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부처님 마음

[천불만다라] 10. 죽음을 극복하는 법

淸潭 2008. 6. 23. 15:34
[천불만다라] 10. 죽음을 극복하는 법
죽음이 주변 맴도는데 꽃에 취해있는가
기사등록일 [2008년 03월 10일 월요일]
 

꽃을 꺾는 일에만 팔려
마음에 끈질긴 집착을 가지고
욕망에 빠져 허덕이는 사람은
마침내 죽음의 악마에게 정복당한다
 - 『법구경』

『법구경』 「꽃의 장」에는 꽃을 비유로 많은 가르침이 실려 있다. 꽃의 아름다움과 꽃처럼 덧없는 삶이 비유로서 설해져 있다. 이 게송의 이야기에는 천상에서의 하루와 지상에서의 일생이 서로 대비되어 있다. 빠띠뿌지까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여인은 33천의 천상세계에서 매일 같이 아름다운 꽃다발을 만드는 사람의 아내로 즐겁고 아름다운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이 여인은 잠깐 사이에 천상으로부터 지상에 내려와서 인간으로 태어났고 결혼을 해 네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러나 이 빠띠뿌지까 여인은 천상에서의 일을 모두 기억하고 언제나 천상의 남편에게 돌아가기를 소원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빠띠뿌지까 여인이 지상에서 심혈을 기울여서 열심히 한일은 승가에 귀의하여 스님들께 정성을 다해 공양을 올리는 일이었다. 그리고는 언제나 천상의 남편과 재회하기를 소원하였다. 어느 날 빠띠뿌지까 여인은 비구 스님들이 거주하시는 강당을 언제나 그렇듯이 깨끗하게 청소하고 모든 공양물과 필요한 물건을 정성을 다해서 준비해 놓고는 갑자기 죽어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평소의 소원대로 33천의 천상세계에 다시 태어났다.

여기에서 두 가지 사실이 이야기 된다. 하나는 인간 세상에 태어나서 결혼을 하고 어머니가 되었고 비구 스님들께 정성을 다하면서 일생을 살다간 그녀가 천상에 가서 보니 아직 천상세계는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평생이 천상의 반나절

그리고 또 하나는 인간세상에서의 사람 목숨이 너무나 덧없음에 모두가 놀라 망연자실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천상사람들에 의하면 인간의 일생이라는 것은 하루살이보다 못한 보잘 것 없는 짧은 삶인데, 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갖은 욕심을 다부리고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인간의 어리석은 삶을 어떻게 설명 하더라도 천상사람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부질없는 일에 마음을 얽매고 사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극명하게 이야기 되고 있다. 그런가하면 인간세상에서의 빠띠뿌지까 여인의 갑작스런 죽음은 수행자인 비구 스님들에게 조차도 너무나 무상하고 순간적인 일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한 비구 스님들의 놀란 마음을 위로하면서 부처님은 위의 게송으로 무상(無常)의 법문을 설하셨다고 한다.

빠띠뿌지까 여인처럼 천상에서건 인간에서건 시간의 장단(長短)에 관계없이 꽃의 아름다움에 취하듯 감각적인 쾌락만을 쫓아서 살아간다면 천년을 살던 하루를 살던 무슨 차이가 있을 것인가? 죽음이란 매순간 우리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 삶이라는 무대에 한번 배우로서 등장하면 죽음이 다가왔을 때 비로소 배우의 역할이 끝이 난다고 한다. 그 죽음과 동반자로서의 삶이 우리의 일상인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항상 삶과 함께 죽음을 보라고 가르치고 있다. 다른 종교는 영생(永生)을 부르짖기도 하고 신의 천국에 태어난다고 위로하기도 한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에게는 위로가 되고 고마운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불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위로의 말이 필요 없는 종교다. 삶은 반드시 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을 진리로서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삶이 참으로 공한 줄 깨닫고 나면 ‘누구와도 다투지 않고 그 무엇과도 겨루지 않으며 자신을 뽐내지도 않고 과격하지도 않으며 공(空)에 투철한 채 오직 여래(如來)의 길로 간다.’라고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자기 삶의 일부분으로 삼아서 꽃을 꺾는 일에만 마음을 팔려버리지도 않고 어리석게 끈질긴 집착에 얽매이지도 않으며 욕망에 빠져 허덕이지도 않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죽음의 덫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사람이라고 부처님은 칭찬하고 계시는 것이다.

삶의 무상 직시할 때 죽음 극복

죽음은 언제 닥쳐와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죽음은 도대체 무엇인가? 원숭이가 죽은 새끼를 버리지 못하고 품에 안고 다니듯이 죽음에 직면하고서조차도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울부짖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일상처럼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빈두루위왕설법경』에 나오는 안수정등(岸樹井藤)의 이야기가 우리를 크게 깨우치고 있다. 생사의 광야를 달리던 한 외로운 사람이 성난 코끼리에 쫓겨서 오래된 우물 안으로 뻗어있는 칡넝쿨에 겨우 두발을 의지하고 숨을 고르고 있다. 위에서는 성난 코끼리의 위세가 느껴지고 있는데 발아래는 독사가 입을 벌리고 있다. 겨우 의지한 칡넝쿨은 세월을 상징하는 검은 쥐와 흰쥐가 갉아먹고 있다.

이러한 위급지경에 놓인 이 외로운 사람은 칡넝쿨 사이 벌집에서 꿀이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꿀을 맛보는 쾌락에 빠져서 모든 위험을 잊어버리고 만다. 죽음에 직면하고도 욕망에 사로잡혀서 세월을 낭비하는 우리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비유한 이야기이다. 무상한 세월을 똑바로 직시하고 언제 죽음을 맞이하여도 여유롭고 당당할 수 있는 초탈의 삶을 살도록 다짐해 보자.

본각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940호 [2008-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