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나 아버지도 할 수 없는 일
그 어떤 친척이 베푸는 선보다
바른 진리를 향한 이 마음이
모든 이에게 더욱 큰 선을 베푼다
- 『법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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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김장경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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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당시 소레이야 비구는 너무나 특이한 일생을 살았다. 한 생애를 살면서 남자가 되어 두 아들을 낳았고, 다시 몸이 여성으로 바뀌어서 두 아들의 어머니로 살다가 본래의 모습인 남자의 성을 회복하였다. 그 뒤 그는 삶의 덧없음을 깊이 깨닫고 거룩한 마음을 내어 부처님 교단에 출가하여 성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아버지로서 할 수 있었던 일과 어머니로서 할 수 있었던 일을 함께 경험하였다.
자식 향한 열정도 집착의 장벽
그러나 그러한 관계 속에서 자식을 위하여 헌신했던 일들이 참된 자아(自我)를 위해서는 알맹이 없는 빈 껍질과 같은 행위임을 깨닫게 된다. 자식을 위한 부모의 행위는 어디까지나 애정의 집착이라는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의무와 도리로서 자비심으로 지켜갈 뿐이다. 진정으로 자기 내면의 세계에서 진리를 향하여 매진하는 참다움이라는 자기 본래의 가치를 소레이야는 출가수행을 통하여 얻게 된다. 그래서 그는 부모나 그 외의 어떠한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는 절대의 가치 추구를 오직 진리로 향하는 내 마음만이 해내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부모의 역할은 생명의 흐름 속에서 참으로 고귀한 가치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소레이야 비구가 어머니로서의 애정이 보다 깊었다고 술회하는 것과 같이 어머니의 자비는 생명을 감싸 안아 성장시키는 에너지이다. 어머니의 에너지는 자식이 곤궁에 처하면 처할수록 더욱 강인한 힘을 발휘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이 나이를 먹거나 병고에 시달리게 되면 설사 이 세상에 없는 어머니라 할지라도 자식은 그 어머니를 가슴으로 찾게 된다고 한다.
세상의 어머니는 자식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다 해주려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자식을 향한 부모의 열정이 아무리 크고 넓다고 하더라도 불교는 부모가 해주는 선이 아니라 스스로가 이룩하고 간직하는 선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것이다. 바로 자신 마음의 행위인 것이다. ‘오직 바르게 인도되는 마음’, 또는 ‘바른 진리를 향한 마음’인 것이다.
부모의 마음이 아무리 선하다 할지라도 자기 자식이라는 장벽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언제나 외형적인 형식과 관계를 떠나서 바로 현재 너 자신의 마음의 가치를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라고 가르치신다. 내 마음은 한계가 없어 선으로 가다듬어 진리에로 방향을 잡으면 거기에는 어떠한 장벽도 한계를 만들지 못한다. 생명 모두가 갖고 있는 우리의 마음은 자신이 주역이 되어 진리에 부합하는 방향을 잡기만 하면 모두가 행복해 지는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이 주역인 이야기를 중국 선사의 고사에서 찾아보자.
중국 오대산은 청량산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으며 문수신앙을 꽃피운 명산이다. 12세에 출가하여 진정한 구도자로서 행적을 남기고 있는 무착 문희 선사가 생전에 문수보살을 만나고 싶어서 문수보살이 머문다고 하는 오대산에 들어갔다. 산중에서 해가 저물어 한 암자에 들어가 동자의 안내로 노승과 마주하게 되었다.
문수의 지혜도 결국은 내 안에
무착 스님은 노승께 이곳 오대산의 불법에 대해서 물으니 ‘용과 뱀이 서로 섞여 있는 모습이고 범부와 성인이 함께 거주한다.’는 말로서 답을 한다. 이는 곧 문수지혜의 세계는 인간의 편파적인 사고와는 다르기 때문에 용과 뱀을 나누어 차별하지 않고 범부와 성인이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또한 무착 스님을 맞이했던 동자는 무착 스님을 향하여 부처님께 올리는 참다운 공양은 얼굴에 성냄이 없는 것이고, 입으로 성내는 말을 내뱉지 않는 것이 미묘한 향을 올리는 것이며 또한 마음속에 성냄이 없는 것이 진실한 보배를 간직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안과 밖 어디에도 더러움도 집착함도 없는 모습이 참다운 자신의 진여와 대면한 것이라는 유명한 가르침을 설한다.(面上無瞋供養具 口裏無瞋吐妙香 心裏無瞋是眞寶 無染無着是眞如) 그 뒤 무착스님은 공양주로 소임을 살며 팥죽을 끓일 때, 솥 속에서 문수보살이 나타나는 것을 목격하고는 그대로 나무주걱으로 문수를 내리치면서 ‘문수는 문수이고 무착은 무착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이는 더 이상 문수보살을 밖에서 찾지 않겠다는 무착 스님의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각자 내면세계에서 찾아지는 문수보살이야말로 참으로 진정한 문수임을 깨닫게 하는 설화이다.
따라서 불교의 생명은 남을 따라가거나 남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자신이 무엇을 실천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내면의 세계가 충만하여 그 향기가 밖으로 퍼져 나올 때 참다운 불자가 사는 세상이 된다. 이 모든 근본이 ‘바른 진리를 향한 이 마음이 모든 이에게 더욱 큰 선을 베푼다.’는 가르침과 상통하게 되는 것이다.
본각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938호 [2008-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