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美연방정부 최고위직 전신애 노동부차관보 내한
전신애 미국 노동부 여성국 담당 차관보는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 집권 이후 미 연방정부 최고위직에 오른 재미동포. 5일 방한하는 그는 “베푸는 정신과 긍정적인 생활자세가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며 “꿈에는 한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워싱턴=권순택 특파원 |
1965년 9월 15일 김포공항. 이화여대를 갓 졸업한 젊은 여성이 어머니와 언니를 부둥켜안고 엉엉 울고 있었다. 울다 지친 그는 승무원의 등에 업혀 비행기를 타야 했다. 대학 때 만난 동성동본의 오빠 친구로 미국 유학 중이던 전경철(全炅喆) 씨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아버지 몰래 미국으로 떠나는 길이었다.
그로부터 40년 후인 지난달 30일, 미 워싱턴 시내 노동부 청사 3층 여성국 담당 차관보실에서 그를 만났다.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 집권 이후 재미동포 중 미 연방정부 최고위직에 오른 전신애(全信愛·62) 차관보가 바로 그였다.
전 차관보는 5∼7일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여성가족부 주최로 열리는 제5차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행사에서 ‘한민족 여성과 글로벌 리더십’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한다.
집무용 책상은 물론이고 응접용 탁자 위에도 쌓여 있는 각종 서류와 자료. 냉장고에서 손수 생수를 꺼내 종이컵과 함께 건네는 그에게서 프로의 냄새가 났다.
여성국은 미 연방정부 부처 가운데 유일하게 노동부에만 있는 85년 역사의 조직. 6700여만 명의 미 근로여성의 직업교육, 노동조건 개선, 노후대책, 직장과 가정의 균형에 관한 정책을 맡고 있다.
그는 “여성이 좀 더 좋은 조건의 일을 하려면 컴퓨터 기술이 필수적”이라면서 여성 유망직종으로 건강관리와 컴퓨터 정보산업을 꼽았다.
둘째 아들을 임신한 몸으로 진학한 노스웨스턴대 대학원에서 1971년 받은 교육 및 사회 정책 석사학위는 그가 미 주류사회에 진출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사실 그는 공부에 뜻이 없었다.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고 싶었다. “미국에서 살고 미국을 알려면 학교에 가는 것이 상책”이라는 남편의 강력한 권유가 없었더라면 그는 지금 평범한 할머니가 됐을지도 모른다.
소수민족 출신의 여성인 그의 성공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어요. 잔에 물이 절반만 차있을 때 반밖에 없다는 생각과 반은 있다는 생각은 큰 차이가 있죠.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면 할 일도 많고 가능성도 많아요. 꿈에는 한계가 없어요.”
그는 특유의 친화력과 남을 배려하는 적극성으로 1984년 일리노이 주지사의 아시아계 미국인 담당 특별보좌관으로 공직을 시작했다. 10년 동안 일리노이 주 장관을 지낸 그는 2000년 대선 때 공화당 캠프에서 공약개발팀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2001년 연방정부 노동부 차관보에 임명된 그는 ‘노동부의 효율화에 대한 기여와 능력’을 인정받아 조지 W 부시 2기 행정부에서도 연임됐다.
그는 자신이 인복(人福)이 많은 사람이라고 겸손해했다. 그러나 “남에게 주는 게 받는 것보다 많으면 주변에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능력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그의 지론은 그의 성공이 인복 때문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상원의원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을 그에게 물어보았다.
“미국에 여성 대통령이 나올 때가 됐다고 봅니다. 그러나 많은 것을 갖춘 사람이어야 합니다. 국가안보 같은 분야에 든든한 배경이 없으면 어려울 겁니다.”
그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다시 백악관에 들어가는 걸 원하는 미국인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공화당에는 대통령이 될 자격을 갖춘 인물이 민주당보다 훨씬 많아 상당 기간 공화당이 집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에 대해서는 “이 시대에 드물게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라며 “특히 로라 부시 여사와 함께 가족의 가치에 대한 모범을 보여준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부시 팀’의 특징에 대해 그는 “대단히 충성심이 강하고 중요한 시기에 귀한 자리에서 모범적인 공직생활을 열심히 함으로써 국가에 공헌한다는 생각과 자세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경남 마산의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그에게 대학 때 만나 사랑에 빠진 남편이 동성동본이란 사실은 그의 앞에 닥친 인생의 첫 시련이었다.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랑을 선택했다. 미국 도착 한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돌했다는 생각이 들죠. 제 인생이 바뀌는 결정이었는데 너무 쉽게 결정했던 것 같아요.”
40년 전 일을 회상하면서 그는 밝게 웃었다. 그는 세 번째 귀국했던 1975년 두 손자의 재롱에 마음을 연 아버지와 화해했다.
▼전신애 차관보는▼
△1943년 일본 오사카 출생, 두 살 때부터 경남 마산서 성장
△1965년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미국에서 결혼
△1971년 미 노스웨스턴대 대학원 졸업(교육 및 사회정책 석사)
△1976∼80년 이중언어 교육연구소 근무
△1983년 일리노이 주지사 아시아계 미국인 자문위원장
△1984∼89년 일리노이 주지사 아시아계 담당 특별보좌관
△1989∼91년 일리노이 주 금융규제부 장관
△1991∼99년 일리노이 주 노동부 장관
△2001년 이후 미 노동부 여성국 담당 차관보
△저서: ‘뚝심 좋은 마산색시 미국장관 10년 해보니’(1996년)
△가족: 남편 전경철(69·아르곤연구소 연구원) 박사,
2남(변호사와 할리우드 영화음악 작곡가)
워싱턴=권순택 특파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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