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명법문 명강의

“명징하게 깨어 있어야 분노 다스려”

淸潭 2007. 3. 4. 20:56
“명징하게 깨어 있어야 분노 다스려”
미얀마 우야사 담마 비웽사 사야도
기사등록일 [2005년 05월 30일 월요일]
 
부모님 은혜
평생 잃지 않는
한국 孝사상에 감명

사념처 닦으면
선량·지극한 마음
이웃과 나눌 수 있어


어버이의 은혜는 하늘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넓고 크다는 뜻이겠지요. 부처님께서는 아버지를 오른쪽 어깨에 이고, 어머니를 왼쪽 어깨에 이고 수미산이 닳도록 돌아다녀도 부모님의 은혜는 다 갚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일심(一心)으로 노력해도 부모님의 은혜를 다 갚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말씀이겠지요.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사랑은 그만큼 지중한 것입니다.

한 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오늘 법문을 듣기 위해 오신 대중들 가운데 부모님을 자신의 어깨에 이고 다녀 본 적이 있습니까? 평생은 아니라 단 하루만이라도 말입니다. 물론 없을 겁니다. 부모님의 은혜와 관련해서 경전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 오지요. 부처님 재세 시에 인도의 왕이 부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자비로운신 부처님. 제가 만일 세계 각 나라의 모든 재산을 모아 부모님에게 드린다면 이것으로 부모님의 은혜를 갚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부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것으로 부모님의 은혜를 결코 갚을 수는 없다.”

부처님이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먼저 효도를 물질로 환산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겠지요. 부모님의 은혜는 결코 물질로 환산할 수 없는 그야말로 지고지순한 것입니다. 이러니 재물을 수미산처럼 쌓아 부모님께 바친다 한들 그 은혜를 어찌 감당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여기 계시는 대중들 가운데는 십대도 있을 것이고, 이십대도 있을 것이고, 육십대도 있을 겁니다. 얼굴들을 보니 연령층이 그야말로 다양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 해 봅시다. 부모님은 우리를 낳는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을 제쳐두고 우리의 행복과 안녕만을 생각합니다. 몸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떨어지는 가랑잎에도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삶은 부모님의 이런 노력의 결과로부터 기인한 것입니다. 단 한순간도 자식에 대한 생각을 그치지 않으니, 부모에게 자식은 생명이요, 삶의 의미입니다. 더구나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은 부모님으로부터 남들보다 더 큰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부모님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지 못했다면 어떻게 오늘 이날 이 자리에서 법문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이러니 여러분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부모님의 은혜를 많이 입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의 몸을 받고 태어나 부처님의 지고지순한 법문을 듣는 것보다 더 커다란 은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면 부모님의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까요. 부모님이 살아 계신다면 응당 행복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요. 물론 물질적인 부양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부양하는 것이 진정한 효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편히 해 드리기 위해서는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모든 일의 시작은 항상 마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부모님에 대한 간절한 마음은 평소의 행동으로, 그리고 주변을 온화하게 만드는 기운으로 뿜어져 부모님이 절로 편안해 하실 것입니다.

한편으로 여기 참석한 대중들 가운데 부모님이 이미 유명을 달리하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또 어떻게 부모님의 은혜를 갚아야 할까요. 부처님께서는 효를 대신해 선업을 쌓으라 가르치셨습니다. 물론 자신이 쌓은 선행의 공덕을 부모님께 돌리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아야겠지요. 저는 한국의 많은 사찰들을 돌아봤는데 돌아가신 부모님의 유골을 법당에 모셔 두고 참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감명 깊었습니다.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진정한 불자의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허나 효도와 선망 부모를 위한 선업을 쌓기 위해서 전제돼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마음공부입니다. 마음공부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효도도, 선업을 쌓는 것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한국은 근세에 들어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눈부신 발전과 성장을 이룬 나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비례해 삶이 주는 스트레스로 긴장과 불안의 나날 속에 살다 자살을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해지고 사회는 발달하고 있는데 고통 받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이는 외부에 눈이 팔려 정작 자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마음공부가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부처님은 세상의 어떤 물건, 물질도 인간의 욕망을 완벽하게 만족시킬 수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물질을 통해, 혹은 외부 대상을 통해 자신의 갈애(渴愛)를 충족시킬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욕망이 달성되지 않으니 당연히 갈애를 끊을 수 없는 일이지요.

여러분은 삶 속에서 얼마나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까. 따지고 보면 돈, 자식, 주위 환경 어느 것 하나 완벽하게 만족을 주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항상 갈애의 압박을 받으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부자라도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한 채의 집을 장만하면 그 뒤엔 두 채의 집을 가지고 싶고, 자가용을 한 대 사고 나면 더 좋은 자가용으로 바꾸고 싶은 것이 사람의 욕망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만족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사람의 욕망과 욕심은 물질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불만족이 불만족만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불만족은 곧 고통과 짜증으로 변하고, 결국에는 분노로 표출됩니다. 자신에 대한 분노는 자신을 학대하고, 궁극에는 자살에 이르게 하고, 남에 대한 분노는 경쟁과 싸움을 지나, 사회적 일탈 행위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면 이런 갈애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부처님이 가르친 가장 좋은 방법은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만약 분노가 일어나면 그 분노가 어디서 왔는지 차분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분노가 경제적인 문제에서 발생했다면 ‘아, 경제적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서 내가 지금 화를 내고 있구나’하고 알아차리면 됩니다. 다른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을 때리고 싶거나 욕하고 싶은 마음이 일면 먼저 자신이 분노 상태에 있음을 알아차리고 다시 그 이면을 면밀히 분석해 원인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신수심법(身受心法)입니다. 일어나는 하나하나의 마음을 뒤에서 지켜보는 그 마음이 바로 ‘신수심법’ 수행의 핵심입니다.

‘효도’는 수행과 같습니다. 효도를 위해서는 선량하고 지극한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선량하고 지극한 마음은 신수심법, 즉 사념처 수행을 통한 알아차림으로 가능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잘 살피십시오. 항상 알아차리도록 명징하게 깨어있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부모님께, 그리고 부처님께 효도하는 길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부산지사=주영미 기자

이 법문은 5월 8일 부산 여여선원에서 설해진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우야사 담마는

우야사 담마 비웽사 사야도(73)는 미얀마 불교에서 가장 큰 교단 가운데 하나인 수담마의 큰스님으로 현재 만달레이의 마소이엥 타잇팃 절에 주석하고 있다. 마소이엥 타잇팃은 미얀마 불교를 대표하는 강원으로 현재 3000명의 학인 스님들이 공부하고 있으며, 스님 밑에는 15명의 주지 스님이 절의 각 살림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스님은 8살에 출가해 27살에 교단의 모든 과정을 이수한 뒤 국가에서 실시하는 최종적인 승가고시에 합격해, 삼장법사의 칭호를 얻었으며 50여 년간 마소이엥 타잇팃에 주석하며 수많은 후학들을 길러냈다. 2003년 인도네시아를 방문, 태어나자마자 미얀마 말을 하는 한 아이의 전생을 살펴본 뒤, 그 부모들을 불교로 개종시킨 일은 지금도 미얀마와 인도네시아에 회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