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년된 서점 '눈물의 폐업'…도덕 교과서에도 실린 감동 스토리[일본人사이드]
전진영기자
입력2024.09.14 07:30
수정2024.09.14 10:57
동일본대지진 강타한 센다이시 서점 주인
TV 끊겨 겁에 질린 아이들 위해 서점 개방
아이들 "만화책 읽는 대신 200원씩 내자" 모금
감동 스토리에 도덕 교과서도 실렸지만
출판업계 불황에 결국 폐업 결정
일본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양력으로 추석을 보내죠. 8월 15일을 전후로 우리나라보다 한 달 이른 연휴를 보내는데요. 최근 일본에서는 이 추석 때 고향을 찾은 귀성객들이 들린 서점이 화제가 됐습니다. 62년간 3대째 걸쳐 운영해온 센다이시의 한 책방이 폐업한다는 소식에, 추억을 함께한 사람들이 모여 마지막 인사를 전한 것인데요.
이 책방은 사실 일본 사람들에겐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동일본대지진 당시 큰 피해를 입었던 센다이시에서 겁에 질린 아이들에게 서점을 개방해 아이들의 아픔을 달래줬고,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많은 구호물자와 성금이 모였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의 폐업을 결정하게 됐다는데요. 오늘은 이 서점 주인 시오카와 유이치씨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시오카와씨가 운영하던 센다이시의 책방.(사진출처=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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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카와씨는 센다이시 아오바구에서 '시오카와 서점'을 운영하는 사장님입니다. 부모님 때부터 62년간 영업을 해왔던 곳이라고 하네요.
시오카와씨와 그의 가게가 유명해진 것은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 직후였습니다. 당시 동일본대지진으로 센다이시도 굉장히 큰 피해를 입었는데요. 전기도 다 끊기고 기반시설이 무너진 상황에서 TV 이런 것들은 볼 수가 없으니 아이들이 겁에 질릴 수밖에 없었죠.
시오카와씨는 "무서워하는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지진 발생 뒤 3일 만에 가게 문을 다시 열게 됩니다. 일단 가게 문을 열면 아이를 달랠 책이라도 보여주고 싶으니 사람들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고 해요. 지진에 책들도 책꽂이에서 모두 떨어져 엉망진창이었지만 대충 정리한 뒤에 가게를 열었다고 합니다.
영업 재개 후 이곳은 사람들의 대피소이자 사랑방이 됐다고 합니다. 모두가 불안한 마음으로 가게에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 됐죠. 문제는 당시 센다이시로 들어오는 도로 등이 막혀 물류가 들어올 수 없었고, 가게에는 새로운 책이나 만화는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재고로만 사람들이 읽어야 했다는데요. 그중 한 손님이 지진 나기 얼마 전에 다른 동네에 갔다가 구입한 만화잡지 '소년 점프'의 최신 호를 내놓습니다. "나는 이미 다 읽었으니 시오카와씨가 맡아주면 되겠다"라고 말한 것인데요.
동일본대지진 당시 시오카와씨의 책방에서 아이들이 돌려보던 만화잡지 '소년점프'.(사진출처=NHK)
원본보기 아이콘그래서 시오카와씨는 가게 문에 손글씨로 '소년점프 읽을 수 있습니다'라는 글씨를 써 붙였다고 해요. 단 한권이지만 금방 입소문이 나서 아이들이 차례차례 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서로 잡지를 나눠 읽고 이야기를 하며 아이들은 금방 웃음을 되찾았다는데요. 겁에 질렸던 아이들이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면서 같이 온 부모들이 오히려 눈물짓기도 했다고 합니다. 100명 이상의 아이들이 잡지를 돌려보고 손을 타면서 너덜너덜해지기도 찢기기도 했는데, 테이프로 계속 붙여가면서 이를 돌려봤다고 하네요.
이러한 모습이 소개되면서 구호 물품으로 일본 전국에서 다양한 잡지가 이곳으로 보내지게 됩니다. NHK가 문을 닫는 가게를 취재하던 도중 13년 전 9살의 나이에 이곳에서 만화를 읽었다는 청년이 찾아오기도 했는데요. 이 사람은 "지진 뒤에 집에 틀어박혀 멍하니 있었는데 가게에서 만화를 읽고 많은 힘을 받았다"며 "여러 사람의 생명이 위태로웠던 시기 소년점프가 읽고 싶었다니 역시 어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때 이곳에 왔을 때 너무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출판업계에서도 "재해가 닥쳤을 시기 아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줬다"며 감사장을 주기도 했죠.
동일본대지진 당시 서점에 붙었던 벽보. 소년점프를 읽을 수 있으니 방문하라는 내용이다.(사진출처=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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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피소드는 '한 권의 만화잡지'라는 제목으로 일본 중학교 3학년 도덕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데요. 여기에는 아이들이 잡지를 읽게 돼 감사한 마음을 전한 뒷이야기도 실려있습니다. 아이들은 시오카와씨가 가게 문을 열고 잡지를 읽게 해줘 감사한 마음에, 이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데요. 그리고 한번 읽을 때마다 20엔을 내자는 규칙을 정했다고 해요. 책 한번 읽을 때마다 200원 정도 코 묻은 돈을 낸 건데요. 아이들이 동전을 조금씩 모은 결과 4만엔(37만원) 남짓한 돈이 모였다고 합니다. 시오카와씨는 그 돈을 센다이시보다 더 큰 피해를 본, 쓰나미가 휩쓸고 간 지역에 책을 전달하는 프로젝트에 기부했다고 합니다. 한 권의 잡지가 가져온 기적으로 소개돼있죠.
이러한 따뜻한 책방도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출판업계의 불황이 영향을 미친 것인데요, 사람들이 더 이상 종이책을 안 보고 전자책을 보는 등의 트렌드 변화가 시작되면서 이곳도 경영난을 겪게 됩니다. 시오카와씨는 어떻게든 서점을 이어가 보려고 병원 관리 사무까지 담당하는 투잡까지 뛰었다고 해요. 그런데도 결국 눈물의 폐업에 이르게 됐다는데요.
서점주인 시오카와 유이치씨.(사진출처=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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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말 부로 영업을 종료한다는 소식에 일본의 8월 15일 양력 추석에 맞춰 귀성하는 사람들마다 모두 이곳을 찾아 마지막을 함께했다고 합니다. 시오카와씨는 "어떻게든 남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세상에는 이길 수 없었다"며 책방을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고 하는데요.
시오카와씨는 NHK와의 인터뷰에서 "사실 일본 각지에서 지진은 어디에서나 일어나니 같은 상황이다"라며 "무서워하는 아이들을 돕고 모두가 함께 협력해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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