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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비어]十八子爲王,도는 木子得國

淸潭 2016. 1. 21. 10:37


십팔자위왕(十八子爲王)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발음을 잘해야 합니다. 두자 세자로 끊어 읽으면 매우 곤란한 발음이 됩니다. 굳이 띄어서 읽으려면 십팔자 위왕이 바람직하겠습니다.

여하튼 십팔자위왕에서 십팔자(十八子)를 합치면 오얏나무 이(李) 자가 됩니다. 즉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왕이 된다는 뜻이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목자득국(木子得國)이란 단어도 나타납니다. 십팔자를 좀 더 간소화 시킨 걸로 사실상 같은 의미지요. 왕이 되던 나라를 얻던...


이 십팔자위왕은 고려 때 유행한 도참설인데, 이 소문이 처음 기록에 나타나는 것은 이자겸이란 인물이 있던 때입니다.

이자겸은 한국사에서 손꼽히는 권신입니다. 예종이 죽은 뒤 어린 인종을 자신의 힘으로 즉위시키고 본인의 셋째 딸과 넷째 딸을 왕비로 보내지요. 재밌는 건 인종의 어머니인 문경태후가 이자겸의 둘째 딸이란 겁니다. 그러니까 인종은 이모(!)를 아내로 맞이한 것이지요. 역사에 길이 남을 개족보의 탄생.

왕을 위협할만한 권세를 지닌 이자겸은 여기에 멈추지 않고 엉뚱한 야심을 품게 됩니다. 허수아비에 불과한 임금 대신 자신이 직접 왕좌에 오를 생각을 한 것이지요. 이때 이자겸은 십팔자위왕의 소문을 거론하며 왕이 될 만한 이 씨는 자신뿐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이자겸의 꿈은 실현되지 못합니다. 측근이자 사돈인 척준경이 뒷통수를 때리고 인종 측에 붙어버렸거든요. 척준경에게 붙잡힌 이자겸은 영광으로 귀양을 간 뒤 평생 돌아오지 못했지요.

공교롭게도 이자겸의 작호는 원래 한양공(漢陽公)이었는데, 본인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이걸 조선국공(朝鮮國公)으로 바꿔버립니다. 오호라 조선이라...


세월이 지나 무신들이 고려의 정치를 좌우하는 무신정권 시절, 이의민이란 사람이 권력의 정점에 올라섭니다. 그는 원래 천민 출신이었으나 힘이 장사였고, 그 용력을 눈여겨본 관리에 의해 벼슬에 올랐지요. 무신정변 당시 이의민이 가장 많은 문신을 죽였다고 합니다. 거기다 <고려사>의 기록에 따르면 왕(의종)을 시해할 때 척추를 접었다 폈다하면서 크게 웃었다고 하지요.

이런 이의민이 어찌어찌하다가 권력의 정점에 오릅니다. 그런데 이의민도 단순히 권세를 누리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본인이 직접 왕이 되려고 합니다. 이자겸이 한 것과 비슷하게 십팔자위왕 소문을 퍼뜨리고, 본인 집에 사당을 차려 두두리(경주 지방의 토속신)란 귀신을 밤낮으로 섬겼다고 하지요. 이의민이 경주 출신이거든요.

그러나 이의민도 왕에 오르지는 못합니다. 경주와 울산에서 신라 부흥을 기치로 내건 김사미·효심의 난이 일어났는데, 이의민은 몰래 반란을 지원하다가 최충헌한테 꼬리가 잡혀서 척살당하지요.

<고려사>에 따르면 이의민이 죽기 얼마 전 그가 믿던 신인 두두리가 “내가 너의 집을 지켜준 지가 오래되었는데 이제 하늘에서 재앙을 내리려고 하니 내가 의탁할 곳이 없어 통곡하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의민의 운명은 정말 두두리의 말처럼 되었지요.


이자겸과 이의민, 십팔자위왕을 믿고 퍼뜨리던 두 인물이 모두 비참하게 몰락했습니다.
그리고 200년 뒤, 원나라의 간섭, 왜구의 침입 등으로 고려는 대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십팔자위왕에 대한 소문은 아이들이 동요로 만들어서 부를 정도로 널리 퍼졌지요.

이런 상황에서 이씨 성을 가진 무장 하나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왕위에 오릅니다. 바로 이성계입니다. 새 나라의 수도는 한양, 국호는 조선이었습니다. 십팔자위왕이 소문이 맞아떨어진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성계는 십팔자위왕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실록에는 주변인들이 이성계에게 십팔자위왕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는 일이 몇 차례 나타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에 대해 이성계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는 기록되어있지 않지요.

다만 무패의 맹장으로 확고한 자신감에 차 있었던 이성계의 성격을 고려해본다면 십팔자위왕 같은 도참설에 딱히 신경 쓰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한낱 참언 따위에 휘둘리는 걸 못마땅하게 보지 않았을까요? 애초에 역성혁명과 같은 대사건은 예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시대의 상황과 사람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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