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스님들 소식

경허스님 3

淸潭 2006. 12. 11. 09:47
 

경허선사

 

누드 법문

 -최인호님의 길 없는 길 中에서 옮김-

      

사람들은 삼십의 젊은 나이에 도를 이뤄 부처가 되었다는

경허의 모습을 보기 위해 발돋움을 하고 법석(法席)위에 앉아 있는

 경허의 모습을 이리저리 살펴보았으며 그의 입에서 터져나올 법어가

 어떠한  내용일지 궁금하여 암자는 일순 정적에 휩싸였다.


경허는 법상 위에 앉아 한참을 눈을 감고 말이 없었다.

 이제나저제나 무어라고 입을 열 것인가 사람들이 궁금하게 지켜보고 있을 무렵,

경허는 갑자기 눈을 뜨더니 들고 있던 주장자로 법상을 내리쳤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섰다.


경허는 첫 법회를 기념하여 신도들이 정성껏 지어올린 장수편삼(長袖偏衫)을

입고 있었는데 법상 위에서 우뚝 일어선 경허는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하였다.


우선 어깨 위를 두른 자상(紫裳)을 벗겨내리더니 가사를 벗기 시작하였다.


경허의 느닷없는 행동에 사람들은 도대체 경허가 무슨 법문을 하느라고

저처럼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는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 매어 고정시킨

끈을 풀어 장삼을 벗기 시작하였다.


경허의 행동은 그것에서 머무르지 않았다.


편삼을 벗어버리자 내의가 나왔는데 이번에는 그 내의마저 벗어

 벌거숭이가 되고 있지 않은가.

상체만이 벌거숭이가 될 때는 별 동요가 없었는데

경허가 마침내 고의(袴衣)마저 벗어버리고 완전 벌거숭이가 되어

불알까지 드러내게 되자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를 지르고,

아낙네들은 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젊은 처녀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황망히 도망쳐버리기 시작하였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완전 벌거숭이가 되어

경허는 법석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는 어머니 박씨를 향해 정면으로 마주섰다.

그는 일부러 불알을 어머니에게 자랑이나 하듯 드러내 보이면서

마침내 입을 열어 말하였다.


"어머니, 저를 좀 보십시오."


모여든 대중들도 경악하였을 뿐 아니라 그중 제일 놀란 것은 어머니 박씨였다.

박씨는 아들이 자랑스럽고 또한 어머니인 자신을 위해 법문을 한다는

말까지 들었으므로 고운 옷을 차려 입고 법석 제일 앞자리에 나와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법문은커녕 갑자기 모든 법의를 벗어던져 천둥 벌거숭이가 되더니

그뿐 아니라 그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불알을 자랑이나 하듯

덜렁거리면서 나타내보이고 있지 아니한가.


순간 박씨는 크게 놀라고 화가 나서 소리쳐 말하였다.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슨 법문이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경허는 듣는 둥 마는 둥 어머니를 향해 다시 말하였다.


"제가 오줌이 마렵습니다. 어머니, 오줌 좀 뉘어주세요."


마침내 참다못한 어머니 박씨는 낯을 붉히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법회장을 빠져나가 사라져버렸다.

사람들은 이 해괴한 짓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였다.

 그들은 젊은 나이에 도를 이뤄 법왕(法王)이 된 경허를 보기 위해

불원천리하고 구름처럼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무슨 심오하고 거룩한 법문을 듣는 대신

젊은 부처의 벌거벗은 모습을 본 것뿐이었다.

벌거벗은 모습뿐 아니라 덜렁거리는 불알까지 본 것이었다.


어머니 박씨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사라져버리자

경허는 껄껄소리 내어 웃으면서 벗었던 옷을 차근차근 입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말하기보다 자신에게 한탄하듯 낮은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중얼거렸다.


'저래 가지고서야 어찌 나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이 몸을 발가벗기고 목욕시켜 씻기고,

안고, 물고, 빨고, 쉬이- 소리질러 오줌까지 뉘어주시더니

이제 와서는 왜 그렇게 못하시고 벌거벗은 내 모습을 보시고 낯을 붉히고 화를 내시는 것일까.

 

 나는 예나 지금이나 어머니의 아들인데 어머니는 나를 외간 남자로 보셨는가.

내 어릴 때는 내 잠지를 귀여워도 하시더니

 왜 이제는 흉물이나 바라보듯 원수처럼 여기실까.

참으로 이상하구나. 참으로 알다가도 모르겠구나.'


경허는 천천히 가사를 다시 껴입으면서 계속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변함없이 아들인 하나의 몸을 왜 어머니는 두 개의 눈으로 본단 말인가.

어릴 때는 품안의 아들이더니 이제는 불알에 털이 좀 났기로

콩밭 매다가 노방에서 만난 방물장수의 불알이나 본 듯 한단 말이냐.

 참으로 이상하구나. 참으로 알다가도 모르겠구나.

 나는 예부터 어머니라고 부르고, 지금도 변함없이 어머니라고 부르는데

어머니는 간곳없고 여자 하나 남았구나.

 이 무슨 이상한 일이냐.

나를 변함없이 어린 아들로 보았다면 화날 일이 무엇이고 부끄러울 일이 무엇이냐.

그런데 나를 형상으로만 보는구나.

아아, 이 몸이 둘이 없는 집(無二堂)임을 모르는구나.'


벗었던 가사를 다 입고 경허는 다시 법상 위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아무런 말도 없이 홱 내려왔다고 전해진다.


경허의  첫 상당 법어는 이토록 웃기는 해프닝으로 끝나버렸다.

 그러나 그는 나름대로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어머니에게 깊은 은공을 갚아주었습니다.

아들의 깊은 뜻을 어머니 박씨는 숨을 거둘 때까지 알아차리기나 하였음일까.
 

'불교이야기 > 스님들 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허스님 5  (0) 2006.12.11
경허스님 4  (0) 2006.12.11
경허스님 2  (0) 2006.12.11
경허스님 1  (0) 2006.12.11
원담스님 8  (0) 2006.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