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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물장수

淸潭 2016. 8. 30. 11:02

방물장수

씨암탉 몸보신한 홍 서방
봄날 외상준 아녀자들 집으로 수금을 나서는데…
포토뉴스
 지글지글, 끈적끈적하게 온 세상을 덮고 있던 염천(炎天) 할망구의 치맛자락도 절기의 순리는 이길 수 없어 잠을 깬 처서 장군의 헛기침 소리에 꽁무니를 빼버렸다. 아침저녁 상큼한 바람이 불어오자 여름 내내 마루에서 낮잠만 자던 방물장수 홍 서방이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우선 씨암탉 다섯마리를 가마솥에 고아놓고 열흘 남짓 보신을 하자 새벽이면 아랫도리 속옷이 뚫어질 듯 차양막을 쳤다.

 그는 방물고리짝을 매지 않았다. 한산 세모시 두루마기에 반짝반짝 빛나는 통영갓을 쓰고 허리춤에 빈 전대를 차고 치부책만 속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섰다.

 마누라와 자식들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홍 서방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꽃피고 새 우는 봄날은 아녀자들의 가슴을 부풀게 하는 계절이지만 집구석의 쌀독은 바닥을 드러내는 때라 방물장수는 이집 저집 외상을 깔아놓고 처서가 지나면 치부책을 펼치며 수금을 하는 것이다.

 이슬을 맞으며 떠난 걸음이 이십리 밖 음천골에 닿았다. 우선 최 진사댁에 들어가 안방마님 앞에 문안 인사를 드리고 치부책을 펼쳤다.

 “삼월 이렛날, 음천골 최 진사님댁. 백면지 한속. 유둔 하나. 은자 하나. 합계 열여섯냥.”

 홍 서방은 안방마님으로부터 돈을 받고 인절미에 매실액을 얻어먹은 후, “마님, 제가 한여름 동안 장사를 접고 이름난 스님으로부터 뜸과 지압을 배웠습니다.”

 마님이 한동안 말을 않고 홍 서방을 빤히 보더니 “그래, 안 그래도 오른 어깨가 아파 물그릇도 못 드네.”

 “제가 간단히 지압을 하겠습니다.”

 남편 최 진사는 첩살림을 차려 놓고 조상 제삿날만 본가에 들어오는 터라 안방마님은 남정네의 손이 어깨에만 닿아도 온몸이 불덩이가 되었다. 어깨를 주무르는 손이 슬쩍슬쩍 목덜미를 스치고 겨드랑이도, 가슴 위쪽도 누르자 깜짝깜짝 놀라면서도 마님은 눈을 감고 몸을 맡겼다.

 홍 서방은 회심의 미소를 흘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몇번 더 뜸을 들이다가 겨울쯤 끝장을 봐줘야지.”

 최 진사댁을 나올 때 마님은 홍 서방에게 눈을 흘기며 “좋은 방물 들어오면 나한테 먼저 들르게”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땅거미가 질 때쯤 홍 서방은 개울 건너 송 과부댁을 찾았다.

 홍 서방이 송 과부댁 사립문을 열고 들어갈 땐 제집 들어가듯 당당하다. “에구머니나, 이게 누구야 글쎄” 홍 서방이 송 과부 엉덩이를 툭 치면서 “누님, 얼굴이 훤해졌수다.”

 개울 건너 외딴집이라 담 너머 보는 사람도 없어 홍 서방이 윗도리를 훌렁 벗고 우물 옆에 엎드리자 송 과부는 스스럼없이 물 한바가지를 퍼서 등목을 시켰다.

 송 과부의 손길이 등판을 밀더니 앞가슴 젖꼭지까지 건드려 홍 서방의 아랫도리를 뻐근하게 만들어 놓고 부엌으로 들어가자 홍 서방도 따라 들어가 뒤에서 치마를 걷어 올렸다.

 “지난 장마철에 이 습한 곳에 곰팡이는 안 슬었소, 누님?” “아아아~아”

 머루주에 고등어자반을 곁들인 저녁상을 물리고 홍 서방은 호롱불 밑에서 치부책을 정리하다 말고 호롱불을 끄고 송 과부를 쓰러뜨려 부엌에서 하다만 구들 농사를 질펀하게 해치웠다.

 코를 고는 홍 서방 품에서 빠져나온 송 과부는 낮잠을 길게 잔 터라 잠이 안 와 호롱불을 켜고 홍 서방의 치부책을 훑기 시작했다.

 “이것 봐라” 치부책엔 방물 거래만 적어놓은 것이 아니라 색탐 기록이 빼곡하게 적혀 있는 것이다.

 이튿날 아침. 홍 서방이 치부책을 펼치더니 “누님, 지난 삼월 열엿새날 박가분 하나, 여섯냥 주시오.”

 송 과부는 도끼눈을 치켜뜨며 “사람을 어찌 그리 차별하오! 오씨 댁에는 동백기름을 그냥 주고!”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쳤다.

 홍 서방이 빙긋이 웃으며 “누님, 방물 값이 종류마다 다르듯이 여자 값도 다른 법이오.”

 송 과부는 부르르 떨며 “내가 오씨 댁보다 못한 게 뭐야! 나이도 내가 두살 아래고 얼굴 몸매, 내가 못해?”

 홍 서방은 한숨을 쉬더니 “누님, 그런 문제가 아니라 누님은 과부고 오씨 댁은 유부녀요. 바람피우는 데 가장 짜릿한 건 유부녀고 다음이 처녀.” 한참 뜸을 들이더니 “과부는 오히려 내가 돈을 받아야지!”

출처; 농민신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