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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묻으신 타임캡슐… 이젠 누가 여나요

淸潭 2014. 6. 10. 10:26


☞ 선생님이 묻으신 타임캡슐… 이젠 누가 여나요


교실 칠판 앞에서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웃고 있는 유 교사. /제자 제공

9일 오후 단원고 학생들이 고대안산병원에 마련된 고(故) 유니나 교사의 빈소를 찾아 영정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한 학생이 유 교사의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끌어안자 어머니가 학생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김지호 기자

left> ★... 단원고생 19명 구하고 희생된 故 유니나 교사 빈소 차려져

빈소 찾은 대학생 제자들 "우리 꿈 담긴 타임캡슐, 10년 뒤 함께 열자고 했는데…"

교실 칠판 앞에서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웃고 있는 유 교사 사진

교실 칠판 앞에서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웃고 있는 유 교사. /제자 제공

안산 단원고 고(故) 유니나(28) 교사의 빈소에 가장 먼저 달려온 건 대학생이 된 첫 제자들이었다.

9일 오전 이다빈(19)씨가 고대안산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그의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대학교 1학년인 이씨는 유 교사가 2012년 첫 2학년 담임을 맡아 가르쳤던 학생이었다. 장례식장 직원은 "진도에서 출발이 늦어져 아직 빈소가 차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첫 제자니까 인사도 가장 먼저 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봄 교정에 벚꽃이 피면 '니나쌤'은 우리를 다 밖으로 데리고 나가 사진을 찍었다"며 "선생님은 내게 언니 같은 분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유 교사는 세월호 5층 객실에 있었다. 그는 아래층에 머물던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계단을 내려갔다. 생존 학생들은 "선생님이 4층에서 아이들을 대피시키다가 '아래층에 다친 학생이 있어요'라는 말을 듣고 3층으로 다시 내려갔다"고 증언했다.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그의 시신은 3층 식당 의자 밑에서 발견됐다. 단원고 생존 학생 75명 중 그가 담임을 맡은 2학년 1반 학생이 19명으로 가장 많았다.

유 교사의 시신이 헬기에 실려 안산으로 오는 사이 대학생 제자가 15명이나 모였다. 대학마다 기말고사 기간이지만 다들 한걸음에 달려왔다고 했다. 제자들은 "10년 뒤 만나서 타임캡슐을 열어보자고 선생님과 약속했었다"고 말했다. 두 해 전 연말 단원고 2학년 6반 아이들은 담임 유 교사의 제안에 따라 각자 소망을 적었다. 저마다 10년 뒤의 모습, 결혼할 이상형과 2세 계획 그리고 자신에게 쓰는 편지를 썼다. 구현아(18)씨는 "그걸 선생님이 타임캡슐에 담아 땅에 묻어두기로 했는데 이제 아무도 그걸 열어볼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유 교사의 일본어 수업은 "하나의 체험장 같았다"고 제자들은 기억했다. '낫토' 같은 일본 음식을 맛보여주고, 일본인 친구와 나눈 영상 메시지를 틀어줬다. 생일을 맞은 학생에겐 생일케이크를 선물하며 일본어로 생일 축하 노래를 들려줬다. 유 교사의 오빠 건우(30)씨는 "안산에서 같이 살면서 퇴근해 집에 와보면 수업 준비하고 있고, 자고 일어나도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유 교사의 시신은 오전 11시 30분이 돼서야 장례식장에 안치됐다. 아버지 유진수(58)씨는 "딸이 제자들을 보고 싶어 할 것 같아 단원고 학생들이 빈소를 찾기 쉽도록 고향 진주 대신 안산으로 왔다"고 말했다. 대학생 제자들이 영정 앞에 첫 헌화를 했다. 오후 3시쯤 고(故) 최덕하군의 어머니가 다른 희생 학생 학부모 3명과 함께 장례식장을 찾았다. 최군은 세월호의 위기를 밖으로 알린 최초 신고자였다. 최군의 어머니는 "힘내세요! 유니나 선생님 정말 좋으신 분이라 학생들이 다 좋아했어요"라며 유 교사의 부모를 위로했다.

오후 4시 반 장례식장 전체가 수업을 마친 단원고 학생들로 가득 찼다. 수업을 마치고 달려온 학생 200여명이었다. 꾸불꾸불 겹겹이 줄을 선 학생들은 오후 6시까지 1시간 반 동안 차례차례 조문했다. 학생들 상당수는 지난해 유 교사에게 일본어를 배웠던 3학년들이었다. 유 교사의 부모는 학생들의 손을 일일이 맞잡으며 "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유 교사가 담임이었던 2학년 1반 생존 학생 5명도 찾아왔다. "많이 힘들었지?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 스승의 부모가 건네는 따뜻한 격려에 다섯 학생이 왈칵 눈물을 쏟았다.

학생들이 다녀간 제단엔 부치지 못한 편지가 수북이 쌓였다. 편지마다 선생님에 대한 선명한 기억들이 새겨져 있었다. '선생님은 봄 같은 분이세요. 봄처럼 항상 따뜻하셨고 생기가 넘치셨어요. 저희가 함께했던 1년이 봄처럼 짧게 느껴지기도 해요. 매년 봄이 오면 선생님 생각이 더 많이 날 것 같아요' '선생님의 아픈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어쩌면 아프신데도 저희를 위해 참고 버티신 걸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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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 19명 가장 많이 살리고 …
가장 늦게 나온 담임 '쌤'


세월호 사고 54일째인 8일 시신이 수습된 단원고 유니나(28) 교사(왼쪽). 친오빠 휴대전화로 보낸 사진이다. 오빠는 “어디서 찍은 것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사진 유니나 교사 가족, 단원고]

지난해 2학년 6반 담임이었던 유 교사의 마지막 수업 모습. 학생들이 케이크와 머리에 쓸 왕관을 마련했고 칠판에는 ‘선생님 ♡해요. 감사합니다’라고 적어놓았다. [사진 유니나 교사 가족, 단원고]

★... 2학년 1반 유니나 교사, 구명조끼 안 입은 채 발견

5층 객실서 탈출 안 하고 학생 구하러 3층 내려가

8일 낮 12시20분 전남 진도 팽목항. 시신 신원확인소에서 경기도 안산 단원고 유니나(28) 교사의 오빠(31)가 나왔다. 그러곤 가족들에게 말했다. “남자 친구와 함께 맞춘 커플 링을 끼고 있네요.” 순간 유 교사의 어머니(54)는 “아이고, 우리 딸…”이라며 무너졌다. 이렇게라도 만났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아버지(58)도 눈물을 흘렸지만 평안한 표정이었다.

단원고 2학년 1반 담임으로 일본어를 가르치는 유 교사의 시신은 이날 오전 10시30분쯤 세월호 3층 식당에서 발견됐다. 가족과 학생들에 따르면 그는 세월호가 가라앉기 시작할 때 탈출할 수 있는 5층 객실에 있었다. 배가 기울자 4층 객실로 내려가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고 탈출하라”고 소리쳤다. 그때 누군가 “3층에도 학생들이 있다”고 외쳤고 유 교사는 3층으로 향했다.

그게 학생들이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구조·수색팀이 발견했을 때 유 교사는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상태였다. 학생들을 대피시키기에 바빠 자신은 구명조끼조차 챙겨 입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유 교사의 노력 때문이었는지 그가 담임인 2학년 1반은 가장 많은 19명이 구조됐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은 사고 직후 휴대전화로 연락이라도 한 번씩 했던데 이놈은 그러지 않았다”며 “학생들 구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유 교사는 2011년 경상대를 졸업하고 바로 단원고에 부임했다. 경남 진주에 사는 부모와 떨어져 경기도에 살면서 수시로 부모를 찾았다.

 단원고에서는 때론 일본 스모 선수 가면을 쓰고, 또 어느 때는 일본 음식을 학생들과 함께 먹으면서 수업했다. 학생들이 학습에 흥미를 느끼도록 하려는 노력이었다. 세월호 사고가 난 뒤 단원고 학생들은 그가 담임이었던 2학년 1반 교실 창에 “친구 같았던 선생님, 제발 다시 맛있는 것 먹으러 가요” "쌤(선생님), 사랑하고 보고싶으니 빨리 돌아오세요” 등의 글을 붙여놓았다. 유 교사의 아버지는 “자원봉사자들, 사고대책본부 관계자들 모두 고맙다. 남은 실종자들이 하루빨리 가족들 품으로 돌아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11시20분쯤 세월호 4층 뱃머리 쪽에서 남성 시신 1구가 추가 수습됐다. 이에 따라 희생자는 292명, 실종자는 12명이 됐다.

 ◆21일부터 수중로봇 투입=세월호는 선체에 구멍을 뚫고 매트리스 같은 각종 장애물을 들어올린 상태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일단 20일까지 잠수사들이 더 확인할 수 있게 된 선체 내부를 수색한 뒤 다음날부터 40㎝ 크기의 수중로봇을 함께 투입하기로 했다. 잠수사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을 수색하려는 것이다.

 한편 지난 7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는 조요셉(7)군 가족 합동빈소가 마련됐다. 세월호에 타고 있던 조군의 어머니 지모(44)씨와 형(11)의 시신은 침몰 일주일이 채 안 돼 수습됐고, 아버지(44)는 지난 5일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에서 40.7㎞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장례식장에서 조군은 헐렁한 상복을 입고 흰 뿔테 안경을 쓴 채 틈만 나면 뛰어다녔다. 가족들의 죽음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외삼촌 지모(47)씨는 “고민 끝에 요셉이를 장례식장에 데려왔지만 가족의 죽음을 이해시키는 건 숙제”라고 말했다.

진도=김윤호 기자, 구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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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