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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낮춰야…” / 법주사 회주 혜정 큰스님

淸潭 2010. 2. 8. 16:41

[초대석]법주사 회주 혜정 큰스님 “자기를 낮춰야…”




원로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일반 스님들과 함께 발우공양을 하고 예불을 올리는 등 겸손한 삶을 실천하고 있는 혜정 큰스님. 그는 자기 마음을 낮추는 하심을 통해 번뇌와 망상을 걷어내고 마음의 근본 자리인 부처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보은=윤정국 문화전문기자

울울창창한 말티재 고갯길을 돌고 돌아 서울에서 3시간 반의 버스 여행 끝에 도착한 속리산 산속 천년 고찰 법주사에는 아직 목련꽃과 벚꽃이 남아 있어 금방 떠나보낸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가웠다. '부처님 오신 날'(5일)을 앞두고 있지만 팔상전(捌相殿)과 금동미륵대불 앞으로 연등만 내걸렸을 뿐 의외로 절 안은 고즈넉했다.
1977~78년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뒤 다시 선방으로 들어가 수행에 매진해온 법주사 회주 혜정(慧淨·73) 큰스님은 종단에서 보기 드물게 선·교·율(禪·敎·律) 삼학을 두루 겸수(兼修)한 원로대덕이다. 법주사 경내 금동미륵대불 옆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이 있고 그 사리탑을 지키는 사리각(舍利閣)이 있는데 혜정 큰스님은 이 곳에서 40년 넘게 주석해오고 있다.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따뜻하고 자상하면서도 수행의 세계와 사바세계를 넘나드는 무애(거리낌이 없음)의 가르침에는 자신을 철저히 낮추는 하심(下心)이 있었다.
먼저 고달프고 힘들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무슨 좋은 삶의 방도가 없는지 여쭈어봤다.

-요즘 세상살이에 시달려 고민과 번민으로 밤에 잠 못 드는 이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잠들 수 있을까요?
"중생들이 사는 사바세계는 본래 참으면서 살아가면 살 만한 세상입니다. 그래서 '인도(忍道)'라고 하지요. 이 세상살이에는 고(苦)가 전제됩니다. 역사상 고가 없던 때가 없었습니다. 이를 인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모든 존재의 본질은 무(無)지요. 또 무의 본질은 공(空)입니다. 우주도 공 위에 존재합니다. 고민과 번민도 공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중생들은 있지도 않은 것에서 스스로 고통 받는 모순된 사유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민과 번민은 원래 없는 것이라고, 한 생각을 거두어버리면 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특히 인간관계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누군가가 극도로 미울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부처님이 살아 계실 때 상가라바라는 청년이 찾아와 '부처님, 제 마음 속에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나 불안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맑고 고요한 물 위에 빨간 물감을 풀어놓고 네 얼굴을 비춰 보아라. 얼굴 모습이 제대로 보이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깨끗하고 고요한 마음의 바탕에 성난 마음이 일어나면 본 마음을 볼 수 없지요. 인간 세상에서 상호간에 얽혀진 인연의 관계는 바다 속 파도의 수많은 포말과 같다고 합니다. 물방울과 바닷물은 동질적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중생의 존재양식도 서로 동질적인 것이어서 둘이 아닌 하나지요. 네가 나고, 내가 너인 것입니다. 남을 미워하는 것은 곧 자신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미움은 미움으로 해결할 수 없지요. 미움을 미움으로 해결한다면 끝까지 나쁜 결과만 초래합니다. 나 스스로 미워하는 한 생각을 끊고 거두어버린다면, 악연의 끈은 단절될 것입니다. 나아가 상대를 용서하고 자신의 몸과 같이 생각하며 공존을 위해 노력한다면 좋은 인연의 관계가 열릴 것입니다."

-출퇴근길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서 시달릴 때 왜 이렇게 힘들게 살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어디 좀더 편하고 쉽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이 세상에는 2만5000여개의 직업이 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자기가 선택한 직업은 소중합니다. 자신과 가족들의 생계가 달려 있기 때문이지요. 자기직업에 대해 부정적 생각과 불만을 가진 사람도 많습니다. 그것은 눈을 위로만 올려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기 직업에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늘 당당하고 신나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습관을 들이면 힘들고 바쁘다는 생각이 없어지고 몸의 피곤함도 덜 수 있을 것입니다."
-일을 해도 해도 끝이 없습니다. 왜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 하나요. 좀더 여유 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물이 흐르지 않고 멈추면 썩고 맙니다. 바쁘게 산다는 것은 신나는 일입니다. 이 세상의 생존경쟁에서 그만큼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지요.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 운전자가 마음을 평안하게 가져야 안전하게 갈 수 있습니다. 차도 바쁘고 운전자의 마음도 바쁘면 사고 나기 쉽습니다. 바쁠수록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면 바쁘다는 생각도, 바빠서 몸이 피곤하다는 생각도 없앨 수 있습니다."
혜정 스님의 말은 부드럽고 자상하면서도 힘이 배어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길러진 수행력이 인생에 대한 통찰과 혜안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나아가 최근 국민들의 관심을 끈 정치 사회적인 일들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혜정 스님은 속리산 깊은 골짜기에 있으면서도 매일 일간지를 정독하며 세상사 돌아가는 일들을 불법(佛法)의 줄로 꿰고 있었다.
-요즘 대학의 총학생회들이 교수들을 억류하거나 이사회에 무단 난입해 회의를 방해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교권이 땅에 떨어진 상황입니다. 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잘 교육시킬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 교육은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습니다. 제도가 자주 바뀌는 데 그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근원적 원인은 오늘날 스승-제자의 관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스승은 지식을 물품화해 학생에게 팔고 있을 뿐입니다. 교수는 인성 교육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뜨거운 애정을 호소해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 바탕 위에서 새로운 방향의 교육을 모색하면 오늘날과 같은 혼란과 갈등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 돼야지 지식이나 기교를 키우는 교육이 돼서는 안 됩니다. 학교 교육은 전인교육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종교는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최후의 교육이지요. 불교는 존재의 중심축이 되는 마음을 교육하는 일을 합니다. 마음의 본바탕을 찾아 이를 깨우치는 혁명적 교육을 하고 있지요. 혁명을 통해 중생을 부처로 만드는 교육입니다."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이 구속된 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 민족은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아왔습니다. 20세기 말에 들어와서야 겨우 사정이 괜찮아져 허리를 펴고 살 수 있는 상황이 됐지요. 한국이 세계 경제 10위권 안에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공통된 양극화 현상으로 서민들은 여전히 살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현대자동차는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입니다. 우리 경제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요. 정 회장이 법을 어겼다면 추상같이 처벌받음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사법부에서 문수(文殊)의 지혜를 발휘해 원칙과 현실을 적절히 조화시킨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길 바랍니다. 정 회장이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합니다. 아울러 정 회장도 잘못한 일이 있다면 참회하고 국민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해야 하지요."
-요즘 정치는 국민들로부터 신망을 잃고 있습니다. 국민의 인기에 영합하려는 포퓰리즘이나 국민을 기만하는 타락정치도 여전합니다. 오늘날의 정치지도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깊은 철학을 가져야 하겠다는 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정치인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도록 국민들이 뽑아준 공복(公僕)이라는 생각을 늘 가져야 합니다. 나라를 자기 집처럼, 국민을 자기 가족처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늘 국민 곁에 다가가 국민의 고통을 찾아내고 국민의 바라는 바를 잘 감지해 현실성 있는 정치를 해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왕들이 '어떻게 하면 정치를 잘 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부처님은 '삭삭논의(數數論議)'라고 답했습니다. 자주 만나 대화하라는 것이었지요. 왕정 하에서도 그랬는데 하물며 오늘날 같은 민주주의체제 하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국민과의 대화는 정치의 요체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정치는 국민에게 짜증만 준다는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우리 정치인들은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고 자신을 반성해 국민들이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정치인이 돼야 합니다. 국가관과 민족사관이 확립돼 있고 인간적으로 국민을 아끼고 사랑하는 자비심을 갖추고 있다면 정치적 치적은 저절로 이뤄질 것입니다."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벌써부터 물밑 경쟁이 치열합니다. 다음에는 어떤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합니까?
"우선 덕치(德治)를 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공약이나 이념 이전에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덕을 갖춘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겠습니다. 국민과의 약속도 잘 지키고 국민 앞에 정중하게 사과도 할 줄 아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하겠습니다. 포용력이 넓고 미래를 향한 예지와 선견지명이 있고 카리스마와 자기소신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사항은 과감하게 밀고 나가고, 국민이 아니라고 하는 일은 냉정하게 뿌리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남북분단시대에 통일에 대한 의지가 분명하고 통일을 앞당겨 성취할 수 있는 노력을 할 수 있는 사람, 유구한 5000년의 우리 역사의 바탕 위에서 세계화에 잘 적응하고 나아가 세계화에 앞장설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이런 조건을 70~80%라도 갖춘 사람이 있습니까."
-오늘날 불교는 그 어느 때보다 포교에 좋은 조건을 맞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불교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종교는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것이 존재이유입니다. 나라가 평안해지고 국민이 마음의 고통을 덜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불교가 이 나라에 들어온 지 1600년이 됐습니다. 외래종교인 불교가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우리 민족 심성에 깊게 뿌리내려 이제 민족적 종교가 됐어요. 불교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이바지한 점 도 많지만 지배 권력과 결탁해 국민에게 누를 끼친 때도 적지 않았습니다. 조선왕조 500년간 불교가 국가적으로 탄압 받았고, 일제강점기에는 왜색불교로 이질화(왜색화)되는 아픔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광복 후 30년간 불교를 바로잡는 '정화(淨化)'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제 그 막을 내리고 어느 정도 부처님 당시의 원형 불교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벽하지 않습니다. 이럴 때 우리 불교가 부처님 사상을 만천하에 유감없이 펼쳤는가 생각해보고 만약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뼈아프게 반성해야 합니다. 21세기 정보화시대에 걸 맞는 불교의 경쟁력을 갖추고 모든 분야에서 분명한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평생의 좌우명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스님이 무슨 좌우명이 있겠습니까만 굳이 든다면 '하심(下心)'이지요. 늘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발아래를 비춰 자신의 자리를 잘 살피라는 뜻의 '조고각하(照顧脚下)'도 하심과 통하는 말이지요. 우리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부처라고 인정합니다. 본래 부처인데 번뇌와 망상이 구름처럼 가리고 있어 못 볼 뿐이지요. 구름이 거두어지면 본래 있는 둥근달이 휘영청 밝게 드러나듯 번뇌와 망상을 걷어내면 마음의 근본자리인 부처가 보입니다. 본래 있는 불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지요. 이를 '본래성불(本來成佛)'이라고 합니다. 자기 마음을 낮출수록 거기에 접근해갈 수 있는 통로가 보입니다. 자기를 높이는 자만심은 상대와 승부하려는 감정이나 욕망을 일으켜 성불을 방해합니다. 하심은 대단히 어려워 나도 실천을 다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혜정 스님은 원로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대중(일반스님들)과 함께 발우공양을 하고 예불을 올리는 등 겸손한 삶을 실천하고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대중과 더불어 여법하게 살며 사표(師表)가 되고 있는 것이다.
-불교는 마음이라고 합니다만…
"불교는 인간 중심의 종교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육신과 마음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육신을 태우면 재가 되어 흙으로 돌아갑니다. 육신을 끌고 가는 물건이 마음입니다. 마음은 현상도 없고 모양도 없습니다. 마음은 있고 없는 것을 초월합니다. 옛 선사들은 이런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찾으려면 찾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물이 모든 것을 씻어주지만 물 자체를 씻어줄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찾는' 마음과 '찾아진' 마음이 둘이 돼서는 안 됩니다. 특단의 방법을 써야 합니다. 직관이 바로 그것입니다. 말과 문자, 한 생각도 접근할 수 없습니다. 언어도단(言語道斷), 불립문자(不立文字)지요. 다 떼어놓고 직관을 통해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허공 같고, 바람 같은 것입니다. 마음은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이전 나의 원래의 모습입니다. 그런 경지를 찾아가려니 보통 힘든 일이 아니지요. 선사들이 우화나 비유로 이에 대해 말해온 것도 벙어리가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몸부림치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깨쳐서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지상정토(地上淨土)'를 구축해 불교가 비불교가 되도록 하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깨달으려면 참선을 해야 합니까?
"성불해 부처가 되는 것이 목적이고, 여기에는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주력 염불 기도, 그리고 요즘에는 위빠사나 같은 방법이 소개되고 있어요. 참선이 지름길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맞지 않다면 자기성향에 맞는 다른 방법을 골라 꾸준히 노력하면 누구나 성불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불교는 마음이다'란 원리를 놓치지 않으면 되지요."
-스님은 개인적으로 행복하신가요?
"행복하지만 만족한 행복은 아닙니다. 아직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높은 수행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항상 자신을 낮추어 하심 하는 혜정 스님. 그 친근하고 따뜻한 마음이 자석처럼 끌어당겨 법주사를 빠져나오기 쉽지 않았다.

윤정국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