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김학수 UN ESCAP 사무총장
김학수 유엔 사무차장 겸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ESCAP) 사무총장은 “요즘 한국인에게서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한다. 신원건 기자 |
“세종로 사거리를 지날 때마다 동아일보 신사옥을 보면서 그 내부는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습니다. 한번 들어가 볼 수 있습니까?”
김학수(金學洙·67) 유엔 사무차장 겸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ESCAP) 사무총장은 전화로 ‘동아일보 기자’라고 밝히며 인터뷰 요청을 하는 기자에게 대뜸 이렇게 물었다.
궁금한 건 직접 체험해 보지 않으면 못 견디는 성격이란다. 그 정도로 호기심이 많고 격의가 없다.
그는 지금 그 기질만큼이나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꿈의 사업’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일본 도쿄에서 시작해 페리를 타고 한국에 도착한 뒤 중국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를 거쳐 터키의 이스탄불에 이르는 55개 노선을 연결하는 ‘아시안 하이웨이’ 프로젝트가 그것. 아시아 32개국의 14만 km에 이르는 도로망을 연결해 아시아를 하나로 묶는다는 계획이다.
그는 4일 태국 방콕의 ESCAP 본부에서 각국 대사 8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아시안 하이웨이의 정부 간 협정 공식 발효를 기념하는 행사를 열 예정이다.
지난달 24일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로 가는 길에 한국에 들른 그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 내부’에서 만났다. 유엔 공동서열 3위라는 권위도, 67세라는 나이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국은 사람을 너무 빨리 도태시켜 버립니다. 외국에서 60대는 ‘영 올드(young old)’라 해서 마지막 에너지를 뿜어내며 일하는 나이입니다. 70을 넘으면 개인차가 있지만요.”
그가 ‘마지막 에너지’를 다해 추진하고 있는 아시안 하이웨이의 국가 간 협정에는 지난해 4월 32개국이 서명했고 올해 4월까지 한국 중국 일본 미얀마 스리랑카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캄보디아가 비준했다. 8개국 이상이 비준을 마치면 그 90일 후 발효케 돼 있는 협정 내용에 따라 서명국 전체가 앞으로 5년 내에 시설 기준에 맞도록 도로를 정비하고 표지판을 설치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도로 규격은 이미 충족하고 있어 표지판만 세우면 된다. 국경 통과와 도로 연결을 비롯해 남은 과제에 대한 협상에도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아시아교통망 통합 프로젝트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철의 실크로드’로 불리는 아시아횡단철도를 부산까지 연결해 통합물류망을 구축한다는 계획도 느리지만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아시아횡단철도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만주횡단철도(TMR) 등 아시아 각국의 철도를 이어 아시아와 유럽을 철도로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말한다.
“내년 11월 아시아태평양교통장관회의에서 서명식을 할 예정입니다. 북한이 문제지만 전망은 밝습니다. 지난해 ESCAP 교통국장이 북한을 다녀왔는데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답니다. 아시아횡단철도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기도 하다더군요.”
이처럼 ‘꿈같은’ 일을 추진하는 사령탑에 한국인이 앉아 있다는 사실은 한국으로서는 대단한 자산이다. 일본의 반대를 물리치고 5월 인천 송도에 한국 최초로 유엔 산하기구인 아태정보통신기술센터(APCITC)를 유치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노력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유엔 ESCAP 프로그램에는 ‘한국적인 것’이 자주 등장한다. 물론 그 이면에는 그의 영향력이 작용하고 있다. 2002년부터 라오스 캄보디아 등지에서 벌이고 있는 ‘새마을 운동’도 그 한 예. 농촌 근대화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캄보디아에서는 ‘새마을’을 따로 번역하지 않고 그냥 ‘새마을(saemaul) 무브먼트’라 합니다. 한국의 정체성을 옮겨다 놓은 거죠.”
그는 한국보다는 해외에서 활동한 기간이 길다. 한국은행에서 근무하다 35세에 유학을 떠났고, 학위를 마치고는 ㈜대우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40대에는 유엔 소속으로 남태평양 신생독립국의 경제개발 고문을 맡아 한국식 경제개발 모델을 전파하는 일도 했다. 이런 그를 두고 누군가는 ‘고국을 떠나니 위대해진’ 케이스라 말하기도 했다.
2000년에 맡은 유엔 ESCAP 사무총장 직은 2007년까지 임기가 보장돼 있다. 그는 2000년부터 3년간 내부 개혁 작업을 통해 유엔 ESCAP를 성과 중시 조직으로 바꿔내 ‘경영자적 사무총장’이란 이름을 얻었다.
밖에서 보는 한국은 어떨까. 그는 지금 한국에는 무엇보다 ‘긴 안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길고 넓게 보기에는 너무 바빠서일까요. 장관은 2년 뒤, 기업인은 1년 뒤만을 생각하죠. 그래서는 장기적인 비전을 세울 수가 없습니다.”
▼김학수 총장은
△1938년 강원 원주생
△1956년 중앙고 졸
△1960년 연세대 상학과 졸
△1974년 영국 에든버러대 대학원(경제학석사)
△1977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경제학박사)
△1960년 한국은행 조사부 금융재정과, 런던사무소 조사역
△1981년 유엔 개발협력국 경제계획관
△1989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경제협력, 북방경제)
△1994년 아시아태평양지역 국제지구 콜롬보플랜 사무총장
△1999년 외교통상부 국제경제담당대사
△2000년∼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ESCAP) 사무총장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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