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경순왕의 자녀
경주김씨 자손으로서 알아 두어야 할 유적이 있어 간단히 소개한다.
경순왕의 맏아드님이신 마의태자께서는 손국 당시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에 입산 하기 전에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으로 들어가 주야로 조국을 걱정하며 꿈에도 잊지못하든 끝에 문득 은행나무 한 그루를 용문사 경내에 기념으로 신으시고 금강산으로 들어가셨다.
은행나무는 무럭 무럭 자라나 일천년을 지난 오늘에 까지 가지하나 노고함이 없이 독야청청 하듯이 무성하다.
이 은행나무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이고 가장 큰 것으로 우리나라의 천년기념 33호로 보호되고 있다.
기록으로 보면 세종대왕께서는 당상관의 관작을 재수 하셨다 한다.
마의태자 2세 순웅공은 고려국의 응양군 장군으로 명을 받고 경주김씨 첫째번 대종가를 이룬 어른이시다.
둘째 황 왕자는 장가드시고 첫아드님 까지 낳으시고 부왕이 신라를 양도 하심에 형님인 태자의 뜻을 따라 높으신 애국 충절을 고수 하시고 합천 해인사로 들어가시어 신라의 재기를 위해 귀이하고 불명 법공스님으로 종신토록 타계하셨다.
법공의 아들 휘자 운발은 후세 라주김씨 시조가 되었다.
셋째왕자 휘 명종께서는 영분공의 시호를 받으시고 또 고려국에서 경주군에 봉함에 후에 경주김씨의 둘째번 대종가 할아버지가 되신 것이다.
경순왕의 비 죽방부인 박씨이며 3남 1녀를 두시어 따님은 고려 5대 경종 헌화대왕 비가 되셨다.
경순왕은 고려 왕건에게 평화적인 양국이었지 결코 망국이 아님을 강조한다.
모든 사적중 삼국사기에서 양국의 상황을 소개하면 경순왕은 태조에게 귀부할때 향차 보마가 30여리에 연달았고 도로는 막히고 구경과 동정 경모하는 백성이 담을쌓아 올린것 같았다고 기록 되었고 특히 왕건은 멀리 떨어진 교외까지 경순왕을 맞아 위로하고 관동의 갑일구를 드리고 왕건의 큰딸 낙량공주를 아내를 삼도록하고 정승공(태자의 상위)을 봉하며 식색록 일천석을 주었다.
원컨데 우리 종실과 혼인을 맺어 영원히 구생 사위도 되고 장인도 되고 처남도 되자고 하시니 경순왕은 쾌낙을 하시고 왕건의 장녀 낙량공주를 아내로 맞음에 대신하여 내 딸은 아니나 왕께서는 우리 백부 영간역렴 어른은 지대양군사로 있는데 그의 딸이 덕용이 척미하니 이가아니면 내정을 정비 하기 어렵겠습니다 라고 답사하자 도리어 태조는 왕의 종매를 맞아 아들을 낳는데 현종왕의 선고로서 추증 안종왕이라, 그후 왕통을 계승한 사람이 신라 경김의 혈통을 이언 왕씨는 외손들 셈이다.
즉 평화로운 정략 결혼을 맺은 것이다.
그당시 왕의 맏 따님이 혼령을 넘었다면 왕건이 자기비로 맺어 경순왕과 왕건사이에 장인도 되고 사위도 되었을 것이다.
왕의 장녀는 고려 5대 경종왕 비가 되셨지만 후사가 없었다.
즉 세자가 없어 왕의 직계 혈통은 아니지만 백부 소생 현종왕이 보위에 올라 왕의 혈통을 이어 온 것이다.
강능왕씨는 우리 경김에서 분파 된것도 연유가 있는것 같다.
경순왕의 넷째 아드님은 고려 왕건의 장녀 낙량공주의 맏 아드님이신 대안군 은자 열자 활아바지께서는 영분공과 순웅공과 함께 우리 경주김씨 3대 지파의 중시조가 되었고 왕건 태조는 대안군의 외조부가 되신 것을 거듭 기술한다.
낙량공주의 소생이 5남 2녀가 있기 때문이다.
특기 할것은 경순왕께서는 9남 3녀를 두셨다고 하시나 과미려초의 정국이 혼잡하며 백성들이 쫓기고 굶는 어려움에 처하였던 탓인지 그분들의 소상한 사적과 휘자도 오래동안 실전되어 오다가 정조 8년 갑진 1784년에 대안군의 후예, 당시 좌정승으로 제임한 사자 목자 선조께서 계성부 북 십리밖에 종암아래 오룡산 후록에서 대안군의 묘소와 묘지석을 발견한바 위로 형님들과 아래로 아우님들이 휘자를 알게되었다.
일설에는 그고장에 자기네 선조를 위해 명문 거족을 이룰수 있는 경용산맥의 명당 묘지를 찾아보던 중 마침 이곳을 묘지를 잡고 장사 하려고 할때에 대안군의 묘지석을 발견되어 경헌공이 사목 선조에게 알리게 된 것으로 전하여 온다.
다음은 다섯째 아드님이신 휘 석자이요 일명 중석으로 전하여오나 형제분들의 이름이 와자인 것으로 미루어보아 석자가 옳은것이 아닌가 싶다.
벼슬은 시중이 되시고 뒤에 의성군으로 봉함에 의성김씨 시조가 되시고 다음은 여섯째 건이며 벼슬은 시랑에 좌복야의 관급에 오르고 뒤에 강릉군으로 봉함에 강릉김씨의 관조가 되었다
이곱째 선은 형님들과 같이 고려국의 언양군에 봉함에 후에 언양김씨 관조가 되시고 여덟째 추는 삼척군에 봉함에 후에 삼척김씨 관조가 되셨다.
경순왕의 별빈인 순흥안씨 몸에서 아들을 낳으니 이분이 휘 덕지요 관직은 예부상서령을 지내고 학성부원군이 되셨다고하나 어느 왕의 국명인지 미상이라 후에 울산김씨 관조가 되었다.
이러하여 전 비 박씨 소생 큰 따님은 경종왕비 왕씨 소생 맏 따님은 부군 장수황씨 경은 황의 황정성의 외대조이며 장수황씨의 관조가 되었고 둘째 따님은 즉 왕의 장년는 부군 이금서 경주이씨 관조이시며 유명한 익재선생의 13대조이며 23대손 백사 오성 대감도 이 어른의 후손이시다.
'참고실 > 慶州金氏'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김3-8,경주김씨 종훈,종가(宗訓,宗歌0 (0) | 2008.02.03 |
---|---|
경김3-7. 사관(賜貫) 및 사성일람 (賜姓一覽) (0) | 2008.02.03 |
경김3-5. 항렬(行列)이란? (0) | 2008.02.03 |
경김3-4. 중시조, 파조(中始祖, 派祖) (0) | 2008.02.03 |
경김3-3. 신라김씨왕조사 (0) | 2008.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