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실/역사의기록

[스크랩] 압록강은 흐른다

淸潭 2007. 4. 5. 17:32

 

                       3.1 조국  광복운동 하신 고 이미륵 박사님  제 57회 추모제

                           2007 년 3월24일  뮌헨 그래펠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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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한  친구의딸 빌트라우트

할며니를 병문한  유족대표     이미륵박사 손자 이영래 회장.

 

     

 고 이미륵 박사님.

■ 이미륵 박사기념 사업회
.. 032-815-1950
인천광역시 남동구 고잔동 6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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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Marz 1899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
1905 서당에서 한학(漢學) 공부 시작
1910 - 1914 해주제일소학교
1911 최문호와 혼인
1914 신식 중학교 입학 (건강악화로 휴학)
1914 - 1916 강의록으로 독학
1917 장남 명기(明起) 탄생
1919 딸 명주(明珠) 탄생
1917 - 1919 Eintritt in die Kyungsung Medizinische Hochschule;
Beginn des Medizin?Studiums in Seoul
1919 Teilnahme an einer Demonstration gegen die japanische Unterdruckung
Flucht uber den ¡??Yalu¡? nach Schanghai
1919 - 1920 상해에서 망명객들을 보조하며 독일유학 준비
1920 독일 뮌스터슈바르차하 분도회 수도원 도착
1921 뷔르츠부르크대학교 의학부 입학
1922 건강악화로 휴학
1923 하이델베르크대학교로 전학, 이어 휴학
1925 뮌헨대학교 생물학부 동물학과로 전학, 전과
1928 뮌헨대학교에서 이학박사 학위취득
논문제목: Regulative Erscheinungen bei der Planarienregeneration
unter anormalen Bedingungen
1928 - 1930 뮌헨에서 서예지도
1931 독지가인 자일러(Seyler) 교수家로 이사,문예지『Dame』에『하늘의 천사 Nachts in einer koreanischen
Gasse』를 독일어로 발표, 작가활동 시작
1943 그래펠핑에 문인단체 ‘Montags?Kolloquium' 설립
1946 『압록강은 흐른다 Der Yalu fließt』발표
1948 - 1950 뮌헨대학교 동양학부 강사 (한학 및 한국학 분야)
20. Marz 1950 타계

 

 이미륵박사 기념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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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LIBRARY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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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륵의 생애와 학                                

 

 


이미륵(李彌勒,1899. 3. 8 - 1950. 3. 20.). 본명 : 李儀景

독일의 문학가,  뮌헨대학교 교수

1. 이미륵의 일생

그는 1899년 황해도 해주시 남영정 205번지에서  부친 이동빈과 모친 이성녀 사이에 1남 3녀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미륵은 해주보통학교를 졸업하던 해(11세, 1910년)에 17세의 최문호와 혼인하여 슬하에 1남 1녀(명기, 명주)를 두었다.


1911년부터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고 1917년에는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 3학년이 되던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여 젊은 대학생으로서 조국의 기구한 운명에 울분을 품고 동료 학생들과 더불어 반일 전단을 인쇄하여 그것을 뿌리는 일에 주모자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왜경의 잔인하고 무자비한 총칼에 짓밟히는 조국의 비극을 가슴에 사무치게 품은 미륵은 끝내 어머니의 곁을 떠나 압록강을 건너 일단 상해로 망명의 길에 오르게 되었다.  상해에서는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기 위해 여권을 구하려고 무려 9개월이나 체류하는 동안 독립운동가들 밑에서 임시정부의 일도 돌보다가 결국 구하게 된 것이 중국여권으로 그는 유럽으로 향하는 여객선을 타고 희망과 고난이 얽힌 여정에 올랐던 것이다.그가 처음 도착한 곳이 마르세유였으며, 여기서 미륵은 한국을 잘아는 빌헬름씨를 만나 그의 안내로 뮌스터슈바르차하 라는 수도원에 도착(1920.5.26)

8개월 동인 그곳에 머물면서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독일어 공부에 열중하였다. 1921년 1월부터 뷔르츠부르크로 이사하여 그곳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다가 1923년에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옮겼다.

1925년부터 뮌헨대학에서 동물학과 철학 및  생물학을 전공하였다. 그후 1926년에는 뮌헨 대학의 외국인 학생회장으로 활약하였고, 1928년 7월 18일에 뮌헨 대학교에서 동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박사학위를 끝내고 곧 창작활동에 열중,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단편과 이야기들을 주로 독일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하였다.  1929년 김재원 씨가 뮌헨대학에 유학하게 되자 객지에서의 고독하던 마음을 어느 정도 달랠 수 있었다고 한다.

1931년 그의 동료였던 지그문트 여사와 디아스여사의 소개로 자일러 교수(미술)
집을 알게 되어 이 집에 기저하면서부터 생활의 어려움도 없어지고 자신의 작가적 소질을 발휘할 수 있는 기본적인 여건이  생겼다.  이듬해인 1932년 자일러 가가 그래펠핑으로 이사함에 따라 미륵도 독지가를 따라 함께 이사하여 줄곧 이 집에서 살았다.

1943년에는 그래펠핑에 문화인 단체를 조직하여 정지적으로 문학 작품 발표와 토론회를 가짐으로서 많은 작가, 교수, 연예인, 음악가, 화가, 의사, 언론인  등 지식인들과 교류가 생겼으니 그의 활동 범위는 점차로 확대되었고, 그의 능력이나 문학적인 소질도 차츰 인정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946년에는 그가 심혈을 기울여 십여년 간이나 써온 그이 대표작<압록강은 흐른다>가 뮌헨의 피퍼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독일문단과 독자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것은 이 작품에 대한 서평이 독일 신문에만 해도 1백여 편에 달했다는 사실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만년 (1947-1949)에 그는 뮌헨 대학교 동양학부에서 한학과 한국어및 문학을 강의하여 유명한 동양학 학자들을 배출시켰다.

1950년 정월, 그의 병세(위암)가 악화되자 그는 뮌헨 교외의 볼프라츠하우젠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받고 에벤하우젠 요양소로 옮겼으나 끝내 효과를 못 보고 꿈에도 잊지 못하던 조국과 가족들을 다시 보지 못한 채 1950년 3월 20일 51세를 일기로 임종하였다.

2.  이미륵의 작품세계

한국인 작가가 독일어로 작품을 발표하여 한국을 독일 땅에 소개한 것은 이미륵이 최초이며 유일의 인물이다. 화가 였던 배운성<배운성 이야기집>도 있었으나 이것은 배운성의 이야기들을 듣고 기록했다가 쿠르트 룽게가 편저하여 독일어로 발간한 것이기 때문에 이미륵의 작품활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경우이다.

생전에는 단 하나 밖에 없는 자전소설<압록강은 흐른다>로서 이미륵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고 유명해지자 그의 작가적 위치는 전후 독일문단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한때 이 작품은 독일에서 최우수 독문 소설로 선정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독점하면서 독자들을 열광시켰다. 그후 이미륵은 독자들의 열렬한 간청에 의해 속편 2부와 3부까지 탈고하였으나 그의 치명적인 병세, 사망과 더불어 원고의 대부분이 분실된 것은   지극히 애석한 일로서 독자들과 그의 벗들은 통탄을 금치 못하였다고 한다.

이미륵의 문학의 특성은, 첫째로 소재의 단일성이다. 그의 대표작 <압록강은 흐른다>는 물론, 유고로 소개된 <무던이>와 <이야기> 그리고 <압록강은 흐른다>도  주로 한국을 중심으로  동양의 전통과 민족성을 소재로 하고 있다. 특히 동양 문화의 핵심이 되는 윤리와 도덕을 기반으로 자연인을 추구한 점은 매우 중요하다 아니할 수 없다.

하수젠슈타인 같은 작가는 <압록강은 흐른다>에 나타난 동서양의 대면은 작가 이미륵  개인에게만 국한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본질적이고도 내면적인 대상은 전형적인 동양철학에 입각한 작가의 특출한 성격에서 나타나며, 동서양의 대면을 자기 자신 속에서 완성해 보려고 시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륵이 <압록강은 흐른다>에서 괴테의 <시와 진실>에서 처럼 소년시절, 교우관계, 학교생활, 자신의 정신적이며 실제적인 관심사들을 서술하면서 자기 자신과 역사적 사건들이 교체되는 가운데 하나의 인간이 완성되는 과정을 묘사하였다.

중편 <무던이>에도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다분히 내포되어 있다. 작품 속의 '우물'은 미륵 자신임이 분명하다. 모두가 한국의 문화와 풍토를 소재로 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둘째는, 문체의 간결성이다. 이미륵의 문체는 설명체도 묘사체도 아니며, 일체의 설명이나 과장 묘사를 제거하고 사건 자체의 골격만을 간결하게 서술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이미륵은 국내보다는 독일에 훨씬 더 잘 알려진 작가이다. 그래서 그는 독일 평론가들로부터 인물평도 받았고, 특히 <압록강은 흐른다>에 대한 서평과 문체평은 1백여 편이나 된다.

3. 이미륵 인물평 

이미륵은 국가와 민족 및 신앙을 초월하여 인간다운 인간이 되려고 진지하게 시도한 인물이었다.  그는 역사적인 현실에 대하여 넓고 깊고 인식과 판단력을 가진 박학자요, 인간의 존엄성을 주장한 인간적인 선각자였다. 이러한 생활속에서 그는 품성 좋은 인격과 부단한 노력으로써 동양인의 긍지와 정서를 서구에 인식시켰고,  한국인을 위해서는 문화사절 역할을 하였다. 이 역할의 수단이 바로 작가 생활과 대학 강의였다.

미륵의 친구 였던 브렘 교수에 의하면, 그는 민족적 특성의 종합이 세계적 보편성이 되어야 함을 항상 주장하였다고 한다. 그는 서재에 걸려 있던 '四海지內階同胞'라는 공자의 교훈도 그의 생활과 주장의 기본이 되는 것이며, 이것을 통하여 세계의 조국을 제창한 작가였다.

그는 독일어로 작가 생활을 했지만 그는 엄연한 한국 작가이다. 독일에서 발간한 《세계문학사전 》에는 이미륵이 한국 작가로 기록되어 있으며, 《현대작가사전》에도 그의 이름이 올라 있는데, 하물며 한국문학사에서 그의 이름 석 자마저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4. 주요 작품 (1)

발표작 및 기고문
- 뮌헨대학 박사학위논문, 1928년 을 비롯하여 43편. (2)

번역된 작품>

① "압록강은 흐른다" 
    - 영역 : 4권
    - 국역 : 8권

② 이야기, 한국의 이야기들 

  -국역 : 3권

③ 단 편
   -국역 :  3권(3)


유고

①동화와 이야기

  -33편

②소설과 수필

  - 10편

③ 학문적인 업적

   - 한국어 문법 등 4편(4)

서 간 문

①이미륵이 보낸 편지

-요세프 클레멘터 박사 등 14명에게  53통

②이미륵에게 온 편지

  - 슈테판 안드레스로 등 19명으로부터 21통(5)

사전 기록 ①쿠츠바히, 카알 아우구스트(편저) : 이미륵, (현대작가사전) 순수문학, 231페이지, 본(부비어  출판사)

1950년  ②폰 빌페르트, 게로 : 이미륵, (세계문학사전 ), 1권 807페이지, 슈투르가르트(크뢰너 출판사)

1963년 ③정규화 : 이미륵, (동아원색 세계대백과사전)
23권 122페이지, 서울 1983년 10월 10일

내용출처 : [기타] 압록강은 흐른다(외) 이미륵/정규화 옮김,범우사,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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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A spirit of Alpus 알프스의영혼
글쓴이 : Alpus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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