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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딱 감고 약 빨면 백수탈출”… 공무원 체력시험 약물 횡행

淸潭 2013. 10. 29. 09:56



☞ “눈 딱 감고 약 빨면 백수탈출”… 공무원 체력시험 약물 횡행



★... [쿠키 사회] 경찰, 소방관, 중·고 체육교사 등 국가공무원 시험의 체력시험에서 약물을 이용한 성적 조작이 횡행하고 있다. 일부 병원은 응시자들을 상대로 ‘약물주사 장사’까지 하고 있다. 이런 공무원 시험은 통상 10대 1 이상 치열한 경쟁이 벌어져 0.01점 차로 탈락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약물 복용이 당락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당국은 약물 비리의 규모와 실태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

인천에서 경찰 시험을 준비 중인 A씨(29)는 28일 국민일보 취재팀과 만나 “필기시험 비중이 낮아지고 체력검정 배점이 높아지는 추세여서 부정 약물을 투여하는 경찰 지망생이 많다”며 “100m 달리기 기록이 1초만 줄어도 점수가 많이 올라가 부정행위인 줄 알지만 외면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경찰시험 합격자들이 교육받는 경찰학교에서도 부정 약물을 복용한다는 진술도 나왔다. 성적이 좋으면 희망 근무지나 전공 배정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임용 2년차 경찰 B씨는 “임용 동기가 약물을 먹고 악력(握力) 측정을 받는 걸 봤다”며 “그 동기는 약물을 복용하면 측정 결과가 좋아진다고 했는데 실제로 평소보다 훨씬 높은 수치가 나왔다”고 말했다.

공무원 시험의 부정 약물 복용은 체대 입시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지방 체대 출신의 공무원 시험 수험생 K씨(23)는 “약물을 쓰면 기록이 일시적으로 눈에 띄게 증가하다 보니 한 번 먹으면 안 먹을 수 없다”면서 “이미 체대 입시 때부터 부정 약물을 복용하는 수험생이 전국적으로 굉장히 많다”고 귀띔했다.

체력시험을 위해 응시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약물은 스테로이드 주사나 ‘부스터’류다. 부스터는 근육을 자극해 근육 성장을 촉진시키는 보충제 형태의 약물이다. 취재팀이 체대 입시 수험생 또는 공무원 시험 준비생을 가장해 서울의 각종 병원에 문의한 결과 “스테로이드 외에도 체대 입시에 필요한 주사 종류가 많다”거나 “원장님과 잘 얘기하면 (질병이 없어도) 주사를 맞을 수 있다”며 유인하는 병원이 여럿 있었다.

공무원 시험을 주관하는 정부 당국과 체대를 둔 대학들은 부정 약물 행태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매년 경찰 공무원 시험이 끝날 때마다 합격자 중 약물 복용자가 있다는 제보가 들어오지만 손 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약물 복용자를 걸러내는 도핑 테스트에 지원자 1명당 30만∼50만원이 드는 데다 판정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전형 일정에 지장을 준다는 것이다. 도핑 테스트를 의무화한 법령도 없다.

0.01점차 당락 좌우… 근육주사 한 방의 유혹

지난해 소방간부후보생 원서접수를 한 달여 남겨둔 10월 20일. 선발 과정을 안내하는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부정 약물이 사용되는 현실을 놓고 토론이 벌어졌다. 한 수험생이 “멀리뛰기가 너무 힘들다”는 글을 올리자 다른 수험생 A씨가 “스테로이드 들어간 약을 먹으면 된다”고 답을 하면서부터였다. 그는 “스테로이드 약을 먹으니 근력 향상이 장난이 아니다”라며 “나는 악력이 50㎏도 안 나왔는데 (약을 먹으니) 65㎏이 나오고 230㎝대였던 제자리멀리뛰기도 약 먹으면서 운동하니까 기록이 270㎝까지 향상됐다”고 밝혔다.

이런 약물은 명백한 부정행위지만 이어진 댓글에선 갑론을박이 오갔다. “스테로이드는 불법이다” “도핑테스트를 도입해야 한다” “누구나 간절히 합격을 원하는데 정당하게 붙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 약 출처를 알려 달라” “체대 입시에서 많이 하는 건 알았지만 공무원 시험에도 효과가 있는 줄 몰랐는데, 나도 끌린다” “솔직히 근육주사 한 방 맞아도 괜찮을 듯” 등의 동조하는 내용도 많았다. A씨는 “공무원 시험에 도핑테스트 같은 거 없지 않느냐. 스테로이드 복용은 본인 선택이고 여러분께 도움 드리고자 정보를 제공한 것뿐”이라고 논쟁을 마무리했다.

이 토론은 공무원 시험 응시자들이 부정 약물의 유혹에 내몰리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부정행위임을 알면서도 도핑테스트 등 관련 규제가 없다는 이유로 애써 정당화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 게시물은 1년이 지난 지금도 홈페이지에 버젓이 게시돼 있지만 시험을 주관하는 중앙소방학교는 올 체력시험에서도 도핑테스트를 실시할 계획이 없다.

이처럼 공정 경쟁이 생명인 공무원 시험이 약물 복용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거나 이를 부추기는 일부 수험생들 때문에 복마전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들은 체력점수가 당락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데도 도핑테스트를 실시하지 않고 있는 맹점을 파고들어 시험을 불공정경쟁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취재팀은 수도권에 근무하는 임용 2∼3년차 경찰공무원 12명에게 경찰시험의 약물 복용 행태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물었다. 그중 4명이 “체력시험에서 약물 복용한 사람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합격자들은 단기교육을 받는 경찰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려고 약물 복용하는 교육생을 목격했다고 응답했다. 일선 경찰들 사이에서 약물복용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경찰학교 성적은 전공분야나 근무지 배정에 큰 영향을 준다.

경찰공무원 체력시험은 100m·1000m 달리기,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좌·우 악력 테스토로 구성된다. 소방공무원은 왕복오래달리기, 윗몸일으키기, 제자리멀리뛰기, 앉아 윗몸 앞으로 굽히기, 배근력, 악력 등이다. 중등 체육교사 실기시험 역시 육상, 체조, 수영, 농구 외 선택과목 1개로 치러진다. 경찰·소방공무원은 체력시험이 전체 전형 점수의 25%, 중등 체육교사는 30%를 차지한다.

이처럼 배점이 높은 체력시험을 위해 수험생들은 혈관을 축소시켜 통증을 줄이고 근력을 강화시키는 스테로이드 주사, 약해진 인대와 힘줄 부위를 자극해 각종 영양물질과 성장인자를 모아주는 프롤로 주사 등을 주로 복용한다. 운동 속도를 높여준다는 ‘부스터’류 보조제도 인기다.

이런 약물을 투여하면 체력시험 평가항목별 기록이 일시적으로 월등히 향상된다고 한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 관계자는 “스테로이드 약물을 복용하면 근육의 단면적이 커지고 수축력도 강화돼 육상이나 기초 체력 능력에서 두드러진 효과가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현행 약사법과 관련 규칙은 난드롤론데카노에이트, 메칠테스토스테론 등 스테로이드 약물을 오·남용 우려 의약품으로 지정해 불법적인 공급을 처벌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 병원은 뚜렷한 질병이 없는 응시자들에게 임의로 스테로이드 주사를 놔주고 있다.

수험생 사이에 일명 ‘근육주사’ 잘 놔주기로 소문난 서울의 한 병원에 전화를 걸어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을 수 있는지 물었더니 “하루 전에만 예약하면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병원 관계자는 “수험생들이 시험 직전에 많이 찾아와 스테로이드 주사나 파워 주사 등을 맞는다”고 설명했다. 다른 재활 전문 병원에서는 “스테로이드 주사 말고도 (기록 향상을 위해) 맞을 수 있는 다른 주사가 많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0.01점 차이로도 당락이 갈리는 공무원 시험에서 약물 복용은 명백한 부정행위다. 수사기관이 수사에 나설 경우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처벌될 수 있다. 이렇게 출발부터 부정을 저지른 공무원에게 나랏일을 공정히 처리하리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만연한 부정 경쟁을 정부 당국은 속수무책 방관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한 해 6000명가량 뽑는데 응시생 모두 도핑테스트를 하는 건 무리”라고 했다. 소방방재청 측도 “신체검사에서 혈액검사를 하지만 건강 상태를 보기 위한 것”이라며 “소방공무원법에 도핑테스트를 해야 한다는 규정도 없다”고 해명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중등임용 담당자는 “실기시험은 시·도교육청에 일임하는데 시간·비용 때문에 약물 검사를 하는 곳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분당서울대병원 백남종 재활의학과 교수는 “공무원 시험 등에서 스테로이드 약물의 도움을 받는다면 근력과 집중력이 상승하기 때문에 불공정한 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금지약물을 정해놓고 전형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약물 부정의 시작 ‘체대 입시’

공무원 체력시험의 약물 비리는 체대 입시에서부터 이어져 오는 경우가 많다. 체력시험이 포함된 공무원 시험은 체대 졸업자 지원 비율이 높은 데다 애초에 해당 공무원 시험을 염두에 두고 체대 진학을 선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서울대를 제외한 대다수 대학이 체대 전형 과정에서 도핑테스트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정부 기관과 마찬가지로 예산과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이렇다보니 수험생 사이에선 “(약물 주사를) 안 맞는 게 바보”라는 인식마저 퍼져 있다.

수도권 소재 대학 체육학과에 다니는 김모(27)씨는 28일 국민일보 기자와 만나 “많은 입시생이 보충제 형태로 스테로이드 등의 약물을 복용하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라면서 “특히 강남 쪽 체대입시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의 복용 비율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체대입시학원은 수험생들에게 약물 사용을 권하고 있으며, 수험생이 진료를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 부정 약물이 들어간 주사를 추천받고는 학원장에게 효능을 확인하는 경우도 자주 벌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강남의 A체대입시학원 원장은 “체력시험을 앞두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약물 주사를 맞는 학생들이 있다”면서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6개월 이상 꾸준히 맞아야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B입시학원 강사는 “한 번에 100만원이 넘는 주사도 있다. 학부모나 학생들이 약물의 효과를 물어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증언했다.

C입시학원장도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고 효과를 기대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이를 맹신하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있다”며 “병원에서 학생들에게 먼저 제안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학원 관계자와 수험생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병원에 취재팀이 수험생을 가장해 문의한 결과 “몸에 별다른 이상이 없어도 예방 차원에서 주사를 맞을 수 있다”거나 “의사와 안면이 있을 경우 주사를 쉽게 맞을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체대입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도 공무원 시험과 체대 입시의 도핑테스트 실시 여부를 묻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주사 놔주는 병원을 알려 달라” “부스터 복용법을 가르쳐 달라” 등의 질문도 반복해서 올라온다.

교육부 심민철 대입제도과장은 “부정 약물 투약 행위 적발은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개별 대학이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라며 “교육부 차원에서 실태 조사 등을 벌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체대 입시의 체력시험은 수능과 달리 각 대학에 일임돼 있다. 학교가 사전에 명확한 금지 규정을 고지해야 하지만 이런 규정을 가진 대학이 거의 없다. 부정행위가 드러날 경우 국립대 응시자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사립대 응시자는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강덕모 세종대 체육학과 강사는 2010년 한국체육철학회지에 기고한 ‘입시체육의 빛과 그림자’ 논문에서 “입시 체육에 약물복용과 관련된 공정성과 윤리의식 부재의 그림자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그는 “신체적 기능과 체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약물은 단기간에 대학 입학이라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부정적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체육 관련 학과의 실기고사가 도덕 불감증에 심취된 사회 성원을 육성하는 타락된 입시제도가 되어가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는 “건강상의 문제를 야기하면서까지 신체적 완전함을 탐구하는 전공 분야에 입문하려 한다는 것은 목표 의식이 부재된 현실 도피적 진학”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도경 정부경 박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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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