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 A씨, 지난해 버스 타고 출퇴근
"자리 양보 어려워… 배려석도 못 타"
버스기사, A씨 탈 때마다 승객 양해 구해
"조산 탓 인사 못 해… 마음 표현하고파"
서울 시내를 운행 중인 지하철 1호선 열차에 임산부 배려석이 마련돼 있다. 뉴스1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버스를 타고 출퇴근한 쌍둥이 엄마가 임신부 시절 매일 아침 마주한 버스기사의 선행을 알려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해 12월 쌍둥이를 낳은 A씨는 지난 2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버스기사님께 사례, 오지랖일까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은 3일 오후 5시 기준 10만 명 이상이 조회할 정도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광역버스 타고 출퇴근 "양보 못 받아봐"
A씨는 지난해 7월 쌍둥이를 임신한 상태로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1시간 30분 거리를 광역버스를 타고 출퇴근했다.
그는 "임신 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내가 임신부) 배지를 보지 못할 수 있으니 차라리 앉지 말자'라고 생각하고 임산부 배려석은 꼭 비워뒀고 일반석이어도 양보해 주곤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다른 분들께 제 자리 양보를 바란 적은 없다"면서도 "(막상 임신하니) 생각보다 임산부 배려석을 양보받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배가 나오기 전은 물론이고, 16주 이전부터 배가 빨리 나오기 시작했지만 말랐던 몸 때문인지 일반 승객들에게서 양보는 한 번도 못 받았다"며 "광역버스 맨 앞줄 2~4자리는 핑크색 임산부 배려석으로 지정돼 있는데 광역버스는 다들 맨 앞자리를 선호해서 (임산부 배려석에) 탈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항상 맨 앞자리 비어… 기사가 승객에 양해"
경기지역 13개 버스업체가 광역버스 '입석 승차 금지'를 시행한 2022년 11월 18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 버스정류장에서 출근길 시민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성남=뉴시스
그는 회사에서 출퇴근 시간을 덜 붐비는 시간대로 조정해 준 뒤로 출근길에 매일 같은 버스기사를 마주했다. A씨는 그는 "이상하게 어느 순간부터 제가 탈 때 맨 앞자리가 꼭 하나씩 비어 있어서 의아했다"며 "그러다 어느 날 제가 맨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사님이) 문을 열면서 앞에 앉아 계신 분께 양해를 구하고 계셨다"고 설명했다.
A씨에 따르면 버스기사는 승객들에게 "앞쪽에 앉아 계신 분, 죄송하지만 여기 임산부 타실 거라서 자리 좀 옮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양해를 구했다. A씨가 타기 전에 미리 자리를 비워 둔 것이다. 이때만이 아니었다. 버스기사는 이 정류장에 정차할 때마다 매번 A씨가 기다리고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A씨는 "줄에서 좀 뒤쪽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도 버스 정차하면서 쓱 훑으시며 저를 먼저 찾으신 다음, 저를 보면 앞쪽 승객분께 (양해) 말씀을 하고 계셨다"고 말했다.
"버스 회사 통해서라도 기사님께 마음 표현하고 싶어"
A씨는 휴직에 들어가기 전에 버스기사에게 편지와 사례를 하려고 했으나, 배가 갑자기 많이 불러 오면서 재택근무에 들어갔고, 재택근무를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조산하면서 감사 인사를 건네지 못했다.
그는 "이른둥이 육아에 치이고 보니 벌써 반년이 흘렀는데, 버스 회사 통해서라도 기사님께 마음을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며 "크진 않아도 작게나마 마음을 표현하는 게 오지랖이겠냐. 임신 기간 중 유일하게 배려받은 경험이라 저에겐 소중하고 특별하다"고 의견을 구했다.
누리꾼들은 버스기사의 선행에 감동하며 전혀 오지랖이 아니라는 답변을 남겼다. 이 글엔 "기사님 너무 멋지다. 승객들이 안 비켜줘서 직접 나섰나 보다", "이런 건 동네방네 알려도 된다. 버스 회사 게시판에 (칭찬 글) 남기면 어떻겠냐", "기사님 정말 감사한 분이다. 꼭 이런 미담이 널리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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