 어디에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것입니다.

옮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157. 속이 비어야 받아들일 수 있다   이익(李瀷) 〈권수보를 전송하는 서문[送權秀甫穎序]〉중에서 《성호집(星湖集)

斗斛之量受有多少 先之以塵土之實 則嘉穀爲之不容也

두곡은 용량이 정해져 있는데,

먼저 먼지와 흙으로 채운다면 아름다운 곡식을 담을 수 없다.

<
해설>
위 글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익(1681~1763)이 후배인 권영(權穎)을 전송하면서 써준 글로, 지식에 대한 지나친 욕심을 경계한 것입니다.

성호는 자신이 한때 학문을 널리 한답시고 잡설, 패기(稗記) 등을 가리지 않고 많이 얻는 데에 몰두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나이가 든 뒤에야 전현(前賢)들의 글을 고심해서 읽게 되었는데, 하루가 안 되어 다 잊어먹기 일쑤였습니다.

그 이유를 성호는, 과거에 마음을 두었던 잡다한 지식이 마치 밭에 씨를 뿌려 놓은 것처럼 좀체 없어지지 않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하였습니다. 사람의 타고난 자질도 두곡처럼 정해진 용량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과 같은 우를 범하지 말고, ‘속이 비어야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을 유념하기를 후배에게 조언한 것입니다.

옮긴이 /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

 

158. 경전은 마음을 다스리는 도구이다   최한기(崔漢綺)〈경전리심지기(經傳理心之器)〉《기측체의(氣測體義)

釜鼎所以飪食之器 經傳所以理心之器也

솥은 음식물을 익혀내는 도구요

경전은 마음을 다스리는 도구이다

<
해설>

위 문장은 조선 말기 학자 혜강(惠岡) 최한기(1803~1877) 선생의 〈경전은 마음을 다스리는 도구이다[經傳理心之器]〉라는 글 첫머리에 있는 구절입니다.

저자는 도구가 있으면 쓰임이 있어야 하는데, 쟁기를 잡고서 밭을 갈지 못하거나, 솥에 불을 때면서 음식을 익히지 못하거나, 경전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쟁기건 솥이건 경전이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글을 읽는 많은 사람이 밖으로만 내달리고 마음을 다스릴 줄 모르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한 말입니다.

또 약물의 효능으로 혈맥(血脈)과 기체(氣體)가 고르게 되는 것과 같이, 경전을 통해 마음을 갈고 닦아 광명정대(光明正大)한 경지로 나아가라고 권합니다.

훌륭한 성현의 말씀을 기록한 경전을 도구라고 표현하는 것이 경전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경전을 읽으면서도 마음을 닦지 못한다면 아무리 훌륭한 뜻을 담은 경전이라도 그저 종이뭉치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경전의 가치는 그 안의 가르침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사람을 통해서 빛나는 것이 아닐까요?

기축년(己丑年) 새해 경전의 가르침과 함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옮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159. 먼 것은   유성룡(柳成龍)〈원지정사기(遠志精舍記)〉《서애집(西厓集)

먼 것은 가까운 것이 쌓인 것이다

遠者 近之積也

<
해설>
유성룡(1542~1607)이 원지정사(遠志精舍)라는 정자를 짓고 나서 직접 쓴 기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원지(遠志)’는 원래 심기를 맑게 해준다는 약초의 이름인데, 여기서는 그 뜻을 유추하여 ‘마음을 다스린다’는 뜻까지 취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글자를 한 자씩 풀이하고 있는데, 그중 ‘원()’의 의미를 설명한 대목입니다.

상하 사방의 가없는 공간이나 옛날로부터 흘러온 아득한 시간은 멀고도 먼 것이지만, 이것들은 모두 눈앞의 가까운 것들이 쌓여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지금 내딛는 한 발짝은 지극히 사소하고 보잘 것 없을 수 있지만 결국 언젠가는 보이지 않는 먼 곳까지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시작은 언제나 미미해 보이겠지만 그러한 시작과 과정이 없다면 성취도 없을 것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후회스러웠던 지난 연말의 마음을 돌이켜서 연초부터 차근차근 쌓아나간다면 올 연말에는 지금보다 한참 멀리 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옮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160. 노여움을 참지 못하면    안정복(安鼎福)《순암선생선생문집(順菴先生文集)

造次失輕重 俄然判聖狂

잠시라도 경중 파악을 못하면 순식간에 성인이 미치광이가 되네

<
해설

위 글은 조선 후기의 학자 순암 안정복이 자신의 심기(心氣)를 다스리지 못한 것을 뉘우치며 쓴 시 중의 일부입니다.

집에 종 아이가 한 명 있었는데, 부리기 어려울 정도로 교만 방자하였습니다. 하루는 화를 참지 못하고 그 종을 심하게 꾸짖었는데, 문득 명나라 학자 진헌장(陳獻章, 1428-1500)의 경계가 떠올라 두려운 마음이 들어 이 시를 써서 스스로 반성한 것입니다.

진헌장은, 칠정(七情) 가운데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것이 노여움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음과 같은 글을 지어 자신을 경계하였다고 합니다.

“노여움의 불길 타오르면 참음의 물로 꺼야 하네. 참고 또 참아도 노여움이 거세어지는데, 백 번을 참아 마침내 장공예(張公藝)처럼 하면 큰일도 이룰 수 있다네. 그러나 참지 못한다면 당장 낭패가 닥칠 것이네.

사소한 일로 심기가 흔들려 애써 쌓은 학업이 일순에 무너지는 것은 실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장공예 : () 나라 사람으로 9()의 친족을 한집안에서 거느리며 화목하게 생활하였다. 고종(高宗)이 그 집을 방문하여 비결을 묻자, 그는 단지 참을 인() 자만 백여 차례 써서 보여주었다고 한다.

옮긴이 /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

 

161. 나를 평가하는 사람이 어진 사람인가    이달충(李達衷) 좋아하고 미워함에 대하여[愛惡箴] 《제정집(霽亭集)

人而人吾 則可喜也 不人而不人吾 則亦可喜也

좋은 사람이 나를 좋은 사람이라 하면 기뻐할 일이요,

좋지 않은 사람이 나를 좋지 않은 사람이라 해도 기뻐할 일이다.

<
해설>

위 글은 고려 말 문신 제정(霽亭) 이달충(李達衷 ? ~ 1385)의 《제정집(霽亭集)》에 실린 〈애오잠 병서(愛惡箴幷序)〉 중 일부를 번역한 글입니다. 저자는 유비자(有非子)와 무시옹(無是翁)의 문답을 보여주며, ‘자신에 대한 남들의 평가를 바라보는 태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유비자가 무시옹에게 “옹은 어째서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 대접을 받고,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 대접을 못 받습니까?”라고 묻자, 무시옹은 다음과 같은 요지로 대답합니다.

‘내가 어떤 평가를 받느냐는 중요치 않다. 나를 평가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하다. 나를 좋게 평가하는 그가 어떤 사람이며, 나를 나쁘게 평가하는 그가 어떤 사람인가? 좋은 사람이 나를 좋은 사람이라 하면 기쁜 일이지만 좋지 않은 사람이 나를 좋은 사람이라 하면 두려워할 일이다. 또 좋은 사람이 나를 좋지 않은 사람이라 하면 두려워할 일이지만 좋지 않은 사람이 나를 좋지 않은 사람이라 하면 기뻐할 일이다.

잘못을 지적당했을 때 스스로 반성해 보아 허물이 있으면 고치고, 덕이 있는 이의 충고를 귀담아 듣는 일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러쿵저러쿵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괜한 말에 상처 받지 않는 일도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옮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162. 친구란 기대승(奇大升) 아버지에게 받은 교훈[過庭記訓] 《고봉집(高峯集)

朋友雖不可無 亦不可不愼

벗은 비록 없을 수 없지만 신중히 사귀지 않아서도 안 된다.

*
過庭(과정) : 아버지의 가르침을 뜻함. 공자의 아들인 리()가 뜰을 지나다가 아버지인 공자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데에서 유래한다.

<
해설>

기대승(奇大升:1527~1572)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교훈을 항상 잊지 않기 위하여 정리한 글입니다. 한때는 좋게 지내다가도 나중에는 서로 헐뜯으며 원수가 되기도 하니, 함부로 친구를 사귀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논어》에서는 이로운 벗과 해로운 벗을 각각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곧고, 신뢰할 수 있고, 많이 아는 벗은 이로우며, 용모는 그럴듯하지만 곧지 못하고, 부드럽지만 신뢰할 수 없고, 말재주는 뛰어나지만 아는 것이 없는 벗은 해롭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어떤 친구인가를 한 번쯤은 차분히 생각해 보아도 좋을 듯합니다.

옮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163. 말을 하면 반드시 들어맞으니   김상헌(金尙憲)〈제영의정현헌신공문(祭領議政玄軒申公文)〉《청음선생집(淸陰先生集)

言發必中 九鼎大呂不足重

말을 하면 반드시 들어맞으니

구정, 대려보다 더 귀중하였네

*
구정(九鼎), 대려(大呂) : 구정은 우()임금이 구주(九州)의 금으로 주조한 솥이며, 대려는 주대(周代) 종묘의 큰 종으로, 모두 나라의 중대한 보물이다. 지위나 명망이 지중한 것에 비유한다.

<
해설>

위 글은 조선조의 문신 김상헌(1570~1652) 1628년 왕명을 받아 영의정 신흠(申欽)의 영전에 올린 제문 가운데 한 구절로, 상촌(象村) 신흠이 말을 매우 신중하게 하여 사리에 어긋난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평생의 화복과 영욕은 오직 말이 자초하는 것이라고 옛 선현들은 끊임없이 경계해 왔습니다. 속담에도 ‘좋은 말 한 마디는 엄동설한도 따뜻하게 하고 나쁜 말 한 마디는 오뉴월도 얼어붙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음식은 몸을 기르고 말은 마음을 펴는 것입니다. 말을 삼가기를 음식을 조절하듯이 하면 화를 면하는데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옮긴이 /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

 

164. 하늘이 뭘 아느냐 말하지 말라    황윤석(黃胤錫) <스스로를 반성하며 지은 잠[自省箴]> 《이재유고》

一念之惡天必識 毋或曰天奚以識

악한 생각 한 가지도 하늘이 반드시 아니,

하늘이 뭘 아느냐 말하지 말라.

<
해설>

위 글은 조선 후기 학자 황윤석(黃胤錫 1729 ~ 1791)의 문집 《이재유고》에 실린 자성잠(自省箴)의 일부입니다.

저자는 이 잠()의 서()에서 “나쁜 줄을 알면서도 저지르는 자가 사람인가? 아니다. 고쳐야 하는 줄 알면서도 그리 하지 못하는 자가 사람인가? 아니다. 사람이면서 사람 같지 않은 자는 죽어도 편치 못할 것이요, 사람이면서 사람 노릇 못하는 자가 산들 뭐하겠는가?”라고 하여, 사람이 사는 목적은 사람 노릇을 하는 데 있다고 보며,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하느냐 못하느냐를 기준으로 사람이냐 아니냐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어 “인간이 몰래 하는 말도 하늘은 천둥소리처럼 들으니, 저 높이서 뭘 아느냐 여기지 말고 오직 삼가라. 캄캄한 방에서 마음 속이는 것도 신은 번개처럼 보니, 아무것도 모른다 말하지 말고 밝게 임해 있음을 두려워하라.[人間私語 天聽若雷 毋曰高高 而惟愼哉 暗室欺心 神目如電 毋曰冥冥 而畏其顯]”라고 잠()을 짓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의문을 품어 봅니다. ‘하늘은 정말 인간이 몰래 하는 말도 천둥소리 듣듯 듣는가? 신은 정말 캄캄한 방에서 마음 속이는 것도 번개처럼 환히 보는가? 「하늘이 착한 사람에겐 복을 주고 악한 사람에겐 벌을 준다.」는 단순명료한 공식이 과연 세상에 통하는가?’ 참 알기 어려운 것이 하늘의 뜻입니다.

영국 런던 시내버스에서 시작된 무신론자들의 광고와 그것에 대응하는 유신론자들의 광고가 확산되고 있다 합니다. 무신론자들은 “신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걱정은 그만하고 인생을 즐겨라.”라는 문구를, 유신론자들은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라는 문구를 적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문구는 어떨지요?

“인간의 도리를 다하고 천명(天命)을 기다려라.[盡人事待天命]

옮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165. 어버이를 섬김에 있어서    하수일(河受一) <효유불급설(孝有不及說)>《송정집(松亭集)

君子之事親也 思其不可及者而先施之 念其不可久者而竭力焉

군자가 어버이를 섬김에 있어서는

미치지 못할까를 생각하여 먼저 행하고

오래하지 못할까를 염려하여 힘을 다해야 한다

<
해설>

자식의 입장에서 볼 때 부모님은 그 자리에 항상 그대로 계시는 듯합니다. 그래서 늘 친구와 먼저 즐기고 내 자식을 먼저 챙기면서 생각합니다.
“다음에 …… ”
“더 좋은 기회에 …… ”
그러나 ‘다음’에 부모님은 그 자리에 계시지 않습니다. ‘더 좋은 기회’에도 부모님은 그 자리에 계시지 않습니다.

이 글의 지은이는 “자식이 봉양하려 하지만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子欲養而親不待]”는 옛말을 대하면서 그럼 어찌해야 하는지를 제시해보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봉양함에 있어서 다음 기회란 없습니다. 늘 우선해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할 수 있는 것이란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방금 생각이 드는 것... 그것부터 실천해보면 어떨까요?

옮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166. 주인이 주인 노릇을 하면    성여신(成汝信) <성성재잠(惺惺齋箴)>《부사집(浮査集)

主而爲主 光生門戶 主而失主 茅塞堂宇

주인이 주인 노릇을 하면 집이 광채가 나고

주인이 주인 노릇을 못하면 집이 잡초로 덮인다네
 
<
해설>

위 글은 조선 중기의 문인 성여신(1546~1632)이 아들의 나태함을 일깨우기 위해 지어준 잠()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성여신은 아들이 기상도 있고 국량도 커서 제법 큰 인물이 될 그릇이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차 의지가 약해지고 기운이 빠지더니만 어느덧 게으름뱅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썩은 나무에는 아무것도 새길 수 없다고 성인도 말씀하셨으니,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루는 아들이 공부에 정진하겠다는 뜻을 아버지에게 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여신은 너무 기뻐서 아들에게 시문을 지을 공책을 만들어 주고 <성성재사고(惺惺齋私蒿)>라고 책제를 달아주고는 위와 같은 잠을 지어 면려하였다고 합니다.

이 잠에서 말한 주인은 바로 마음과 경()입니다. 마음은 몸의 주인이고 경은 마음의 주인입니다. 몸과 마음에 주인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모든 일의 성패가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의 자리를 지키는 방도는 오직 ‘정신이 항상 맑게 깨어 있는 것[惺惺]’이라고 성여신은 강조하였습니다. 항상 깨어 있는 것이 실로 나태함을 고치는 약이라고 본 것입니다.

옮긴이 /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

 

167. 나를 이기면 군자. 나를 이기지 못하면 소인   장흥효(張興孝)〈신세잠(新歲箴)〉《경당집(敬堂集)

克與不克 小人君子

나를 이기느냐 이기지 못하느냐에 따라

군자와 소인이 판가름 난다.

<
해설>

위 구절은 조선 중기 학자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 15641633)의 문집 《경당집(敬堂集)》에 실린 <신세잠(新歲箴)> 중 일부입니다. 이 글은 저자가 68세 되던 신미년(辛未年)에 새해를 맞아 마음을 새롭게 하고자 지은 잠()입니다.

저자는 이 글에서 “산을 꺾을 기세로 분노를 다스리고, 구렁을 메울 기세로 욕망을 막으라. 분노와 욕망이 모두 사라지면 구름을 열치고 해가 나오리니. 문을 활짝 열고서 삿된 생각 안 먹으면, 온 세상 전 우주가 모두 내 집에 드네.”라고 이야기합니다.

또 “전날 나를 이기지 못했을 때엔 욕심에 빠져 있었지만, 이제 나를 이기고 나면 천리(天理)를 회복하리라. 나를 이기느냐 이기지 못하느냐에 따라 군자와 소인이 판가름 나니, 군자가 되려 하면 자신을 이겨야 하네.”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람이 화를 내다보면 점점 걷잡을 수 없게 되어 산을 꺾을 기세가 되기 쉽고, 욕심을 내다보면 점점 불어나 구렁을 다 메울 기세가 되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산을 꺾을 기세가 아니면 분노를 다스릴 수 없고, 구렁을 메울 기세가 아니면 욕망을 막을 수 없습니다.

분노가 자라기 전에, 욕심이 커지기 전에 그때그때 마음을 낮추고 비우는 것이 가장 좋은 수행법이라 합니다. 햇살처럼 따사로운 마음으로 분노와 욕망을 다스리기 좋은 계절, 봄이 오고 있습니다.

옮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168. 남을 위한 일    이곡(李穀)〈금강산 도산사 창건 기문[創置金剛都山寺記]〉《가정집(稼亭集)

凡爲事。當利於物而便於人。爲己而求福者末也

무릇 어떤 일을 행하든 간에

만물에 이롭고 사람에게 편리하도록 도모해야 마땅하니,

자기만을 위해서 복을 구하는 것은 하찮은 일이라고 할 것이다.

<
해설>

금강산의 경치는 옛날부터 하도 아름다워서 우리나라의 선비나 부녀자는 물론 중국의 사신들까지도 구경하러 찾아오곤 하였답니다. 그런데 금강산 서북쪽 고개는 너무도 험준하여 지나기도 힘들 뿐 아니라 여행 중에 혹 비바람이라도 만나면 사람들이 몹시 애를 먹었다는군요.

그래서 1339년에 쌍성 총관(雙城摠管)으로 있던 조후(趙侯)가 이곳에 절을 세우기로 계획하고, 영을 내려 스님들의 힘으로 도산사(都山寺)를 완공한 뒤 이곡(李穀,12981351)에게 창건 기문을 써 달라고 요청을 해 왔습니다. 이곡은 창건 기문에서 위의 내용을 말한 뒤 곧이어 조후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합니다.

산의 험준한 곳에 사찰을 지어 드나드는 사람들을 편하게 해 주고자 했던 그 마음을 가지고 정치를 해 주시오. 아마도 그렇게 하면 백성들을 편하게 해 주는 일이 많을 것이오.

정치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일이 다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자기만을 위하지 않고 만물에 이롭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편리하도록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리라고 봅니다.

옮긴이 / 조경구(한국고전번역원)

 

169. 전통의 올바른 계승이란   김일손(金馹孫)〈서오현배(書五絃背)〉《탁영집(濯纓集)

余欲外今而內古

나는 밖에서는 요즘 것을 취하고, 안에서는 옛것을 취하고자 한다.

<
해설>

조선조 초기의 문신이자 뛰어난 문장가였던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이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할 때였습니다.

독서하는 틈틈이 당시 유행하던 6줄짜리 육현금(六絃琴)을 배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막역한 동료였던 권오복(權五福)이 찾아왔다가 보고는 물었습니다.

“자네는 옛것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어째서 육현금을 배우는가?

보통 유가(儒家)에서 정통으로 인정하던 가야금은 5줄짜리 오현금(五絃琴), 7줄짜리 칠현금(七絃琴)이었으니, 이상하게 여길 만도 했습니다.

그러자 탁영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요즘 음악도 또한 옛날의 음악에서 유래한 것이네. 소강절[邵康節 : ()나라의 철학자 소옹(邵雍)]도 요즘 사람은 요즘 사람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도 같은 생각일세.

그리고 집에 돌아가 오현금의 뒷면에 위와 같은 말을 썼습니다. 이 말은 전통에 담긴 훌륭한 정신은 계승하겠지만, 형식적인 면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흐름을 따르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주변에는 현대에 어울리지 않는 외형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효도는 뒷전이면서, 정작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유난히 소중히 합니다. 불편함을 해소한 개량품이 있는데도 굳이 옛것을 고집하기도 합니다.

물론 형식이나마 보존할 수 있다면 다행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공자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으니,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저 남의 이목이나 끌고, 대단한 내공이라도 지닌 것처럼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것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진정한 전통은 현대에도 살아 있어야 합니다. 현재의 우리에게 정신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어야 하고, 나아가 미래에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전통문화는 박물관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유물과 다를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옮긴이 / 권경열(한국고전번역원)

 

170. 홀로일 때를 삼가라    장유(張維)〈신독잠(愼獨箴)〉《계곡집(谿谷集)

屋漏在彼 吾以爲師

깊숙한 방구석을 내 스승 삼아야지.

<
해설>

이 글의 제목에 들어 있는 ‘홀로일 때를 삼간다[愼獨]’는 말은 《대학(大學)》에 실려 있는 말입니다.

“소인은 아무 일 없을 때에 온갖 나쁜 짓을 안 하는 게 없다. 그러다가 군자를 본 뒤에는 슬그머니 저의 나쁜 짓을 감추고 좋은 면을 드러내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것은 그 폐와 간을 다 들여다보듯 훤하니, 무슨 도움 될 게 있겠는가. 이것을 일러 마음속에 있는 것이 겉으로 드러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일 때를 삼간다.

조선 중기 학자 장유(張維, 1587~1638)는 《대학》의 ‘홀로일 때를 삼가라’는 뜻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잠()을 지었습니다.

“깊숙한 방 안, 아무 소리 없는 곳. 듣고 보는 이 없어도 신()이 너에게 임하고 있다. 나태함을 경계하고 삿된 생각 막아내라. 처음에 막지 못하면 하늘까지 넘실대리니. 하늘 아래 땅 위에 누가 나를 알겠냐고 말하지 말라. 누구를 속일 수 있겠는가? 사람이 되려는가, 짐승이 되려는가? 길하려는가, 흉하려는가? 깊숙한 방구석을 내 스승 삼아야지.

사회적으로 번듯한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이는 추태로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거들먹거리고, 사람 귀한 줄 모르고 함부로 대하다가 추태가 드러나면 오리발을 내미느라 바쁩니다. 부끄러운 일인 줄은 아는 모양입니다.

세상의 눈은 속일 수 있다 해도 자기 자신의 양심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제 양심을 속일 수 없는데 세상의 눈을 속인들 뭐하겠습니까? 세상의 눈보다 더 무서운 건 두 눈 부릅뜬 제 양심의 눈입니다.

옮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171. 분수를 알고 지켜야    성혼(成渾)〈부르는 명령을 사양한 소[辭召命疏]〉《우계집(牛溪集)

人之資品。各有等級。小者不可以處大。愚者不可以窺高。
 

사람의 자품(資品)은 각기 등급이 있어,

작은 자는 큰 자리에 처할 수가 없고

어리석은 자는 높은 자리를 엿보아서는 안 됩니다.

<
해설>

이 글은 우계(牛溪) 성혼(成渾, 1535~1598)이 선조 7(1574) 공조 정랑(工曹正郞)에 임명되자 벼슬을 사양하면서 올린 상소문에 쓴 구절입니다. 옛날에는 이렇게 임금이 벼슬을 내려도 굳이 사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이유야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작은 자, 어리석은 자’는 ‘큰 자리, 높은 자리’에 올라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보기에 따라 자칫 개인의 발전 가능성을 무시하는, 소극적인 패배주의로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이 글은 그보다는 사람은 누구나 욕심 부리지 말고, ‘현재 자신의 능력에 맞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하리라고 봅니다.

능력에 맞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건 물론, 그를 쓰는 사람이 그의 능력에 알맞은 일을 맡겨야 한다는 걸 전제로 할 것입니다. ‘적재적소’에 사람을 쓰는 일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능력이 크고 지혜로운 자가 작고 낮은 자리에 있어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능력이 작고 어리석은 자가 크고 높은 자리에 올라 제 능력 이상의 일을 맡는 것은 단지 자신만 망칠 뿐 아니라 나라 전체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에 더욱 큰 문제일 것입니다.

옮긴이 / 조경구(한국고전번역원)

 

172. 나는 항상 옳은가?    허목(許穆)〈어시재기(於是齋記)〉《기언(記言)

人之言莫不曰, 吾能於是而不願於非。
然考之行事, 則於是者寡, 於非者蓋衆也。

누구나 다,

‘나는 옳은 일을 능히 하고 그른 일은 하고자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의 행동을 꼼꼼히 살펴보면, 옳은 것은 적고 그른 것은 많다.

<
해설>

임유후(任裕後)라는 사람이 작은 집을 짓고 ‘어시재(於是齋)’라는 이름을 붙인 뒤, 허목(許穆, 15951682)에게 기문을 부탁하였습니다. 허목은 그 글을 통해 우리에게 ‘옳고 그름’에 대한 착각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하는 행동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조차도 자기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 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가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는 아주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은 또 남의 잘못은 대부분 잘 찾아내고 지적합니다. 눈에 잘 띄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남이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면 버럭 화부터 내고 자기가 틀렸다는 걸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 듭니다.

이는 세상과 사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남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락산에서 도봉산을 바라보면 도봉산이 낮아 보이고 도봉산에서 수락산을 바라보면 수락산이 낮아 보인다고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시각에서 보니까 상대가 낮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겠죠. 그러니,

남이 나의 잘못을 지적하면 버럭 화부터 내지 말고, “혹시 나에게 정말 잘못된 부분이 있지 않을까?, “나의 어떤 모습이 잘못된 것으로 비쳤을까?” 이런 생각부터 해야 하겠습니다. 반대로 남의 잘못이 보이거든 그것을 지적하기에 앞서, “혹시 나에게는 저런 모습이 없을까?, “남에게 비친 내 모습도 혹시 저렇지 않을까?” 이렇게 늘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옮긴이 / 조경구(한국고전번역원)

 

173. 쉬어감이 좋은 경우    김귀영(金貴榮)〈행장(行狀)〉《동원선생문집(東園先生文集)

待才德老成 未晩也

재주와 덕이 노성하기를 기다리더라도 늦지 않다.

<
해설>

우리는 초스피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진보하는 기술 때문일까요? 아니면 ‘빨리빨리’라는 말로 대변될 정도로 급한 우리의 성격 때문일까요?

이제 느린 것은 곧 낙오를 뜻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도 초고속이 아니면 답답해하고, 교육도 조기 교육이 아니면 불안해합니다. 심지어 갓난아기조차도 걸음마를 빨리하게 하려고 안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빠르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적절한 예는 아니지만 조기 승진이 곧 조기 퇴사를 의미하는 요즘 세태도 어쩌면 같은 맥락이 아닐까요?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은 조선 선조조의 명신입니다. ‘오성과 한음’이라는 우정으로도 익히 알려진 인물이지요. 그가 30대의 젊은 나이로 한 나라의 문장을 대표하는 자리인 문형(文衡 대제학(大提學))의 물망에 올랐을 때였습니다. 중신(重臣)들이 조정에 모여 추천하는 절차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권점이 하나 적었습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한 표가 부족했던 것입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참석했던 사람들이 모두 의외의 결과에 크게 놀라 웅성거렸습니다. 사실 젊기는 하지만 뛰어난 문재(文才)와 높은 덕망으로 볼 때 한음이 적임자라는 분위기가 대세였기 때문입니다. 이 때 상락부원군 김귀영(金貴榮, 15191593)이 웃으며 나섰습니다.

“내가 추천하지 않았소.

사람들이 더욱 놀라 이유를 묻자, 그는 천천히 말했습니다.

“나이도 젊고 아직 벼슬한지도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갑자기 중한 벼슬에 오르는 것은 본인에게 좋지 않은 일이지요. 재주와 덕이 더 성숙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중용하더라도 늦지 않을 것이외다.

그 말을 전해들은 한음은 섭섭해 하기보다는 오히려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자신을 진정으로 위해주는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당시 선비들은 둘 다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칭찬하였다고 합니다.

옮긴이 / 권경열(한국고전번역원)

 

174. 원형이정(元亨利貞)은 마음의 뿌리    장흥효(張興孝) <사덕잠(四德箴)>《경당집(敬堂集)

其根已拔 心是死物 之反覆 善端自熄

뿌리가 뽑히고 나면

마음은 죽은 물건.

반복해서 해치면

선한 싹이 사라지네.

<
해설>

위 글은 조선 중기 학자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 1564~1633)의 문집에 실린 <사덕잠(四德箴)> 중 일부입니다.

저자는 아름다운 산의 나무가 땅에 뿌리내리도록 잘 심어 놓고 정성껏 길러주면 강한 생명력으로 무럭무럭 자라나지만, 도끼로 쳐내고 또 거기서 새로 돋는 싹을 소나 양이 뜯어먹으면 뿌리가 상하여 더 이상 살지 못하고 날마다 사라질 것이니, 그때 가서 누가 그것을 두고 아름답다고 하겠느냐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의 뿌리인 사덕(四德)도 잘 북돋아 주고 보살피면 사단(四端)이 때에 맞게 피어나고, 그것을 넓혀 가면 온갖 이치가 드러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사사로운 뜻이 일어나면 소나 양이 싹을 뜯어먹어 나무를 해치듯 우리 마음도 상해서 죽은 물건이 되고, 반복해서 해치면 선한 싹이 절로 사라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덕(四德)은 우주의 순환 원리 원형이정(元亨利貞)을 말합니다. 사단(四端)은 우주의 순환 원리에 따르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마음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말합니다. ()은 봄처럼 따스한 마음이고, ()는 여름처럼 문채 나는 마음이고, ()는 가을처럼 차분히 정리하는 마음이고, ()는 겨울처럼 가장 소중한 것을 간직하는 마음입니다.

봄을 맞아 강한 생명력으로 꽃을 피우는 나무들을 보며, 마음의 터에도 인의예지를 뿌리로 둔 귀한 나무 한 그루를 심어 봅니다. 뿌리를 북돋아 주고 잘 가꾸고 해치지 않아, 넓은 그늘을 드리우는 싱그런 나무로 자라나기를 빌어 봅니다.

옮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175. 욕심이 스스로를 망치니    장유(張維) 바다 갈매기가 내려와 앉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설[海鷗不下說]《계곡집(谿谷集)(이상현 역)

鴻飛冥冥。弋人絶望。

기러기가 하늘 멀리 날아가면 사냥꾼도 단념을 하고 만다.

<
해설>

바다에서 갈매기와 친구처럼 지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아버지께서, “네가 갈매기와 친하다니 한 마리만 잡아다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바닷가로 나간 아들. 그러나 갈매기는 이미 그의 은밀한 마음을 눈치 채고는 밑으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열자(列子)》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은미(隱微)한 것도 다 드러나는 법’이니 졸렬한 꾀로 속이려 들지 말라는 것이 보통 얘기하는 이 이야기의 주제입니다. 그런데 계곡(谿谷) 장유(1587~1638) 선생은 이 고사를 다른 각도로 바라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갈매기는 일개 미물(微物)임에도 불구하고 기미를 알아채고는 안색만 보고도 날아가 버림으로써 멀리 해를 피해 몸을 보전하는 지혜가 이처럼 밝기만 하다. 이에 반해 사람은 그야말로 만물의 영장(靈長)이라 할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는 짓을 보면 종종 눈앞의 이익에 현혹되어 스스로를 망치고 만다. 갈매기만도 못한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지혜가 갈매기만도 못한 이유는 바로 욕심 때문입니다. 계곡선생은 다시 이번에는 기러기와 물고기가 욕심 때문에 몸을 망치는 것을 가지고 논의를 전개합니다.

기러기가 하늘 멀리 날아가면 사냥꾼도 단념을 하고 마는데 벼이삭을 쪼아 먹을 욕심에 주살에 맞는 것도 스스로 알지 못하고, 물고기가 깊은 물속에서 유영(游泳)하며 느긋하게 즐기노라면 누구도 기회를 엿볼 수가 없는데 맛있는 미끼에 끌린 나머지 낚시 바늘을 삼키면서도 후회할 줄을 모르는 것이다.

욕심에 눈이 멀어 스스로를 망치는 무리들에게, 그리고 더 나아가서 자기 자신에게 계곡선생은 이런 경고와 다짐을 주시면서 글을 마무리합니다.

바다 갈매기가 안색만 보고서도 날아가 버린 것은 오직 욕심에 동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 누가 갈매기처럼 할 수 있는가. 나는 그의 뒤를 따르고 싶다. 주살에 맞을 염려도 없고 펼쳐 놓은 그물도 소용이 없이 호호탕탕 만 리 위로 날아 올라가 그 얼마나 느긋하게 노닐겠는가.

옮긴이 / 조경구(한국고전번역원)

 

176.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방법    고상안(高尙顔) 〈유훈(遺訓)〉 《태촌집(泰村集)

恨爵位之卑微。則當思白身者曰。我則猶勝於彼也。
歎衣食之不給。則當思
乞者曰。我則猶免乎此也。

작위가 낮은 것이 한스러울 때면 마땅히 백수인 자를 생각하면서,

‘나는 그래도 그들보다는 낫지 않은가.’라고 하고,

의식이 부족한 것이 개탄스러울 때면 마땅히 구걸하는 자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그래도 저런 일은 면하지 않았나.’라고 해보라.

<
해설>

요즘 들어 경제가 어렵다보니, 자신의 경제력이나 지위를 비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렇지만 부귀와 빈천이 상대적이라는 것을 알면 마음은 한층 편안해 질 것입니다.

조선 중기의 학자로서, 풍기군수(豊基郡守)를 지냈고,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의 작자로 전해지는 고상안(高尙顔, 1553~1623) 선생은 유훈(遺訓)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빈궁한 상황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일은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워하는 바이다. 그러나 또한 쉬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벼슬이 낮은 것이 한스러울 때면 마땅히 백수인 자를 생각하면서, ‘나는 그래도 그들보다는 낫지 않은가.’라고 하고, 의식이 넉넉하지 못한 것이 개탄스러울 때면 마땅히 구걸하는 자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그래도 저런 일은 면하지 않았나.’라고 해보아라. 그와 같이 한다면 마음이 느긋해져서 부러워하는 마음이 끊어질 것이며, 뜻이 안정되어 개탄하는 때가 없게 될 것이다.

세상만사는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합니다. 실제로 나타난 현상은 한가지인데, 보는 각도, 받아들이는 마음 상태에 따라 또 다른 현실이 펼쳐지게 됩니다. 이왕이면 매사에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옮긴이 / 권경열(한국고전번역원)

 

177. 의심나면 어찌하여 묻지 않을 수 있나?    김낙행(金樂行) <질의잠(質疑箴)>《구사당집(九思堂集)

疑胡不質 質胡不精

의심나면 어찌하여 묻지 않을 수 있나?

묻는 것을 어찌하여 정밀히 하지 않을 수 있나?

<
해설

조선 시대 구사당(九思堂) 김낙행(金樂行 17081766)의 문집에 실린, ‘의심나는 것을 묻는 것에 대하여[質疑箴]’ 중 일부를 번역한 내용입니다.

저자는 의문이 나도 물을 생각을 안 하는 게 배우는 자의 병폐라 하고, 묻더라도 정밀하게 묻지 않는다면 제대로 묻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또 묻기를 좋아하면 여유가 생기고 자세히 물으면 분명히 알게 되지만, 모르는 것을 쌓아두거나 모르면서도 그냥 넘어가면 학문에 방해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천하의 의리와 사물을 이해하기 위해 애써 노력하지 않는다면 ‘어리석고 나약한 것’이라 하며, 어른 뿐 아니라 나이 어린 사람에게도 모르는 것은 묻겠노라 스스로 다짐합니다.

모르는 것이 있을 때 물을 곳이 있다면 참 다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물을 곳이 있다 해서 궁리해 보지도 않고 생각나는 대로 묻는다면 귀한 가르침을 받더라도 마음에 와 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자(孔子)께서는 “마음으로 끙끙대며 알려고 하지 않으면 일깨워주지 않고, 입으로 말하려고 애를 쓰지 않으면 말문을 틔워주지 않는다.[不憤不啓 不悱不發]”고 하셨습니다.

내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이른바 ‘동서남북도 모르는’ 후학들이 글눈을 뜰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가르침을 베풀어 주시고, 많은 의문을 풀어주신 스승님들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옮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178. 착한 일은 널리 알리자    김부식(金富軾) <혜음사신창기(惠陰寺新創記)>《동문선(東文選)

人之爲善。自忘可也。不有傳者。何以勸善。

사람이 선한 일을 하고서 스스로 잊어버리는 것은 좋지만,

이를 전하는 사람이 없다면 무엇으로 선한 일을 권장할 수 있겠는가.

<
해설>

요즘은 세상이 각박해져서 그런지, 선행이나 미담을 듣기가 어렵습니다. 듣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 물론 극히 일부의 행위이긴 하지만 - 선행이나 미담의 주인공에게조차 악플을 달고 비난을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열등감이 있는 사람일수록 남에게 공격적이고 냉소적이 된다고 합니다. ‘칭찬’에는 더더욱 인색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고려 시대에 봉성현(峰城縣)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길이 너무 험하여 지나는 사람들이 호랑이에게 해를 입거나 강도를 당하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천(少千)이라는 신하가 중들을 이끌고 가서 허물어진 절집을 새로 짓고 양민을 모아들여 그곳에 정착시켰습니다. 이 절에 임금은 혜음사(惠陰寺)라는 이름을 하사하고 김부식은 글을 썼습니다.

김부식(金富軾, 1075~1151), “깊은 숲속이 깨끗한 집으로 변하였고, 무섭던 길이 평탄한 길이 되었으니, 그 이익이 또한 넓지 아니한가?” 라고 하면서, 이 일에 공을 세운 소천 등을 칭찬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에 대해 어떤 사람이, “짐승을 몰아내며 도둑을 제거하는 것은 관리가 해야 할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하고 이의를 제기합니다. 이에 대한 대답이 바로 위의 말입니다. 자기 공을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야 우스운 일이겠지만, 그 선행을 전하는 사람조차 없어서는 안 되니, 선행을 전해야 남들도 그걸 보고 배워서 실천할 것이 아니겠는가?

착한 일을 해 놓고도 자기가 그 일을 자랑하면 그 공은 한 순간에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왼손이 하는 선행을 오른손

이 모르게 하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선행과 미담에 목말라 있습니다. 주변에 있는 선행과 미담을 발굴해서 그것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그들을 진심으로 칭찬하고 본받으려 애쓰다 보면, 어느새 세상은 좀 더 살만한 곳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옮긴이 / 조경구(한국고전번역원)

 

179. 그대는 어디로 돌아갔는가    기대승(奇大升)〈만장(挽章)〉《고봉집(高峯集)

長途猶未半 吾子竟何歸

먼 길 아직 절반도 채 못 갔는데

그대는 어디로 돌아갔는가

<
해설>

위 글은 조선 중기 학자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이 여회(如晦) 이경명(李景明 1517~?)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장(挽章)의 일부입니다.

첫 번째 구절에서는 꿈꾸었던 것을 다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고, 두 번째 구절에서는 이젠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것을 탄식하며 떠난 이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 이어 이경명이 걸출하고 강직한 선비로서 박학하다고 알려졌고, 경국제세(經國濟世)할 뜻을 세웠었는데, 사소하게 생각한 병이 원인이 되어 세상을 떠난 것을 두고 나라의 기둥이 꺾였다고 애통해합니다.

만장은 망인(亡人)이 살아 있을 때의 공덕을 기리고, 죽은 뒤에 평안하기를 기도하며 애도(哀悼)하는 글입니다.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마지막 길에 못다 한 말들을 고백하면서 살아 있는 자의 애통한 심정을 달래는 이별 편지라 하겠습니다.

내일은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의 영결식(永訣式)이 있는 날입니다.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느냐?”며 남은 이를 위로하고 세상을 떠난 뒤에, 그의 서거(逝去)를 애도하는 글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줄 한 줄 다 읽으시면서 외롭지 않게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역사의 굽이 길마다 파수꾼처럼 지키고 서 있는 이 슬픔도 이번 굽이 길을 돌고 나서는 고운 꽃으로 피어나길 바랍니다. 모두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겠지요.

삼가 고인의 명복(冥福)을 빕니다.

옮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180. 융통성이 필요할 때    고상안(高尙顔)〈유훈(遺訓)〉《태촌집(泰村集)

一臠之嘗輕, 救妹之死重也.

한 점의 고기를 먹는 것은 가벼운 일이고,

누이의 죽음을 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
해설>

조선 중기의 학자 고상안(高尙顔, 1553~1623) 선생이 한 오누이의 일을 기록하면서 남긴 말입니다.
부친상을 당하자, 누이는 너무나 슬퍼한 나머지 병을 얻어 위중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오라비가 권했습니다.
“기력을 회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고기를 먹는 것이 좋겠다.
그러자 누이가 대답했습니다.
“만약 오라버니께서 드신다면 저도 먹겠습니다.
그러나 오라비는 감히 고기를 먹지 못하였습니다.
상주는 고기를 입에 대지 않는 것이 전통적인 예법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누이는 죽고 말았습니다.
훗날 오라비는 후회하면서 통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 바람에 누이가 죽은 것이다.

예는 인간이 오랜 세월 사회생활을 하면서 경험적으로 도출해 낸 최적의 행동 규약이자 원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도덕적인 면과 결부가 되기 때문에 다른 어떤 원칙보다도 엄격하게 지켜지도록 요구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은 상호작용의 연속입니다. 때로는 그 원칙들이 지켜지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일의 경중(輕重)을 살펴서 과감하게 원칙을 탈피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맹목적으로 원칙에만 얽매이다보면, 오히려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가 도출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권도(權道)를 쓴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원칙에 어긋나기는 하지만, 부득이한 상황이라 임시로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을 뜻합니다.

옮긴이 / 권경열(한국고전번역원)

 

181. 난세를 구할 영웅     최치원(崔致遠)〈서천 나성도기(西川羅城圖記)〉《동문선(東文選)

有非常之人。然後有非常之事。有非常之事。然後有非常之功。

비상한 인재가 있어야 비상한 일이 있고,

비상한 일이 있어야 비상한 공이 있다.

<
해설>

요즘 우리나라가 위기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 온 국민이 겪어냈던 큰일을 비롯해서 정치권의 다툼, 노사 갈등, 이념 논쟁 등 나라 안의 문제부터 세계적인 경기 침체나 인플루엔자, 남북 관계 등 나라 밖 사정에 이르기까지 정말 안팎으로 위기는 위기인 듯합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는 역사상 한 순간도 위기 아닌 때가 없었습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수없이 겪어온 시련과 위기는 세계 어느 나라도 유례가 없을 만큼 혹독하고 극심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기적처럼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위기 극복의 중심에는 언제나 비상한 영웅이나 지도자, 혹은 비상한 국민이 있었습니다.

서천(西川)이란 곳은 예로부터 하도 험준하여 성을 쌓을 엄두도 낼 수 없었던 곳인데 연공(燕公)이란 장수가 그곳에 성을 쌓아 백성들을 외적으로부터 온전히 보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최치원은, “하늘은 이 거창한 업적을 남겨 두고 날마다 훌륭한 인재를 기다렸다.”고 칭송하면서 위에 인용한 것처럼 “비상한 인재가 있어야 비상한 일이 있고, 비상한 일이 있어야 비상한 공이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뒤집어 보면, ‘비상한 공을 세우려면 비상한 일이 닥쳐야 하며, 비상한 일은 비상한 인재가 준비되어 있을 때 일어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맞이한 지금의 위기는 그걸 극복할 위대한 인물이 이미 어딘가에 준비되어 있다는, 그리하여 그 인물을 통해 곧 우리는 이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속에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로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옮긴이 / 조경구(한국고전번역원)

 

182. 좋은 게 좋은 것인가?    기대승(奇大升) <고봉선생논사록(高峯先生論思錄)>《고봉집(高峯集)

薰臭同處。則無薰而有臭。
苗不去莠。則有害於嘉穀。

향기와 악취가 한 곳에 있게 되면, 향기는 없고 악취만 있게 되며,

어린 곡식 사이의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좋은 곡식에 해가 될 것이다.

<
해설>

사람들은 흔히 “좋은 게 좋다.”는 말을 합니다.
두루뭉수리하게 현실과 타협하고자 할 때, 이보다 그럴 듯한 말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태도는 자신의 가치관을 포기하고, 사물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회피하려는 소극적인 것입니다.
그 결과 일시적인 화합, 외면적인 공정성은 담보할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1527~1572) 선생은 조선 선조조의 문신이자 학자입니다.
스승인 퇴계 선생(退溪先生)과 사단칠정(四端七情)에 대해 논변한 것으로 잘 알려진 분입니다.
선생이 임금의 공부를 돕는 자리인 경연(經筵)에 참석했을 때였습니다.
마침 소인배들의 득세에 관한 주제로 토론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생은 군자와 소인, 모두에게 공평한 것은 진정으로 공평한 것이 아니라고 역설합니다.

“고식적이고 게으른 사람들은 또 ‘매사에 공평해야만 한다.’고 말하는데, 군자를 후대하고 소인을 박대하는 것이 진정으로 공평한 것입니다. 군자와 소인이 차별이 없다면 이는 크게 공평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어서 그런 도식적인 공평은 오히려 불공평의 단초를 제공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만일 향초와 악초를 한곳에 두면 향기는 없어지고 악취만 있게 되며, 어린 곡식 사이의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좋은 곡식에 해가 될 것입니다.

옮긴이 / 권경열(한국고전번역원)

 

183. 비단옷 입는다고 영광될 게 뭔가.   성현(成俔)〈십잠(十箴)〉《허백당집(虛白堂集)

衣錦何榮 抱關何卑

비단옷 입는다고 영광될 게 뭐며,

문지기 노릇 한다고 비천할 게 뭔가?

<
해설>

조선 전기의 문인 허백당(虛白堂) 성현(成俔 1439 ~ 1504)의 문집 《허백당집》에 실린 십잠(十箴) 중 ‘부끄러움을 아는 것에 대한 잠[知恥箴]’에 실린 내용입니다.

맹자(孟子)께서는 “사람은 부끄러움이 없어서는 안 된다.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면 부끄러워질 일이 없을 것이다.[人不可以無恥 無恥之恥 無恥矣]”라고 하였습니다. 이 밖에도 경전에는 부끄러움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이 잠()에서 저자는 의()를 기준으로 해서 남만 못한 것을 부끄러워해야 행동을 바르게 할 수 있다 하고, 악인(惡人)과 함께하는 것을 항상 부끄러워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비단옷 입는다고 영광될 게 뭐며, 문지기 노릇 한다고 비천할 게 뭔가?”라는 말을 하여 부끄러워할 일이 아닌 것에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음을 말하고, 부끄러워할 일에 부끄러워할 줄 앎으로써 허물을 고쳐 훌륭한 인격을 갖출 수 있다는 말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의리를 지키다 부끄러움을 당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의리를 저버리고 살면서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 마음 안에서는 의리에 비추어 보아 떳떳할 때에는 누가 뭐래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되고, 의리에 비추어 보아 떳떳하지 못할 때에는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부끄러워할 일을 부끄러워하고, 부끄러워할 만하지 않은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가?, ‘비단옷 입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지만, 비단옷 입는 사람이 비천한 건 아닌가?, ‘문지기 노릇을 비천하다 여기지만,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숭고한 건 아닌가?

부끄러움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 봅니다.

옮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184. 잘못은 빨리 바로잡아야    이규보(李奎報)〈이옥설(理屋說)〉《동국이상국전집》

知非而不遽改。則其敗己。不啻若木之朽腐不用。

잘못을 알고서도 바로 고치지 않으면,

그것이 자신을 망치는 정도가

나무가 썩어서 못쓰게 되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
해설

저자가 세 칸짜리 집을 수리합니다. 두 칸은 비가 샌 지 오래되었으나 어물어물하다가 손을 대지 못하였고, 한 칸은 이번에 샜기 때문에 이제 한꺼번에 고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리하려고 집을 뜯어보니 샌 지 오래된 곳은 서까래ㆍ추녀ㆍ기둥ㆍ들보가 모두 썩어서 못쓰게 되어 새로 마련하느라 경비가 많이 들었고, 한 번 밖에 비를 맞지 않은 재목들은 그런대로 완전하여 다시 쓸 수 있었기 때문에 경비가 적게 들었습니다. 저자가 이를 보고 느낀 바를 적은 것이 위의 ‘집을 수리하면서 느낀 바를 적은 글’, 곧 이옥설(理屋說)입니다.

잘못을 알고서도 바로 고치지 않으면, 그것이 자신을 망치는 정도가 나무가 썩어서 못쓰게 되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며, 이와 반대로 잘못을 하고서도 곧 고칠 수만 있으면, 한 번 샌 재목을 다시 쓸 수 있는 것처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글의 주제입니다. 글 뒷부분에는 당연히 ‘나라의 정치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말이 이어집니다. ‘백성에게 심한 해가 될 것을 머뭇거리고 개혁하지 않다가, 백성이 못살게 되고 나라가 위태로워진 뒤에 갑자기 변경하려면 잡아 일으키기 어렵지 않겠는가? 그러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세상에 잘못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잘못을 아는 순간 얼마나 빨리 이를 고치려고 노력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는 나라의 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장마철입니다. 매년 이맘때면 어김없이 폭우가 쏟아집니다.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물난리를 겪고 나서 뒤늦게 고치려 들지 말고 나라와 국민 모두가 미리미리 살펴서 별 피해 없이 지나가게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옮긴이 / 조경구(한국고전번역원)

 

185.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    이산해(李山海)〈진폐차(陳弊箚)〉《아계유고(鵝溪遺)

痛勢旣歇。憂慮稍弛。日漸久而心漸安。則向之所責疾病之原。方藥之失。不復省念

통증이 나아 걱정이 조금 덜해지면서

날이 점점 오래되어 마음이 점점 편안해지면,
지난날에 자책하던 질병의 원인과 약이나 처방의 잘못에 대해

더 이상은 생각지 않게 된다.

<
해설>

사람은 누구나 곤경에 처하게 되면 후회를 합니다.
“그때는 내가 왜 그랬을까?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해야지.
새 사람으로 거듭나기라도 할 듯이 굳게 다짐을 합니다.
그러나 ‘화장실 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는 속담처럼,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못한가 봅니다.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다시 같은 길을 가게 되니까요.

그런 면에서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 1539~1609) 선생이 상소에서 든 비유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당시 조정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 다소 안정되자 구태를 답습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심하게 아플 때에는 마음속으로 자책하기를, ‘어떤 때에는 내가 신중하지 못하여, 어떤 일로 내가 다쳤다. 어떤 약은 병에 맞는 약이 아니었고, 어떤 처방은 도로 해로웠다.’ 합니다. 그렇다면 다행히 소생하고 나서는, 그 신중하지 못했던 것을 깊이 후회하고 다시는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하며, 해로운 것을 제거하여 반드시 병세에 맞는 약을 구하려고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 통증이 나아 걱정이 조금 덜해지면서 날이 점점 오래되어 마음이 점점 편안해지면, 지난날에 자책하던 질병의 원인과 약이나 처방의 잘못에 대해 더 이상은 생각지 않게 됩니다. 그리하여 편안히 베개를 높이 베고 지내다가 하루아침에 나쁜 기운에 감촉되어 옛날의 병이 재발하기라도 하면 문득 죽음에 이르고 마니, 참으로 슬퍼할 만합니다.

옮긴이 / 권경열(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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