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세상사는 이야기

[김현예 기자의 '위기의 가족']

淸潭 2013. 11. 1. 13:13


☞ [김현예 기자의 '위기의 가족']
인터넷에 "불륜 승무원 고발" 글 올린 아내


★... 남편에게 ‘그녀’가 생겼습니다. 남편과 어깨동무를 하고 활짝 웃으며 찍은 그녀의 사진. 그 얼굴을 볼 때마다 울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내는 그녀가 일했던 항공사에 투서를 했습니다. 부적절한 행동으로 해고가 된 그 여자가 반격을 합니다. “시계 고마워.” 남편에게 가야 할 문자가 아내에게 옵니다. 두 여자의 진흙탕 싸움은 어떻게 끝이 날까요. 내용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각색했습니다.

#아내의 이야기

“미쳤니? 이혼남이랑 결혼하게?”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할 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아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아이가 딸린 ‘돌싱(돌아온 싱글)’이었다. 그래도 믿었다. 남편은 사업을 했다. 잦은 출장으로 외박이 잦았지만, 그의 넓은 어깨가 믿음직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도 믿음이 깨진 적은 없었다. 전처와의 아들 일 때문에 간혹 불편한 적이 있긴 했지만, 그건 못 넘을 산은 아니었다. 결혼하고 3년여가 지났을 때, 밀린 공과금을 내느라 남편의 컴퓨터를 쓰게 됐다. 아이를 돌보느라 못하던 인터넷 검색도 해보고, 남편의 학창시절 사진도 들여다보던 중 우연히 한 장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낯선 여자와 함께 웃고 있는 그의 사진. 그게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줄이야.

사진을 들고 남편을 밤새 몰아세웠다. 그는 별것 아니라고 했지만 ‘촉’은 달랐다. 며칠밤 드잡이를 하자, 남편이 ‘그녀’와의 일을 털어놨다. 그 여자는 승무원이었다. 우연히 출장길에 비행기에서 인사를 했고, 비행기에 내려서 정말 ‘우연하게’ 만나게 된 것밖에는 없다는 게 남편 말이었다. 하지만 나 몰래 1년여를 만난 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진을 볼 때마다 그 웃는 낯 때문에 울화가 치밀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여자를 용서할 수 없었다.

다시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그 여자의 회사 홈페이지를 찾아들어 갔다. 글을 적기 시작했다. “승무원이 이래도 됩니까. 한 승무원의 생각 없는 행동으로 가정이 깨지게 생겼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손님과 만나 사진을 찍고 연락처를 주고받는 게 말이 되나요?” 사진도 함께 첨부했다. 인터넷에 사진을 올리고 실명을 쓰면 명예훼손으로 걸린다는데. 잠시 고민을 했지만 그깟 일은 두렵지 않았다.

그 여자는 내가 글을 올리고 난 뒤 몇 달 만에 회사에서 나왔다고 했다. 그 뒤로도 나는 그 여자에게 비난의 문자나 전화를 했다. 그 여잔 전화번호를 여러 차례 바꿨지만 그런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문자 한 통이 왔다. 여자였다. “오빠, 시계 선물해 줘 고마워.”

가슴 속에서 불덩이가 솟구치는 것 같았다. 참다못해 난 다시 그 여자가 새로 옮긴 회사에 투서를 보냈다. “유부남과 동거하는 것도 모자라 이젠 부부행세를 하고 다닙니다.” 편지를 보내고선 여자의 회사로 찾아가기도 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이번엔 그 여자가 일하는 회사 탑승권을 샀다. 그리곤 몰래 그 여자와 내 남편의 불륜을 적은 쪽지를 승무원들이 쓰는 주방에 던져 놓았다. 내가 그 여자와 피 말리는 전쟁을 벌이는 동안에도 남편은 그 여자 집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부부 흉내를 냈다.

#그 여자의 이야기

승객으로 한번 만났던 사람을 해외에서 조우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건 몸에 밴 습관이었다. 자연스럽게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시작된 일이 이렇게 큰 일이 될 줄은 몰랐다. 처음엔 그에게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줄 몰랐다. 적어도 그 사람의 아내가 회사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기 전까지는. 당황이 되었다. 내가 만난 사람이 유부남이라니. 결국 회사에선 품위 문제로 해고가 됐다. 그를 만난 1년여의 시간은 내게 많은 걸 앗아갔다.

처음부터 그 사람의 아내에게 반감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아내는 집요했다. 다신 만나지 않겠다고 했는데도 문자폭탄을 보냈다. 입에 담지 못할 욕과 밤낮을 가리지 않는 전화. 전화번호를 바꿔도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가 끊이질 않았다.

그와 그의 아내를 피해 회사를 옮기고 이사를 갔다. 하지만 그는 계속 찾아왔다. 아이들을 앞세워 온 그는 미안하다고 했다. 시계를 건네며 진심으로 사랑한다고도 했다. 아내와 이혼을 하고 나와 부부로 살고 싶다고 매달렸다. 아직 어린 아이들을 여인숙 같은 데에 재울 수 없어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했다.

하지만 그 일은 재앙이 됐다. 아내란 사람은 새 회사에 투서를 했고, 비행기에 탑승까지 해 “불륜 직원”이라며 동료에게 소문을 냈다.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만은 없었다. 고민 끝에 그 여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빠, 시계 선물해 줘 고마워.”

#법원의 판단은

한 남자를 둘러싼 두 여자의 쟁투(爭鬪). 아내는 ‘그 여자’를 상대로 위자료를 내라며 소송을 냈고, 여자 역시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을 하라”며 맞소송을 했다. 법원은 누구의 손을 들었을까. 물론 본처인 아내였다. 부산가정법원은 “상대가 유부남인 것을 알고도 집에서 숙박을 허용하는 등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해 혼인의 파탄에 일조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로 인해 아내가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으리라는 것이 명백하므로 위자료 7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가정 파탄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글을 게시한 것으로 명예훼손이 아니다”라는 아내의 설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아내가 괴롭혀 발생한 ‘그 여자’의 피해에 대해 200만 원의 손해배상액을 책정했다. “소송절차 등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는 별도 수단이 마련되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법원은 "승무원이 아내의 게시글로 퇴사하게 되었고, 이후에도 반복하여 명예훼손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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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