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머 니
어느 해 겨울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아,이제는 내 생명의 뿌리가 꺾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이라면 지체없이 달려갔겠지만, 그 시절은 혼자서도 결제(승가의 안거 제도)를 철저히 지키던 때라, 서울에 있는 아는 스님에게 부탁하여 나대신 장례에 참석하도록 했다. 49재는 결제가 끝난 후라 참석할 수 있었다. 단에 올려진 사진을 보니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나는 어머니에게는 자식으로서 효행을 못했기 때문에 어머니들이 모이는 집회가 있을 때면 어머니를 대하는 심정으로 그 모임에 나간다. 길상회에 나로서는 파격적일 만큼 4년 남짓 꾸준히 나간 것도 어머니에 대한 불효를 보상하기 위해서인지 모르겠다. 나는 이 나이 이 처지인데도 인자하고 슬기로운 모성 앞에서는 반쯤 기대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머니는 우리 생명의 언덕이고 뿌리이기 때문에 기대고 싶은 것인가. (법정스님) 성적표를 받아들고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갔다 어머니가 중환자실에 계셨기에 얼른가서 엄청 좋아진 내 성적표를 보여주기 위해서 ....... 고통스러워 하는 어머니께 조금미라도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싶었기에 ........ 병원 입구에 도착하니 가족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아니 아픈 어머니 놔두고 나와 있냐고 화를 내니" 돌아가셨단다 ....... 돌아가셧단다....... 몇달동안을 병원에서 어머니 간호하며 학교를 다니던 그때 어머니 소원은 작은 아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이 소원 이란다 그때가 고2 ......... 수업은 포기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술로 불타는 청춘을 달래던 때이다 학업은 포기했지만 어머니 마지막 소원이라고 해서 두달간 죽어라고 공부만 했다 영어,수학은 기초가 없어서 포기하고 암기과목만큼은 책을 외울 정도로 해서 60명중에 60등 하던내가 무려 30등을 올려놓았다 부쩍오른 내 성적표 보고 기뻐할 어머니를 생각하며 병원에 도착 했는데 ........... 돌아 가셨단다............... 평생 짐을 지고 자식을 위해 살다 가셧던 어머니........... 성작표를 찢어 던지며 어머니를 부르짖던 그때가 떠오릅니다 뒤늦게 정신 차리고 효도를 할려고 한다고 해도 부모님은 기다려 주지 않는것 같습니다 지금 다행히 살아계신다면 사랑한다고 전하며 마음의 표현을 해야 할것 같습니다 사랑 합니다 어머니 ! 언젠가는 시간과 공간을 버리고 떠나는 날 하늘에서 뵙겠습니다 그때가지 부디 편안히 계시길 소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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