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명법문 명강의

현실긍정 사고라야 보살행 실천 가능

淸潭 2007. 3. 4. 21:00
현실긍정 사고라야 보살행 실천 가능
전 교육원장 암 도 스님
기사등록일 [2005년 06월 28일 화요일]
 
전 교육원장 암도 스님은 6월 21일 대전 지장사 중창불사 초청 법회 법석에서 ‘팔정도와 복’을 주제로 법문했다. 암도 스님은 이 자리에서 “신수봉행하면 무량대복”이라며 “팔정도와 계율에 의지한 삶을 살아가면 지혜와 복덕을 함께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법문을 요약 게재한다. 편집자 주


신수봉행 하면 무량대복이니라. 불법승 삼보를 믿고 받들어 행하면 한량없는 복을 받는다 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복을 지어가며 살고 있습니까?

만물은 홀로 존재할 수 없어

인생은 만남과 인연의 연속입니다. 좋은 사람만을 만나서 선연(善緣)을 이어가고 싶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게 우리 인생입니다. 지금의 인연은 전생의 업력에 따라 생깁니다. 금강경에서도 ‘인연과 근기에 따라 산다’고 했듯이 자신의 근기도 훌륭해야 좋은 인연을 엮어갈 수 있습니다. 인연이라는 말에서 인(因)이란 자기 인자 즉 자신의 근기이니 이것이 업이고, 연(緣)이란 여건이요 환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연은 자신의 업과 주변 환경이 맞물려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 인연을 잘 성찰해 보면 연기법에 따라 움직이고 있음을 직시할 수 있습니다. ‘연기를 보는 사람은 여래를 본다’고 하지 않았습까?


연기법에서 보면 나라는 존재는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지금 저도 홀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금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지장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고, 지장사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그 대한민국도 지구가 있기에 존재할 수 있으며, 지구 역시 우주가 존재하기에 살아 숨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물론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도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중중무진의 인과 연이 맺어져서 현상계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상계에 사는 우리가 내 업대로만 살겠다면 그것처럼 우매한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지은 업대로만 살겠다고 하는 순간 자기 멋대로 사는 삶을 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윤회도 끊을 수 있다고 믿고 해탈을 향해 길을 떠나는 불자입니다. 불자는 자신의 악업을 소멸시키고 선업을 쌓아가며 보살행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복을 짓고 누릴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실천해 가야 합니다.
복은 기다리기만 한다고 해서 오지 않습니다. 좀 전에도 말했듯이 인연이 좋아야 복덕을 안을 수 있는데 그 인연은 자신의 근기와 여건이 조화를 이뤄야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각 개인은 자신의 근기도 돈독히 해 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 노력의 실마리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이미 부처님이 상세하게 말씀해 주신 팔정도에 의지 하십시오.


정견은 그 어느 팔정도 보다 중요합니다. 견해란 눈으로 보는 것을 이르지 않습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먹어보고, 머리로 생각 하는 6근이 작용하는데 정견을 가져야 이 6근을 조정할 수 있고, 정견을 가져야 6근의 장난에 놀아나지 않습니다. 또한 정견이 확립되면 우리의 인생과 사회, 우주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정견을 세우면 정사와 정어, 정업, 정명, 정근, 정념, 정정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다만 정정은 수행을 통해 가능한 것이니 만큼 큰 원력을 세워야 함을 새삼 강조하고 싶습니다. 삼매의 경지에 이르렀다 해도 여기서 그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대승불교를 지향하는 만큼 정진하면서도 여러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수행은 정신문화 창달의 요체

더불어 사는 덕목 중에서도 보시행은 큰 복을 불러옵니다. 보시에는 법시와 재시, 무외시가 있습니다. 무외시는 남을 놀라게 하지 않는 덕목인데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실천행동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요즘 시대에는 좋은 것도 감동을 주겠다며 놀라게 하려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놀라게 하는 게 아니라 안심하게 하는 행동에 무게를 두어야 합니다.


보시와 함께 우리는 계율을 잘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 미물도 살생하려 하면 반항하는데 그 반항하는 에너지가 우리에게 전달되면 그만큼 우리 자신에게 악영향을 미칩니다. 꽃 한 송이도 자비심으로 대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현대사회에는 먹을 것이 너무 넘쳐나고 있는데 분별없이 무작정 아무거나 먹으면 그만큼 탈이 나 몸에 이상이 옵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듣는 것도 모두 중도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언뜻 오온이 개공한 것이라 하니 몸을 함부로 다루는 경우가 있는데 몸을 공한 상태로 보는 것 하고 건강을 해치는 것 하고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정신이라고 할 때 정은 신체에서 나오고, 신은 말 그대로 신명에서 생성됩니다. 따라서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하고 복도 더 많이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가진 것이 많으면 원력에 따라 많은 복을 지을 수 있겠지만 재물이 없다 해도 큰 복을 짓는 방법은 많습니다. 봉사활동이나 장기기증은 참으로 자신을 헌신한 공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질서는 정신질서부터 출발합니다. 문화창조도 정신문화이니 그 정신이 온전치 못하면 수려한 문화창조는 있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이 모두 복을 짓고 수행하는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의 정신문화를 창조하는 밑거름입니다.
정신은 결국 의식과 깊은 연관이 있는데 의식을 바꾸지 않으면 중생계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내가 부처라는 주인의식을 가져야 부처다운 행동을 하지 주인이 따로 있어 피조물에 불과하다 생각하면 노예근성만 남게 됩니다. 밀가루 반죽이 국수틀에 들어가면 국수가 되어 나오고, 빵틀에 들어가면 빵이 되어 나오듯이 중생이라는 틀을 벗고 부처라는 틀로 우리의 삶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정견-삼업 청정은 불자의 기본

지혜가 없는 사람은 복도 짓기가 어렵습니다. 지혜란 현실 긍정적 사고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현실을 부정하면 회피하고 도피하고, 그러면 복 짓는 기회도 그만큼 줄어드는 겁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신구의 3업을 청정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절을 하고 기도를 하고 염불을 하고 참선을 하면 3업을 청정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10악업을 10선업으로 바꾸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살생은 방생, 도둑질은 근면과 노력하는 자세로 돌리는 것입니다. 탐진치(貪瞋痴) 삼독도 각각 보시와 자비심, 지혜로 승화시켜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에 살고 있습니까? 전화선도 필요 없는 시대이고 서양의 사건 하나하나도 텔레비전을 통해 그날그날 바로 알아버리는 시대입니다. 그뿐입니까? 인터넷을 통해 세계 각지의 소식은 물론 지식정보도 상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우주 시대이며 화엄의 세계요 사사무애의 시대라 할 수 있으니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여러분과 저는 복 많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이 좋은 시절인연을 타고 난 사람들의 사고도 우주적 사고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시대는 변했는데 우리의 중생사고는 변할 줄 모르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정견을 바로 세워 팔정도를 행하고 계율과 보시를 통해 지혜와 복을 지어가시기 바랍니다.

대전=채한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