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차기주지 두고 내홍 향적 스님 추천 소문 돌자 여연·원학 스님 강하게 반발 여연 스님 방장실에 내용증명 “철회 안하면 고발할 것”협박 “세속보다 더 추한 꼴” 비판
해인총림 해인사가 차기 주지 선출을 앞두고 깊은 수렁에 빠지고 있다. 특히 차기 주지에 대한 집착으로 도를 넘은 일부 스님이 방장 스님에게 협박성 글까지 전달하는 등 승가의 위계질서가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원각 스님의 방장 추대로 안정 국면을 되찾던 해인사가 또 다시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당초 해인사 안팎에서는 차기 주지후보로 원학‧여연‧향적 스님이 거론됐다. 이 스님들은 지난 3월 원각 스님을 해인총림 제9대 방장으로 추대되는 과정에서 남다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방장 추대 이후 이 스님들은 어느 누구도 선뜻 양보할 뜻을 보이지 않아 주지후보를 추천하는 데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됐다. 결국 방장 원각 스님은 대중공의를 통해 차기 주지후보를 추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로 인해 지난 6월24일 원각 스님 방장추대위원회가 재소집 돼 차기 주지 후보 추천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추대위원회는 해인사 6개 문중의 대표들로 구성됐다.
추대위원회 스님들은 이날 장시간 논의를 진행했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추대위원회는 “차기 주지 추천은 방장 스님의 고유권한”이라며 방장 원각 스님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기로 결의했다. 특히 추대위원회는 방장 스님이 어떤 후보를 추천하더라도 이의를 달지 않기로 한다는 뜻도 모았다. 이에 따라 차기주지 후보 추천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방장 원각 스님이 6월25일 차기 주지후보로 향적 스님을 추천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여연‧원학 스님이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여연 스님은 6월26일 방장 사서실장 능혜 스님 앞으로 내용 증명을 발송, “6월28일 오후 5시까지 향적 스님의 추천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방장추대 과정에서 발생한 범계행위에 대해 호법부에 고발하겠다”고 경고했다. 스님은 또 “방장추대 과정에서 원각 스님 캠프에서 돈을 살포한 정황들을 모두 공개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여연 스님은 “방장 스님이 이런 식으로 차기 주지후보를 추천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며 “해인사정상화추진위를 구성해 7년간 해인사를 위해 노력해 왔는데 나를 이런 식으로 홀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스님은 또 ‘방장 스님을 호법부에 고발하겠다는 것은 지나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이미 주지에 대한 미련도 버렸다. 문중에서 어떤 결정을 해도 내 방식대로 계속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여연 스님이 발송한 내용증명에는 원학 스님의 이름이 함께 등재됐다. 이에 대해 여연 스님은 “원학 스님도 나와 뜻을 같이한다. 오늘 점심을 먹고 함께 문건을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원학 스님은 “그 문건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원학 스님은 “향적 스님과 관련해 그런 범계 사실이 있다는 내용을 여연 스님으로부터 들었을 뿐, 문건은 본 적도 없다”며 “내 이름을 올리라고 동의한 사실도 없다”고 반박했다. 다만 원학 스님은 “방장 스님이 향적 스님을 차기 주지후보로 추천하는 것에는 나도 동의하지 않는다”며 “향적 스님을 추천한 사실이 공식 확인되면 그 때가서 분명한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주지후보 추천을 두고 여연‧원학 스님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해인사 안팎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자신들이 추대한 방장 스님을 호법부에 고발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점은 승가의 도덕성은 물론 기본적인 위계마저 훼손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해인총림 한 스님은 “총림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을 보면서 자괴감을 감출 수 없다”며 “한 때 한국불교의 상징이었던 해인총림 내부에서 세속보다 더 세속적인 추태가 벌어져 고개를 들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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