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설화의 하나. 신라에 불교가 처음 전해 올 때 아도 또는 아두라는 중이 왕녀의 병을 고친 다음, 불법을 일으켰다는 내용이다. 박인량의 수이전에 실려 있다고 하나, 설화의 앞뒤가 없어지고 현재 각훈의 '해동고승전'에 중간 부분이 실려 전한다. (출처 : 한국사전연구사간. 국어국문학자료사전)
아도
생몰년 미상. 고구려의 승려. 아도(我道)·아두(阿頭)라고도 한다. ≪삼국유사≫의 〈아도본비 我道本碑〉에 의하면, 고구려인인 어머니 고도령(高道寧)과 정시연중(正始年中, 240∼248)에 고구려에 사신으로 왔던 조위인(曺魏人) 아굴마(我堀摩) 사이에서 태어났다.
5세가 되었을 때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출가하여 16세에 위나라로 가서 아굴마를 만나 보고, 현창화상(玄彰和尙)의 강석(講席)에서 공부한 뒤 19세에 귀국하였다.
이때 어머니가 신라로 갈 것을 권하면서, “이 나라는 지금까지 불법을 모르고 있으나 이후 3,000여 월이 되면 계림(鷄林)에 성왕이 나와서 크게 불교를 일으킬 것이다. 그 나라 서울 안에 7개소의 가람터가 있으니, 1은 금교(金橋) 동쪽 천경림(天鏡林), 2는 삼천기(三川咎), 3은 용궁(龍宮) 남쪽, 4는 용궁 북쪽, 5는 사천 끝, 6은 신유림(神遊林), 7은 서청전이니 모두 전불(前佛:석가모니 출현 이전의 과거불) 때의 가람터요 불법이 길이 유행하던 땅이다. 네가 그곳으로 가서 대교 (大敎)를 전파하면 석사(釋祀)가 동으로 향하리라.”라고 하였다.
아도는 263년(미추왕 2)에 신라로 가서 왕성의 서리(西里)에 머물렀다. 아도가 대궐에 들어가서 불교를 행하기를 청하였으나 전에 보지 못하던 것이라 하여 꺼려하였고, 심지어는 죽이려는 사람까지 있었다. 이에 일선현(一善縣) 모례(毛禮)의 집에 숨어 살았다.
264년에 성국공주(成國公主)가 병이 들어 무당과 의원이 치료를 하였으나 효험이 없자 사방으로 사람을 보내 의사를 구하였다. 아도가 대궐로 들어가 병을 치료하여 나았으므로 왕이 대단히 기뻐하며 그의 소원을 물었다.
그가 천경림에 절을 세워 불교를 크게 일으켜 방가(邦家:나라)의 복을 비는 것이 소원이라 하였으므로, 왕이 허락하였다. 띠로 집을 덮고 흥륜사(興輪寺)를 창건한 뒤 그곳에서 불법을 강연하였으며, 모례의 누이인 사씨(史氏)도 이때 여승이 되어 삼천기에 절을 짓고 영흥사(永興寺)라 하였다.
얼마 뒤 미추왕이 세상을 떠나자 사람들이 다시 그를 해하려 하였으므로, 다시 모례의 집으로 돌아와 스스로 무덤을 만든 다음 문을 닫고 들어가서 자절(自絶)하여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삼국유사≫의 다른 기록과 ≪삼국사기≫에는 아도가 신라 소지왕 때 시자 3인을 데리고 일선군 모례의 집에 와서 있다가 몇 년 뒤 병 없이 죽었고, 그의 시자 3인이 경률(經律)을 강독하여 가끔 믿는 이가 있었다고 하였다.
이 밖에 아도에 대해서는 여러 책에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데, ≪해동고승전 海東高僧傳≫에는 서축(西竺) 사람이라고도 하고, 오나라에서 온 사람이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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