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함은 생명의 길이요
게으름은 죽음의 길이다
부지런한 사람은 죽지 않지만
게으른 사람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 『법구경』
|
|
<사진설명>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김장경 회장 |
『법구경』 21번 게송은 ‘게으르지 않음(不放逸)’과 ‘게으름’에 대한 대구로 가르침을 펴고 있다. 한역 『법구경』에서는 이 ‘불방일(不放逸)’의 뜻을 계(戒)와 불탐(不貪)으로 번역하여, 계를 지키는 것은 감로(甘露)의 길로서 모든 갈증을 씻어내는 열반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며, 탐욕을 벗어난 상태를 ‘죽지 않음(不死)’의 경지로 표현하고 있다. 반대로 ‘게으름(放逸)’은 ‘죽음의 길’이며, ‘진리를 잃어버림(失道)’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 ‘게으르지 않음’을 현대어 번역에서는 ‘마음 집중’이라는 표현도 쓰고 있어서 각 문헌에서 각각의 표현을 유념하면서 그 뜻을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교에서 게으름(放逸)이란 방탕한 나머지 자제력을 상실한 어리석은 행동과 정신 상태를 의미한다. 『구사론』에서는 6종의 대번뇌에 이 방일이 들어가 있고, 반대로 오롯한 마음으로 선을 닦는 대선법(大善法)에 불방일이 들어가 있다. 또한 『유식론』에서 방일은 20종류의 부수적인 번뇌 가운데 하나로서 선법을 닦지도 않고 악법(惡法)을 끊지도 않고 방종 하는 마음작용을 말하고 있다. 이어서 이 방일은 탐진치 3독과 게으름으로 근본바탕을 이루고 있다는 설명에 따른다면, 방일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탐진치 3독을 버려야 하고 게으르지 않는 정진의 힘으로 물리쳐야 함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정진의 순간만이 무상치 않아
경전에서 석가모니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모습은 언제 읽어도 숙연해 진다. 몇 년 전 인도 구시나가라 열반당에서 옆으로 누워계시는 석존의 열반상을 참배할 때의 일이다. 누워계시는 부처님 모습을 뵈면서 곧 지금 열반에 들고 계시는 듯해 나는 몹시 슬픔이 복받쳐 올랐고 감회가 새로웠다. 2500여 년의 시공을 초월하여 부처님의 열반에 드시는 모습을 직접 목도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새삼 세상이 텅 비어있는 것 같은 공허함을 느꼈다. 생명 모두에게 자비로운 어버이시고 큰 스승이신 부처님의 열반하시는 모습을 뵈면서 무엇에 의지하여 남은 출가사문의 길을 걸어갈 것인가를 상념하고 있을 때, 『유행경』에 남기신 말씀이 떠올랐다.
석존은 여래의 열반을 슬퍼하는 제자들을 위로하시면서 자금색으로 빛나는 오른 팔을 들어 이 세상에 부처님이 나타나심은 우담발라의 꽃이 피는 것처럼 고귀한 일이라고 설명하신다. 그리고 모든 존재의 오고가는 모습이 참으로 무상함을 깨닫고 결코 방일하지 말라는 부탁을 마지막으로 남기시는 것이다. 또한 부처님 자신도 방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각을 이루었고 한량없는 선법을 이루어 낼 수가 있었다고 제자들에게 거듭거듭 당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방일, 곧 게으르지 말라는 말씀이 여래의 최후의 설법이 되었다.
정말 그렇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성취하면 이 무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부처님께서는 무상의 진리를 철두철미 깨달으신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리어 무상한 세간에 집착하여 노예의 삶을 살지 말고 자기의 의지로 대자유인이 되라는 말씀을 힘주어 하셨던 것이다. 현실의 허상에 사로잡혀 우리는 참다움을 망각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여래가 설하신 이 무상의 한 가운데서 오직 현재의 매순간 게으르지 않고 지혜를 가다듬어 선을 실천하려는 노력 정진만이 오직 허망하지 않고 무상하지 않다는 진리의 깨우침인 것이다. 일체가 다 무상한데 오직 무상하지 않는 것은 노력 정진하는 자신의 참다움뿐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부처님 최후 당부도 ‘노력하라’
인도의 열반상을 참배한 이후로 더 이상 무상하지 않았고 더 이상 공허하지도 않았다. 아니 그 반대로 세상사 모든 것이 참으로 허망했고 참으로 무상했다. 오직 현재 수행 정진하는 자신의 구도 열정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드시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가장 진솔한 말씀으로서 세상사 무상함을 철두철미 깨닫고 오로지 게으르지 않고 노력 정진하는 자신을 잘 갈무리하라고 당부하셨던 것이다. 이 진리의 가르침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오늘에도 더욱 새롭다. 그러한 생명의 말씀이 이제 『법구경』 21게송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있는 것이다.
방종하지 말고 게으르지 말고 탐욕하지 말라. 이는 생명을 죽이는 길이며 광명을 등지는 길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래서 항상 깨어 있고 마음을 집중하는 힘으로 생명을 살리고 선법을 증식시키는 일에 앞장서라고 하신다. 이를 실천하는 부처님 제자가 많을수록 부처님의 가르침은 살아서 움직이게 되고 불법은 생명력을 갖게 될 것이다. 부처님의 마지막 당부의 말씀은 죽어 있는 불교가 아닌, 살아 생동하는 불교가 바로 우리들 게으르지 않은 제자들에게 있음을 간곡한 유언으로서 남기신 것이다.
본각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935호 [2008-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