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히 수행하며 깊이 생각하고
말과 행동이 맑고 신중하며
자신을 억제하고 진리대로 살아가면
그 사람은 명예와 이름이 빛난다
- 『법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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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김장경 원심회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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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제24게송과 관련하여 거해 스님의 편 역에 의지하면 꿈바고사까라는 은행가 이야기가 펼쳐진다. 부처님 당시 라자가하 시내에 유행병이 크게 확산되어 은행가 부부도 중병에 걸리게 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임종이 눈앞에 다가온 것을 알고서 외아들에게 귀중한 보석을 감추어둔 곳을 알려주고 친척집으로 피신시켰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아들이 성장하여 다시 고향에 돌아왔을 때에는 아무도 이 젊은이가 과거 대부호의 아들 꿈바고사까 인줄 알지 못했다. 보물을 감추어 두었던 곳에서 보물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음을 확인하고서 옛날 자산가의 아들이라고 밝히고 싶었지만, 이 젊은이는 지혜롭게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갑자기 대부호로 행세하면 도적의 누명을 쓸 위험이 따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젊은이는 부모가 감춰둔 보물은 그대로 놔두고 가장 낮은 신분으로 일하며 사람들과의 신뢰를 쌓기 시작하였다. 젊은이는 노동자들에게 큰 소리로 시각을 알리는 일을 하였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시각 알리는 젊은이의 목소리를 하루는 라자가하의 빔비사라 국왕이 듣게 되었다. 그 국왕은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운명을 점치는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젊은이의 목소리를 들은 국왕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대부호이어야 마땅한데 일개 시각을 알리는 노동자로 전전하는 것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왕은 젊은이의 신분을 알아내었고 젊은이는 부모의 재물을 찾아 다시 옛날 대부호의 아들로서 입신출세할 수 있었다. 부처님은 빔비사라 왕으로부터 젊은이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위의 게송을 설하셨다고 한다.
부모 유산 의지 않고 노동 자청
이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젊은이의 매우 신중한 자세이다. 젊은이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있었음에도 그 재물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설사 재물이 있다고 해도 사람과의 관계와 신뢰를 더 소중히 여겼다. 그는 사람들을 잠에서 깨어주고 시각을 알려 줌으로써 잘못되는 일이 없도록 보살피는 일에 자신을 몰두시켰다. 우리는 재산이 있거나 지위가 높으면 자만에 빠져서 함부로 행동하게 된다. 그리고 성급한 마음으로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는 것이 세상의 다반사이다. 그러나 꿈바고사까는 자신을 자제할 줄 알았고 때를 기다릴 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은 젊은이를 칭찬하셨던 것이다.
부처님이 법을 설하신 동기는 참으로 다양하다. 이 꿈바고사까 이야기는 『법화경』의 가난한 젊은이의 이야기, 궁자의 비유(窮子譬喩)를 연상케 한다. 서로 다른 점은 궁자는 자신이 부호의 아들인줄 몰랐기 때문에 빈궁한 삶을 개선해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뒤늦게 아들을 되찾은 부호아버지는 아들을 자신의 후계자로 인정하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꿈바고사까는 스스로 부호의 아들인줄 알고서 지혜롭게 행동했다는 점이 다르다. 『법화경』에서는 여래의 자비심이 돋보이고 『법구경』에서는 꿈바고사까의 지혜와 덕성이 돋보인다. 결국 불교의 목표는 여래의 자비를 통해 궁극에 가서는 자신의 지혜와 진리에 도달하는 데 있다. 지혜롭게 행동함으로써 모든 나쁜 결과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삶에 여유를 잃어버리고 성과주의에 급급한 가벼운 생각으로 사는 사람들에 큰 경종이 되는 이야기이다. 빠른 시일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어서 다음에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을 챙기려고 허둥거리는 사람들에게는 꿈바고사까는 바보처럼 취급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 행동을 순수하고 자제력 있고 사려 깊다고 칭찬하셨다. 그리고 꿈바고사까는 차분하게 명예와 존경을 쌓아올렸다. 이처럼 확실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 많은 나라에 안정과 편안함이 있을 것이다
. 단순히 물질적으로 잘사는 데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전통의 가치가 지켜지고 안정된 질서 속에서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사회가 조성 되어야 한다. 오늘 날 우리사회에서는 매우 귀중한 일일지라도 자신의 행보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깊은 사유나 넉넉한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려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반만년을 이어온 국토의 환경조차도 단시일 내에 해치워버릴 일쯤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항상 우리사회에는 아우성 그칠 날이 없나보다. 남을 욕하고 원망하면서 그 자리에 자신을 세우려고 싸우고 있다. 한번 파괴되면 회복하는 데에 다시 반만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 조차도 가볍게 처리되는 한국사회다. 힘 있고 가진 자들만의 잔치가 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조급함이 국토 환경 훼손
끝으로 재미있는 것은 빔비사라 왕의 사람 목소리에 대한 예견이다. 이는 빔비사라 왕처럼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서로 주고받는 대화나 억양 속에 각자의 마음이 다 드러나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불교는 언어에 대한 경책이 많으며, 위의 이야기에서도 남에게 전달되는 목소리의 중요성이 지적되고 있다. 부드러운 얼굴 자비스런 말(和顔愛語)로 모든 장벽을 넘어서라는 가르침 또한 마음에 새기도록 하자.
본각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936호 [2008-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