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禪이야기

“하루 10분이라도 정신 하나로 모으면 언젠가 희열 체험”

淸潭 2010. 5. 30. 20:54

“하루 10분이라도 정신 하나로 모으면 언젠가 희열 체험”

 봉암사(문경) | 도재기 기자 jaekee@kyunghyang.com
ㆍ‘최고의 수좌’로 꼽히는 문경 봉암사 적명 스님
ㆍ수행의 길이라는 것은 깨달음… 얻지 못하더라도그 자체가 행복이고 기쁨

‘入此門內(입차문내) 莫存知解(막존지해).’

이 땅에서 선풍(禪風)이 가장 시퍼렇게 살아있다는 ‘희양산문 태고선원’의 출입구에 걸린 주련이다. ‘이 문을 들어오는 자는 알량한 생각일랑 갖지말라’는 뜻이다. 선종(禪宗)인 한국불교 선맥의 뿌리이자, 고향인 봉암사 선원의 결기가 느껴진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수좌로 손꼽히는 적명 스님이 27일 문경 봉암사 보림당에서 수행의 길과 깨달음에 관해 설법하고 있다. | 조계종 제공

‘문경 봉암사’(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조계종의 ‘종립 특별선원’이다. 스님들 사이에 “진짜 공부를 하자면 봉암사를 거쳐야만 한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한국 불교의 선풍이 오롯이 이어져오고 있다. 결사수행을 상징이라도 하듯 봉암사는 1년 중 부처님 오신 날 하루만 일반인에게 개방된다. 또한 봉암사는 현대 한국불교의 초석을 놓은 ‘봉암사 결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1947년 성철스님 등은 그저 “부처님 법대로 살자”며 타락하고 쇠락한 당시 한국 불교의 승풍을 쇄신시켰다. 1980년 군사정부의 ‘10·27 법난’, 1994년의 종단 분규사태 때는 봉암사 선승들이 나서 ‘부처님 법대로’란 해결책을 내놓았다.

하안거 결제일을 하루 앞둔 27일, 그 봉암사를 찾았다.

10리 밖에서 봉암사 쪽으로 눈을 돌리니, 백두대간의 단전 자리라는 거대한 바위산인 희양산이 우뚝 서있다.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수행하는 선승들의 뜻이 하나로 뭉쳐진 것일까. 봉암사를 찾은 이유는 또 있다. 그곳에 바로 적명(寂明·71) 큰스님이 주석한다. 지난 50여년 동안 오로지 전국 선원과 토굴에서 참선수행한 큰스님. 스님들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수좌로 첫 손에 꼽는 본분납자다. 천성산 토굴생활 12년, 30대에 지리산 토굴에서 공부에 진전이 없으면 불에 타 죽을 각오로 나무들을 쌓아놓았다는 일화가 대표적이다. 봉암사 보림당에서 적명 스님을 만났다.

-영천 은해사 기기암에서 봉암사에 오신 지 1년이 되셨는데, 어떠십니까.

“봉암사는 20년 전부터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엔 콩나물을 많이 먹었다고 주지스님이 화를 낼 정도로 가난한 절이었죠. 이후 여러 스님들이 계시면서 많은 불사를 했습니다. 1년 전 봉암사에 올 때 외형적 불사는 끝났다고 말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내면불사를 해야한다, 오직 수행정진해야 한다고 강조했죠. 한국에서 최고로 정진을 잘 하는 곳, 정진하고 싶은 곳이 될 것이라 약속했는데 지켜질지 모르겠습니다.”

-봉암사 수좌들이 당초 조실로 모시려 했으나 ‘법이 없다’며 수좌라고 하셨다는데.

“조실이란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름은 달 수도 있고, 달지 않을 수도 있죠. 향곡 스님 등 여러 선지식들께서도 조실이란 이름을 달지 않았습니다. 용화사 송담스님도 최고의 선지식이지만 조실 이름을 쓰지 않고 그저 선원장으로 합니다. 이름은 상관없습니다. 수좌 이름으로라도 조실 이상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안거 결제일인데, 후학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수행의 길이라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그 삶 자체가 행복, 기쁨 자체입니다. 이를 이해하자면 적어도 정신이 순일한 상태의 체험이 있어야죠. 공부의 기본적인 체험을 해야만 수행이 고행의 길이 아니라 환희의 길임을 압니다. 부처님이 고행했다고 하는 데 저는 그렇게 보질않습니다. 진정한 삼매, 선정에 들면 고가 없죠. 그저 희열뿐입니다. 기쁨과 즐거움, 충만한 행복감을 느낍니다. 이런 것을 한번 경험하면 아, 무엇인가 있구나를 깨닫게 되죠. 수행의 길을 포기 못합니다. 희열 상태가 지속이 되면, 아 희열이라는 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는 것이구나를 알게 되죠. 수행의 길을 고달파하거나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현대인들은 스님들처럼 수행을 하기 어려운데요.

“달마사행론에 보면 그 첫번째가 보원행입니다. 현재 나에게 나타나는 것은 내가 지은 결과라는 것으로 즉, 고맙게 현재를 감수하라는 것입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지금의 현실은 내가 만든 것이니까 원망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거죠. 단 미래의 결과는 지금부터 짓는 것이므로 현재, 지금 최선을 다해 기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현재의 절망감을 회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받아들인 상태에서 미래를 위해 기꺼이 끝까지 매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수행의 길이요, 현실극복이라는 삶의 지혜입니다.”

-사회적으로 4대강 사업 문제 등 혼란스럽습니다. 수행의 결과, 깨달음이 사회로 어떻게 좋게 회향될 수 있을까요.

“비구가 가다가 도적을 만나 가진 모든 것을 다 털리고 길의 풀에 묶여졌습니다. 한참 뒤에 지나가던 이가 풀어주면서 ‘스님, 힘만 조금 쓰면 풀어지는데 왜 풀지않았습니까’하고 물었죠. 스님이 “알지만 힘을 쓰면 풀이 뽑혀 죽을까봐 하지 않았습니다. 풀어줄 때까지 기다렸죠”라고 했습니다.

이런 자비사상이 불교의 가장 기본사상입니다. 불가피한 살생, 개발을 전혀 도외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꼭 필요한 것이 아닌, 다른 목적에 의한 살생, 개발이라면 잘 못된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개발하는 분들이 철저히 잘 살피면 좋겠습니다. 인적이 없는 수백㎞의 강을 파헤친다면 안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청계천 가니까 좋긴하지만, 온 산하를 청계천처럼 만들려면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재가불자들께 한 말씀 해주시죠.

“하루에 10분, 길면 30분간이라도 염불이든 화두참선이든 관법이든 절이든 뭔가라도 했으면 합니다. 정신을 하나로 모으는 것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계속하다보면 어느 땐가 삼매에 들고, 희열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