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실/역사의기록

조선의 멸망

淸潭 2016. 10. 10. 10:47
조선의 멸망


순종 즉위 직후인 1907년 7월, 일제는 이른바 한일신협약(정미 7조약)을 강제로 성립시켜 국정 전반을 일본인 통감이 간섭할수 있도록 하였고 정부 각부의 장관을 일본이 임명하는 이른바 차관 정치를 시작하였다. 이렇게 내정간섭권을 획득한 일본은 곧 재정 부족을 이유로 한국 군대를 강제 해산시켰으며 1909년 7월에는 기유각서에 의해 사법권마저 강탈해갔다. 이처럼 순종을 허수아비 황제로 만든뒤 이토총독이 자국으로 돌아가고 소네 총독을거쳐 군부 출신의 데라우치 총독이 부임하면서 일본의 대한제국 식민화 계획은 더욱 강화된다.

일제는 1909년 7월 기유각서의 각의에서 '한일합병 실행에 관한 방침'을 통과 시킨뒤 러시아와 사전에 만주문제를 협상하기 위해 이토를 만주에 파견하였다. 이때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포살하자 이를 기화로 한반도 무력 강점 계획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일제는 이를 위해 친일 세력인 이완용, 송병준, 이용구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매국 단체인 일진회를 앞세워 조선인이 원함에 따라 조선과 일본이 합병한다는 논리로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조약을 성립시켜 대한제국을 멸망시켰다.

조선 멸망후의 순종


일본에 의해 대한제국이 무너진 뒤 순종은 황제의 위치에서 왕으로 강등되어 창덕궁에 머물렀다. 일본은 창덕궁에 머무르는 그를 이왕이라 불렀고 왕에 해당하는 대우를 해주면서 왕위의 허호는 세습되도록 조처했다. 순종은 폐위된후 16년 동안 창덕궁에 머물다가 1926년 4월 25일에 53 세를 일기로 한많은 생애를 마쳤다. 이해 6월 10일 그의 국장이 치러지게 되는데 과거 고종 인산날에 일어났던 3.1 만세운동에 이어 6.10 만세운동이 일어난다.

순정효황후 윤씨


해풍부원군 윤택영의 딸이다. 순종의 첫번 째 황태자비 순명효황후 민씨가 1904년에 사망하자 1906년 12월 황태자 비에 책봉되어 입궁했다. 이후 1907년 순종이 황제에 오름에 따라 황후가 되었으며 그해 여학에 입학하여 황후궁에 여시강을 두었다. 1910년 국권이 강탈될 때 병풍 뒤에서 어전회의를 엿듣고 있다가 친일파들이 순종에게 합방 조약에 날인할 것을 강요하자 이를 저지하고자 치마 속에 옥새를 감추고 내놓지 않았다 한다. 하지만 숙부인 윤덕영에게 강제로 빼앗기고 말았다.

망국후 일제의 침탈 행위를 경험했으며 해방과 6.25를 겪고 만년에는 불교에 귀의하여 대지월이라는 법명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1966년 71세를 일기로 낙선재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슬하에 소생은 없었으며 죽은뒤 순종과 함께 경기도 미금시의 유릉에 묻혔다.


 

 


 


'참고실 > 역사의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왕의 명칭에서 祖와 宗의 차이  (0) 2016.10.16
광복 70년 대한민국의발자취  (0) 2016.10.16
국립 중앙 박물관   (0) 2016.10.03
남인과 서인의 禮론정쟁   (0) 2016.09.23
육룡이 나르샤 ..  (0) 2016.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