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본 '건국 60년, 60대 사건'] (43) 3低호황과 중산층의 성장 • 단군이래 가장 뜰뜬 경제 아파트·마이카 시대 열려 |
발행일 : 2008.08.01 / 종합 A8 면 기고자 : 유석재 |
1980년대 대한민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무려 10.1%였다. 시작부터 좋았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고도성장 시작 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해가 1980년이었다. 5공 정부는 경제정책의 전환을 시도했다. 중화학공업의 구조조정과 시장 논리에 따른 경제 자율화를 추진했으며 중소기업을 육성했다. 정권 초부터 경제수석비서관 김재익(金在益)과 같은 인재를 등용, '한 자릿수 물가'에 뛰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대기업의 유착이 더 심해지기도 했지만 1981년부터는 6~8%의 성장률이 회복됐다. 이제 아시안게임이 열리던 1986년부터 올림픽의 해 1988년까지, 한국 경제는 이른바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好況)'을 맞게 된다. 저(低)달러(엔고), 저유가, 저금리라는 국제시장의 '3저 현상'이 한국 제품의 경쟁력을 강화했고, 개항 이래 처음으로 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서게 됐다. 이 시기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한국 경제가 드디어 자립경제를 성취했다"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일시적 착시로 인해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고착화했다"는 비판도 있다. 경제 발전은 중산층(中産層)을 가시적인 계층으로 성장시켰다. 판매·서비스업의 구(舊) 중간계급과 의사·변호사·엔지니어·회사원·공무원 등 신(新) 중간계급의 합계는 1960년 19.6%에서 1990년 43.7%로 급증했다. 1980년대 중반 중산층 의식을 가진 사람은 75%에 이르렀다는 통계도 있다. '주택 500만호 건설'의 구호와 함께 본격적인 '아파트 시대'가 열렸고, 1985년 자동차 보유 100만 대를 넘으면서 '마이카 시대'도 눈앞에 두게 됐다. 증시와 부동산이 들썩였고 관광업이 특수를 맞았으며, '과소비' 논란이 불붙었다. 이제 이 새로운 계층에게 제5공화국의 권위주의 정치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이 되고 있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새로 약진하던 야당의 지지층이 됐다. 미국으로 망명했던 김대중(金大中)이 1985년 2월 8일 귀국했고, 12일의 12대 총선에선 갓 창당한 신민당이 여당을 6% 차로 추격했다. 1983년의 학원자율화와 1985년의 금서 해제 이후 학생운동권의 세력도 커졌다. 일부 급진 세력은 1986년 5·3 인천사태와 같은 폭력 사태를 낳았다. 직선제 개헌을 위한 서명 운동이 확산됐다. 그리고 1987년이 밝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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