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 염송하며 8시간 동안 용맹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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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능인선원은 4월 10일 법당에서 춘계 3000배 철야기도를 봉행했다. |
4월 10일 저녁 8시. 서울 능인선원 춘계 삼천배 철야정진 현장에 발심한 불자들이 속속 모여 들었다. 모처럼 만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오붓한 주말 저녁을 보내고 있을 이 늦은 시간에 부처님께 삼천배를 올리겠다고 발원한 이유는 무엇일까.
“애 아빠와 아이들을 데리고 왔어요. 저녁 산책을 나가자고 꼬셨어요. 어디 삼천배하러 가자고 하면 따라올 애들인가요.”(김은동 씨, 대치동)
“매년 두 번 남자친구와 함께 와요. 삼천배를 하며 더욱 사이가 좋아졌어요. 남녀 사이에 별일 아닌 것으로 쉽게 토라지고 싸우잖아요. 다른 연인들에게도 권해줘요. 삼천배 함께 하면 사랑이 무럭무럭 자란다구요.”(이하나, 가락동) 철야용맹정진에 참석한 이유는 가지각색이었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이 새긴 원은 같았다. 바로 ‘하심’이었다.
길고 긴 밤. 하늘엔 별이 총총했다. 며칠 전 내린 춘설로 바깥 날씨는 쌀쌀했다. 500여 명의 불자들이 가지런히 앉아 좌복을 폈다. 세 겹, 네 겹. 자신의 몸에 맞게, 안정적인 자세로 절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0.8평의 공간을 자신의 몸에 맞춰 정렬했다. 일배·이배·삼배… 절은 시작됐다.
‘만연체’ 어조로 기도를 올리는 노보살님부터 ‘단문체’ 어조로 절을 올리는 20대 청년까지. 그들은 한배 한배 절을 올리며 ‘관세음보살’을 읊조렸다. 절을 올릴 때마다 손에 부여잡은 염주알이 하나씩 굴러갔다. 소원을 극진이 발원하는 마음은 결국 이타심으로 귀속되는 것은 아닐까. 몇 몇 동참자들의 머리맡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자녀분인 것 같았다. 기복이란 무엇일까. 그때 문득 보살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보살(菩薩)의 사전적 의미는 위로는 부처를 따르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에 버금가는 성인을 뜻한다. 하지만 보살의 사회적인 개념은 늙은 신녀(信女)를 대접하여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어찌하여 ‘아줌마’가 ‘보살’이 되었을까. ‘아줌마’와 ‘보살’의 공통점을 찾으면서 김기택 시인의 「걸레질하는 여자」를 떠올렸다.
“큰절 올리는 마음으로 / 아기 몸의 때를 벗기는 마음으로 닦지 않으면 방과 마루는 좀처럼 맑아지지 않는다. / 그렇게 그녀는 방과 마루에게 먼지에게 매일 오체투지(五體投地)하듯 걸레질을 한다.” 걸레질하는 여자를 보면 오체투지로 절을 올리는 수행자가 떠오른다. 출산과 육아를 전담하는 여인의 운명은 숭고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네 어머니들은 이타의 생을 살아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식의 앞날을 위해 늦은 새벽 시간 아무 기척도 없이 철야 기도를 올리고 절을 하는 어머니들의 숭고한 사랑은 금강저만큼 강하다.
동참자들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혔고 이내 주루룩 흘러내렸다. 뼈마디마디에서 통증이 오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동참자들의 표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밝아졌다. 어둠이 무게를 더 할수록 법당은 환해졌다. 경전 속 남순동자(南巡童子)가 돼 천안으로 따뜻한 눈빛을 건네는 관세음보살님의 가피가 동참자들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참회 기도에 동참했던 불자들은 한결같이 삼천배 참회 기도를 통해 ‘하심’을 배울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교만과 아상을 내려 놓고 급기야는 이웃에게도 맑은 마음과 자비심을 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8시간 동안 진행된 삼천배 정진을 마쳤다는 희열감과 안도감이 법당 곳곳에 스몄다. 2층에서 법당을 내려다봤다. 500여 동참자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서로의 어깨를 주무르고 등을 토닥여주는 그들은 바로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의 현현이었다.
최승현 기자 trollss@beopbo.com
1045호 [2010년 04월 20일 1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