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아탈리 지음|양영란 옮김|위즈덤하우스|388쪽|1만7000원
- 유목민(nomad), 가상 현실, 네트워크, 여러 요소들을 짜맞추는 레고 문명(civil lego)이 21세기의 키워드가 되리라 예측한 사람은 바로 프랑스의 지식인 자크 아탈리(Attali·64)였다. 9년 동안 대통령 특별보좌관을 지내면서 ‘미테랑의 휴대용 컴퓨터’라는 말까지 들었던 그에게는 경제학자·철학자·미래학자·문명비평가 같은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인류의 역사를 리드미컬하게 압축 서술한 뒤 미래의 흐름을 단호하게 예측한 이 최신 저서에서도 그는 “지정학적 중심의 태평양 이동, 공산주의의 약화, 테러리즘, 휴대전화와 인터넷의 부상 같은 것들은 이미 내가 오래 전에 예측했던 것”이라며 으스댄다.
그가 보는 세계사는 왕조(王朝)가 명멸하는 정치사가 아니다. 아탈리는 세계를 움직여 온 힘이 물질적 부(富)를 축적하는 것을 신(神)에게 다가가는 길이라 믿었던 ‘그리스-히브리적 이상’이며, 이는 “이동과 창조의 자유, 배운 지식을 전달하고 재산을 불릴 자유를 확보한” 상인 엘리트 계급에 의해 계승됐다고 말한다.
- ▲'미래의 물결'저자인 프랑스 지식인 자크 아탈리. /위즈덤하우스 제공
- 단순화의 억지를 무릅쓰면서 그는 서기 1200년부터 지금까지의 역사가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아홉 개의 ‘거점 도시’를 중심으로 펼쳐졌다고 분석한다. 한 도시의 창조적 계급들이 새로운 서비스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월등할 때 ‘거점’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브뤼헤·베네치아·앤트워프·제노바·암스테르담·런던·보스턴·뉴욕이 차례로 거점으로 떠올랐으며, 현재의 ‘거점’은 유목민적 IT기술을 바탕으로 미국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하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다. 이 ‘아홉 번째 거점’은 상당히 오랜 기간, 아마도 20년 정도는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권력의 중앙집권을 용이하게 하리라 믿는 새로운 통신기술이 실상은 기존 권력을 분산시키는 막강한 적”이기 때문에, 미국의 지배력은 결국 약화된다. 자율성을 확보한 인터넷 기업이 해외로 이전하고 달러화의 가치는 하락한다. 그 빈 자리에 새로운 ‘11대 강국’이 떠오른다.
미국 몰락 이후의 미래에 대한 아탈리의 전망은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의 혼재(混在)다. 시장과 자본의 권력이 국가를 대체하며 영토를 넘어선 ‘하이퍼 제국’이 출현해 사람들의 자유를 위협할 것이며, 세계의 온갖 국지적 분쟁이 통합되는 ‘하이퍼 분쟁’의 소용돌이가 펼쳐진다. 하지만 타인과의 공존의 가치를 깨달은 새로운 인간형인 트랜스휴먼이 등장해 시장과 민주주의의 균형을 잡는 ‘하이퍼 민주주의’가 실현될 것이다. 마르크스적 역사관의 21세기식 변형처럼 보이는 이 돌연한 낙관주의에서 아탈리는 “역사는 자신들의 자유와 가치를 수호하려는 사람들이 인간의 중요성을 앞세울 때만 방향을 튼다”는 신념을 드러낸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일본·중국·인도·러시아 같은 11대 강국의 목록에 한국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아시아 최대의 경제국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1인당 총생산은 2025년까지 2배로 늘어나며, 기술력과 문화적 역동성은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 초고속 인터넷과 한류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아탈리는, 놀라운 공동체 의식과 집단 욕망이 한국의 성공 비결이며 북한의 위협과 저출산·교육·이민 문제를 해결하면 ‘미래의 중심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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