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조의 허종과 이장곤(어우야담)
허종(許琮)은 연산조(燕山朝)의 의정(議政)이다. 처음에 대간의(大諫議:대사간)가 되었을 때, 선왕(先王: 성종)이 장차 왕비 윤씨(尹氏)를 폐위하려고 하여 조정의 의론이 하나로 모아졌다. 허종이 새벽 일찍 계(啓)를 올리려고 대궐에 가다가 누이의 집에 들렀다. 허종의 누이는 경사(經史)에 박식하여 섭렵하지 않은 책이 없었으며 <주자강목朱子綱目>에 가장 정통했다.
누이가 허종을 보고 말했다.
"공은 어째서 근심스런 빛을 띠고 있으며, 또 어이해 이다지도 일찍 찾아왔소?"
허종이 대답했다.
"조정의 의론이 이미 폐비하는 쪽으로 정해졌습니다. 이 아우의 직책이 간장(諫長: 대사간)이어서 오늘 간언하는 일을 맡아야 하기에 걱정이 됩니다."
누이가 말했다.
"전대(前代)를 두루 살피건데, 아들이 임금의 자리를 잇게 되어 있는데, 그 어머니를 질책하여 폐위하면 화가 그 일을 말한 사람에게 미치지 않았소? 절대로 가서는 안 될 것이오."
허종이 크게 깨닫고 도중에 거짓으로 말에서 떨어져 기절했다. 하리가 정원(政院: 승정원)에 달려가 고하고, 의원을 부르고 약을 구해 가마에 태워져 집으로 돌아왔다. 조정에서는 그날로 새 간장으로 이 모(李某)를 뽑아 끝내 그 일을 성사시켜 윤씨를 폐위하였다.
후에 연산군이 즉위하여 그때 간언했던 자들을 모두 죽였으니 이모의 죄는 멸족에 이르렀는데 허종은 면할 수 있었다.
당시 홍문관(弘文館) 교리(校理) 이장곤(李長坤)이 도망하여 조정에서 그를 급히 체포하고자 했다. 이장곤은 미복(微服)을 하고 걸어서 도망했는데, 몹시 지쳐서 길가에서 잠이 들었다.
뒤쫓던 서리가 자세히 살펴보니 짚신이 매우 컸다. 그는 이상하게 여기며,
"발이 큰 것은 이장곤과 비슷한데 베옷과 초립을 보니 아니로군." 하고는 내버려 두고 갔다.
이장곤은 도중에 굶주려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때는 여름으로 시냇가에 사람이 눈 똥이 있었는데, 반쯤 삭은 보리밥이 섞여 있었다.
이를 움켜쥐고 물에 씻어서 삼켰더니 눈이 떠지고 기력을 되찾았다.
기어서 민가에 이르러 숨어 지내며 백정의 사위가 되었다.
이장곤은 몸이 장대했지만 일은 잘 하지 못했다.
백정의 집에서 괴롭게 여기며 말했다.
"자네는 체구가 커서 옷감도 많이 드는데, 괴을러터져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니 어찌할고?"
연산군이 폐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이장곤은 장인에게 청하여 교생에게 홍의를 구해 달라고 했다.
장차 고을 원님을 만나려 하자, 이웃 사람들이 비웃으며 말했다.
'백정의 사위가 외람되게 고을 수령을 보겠다니, 무례하여 곤장을 맞고 싶은 게로군."
드디어 고을 원에게 명함을 들였더니, 고을 원이 허둥지둥 뛰쳐나와 그를 맞이하여 객관의 상석에 모시고 음식을 살펴보고 맛있게 마련해 올리니 고을 사람들이 매우 괴이하게 여겼다.
드디어 조정에 알려져 부르심을 받고 나는 듯 빠른 역마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후에 대관을 지냈으며 관직이 이상(二相: 찬성)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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