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禪이야기

불두화(佛頭花)가 피면 ..|

淸潭 2010. 5. 28. 10:51

        
        ...
        불두화(佛頭花)가 
        꽃망울을 터뜨렸다. 
        해마다 초파일 즈음해서 
        꽃을 피우는 불두화는 하안거(夏安居,-음력 4월 보름부터 석달)의 신호다. 
        부처님 머리처럼 꽃잎 끝이 
        꼬불꼬불한 이 꽃이 망울을 터뜨리면 
        선방 수좌들은 
        삼의일발(三依一鉢, 옷 세벌과 공양 그릇인 발우 하나)만이 담긴 
        걸망을 둘러메고 
        전국 사찰의 선방을 찾는다. 
        초파일의 
        야단법석(野壇法席)에 이어
        온 산천이 
        연두빛으로 물이드는 5월 어느날, 
        속세의 잡다한 생각들을 잠시 접고 돌아온 
        수행승들의 그림자가 
        선방을 가득 채운다. 
        산길이 끝나는 곳에 
        절집의 일주문이 있다. 
        일주문을 지나고 
        대적광전(大寂光殿)을 지나면
        더 이상 길이 없다. 
        그곳에 선방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깨달음을 향한 "구도의 길"이
        시작되는 것이다. 
        석달간의 용맹정진이 끝나면 
        그 길을 내려올 수 있을까. 
        석달이 지나면
        화두(話頭)라는 "그 한 물건"이 잡힐까. 
        하안거가 시작됐다. 
        이 자리에서 깨치지 못하면 
        살아서 무엇하는가.
        면벽(面壁)..
        시렁 위에 가지런히 걸린 
        갈색 가사만이 보인다. 
        숨소리 한 점, 
        발소리 하나가 가슴 떨리게
        조심스럽다. 
        가까이 가면 한 걸음 더 달아나고 
        다시 한 걸음 다가가면 옆으로 슬쩍 비켜서는
        그 한 물건은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溪聲便是廣長舌 계성편시광장설
        山色豈非淸淨身 산색개비청정신
        夜來八萬四千偈 야래팔만사천게
        他曰如何擧似人 타왈여하거사인
        개울물 소리 이 무진법문이요
        산빛은 그대로 부처의 몸인 것을/
        어젯밤 깨달은 이 무진한 소식
        어떻게 그대에게 설명할 수 있으리/
        고승의 오도송(悟道訟)을 되뇌며 
        성불(成佛)의 원(願)을 다잡을 뿐이다.
        불두화는 
        향기도 꿀도 없다. 
        그러니 벌이나 나비가 날아들어 
        시끄럽게 할 일이 없다.
        그러나 그 꽃은 
        그 어느 꽃보다 아름답게 연초록으로 피어나 
        흰꽃으로 만개한다.
        그 아름다움 속에는 
        벌이나 나비의 도움 없이 
        꽃을 피워야 하는 
        치열한 고통이 녹아 있다.
        멀리 산문밖 아랫 동네는
        열기로 떠덜썩한데 
        암자의 저녁 예불을 알리는 법고 소리는
        삼엄하게 조용한 산중을 가른다. 
        수정암 선객들의 
        불두화도 하안거의 만개를(滿開)를
        치열하게 준비하고 있다.
        산자락 아래
        불두화가 환하게 피었다.
        꽃은 저만치서 피어야 
        곱고 아름다운 것인가 보다.
        가까이 가서 손으로 만지면
        아름다움은 반감될 것만 같다.
        나한테 없는 것이라야 
        더 아름답다.
        가질 수 없어 아름다운 것이 
        어디 사랑뿐이랴.
        눈 감고 고개 돌린다고 
        그리움이 안 보이랴..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