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기약하고 일어나라” ▷ 한겨레가 뽑은 민중대표 48인./유관순 감방엔 아기도 수감…모두가 엄마처럼 함께 돌보고 만세시위 나선 기생들에겐 일 경찰도 “화류계 여자 아닌 투사” 순사의 장도에 왼팔 잃은 여학생은 피묻은 태극기로 “만세”를 외쳤다. 쏟아진 격문과 지하신문엔 학생들이 제작·배포에 몸바쳤고 농민은 장날 큰 물결을 이끌었다 총독 경고를 사람들에게 읽어주던 동네이장은 분노해 만세를 주도했다 ◇ “이 땅의 모든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내 정치경력은 3·1운동으로 시작되었다. 대중운동의 힘이 내 존재를 뿌리부터 뒤흔들어 놓았다.” 미국인 기자 님 웨일스를 통해 세상에 털어놓은 회고담 <아리랑>에서 혁명가 김산은 밝혔다. 정확히 오늘로부터 100년 전 조선에서 벌어진 기미년 3월1일의 싸움이 당대 청년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집약적으로 드러내어 주는 말이다. 한겨레가 뽑은 민중대표 48인. ○··· 그날, 식민지 백성들은 새로운 근대주체로 다시 태어났다. 글을 배운 학생들은 격문을 쏟아냈고, 글을 못 배운 이들은 다른 이에게 물어서라도 ‘민족자결주의’가 무엇인지 알아냈다. 땅을 빼앗긴 농부들은 분노했고, 착취당한 노동자들은 파업했으며 상인들은 상점문을 걸어 잠갔다. 가부장제 아래 가장 약한 존재였던 여학생과 기생들이 남자보다 앞장서서 용기를 냈다. 얼굴 없던 이들이 얼굴을 드러냈고, 말 없던 이들이 말을 쏟아냈다. 수직적으로 짓누르는 식민지 권력에 맞서 조선의 2백만 민중은 수평적으로 연대하며 운동을 발전시켜 갔다. 3·1운동의 흐름 안에서 본격화된 학생운동, 여성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 사회운동은 이후 100년 동안 대한민국을 진보시킨 원동력이 됐다.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는 33인이지만 계획에 가담한 이들까지 확대하여 민족대표 48인이라고 통칭한다. <한겨레>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1919년 사회지도층이 아님에도 만세시위를 주도했던 이들을 톺아 ‘민중대표 48인’을 선정했다. 자유와 평화를 희구했던 평범한 영웅들의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재판기록 등 3·1운동에 참여했음을 확인할 공식 기록이 있는 이들 가운데 사진이 남아있는 이들을 주요 대상으로 검토했다. 여기 소개된 48인의 민중대표는 그나마 얼굴과 이름이라도 알릴 수 있던 이들이다. 기미년 3월 조선 역사에는 이름도 얼굴도 없이 잊힌 독립운동가들이 수백만이었다. ○··· 만삭의 운동가, 기생, 여학생까지…전면에 나선 ‘여자들’ (...) 기사 더보기 ☞ 원본글: 한겨레| Click ○←닷컴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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