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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談] '다랩이'

淸潭 2015. 11. 17. 11:12

지금껏 왜 돈을 돈이라 하는 줄 몰랐네

 

 

옛날에 어느 부자 구두쇠가 돈을 벌 줄은 알고 쓸 줄은 몰랐던가 봅니다. 세상에 돈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구두쇠이자 노랭이요 다랩이라 일컫는 이들은 돈을 끌어 모으기만 했지 절대로 쓰는 법이 없으니 돈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른 말은 아니랍니다. '다랩이'는 돈을 마땅히 써야 할 일에도 돈을 쓰지 않고 발발 떨며 아끼는 까닭에 사람들로부터 더럽게 보이는 이를 가리켜 일컫는 말입니다. 돈 쓰는 데 더럽고 조잡하게 구는 사람이 곧 '다랩이'지요.

 

이 부자는 천하에 내노라 하는 구두쇠인지라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절대로 내놓는 법이 없습니다. 당시에는 엽전을 화폐로 사용하였으므로 돈이 들어오는 대로 하나씩 차곡차곡 노끈에다가 꿰어서 장농 밑바닥에 계속 쌓아놓기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돈을 꿰어놓은 엽전꾸러미가 마치 구렁이들이 또아리를 틀고 엉켜 있듯이 농바닥을 그득히 채우고 있었습니다. 돈은 돌고 돌아야 하는 법인데, 장롱 구석에 쳐박아놓기만 하였으므로, 드디어 돈 꾸러미에 사기(邪氣)가 일어나서 야단들입니다. 돈 귀신이 발동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침 그 때는 구두쇠 아들을 장가보내려고 날을 잡아놓은 때입니다. 며칠만 지내면 부잣집 도령을 장가들이게 됩니다.

 

이 부잣집에는 머슴살이를 하며 하인 노릇을 하고 있는 심성좋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 머슴이 사랑방 부엌에서 말죽을 끓이고 있는데, 사랑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물론 사랑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구두쇠 쥔어른도 출타중인데, 방 안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머슴은 장작불을 지펴놓고 방문 가까이 귀를 대고 숨을 죽이며 이야기를 엿들었습니다. 장롱 속의 이야기 귀신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말들을 합니다.

 

"아이구 이 엽전 친구들아 내 말 좀 들어봐라. 우리가 세상을 돌고 돌아야 돈 행세를 하며 살아가는데, 이 어두운 장롱 구석에서 노끈에 꿰매인 채 옴짝달싹도 못하고 지내니 이게 어디 산 목숨인가 죽은 목숨이지!"

"그래 친구 말이 옳다. 무슨 구체(대책)를 세워야지 이래가주고서는 못살겠다."

"암, 그렇지! 우리가 자유롭게 살아서 세상을 마음껏 돌아다니려면 우선 이 부잣집 집구석이 망해야 된다구. 이 집이 망하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이 컴컴한 장롱 속에 갇힌 채 오랏줄에 목을 묶어놓고 지내지 않아도 되겠지."

"그래 맞아! 그럼 모두 내 말을 잘 들어 뒀다가 내가 시키는대로 해. 그러면 우리 주인집을 망하게 할 수 있어."

"어떻게 하면 되는데?"

"아무날 이 집 도령이 장가를 간다는데, 10전짜리 엽전아, 널랑 길 가에 시퍼런 샘물이 되고, 한 냥짜리 엽전아 너는 풀숲에 딸기가 되고, 나는 댓돌 밑에 송곳이 되어 있다가 저마다 기회를 엿보다가 도령을 죽이도록 하자."

"그 좋은 생각이다. 우리 그렇게 하기로 하자."

 

머슴이 돈 귀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기가 찰 일입니다. 죄없는 주인댁 도련님이 애꿎은 죽음을 당할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가난한 이웃에게 쌀 한 줌 나누어 주는 일이 없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돈 한 푼 적선하는 법이 없는 주인의 지나친 욕심 탓에 빚어진 불상사라는 사실을 머슴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욕심많은 주인 영감에게는 이러한 돈 귀신의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터무니없는 욕심에 사로잡혀 돈의 이치는 물론 세상살이의 이치를 모르는 까닭입니다. 머슴은 가난하지만 착한 사람이었으므로 돈 귀신의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고 또한 어떻게 써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터입니다.

 

구두쇠 주인은 밉지만 죄없는 도련님은 살려내야 합니다. 세상에 장가 가는 날 죽다니 말도 되지 않는 일입니다. 머슴은 내심으로 돈 귀신의 소리를 듣고서 장가 드는 날 자신이 신랑의 말을 모는 경마잡이가 될 각오를 하였습니다. 경마잡이는 곧 말몰이꾼이자 마부이지요. 그래야 돈 귀신의 공격으로부터 어린 신랑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까닭입니다. 마침내 혼례날이 닥쳤습니다. 이미 마부는 다른 종으로 결정이 되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이 머슴은 기어코 자기가 경마잡이 노릇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워낙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좋은 날 언성을 높일 수 없어서 이 머슴을 마부로 삼아 신행길을 떠나기로 하였습니다. 드디어 어린 도련님을 말에 태운 신랑 행차가 신부 집을 향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때는 여름이었습니다. 날은 덮고 길은 멀었습니다. 어린 신랑은 목이 마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갈증이 나서 간절히 물이 먹고 싶었습니다. 그 때 마침 길가에 맑은 샘물이 퐁퐁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여봐라, 목이 마르다. 저기 샘물을 좀 마시고 가도록 하자."

"아이고, 도련님 안됩니다. 잔치 집에 가면 시원한 단술이 기다립니다."

 

머슴은 채찍으로 말의 엉떵짝을 힘껏 내려쳤습니다. 무사히 샘물을 지나칠 수 있었습니다. 도련님이 저 샘물을 마시는 날에는 영락없이 돈 귀신의 손에 죽고 맙니다. 얼마 가지 않아서 길가에 느닷없이 딸기나무가 나타났습니다. 검붉은 딸기가 무르익어서 군침을 돌게 하였습니다. 이를 본 어린 신랑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여봐라! 저기 딸기가 먹음직스러우니 얼른 따 오너라. 목이 말라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구나."

"도련님 조금만 참으십시오. 잔치 집에 가면 사과 배 곶감 대추 등 온갖 맛난 과일들이 엄청 많습니다."

 

머슴은 다시 채찍으로 말을 후려치고는 말고삐를 바투잡아 끌었습니다. 도령은 대단히 화가 났지만 신행길이라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하는 수없이 갈증을 참고 무사히 신부 집에 도착해서 혼례를 치루었습니다. 이제 혼례를 마친 신랑이 신방으로 들어갈 차례입니다. 어린 신랑이 신방에 들어서기 위하여 댓돌을 밟으려는 순간

"도련님 비키세요!"

하는 고함과 함께 머슴은 온 몸을 던져 신랑을 넘어뜨리고 댓돌 밑에 숨어 있는 송곳을 찾아내었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어린 신랑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났습니다. 혼례날 신방 앞에서 종놈에게 망신을 당하고 보니 처가 식구들 보기에도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진 신랑은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당장 혼줄을 내줄 작정입니다. 사흘만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 신랑은 먼저 머슴부터 뜰앞에 꿇어엎드리게 하고는 전후 사정을 자기 아버지께 모두 일러 바쳤습니다. 구두쇠 주인은 머슴의 심성이 착하고 평소에 아들의 말도 고분고분 잘 듣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터라, 아들의 말을 의심하였지만 다른 일행이 다 사실이라 하는 통에 머슴을 그냥 둘 수 없다고 생각하고 문초를 시작하였습니다.

"네 이놈! 그런 짓을 한게 틀림없으렸다."

"예, 그저 쥑여 주옵소서."

"그래? 니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런 죽을 짓을 했느뇨?"

"사실 소생이 아무날 아무시에 말죽을 끓이다가 장롱 속에서 돈 귀신이 하는 말을 듣고 어린 도련님을 살리기 위해 그런 짓을 했을 따름입니다. 주인어른께서 돈을 써야 할 데 쓰지 않고 계속해서 모으기만 한 탓에 돈에 사기가 일어서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

"뭣이라고? 그런 엉터리 같은 말로 누구를 속이려 드느냐?"

"속이려는게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앞으로도 돈을 쓰지 않으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습니다. "

"이놈이 거짓말로 우리집 살림을 마구 거덜낼 작정이구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불쌍한 사람한테 적선을 하고 돈을 고루 나누어 준다면 집안이 태평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돈 귀신이 그런 짓을 꾸몄다는 것을 확실히 믿게 할 만한 증거라도 있느냐?"

"예 우선 갈 때 있었던 샘물과 딸기나무가 올 때는 없었을 뿐 아니라, 신부 집 댓돌 밑에서 찾아낸 송곳도 그 집에서는 처음 보는 송곳이라 합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확인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제서야 도령과 신행길에 동행했던 사람들이 돌아오는 길에는 샘물과 딸기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놀라면서 말했고, 신행길에 따라온 신부 집 하인들도 그런 송곳은 일찍이 자기 집에서 본 적이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머슴의 행동에 대하여 가장 분해하던 어린 도련님이 버선발로 쫓아 나와서 머슴의 손을 덮석 잡으며,

"아버지의 욕심 때문에 죽을 뻔한 내 목숨을 자네가 살려 주었네!"

하며 평생 이 은공을 잊지 않겠다고 언약을 하였습니다.

"그래 자네 말이 맞네. 내가 지금껏 수 천 냥의 돈을 모았지만 왜 돈이 돈인지, 그리고 또 왜 돈을 돈이라 하는 줄 정말 몰랐네. 이제 자네 덕에 돈의 말뜻과 돈의 이치를 옳게 깨쳤네. 참으로 고마우이 이 사람아!"

 

구두쇠 영감도 그 길로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장롱 속에 깊숙히 넣어두었던 돈꾸러미를 내어다가 가난한 이웃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고 착한 머슴에게는 자기 논밭의 반을 뚝 떼어서 한 살림을 차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구두쇠 부자는 인심좋은 부자로 바뀌었고 부자가 죽은 뒤에도 머슴과 도령은 이웃에서 서로 사이좋게 잘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돈은 정말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계속해서 두루 돌아다녀야 돈인가 봅니다. 사실 돈이 돈으로서 본디 가치를 온전히 발휘할 때에는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있을 때가 아니라 이를 끄집어내어 쓸 때입니다. 돈을 벌어들이는 것 못지 않게 돈을 잘 쓰는 일이 중요한 까닭입니다. 돈을 쓰지 않는 한 결코 돈은 제 구실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돈을 열심히 벌여들이고 돈을 절약하는 까닭도 결국은 돈을 바람직하게 쓰기 위해서가 아닐까요.(94. 1. 11., 사보 {현대정공} 2월호)

 

출처: http://limjh.ando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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