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漢詩

李鈺(이옥)의 俚諺(이언)

淸潭 2011. 3. 30. 18:00

아조(雅調)의 단아함

 

 

<1>

郎執木雕雁 서방님은 나무 기러기 잡으시고,

妾捧合乾雉 첩은 말린 꿩을 받들었지요.

雉鳴雁高飛 그 꿩이 울고 기러기 높이 날도록,

兩情猶未已 서방님과 저의 정은 그치지 않을 테지요.

 

 

 

「아조(雅調)」의 첫 번째 작품이자 곧 『俚諺』의 첫 번째 한시이다. 「아조(雅調)」에 해당하는 작품들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여인의 수줍고 단아한 형상이 잘 드러나는 시가 중심이 되고 있으며, 한 쌍의 남녀가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첫발을 내딛는 순간과 서로 인연을 맺은 후, 신혼 때의 마음가짐을 형상화하고 있다. 위의 시는 신랑, 신부의 혼례식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아조(雅調)」의 작품들을 오늘날의 상황에 비유한다면, 두 남녀가 결혼한 후 신혼 초기에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쌓아가는 과정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대상으로 미루어볼 때, 아마도 혼례 이전에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형편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낭군이 한평생 애정 어린 어진 배필이길 바라는 신부의 수줍은 마음에서 조심스럽지만 소망에 담뿍 물들어 있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2>

一結靑絲髮 하나로 결합하였으니 검은 머리가,

相期到葱根 파뿌리 될 때 까지 함께 하기로 약속했지요.

無羞猶有羞 부끄럼 없는데도 오히려 부끄럽기만 하여,

三月不共言 서방님과는 석 달 동안이나 서로 말도 못했지요.

 

 

 

작품 <2>에는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 하고 싶다는 다짐과 함께 낯선 공간, 낯선 생활환경 속에서 남편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도 마냥 어색하고 부끄러운 신혼의 수줍은 마음이 드러나 있다. 요즘에야 연애결혼이 보편화되어 있지만 남녀의 구별이 엄격하던 조선 시대에 몸 둘 바 모르는 새색시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요즘에도 흔히 쓰이는 말인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 하고 싶다’는 일상적인 표현을 한문으로 옮겨 놓은 것이 눈에 띈다.

 

 

 

<3>

四更起掃頭 4경에 일어나 머리 빗고

五更候公姥 5경에 시부모님께 문안드리지요.

誓將歸家後 맹세한답니다, 장차 집에 돌아간 뒤에는

不食眠日午 먹지도 않고 한 낮까지 잠만 잘 터예요.

 

 

 

4경이면 새벽 1시에서 3시 사이니 지금으로 치면 깜깜한 새벽이지만 우리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잠들던 조선 시대엔 여인들의 하루 일과가 이 시간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적어도 새벽 3시경에는 일어나서 집안일을 시작해야 했다. 세수하고 물을 길어 아침밥을 준비하고, 그리고 새벽 4시쯤엔 시부모님께 문안 인사를 드려야 했으니 고달픈 삶이 아닐 수 없었다. ‘잠아 잠아 이 내 잠아~’로 시작되던 민요 <잠노래>가 연상되는 모습이었다. 친정에 돌아가면 밥도 안 먹고 잘 거라는 여인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꼭 투정부리는 것 같아 귀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4>

艸綠相思緞 초록의 상사비단으로

雙針作耳囊 한 쌍의 바늘로 귀주머니를 만들었죠.

親結三層蝶 몸소 세 겹의 나비를 맺어서

倩手奉阿郞 예쁜 손으로 신랑에게 드렸죠.

 

 

 

비단을 가지고 직접 남편을 위해 주머니를 만들어 나비 모양의 장식까지 붙여서 고운 손으로 남편에게 건네며 수줍어하는 새색시의 모습이 그려지는 노래이다.

 

 

 

<5>

包以日紋褓 햇살 무늬 보자기로 싸서

貯之皮竹箱 가죽이 대나무인 상자에 쌓아두었답니다.

手剪阿郞衣 손수 낭군님의 옷을 마름질하니

手香衣亦香 손의 향기가 옷에도 베어나겠지요.

 

 

 

<4>번 작품과 마찬가지로, 새색시의 수줍은 정성이 드러나고 있는 작품이다.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색시가 남편 옷을 손수 마름질하며 마음 한 켠으로 뿌듯하기도 하고 자랑스러운 맘이 들기도 할 터이다. 손의 향기가 옷에도 베어날 거라며 혼자 미소 짓는 아내의모습이 떠오른다.

 

 

<6>

人皆輕錦綉 사람들은 비단 수놓은 옷도 가벼이 생각하지만

儂重步兵衣 나는 막일할 때 입는 옷조차도 소중히 여긴답니다.

旱田農夫鋤 가문 밭에서는 농부가 호미질을 하고 있고

貧家織女機 가난한 집 여인네가 베를 짜고 있기 때문이지요.

 

 

 

남들은 비단 수놓은 옷조차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데, 화자는 막일을 할 때 입는 가벼운 옷조차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만큼 가난하고 소외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백성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참으로 마음씨 곱고 배려 깊은 새색시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또한 적어도 이 작품의 화자는 양반 사대부가의 여인, 적어도 부유한 중인 계층 이상의 여성이라는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몇 편의 작품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아조’에 속한 작품들은 혼례 이후 처음 맞이한 시집에서의 생활과 남편에 대한 설레임과 애정,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배려하는 얌전하고 마음씨 고운 여인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보편적으로 일컬어지는 조선시대 여인상에 어긋남이 없는 단아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어쩌면 인간의 자유로운 자기표현과는 거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당위적이고 도덕적인 모습에 가깝던 여인의 모습은 ‘염조(艶調)’에 이르러 변화된 양상을 보이게 된다.

 

 

 

3.2. 염조(艶調)의 세련성과 적극성

 

 

「아조(雅調)」에서 순종적이고 얌전하던 여인의 모습은 「염조(艶調)」에서 180° 변화한다. 오히려 아조(雅調)의 여성들보다 생생한 현실감을 느끼게 해주는 인물들이라고 생각된다. 염조(艶調)의 여인들은 세련되게 치장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시부모에게 대들기도 하며, 남편에게 질투를 드러내기도 한다. 한마디로 성격을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여성의 도시적 세련성과 적극성 정도로 요약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아조’에서 이상적으로 꿈꾸고 다짐했던 결혼생활의 모습이 ‘염조’에 이르러서는 이런 소망과는 어긋난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오늘날에도 통하는 명제인 ‘결혼은 현실이다’라는 주장을 시 속에 표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7>

莫種鬱陵桃 울릉도 복숭아는 심지를 마세요.

不及儂新粧 내가 새로 화장한 것에 미치지 못하니까요.

莫折渭城柳 위성의 버드나무일랑은 꺾지 마세요.

不及儂眉長 내 눈썹 길이에 미치지 못하니까요.

 

 

 

작품 <7>은 자신의 미모에 대단한 관심과 자부심을 지닌 부인을 형상화하고 있다. 당시 서울에서는 울릉도산 복숭아를 최상품으로 쳤다고 하는데 자신의 미모가 그 복숭아보다 더 낫고, 자신의 눈썹이 버들보다 더 예쁘다고 말함으로써 ‘울릉도의 복숭아’도 자신이 새롭게 화장한 것보다는 아름답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미모를 한껏 자랑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나'를 두고 다른 여자에게 한눈팔지 말라는 경고의 뜻도 은근히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아조’의 작품 중에 시어머니께 받은 반지를 시집온 지 얼마 안 되어 드러내고 끼고 다닐 수가 없어서 술 안에다 묶어두고 가끔 꺼내 보는 즐거움 정도로 만족하고 있던 여인의 모습과는 사뭇 대비된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당당하게 자랑하는 여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8>

歡言自家酒 당신은 술집으로부터 왔다고 말하지만

儂言自娼家 내가 보기엔 기생집으로부터 온 것이네요.

如何汗衫上 어찌하여 한삼 위에

臙脂染作花 연지가 물들어 꽃을 만들어 놓았나요?

 

 

 

외박한 남편의 와이셔츠를 검사하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 연상되는 모습이다. 술집에서 돌아오는 길이라고 말하는 남편의 한삼에서 여성의 붉은 연지를 발견한 아내가 기생집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냐며 따지는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아조’의 여인이라면 아무 말도 못하고 시냇가에서 괜히 애꿎은 빨래만 방망이로 내려쳤을지 모를 일이다. 그저 순종하는 여성과는 차별되는 적극적인 여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주위에서 얼마든지 접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공감과 함께 약간의 웃음마저 스며 나온다.

 

 

 

<9>

頭上何所有 머리에는 무엇을 꽂았나

蝶飛雙節釵 쌍절 비녀에 나비가 날아가네.

足下何所有 발에는 무엇을 신었나

花開金草鞋 비단신에 꽃 피고 금풀을 수 놓았네.

 

 

 

작품 <9>에서 그려진 여인의 모습 또한 지극히 현실적이고 세속적이다. 머리에는 나비가 날아가는 모양을 하고 있는 화려한 비녀를 꽂고, 신발은 꽃무늬와 금빛 풀 모양이 새겨진 화사한 가죽 신발을 신고서 자신의 화려함에 도취된 듯한 여인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아조’의 8번째 작품에서 집에도 명주실이 있지만 직접 누에고치를 키워서 명주실을 얻는 기쁨을 느껴보고자 하던 여인의 검소함과 절약의 형상과는 선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여염집 여인이면서도 저렇게 화려한 치장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전통적 여성상과는 상당히 대비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10>

蹔被阿娘罵 잠깐 시어머니 꾸지람 듣고는

三日不肯飱 삼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를 않았지요.

儂佩靑玒刀 내가 은장도를 차고 있는데

誰復愼儂言 누가 내게 뭐라고 할 수 있겠어요.

 

 

작품 <10>은 시어머니의 꾸지람을 듣고는, 그 울분을 참지 못하고 식사까지 거르면서 분을 삭이지 못하는 부인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게다가 자신이 품에 칼을 차고 있는데 누가 감히 자신을 더 꾸짖을 수 있겠느냐며 당돌하게 덤비고 있는 여성의 형상이 드러난다. ‘아조’의 여인은 시댁의 제삿날만 다가와도 붉은 치마는 입지 않을 정도로 조신한 몸가짐을 보였었는데, 이 여인은 대담하기 짝이 없다. 결국 한 번만 더 꾸중하면 은장도로 무슨 짓이라도 할 지 모른다는 은근한 협박마저 담고 있으니, 이 쯤 되면 무서워서라도 아내, 혹은 며느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지경일 것이다.

 

 

「염조(艶調)」에 실린 작품들은 처음의 얌전한 새색시는 간 데 없고,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여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 오히려 현대적인 여성들의 모습과 더욱 가까운 형상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염조’에는 값비싼 옷과 화려한 장신구로 치장하는 묘사가 많은데, 이런 부분에서 미(美)를 추구하는 여인의 세련된 몸가짐과 적극적이고 당당한 모습들이 잘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된다. 작품 속의 여성들이 어떤 신분 계층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엄격한 규범이 강요되던 양반가의 여성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고, 그 사치스러운 생활로 미루어 본다면 역관을 비롯한 중인 서리 등 새로이 부를 축적한 신흥 부호 계층이나 조선 후기 상업 발달의 과정에 성장한 부유한 상인 계층 정도로 생각된다.

 

‘염조’에 등장한 여인들은 그 성격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염의 여인이고, 가정 내에서 화려한 치장을 하고 남편과 시부모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아조(雅調)’와 ‘탕조(宕調)’의 중간적 위치에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3.3. 탕조(宕調)의 관능미와 농염함

 

 

이옥은 ‘탕조’에 대해, “탕(宕)은 그 흐트러짐이 금할 수 없는 지경임을 이른다. 여기에서 말하는 바는 모두 창기(娼妓)의 것이다. 사람의 도리가 이에 이르면 그 질탕함이 또한 제어할 수 없음이라, 이름하기를 ‘탕(宕)’이라 하니 또한 시경에는 정풍과 위풍이 있다”라고 설명을 덧붙이기도 하였다. ‘탕조’에는 총 15편의 작품이 있는데 해당하는 모든 작품들은 기녀(妓女)를 시적 화자로 설정하고 있다. ‘아조’나 ‘염조’에서 여염집의 여인이 시적화자였던 것과 대비된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러나 ‘탕조’에서 기녀(妓女)가 시적 화자로 등장하여 남성과 대화하고 자신을 표출하고는 있지만, 그 이면에는 남성의 아내가 늘 자리 잡고 있다고 보인다.

 

 

 

<11>

歡莫當儂髻 그대여 내 머리에 닿지 마세요.

衣沾冬栢油 옷에 동백기름이 묻는답니다.

歡莫近儂脣 그대여 내 입술을 가까이 하지 마세요.

紅脂軟欲流 붉은 연지 부드럽게 흘러들어 가니까요.

 

 

<11>번 작품은 한시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에로틱한 장면을 담고 있다. 한시의 규범으로 봐서는 상당히 관능적이고 파격적이라고 할 만한 은근한 유혹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염조’에서 옷에 연지를 묻히고 돌아온 남편에게 따지던 여인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겉으로 보아선 자신에게 다가오지 말라는 주의인 것 같지만 실상은 질탕하게 놀아보자는 아리따운 목소리가 은근히 귓가를 맴도는 것만 같다.

 

 

 

<12>

歡吸烟草來 서방님 담배 빨면서 오시는데

手持東萊竹 손에는 동래죽을 들었네.

未坐先奪藏 채 앉기도 전에 먼저 뺏어 감추며

儂愛銀壽福 나는 은수복을 사랑한답니다.

 

 

이 작품은 손님이 물고 온 담뱃대를 빼앗아 감추는 기생의 모습을 포착한 것이다. 손님이 앉기도 전에 값나가는 물건을 재빨리 챙기는 약삭빠른 모양과, 자신은 은수복을 사랑한다는 말로 둘러대는 잇속에 밝고 영악한 기생의 면모를 잘 그려내고 있다. 작가인 이옥이 실제로 가까이에서 접했던 상황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생생한 묘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기방문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13>

六鎭好月矣 함경도 머리 묶음 예쁘니

頭頭點朱砂 머리마다 주사를 찍었지요.

貢緞鴉靑色 검푸른 공단으로

新着加里麻 새로 가리마를 했네.

 

 

 

18세기 후반 기녀들의 최신 유행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당시 발달했던 기방 문화를 배경으로 기생들의 화려한 치장을 묘사하고 있다. ‘月矣’는 다리, 또는 다래라고 불리던 머리 장식으로 여자가 머리를 꾸밀 때 덧대어 얹는 머리카락 묶음이고 ‘朱砂’는 머리를 윤기나게 하기 위해 바르던 광택이 있는 붉은 광물이다. ‘加里麻’는 예장할 때 여자의 큰머리 앞뒤에 덮는 배접한 검은 헝겊 조각이다. ‘염조’의 여인보다 한층 더 화려한 치장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4>

聽儂靈山曲 내 영산곡 노래 듣고 나서

譏儂半巫堂 나를 반무당이라 놀려대니

座中諸令監 좌중에 여러 영감님 네는

豈皆是花郞 모두들 화랭이가 아닌가요

 

 

 

<15>

儂作社堂歌 나는 사당패 노래를 부르니

施主盡居士 시주님네 모두가 거사님이지.

唱到聲轉處 노래 가락 돌아가는 곳에서

那無我愛美 나무아미타불.

 

 

기생들은 좌중을 ‘화랭이’나 ‘거사’라 놀리고, 특히 손님들을 ‘시주님’이라고 부르면서 화대를 받아내기도 했다. <14>, <15> 두 작품 역시 위의 <12>번 작품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유흥적 기방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두 작품에서 눈 여겨 볼 것은 시어의 대부분이 우리말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영감(令監)’, ‘시주(施主)’, ‘거사(居士)’, ‘반무당(半巫堂)’, ‘화랑(花郞, 화랭이)’, ‘사당(社堂, 사당패)’ 등은 특정 부류의 계층과 집단을 지칭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용어이다. 기방의 단골인 하급 관료를 ‘영감’이라고 불렀고, 기생을 놀리고 화대를 내는 이들을 ‘시주’라 불렀다. 그리고 사당패와 놀아나는 파계승 부류를 지칭한 듯한 ‘거사’를 비롯하여 ‘반무당’, ‘화랭이’, ‘사당패’ 등 최하층의 천민 유랑예인 무리를 가리키는 용어를 거리낌없이 나열하고 있다. 예불할 때에 연주되던 영산회상(靈山會上) 것이 속화되어 기방에서 널리 연주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으며, 사당패 노래는 가장 천한 예인 집단의 음악이다. 이옥은 이들 용어를 사용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염불문구인 ‘나무아미타불’을 ‘내 어찌 미인을 사랑하지 않으리’와 같이 해석되도록 어희적(語戱的)으로 사용하기까지 하였다.

 

 

<16>

盤堆蕩平菜 술상에는 탕평채 안주 쌓여있고

席醉方文酒 술자리는 방문주에 거나하게 취하지.

幾處貧士妾 가난한 선비님네 부인들

鐺飯不入口 누룽지 밥도 못 먹는 사람 얼마나 많은데.

 

 

이옥은 이 작품에서 산해진미가 가득한 술상을 벌여 놓고 기생 놀음하는 부도덕한 선비와 누룽지도 입에 넣지 못하는 처자식의 비참한 처지를 대비시켜, 남성의 위선과 여성의 희생을 드러내고 있다. ‘탕조’의 작품이기는 하지만 ‘비조’의 정서와 더 어울린다고도 볼 수 있겠다. 집 안에는 곡식이 다 떨어져서 아내는 누룽지도 먹기 어려운 극한적 빈곤 상황과 술자리에 넘쳐나는 음식과 술에 취한 남편의 모습을 대비시킴으로써 비극적 상황을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기녀가 시적 화자로 나선 ‘탕조’이지만 아내의 존재가 그 이면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탕조’에는 남편과 아내 대신 ‘기녀(妓女)’가 자리하면서 부부윤리의 질서에서 벗어난 남녀 관계의 질탕한 모습과 함께 당시의 기방 문화를 그려내고 있다. 부부의 도리와 사랑이 완전히 어긋나게 된 ‘탕조’의 상황은 결국 ‘비조’의 한스러운 정서를 유발시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연결 지을 수도 있겠다.

 

 

 

3.4. 비조(悱調)의 원망과 슬픔

 

 

 

「비조(悱調)」에는 서민 여성들의 시집살이에 대한 괴로움, 고달픔, 원망이 담긴 작품들이 자리잡고 있다. 새색시의 섬세한 감정을 담았던 ‘아조’나 적극적이고 당당한 여성상이 주를 이루었던 ‘염조’, 기방문화의 화려한 단면을 보여준 ‘탕조’와는 사뭇 대비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들의 삶의 애환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요의 정서와 부합하는 면도 상당하다고 생각된다.

 

 

<17>

謂君似羅海 당신을 사나이라고 생각했기에

女子是托身 여자가 한 몸을 맡겼답니다.

縱不可憐我 비록 나를 예뻐하지는 못할 지라도

如何虐我頻 어찌하여 나를 자주 학대하는 건가요.

 

 

 

작품 <17>은 ‘사나이’라는 남편을 믿고 자신의 몸을 맡겼는데, 자신을 가련하게 생각하지는 않고 학대만 하는 남편에 대한 슬픔을 토로하고 있다. ‘아조’에서 볼 수 있었던 신혼시절의 굳은 다짐과 맹서(盟誓)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이지러지고 질곡된 삶의 모습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18>

亂提羹與飯 밥상의 국과 밥을 어지럽게 끌어서는

照我面門擲 내 얼굴에 보이고 문간으로 던졌지요

自是郎變味 이로부터 서방님의 입맛이 달라졌지

妾手豈異昔 첩의 솜씨가 어찌 옛날과 다를까요.

 

 

작품 <18>는 아내가 차려다 준 밥상을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하여 ‘이것도 밥상이라고 차린 거냐’는 식으로 아내에게 한 번 보이고는 집어던지는 매정한 남편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러한 형상에는 부부의 애정이 어디에도 서로를 위하거나 아껴주는 모습이라곤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19>

巡邏今散未 순라가 지금 흩어졌을까, 흩어지지 않았을까

郎歸月落時 서방은 달이 질 때나 돌아온답니다.

先睡必生怒 먼저 잠을 자도 반드시 노여워하고

不寐亦有疑 자지 않아도 또한 의심을 한다네.

 

 

늦은 시각까지 돌아오는 남편을 걱정하고 기다리기 보다는 그 남편이 돌아와서 자신에게 부릴 행패를 두려워하고 있는 모습이다. ‘비조’에서는 대개 남성의 횡포와 여성의 수난을 비추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남편으로부터 의심받고 시달리는 여성의 서글픈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20>

使盡闌干脚 억센 다리 있는 대로 휘둘러

無端蹴踘儂 까닭없이 나를 걷어 찬다오.

紅頰生靑後 붉은 뺨에 푸른 멍이 든 뒤로는

何辭答尊公 무슨 말로 시아버지께 답해야 하나요.

 

 

이제는 밥상을 뒤엎는 것도 모자라 까닭없이 폭력까지 휘두르는 남편의 모습이다. 맞아도 하소연할 곳 없고, 지금처럼 이혼이라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던 조선 시대에 그저 당하고 살아야 했던 여인의 한스러운 모습이 절절히 묻어난다.

 

 

<21>

早恨無子久 일찍이 자식없어 오래도록 한(恨)이었는데

無子反喜事 자식 없는 것이 도리어 기쁜 일이랍니다.

子若渠父肖 자식이 만약 애비를 닮았다고 한다면

殘年又此淚 남은 인생 또 이처럼 눈물 흘렸겠지요.

 

 

작품 <21>에서는 자식이 없어 늘 한스러웠는데, 이제 와서는 오히려 다행이며 기쁘다고 말한다. 남편 때문에 눈물을 수도 없이 흘렸는데, 만약 자식이 남편을 닮았더라면 남은 인생마저 그 자식 때문에 또 다시 눈물 흘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자식 없는 것이 지금은 도리어 기쁘다는 말에서 역설적으로 의지할 자식조차 없이 남편 때문에 마음고생하며 살아야 하는 여인의 고된 삶이 드러나고 있다.

 

 

<22>

夜汲槐下井 밤에 홰나무 우물에 물 길으며

輒自念悲苦 문득 서럽고 쓰라린 마음이 찾아옵니다.

一身雖可樂 내 한 몸 비록 편하게 되겠지만

堂上有公姥 시부모님 계시니 어이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