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인물들의 위용
영원군(寧原君) 홍가신(洪可臣)이 송구봉(宋龜峯)과 매우 친하였다. 영원군의 아우 홍경신(洪慶臣)이 송구봉을 비난하며,
“형님은 어찌 송사련(宋祀連)의 자식과 친하게 지내십니까. 제가 그를 만나면 반드시 모욕을 주겠습니다.”
하자, 영원군은 웃으며 말했다.
“너는 일단 한번 운장(雲長)을 만나 보기나 하여라.”
얼마 뒤에 운장이 영원군의 집에 찾아왔다. 홍경신은 험상궂은 표정으로 운장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가 뜰에 이르자, 갑자기 내려가 절하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절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오라 무릎이 저절로 굽혀졌습니다.”
문곡(文谷) 형제가 우암(尤菴)을 공경히 섬겨 우암이 자기네 집에 찾아오면 언제나 온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정중히 맞이하였다. 이훈좌(李勳佐)는 정승 퇴우당(退憂堂)의 사위인데, 품성이 거칠고 방자하여 항상 우암을 무시하고 배척하며,
“우암은 단지 일개 촌학구(村學究)일 뿐인데 이렇게 지나치게 공경할 게 뭐람. 내 만나면 반드시 몽둥이로 때려 줘야지.”
하였다. 얼마 후에 문지기가 송 선생께서 오셨다고 아뢰자, 문곡 형제는 문을 나와 공경히 맞이하고 집안의 아이들까지도 의관을 정제하고 기다렸으나, 이훈좌만은 산발한 채 몽둥이를 들고 문 옆에서 기다렸다. 그러다가 우암이 오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고는 몽둥이를 버리고 달아나 숨더니 감히 나오지 못하였다. 우암이 그를 불러 말을 건네려 하였지만, 이훈좌는 송구하여 식은땀만 흘리며 입도 뻥긋하지 못하였다.
춘천의 승려인 지안대사(志安大師)가 청평사(淸平寺)에 머무니, 춘천에 사는 사대부 대다수가 그를 찾아가 절하고 뵈었다. 그러나 정승 풍원군(豊原君 조현명(趙顯命))의 조카 조재극(趙載極)만은 그를 배척하며,
“머리 깎은 중놈이 사대부들의 절을 받는단 말인가. 내 눈에 안 띄었기 망정이지, 나한테 걸리면 반드시 혼내 주리라.”
하였다. 대사가 이 말을 듣고 조재극에게 사과를 하러 가는데, 조재극이 마침 소를 타고 교외로 나가다가 도중에 대사 일행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대사의 용모가 출중하고 따르는 중들도 모두 모습이 깨끗하고 엄숙하여 세속의 태도가 없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소에서 내려 절하였다.
이상 세 가지 일화는 보여 준 의미가 똑같다 하겠다.
성대중(成大中)의 청성잡기 제3권 > 성언(醒言)에서
[주B-001]성언(醒言) : 사람을 깨우치는 말이란 뜻으로, 총 3권에 인물평 및 일화, 사론(史論), 필기(筆記), 한문단편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주D-001]홍가신(洪可臣) : 1541 ~ 1615. 자는 흥도(興道), 호는 만전당(晩全堂)ㆍ간옹(艮翁),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1604년 이몽학(李夢鶴)의 난을 평정한 공로로 청난 공신(淸難功臣) 1등에 책록되고, 이듬해 영원군(寧原君)에 봉해졌다.
[주D-002]송구봉(宋龜峯) : 구봉은 송익필(宋翼弼 : 1534 ~ 1599)의 호이다.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운장(雲長)이다. 판관(判官) 송사련(宋祀連)의 아들로 신분이 미천하였으나, 학문에 힘써 이이(李珥), 성혼(成渾) 등과 친교를 맺고 대학자로 추앙받았으며, 인품이 뛰어나 당시의 제갈량(諸葛亮)으로 알려졌다.
[주D-003]송사련(宋祀連) : 1496 ~ 1575. 모친이 천첩의 소생으로, 신분이 미천한 것을 한탄하여 심정(沈貞)에게 안당(安瑭)이 반역을 꾀하였다고 무고하고 그 공로로 벼슬이 관상감 판관(觀象監判官)에 이르렀다. 그의 딸이 종실에 시집가고 아들 5형제도 모두 명문가에 장가들었으며, 송익필과 같은 쟁쟁한 학자가 나오는 등 집안이 한때 번창하였다. 그러나 1586년(선조 19) 안당의 종손인 안로(安璐)의 처 윤씨(尹氏)의 상소로 안당의 무죄가 밝혀지자, 관작이 삭탈되었다.
[주D-004]문곡(文谷) 형제 :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 : 1624 ~ 1701), 퇴우당(退憂堂) 김수흥(金壽興 : 1626 ~ 1690),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 : 1629 ~ 1689)을 이른다. 조부는 김상헌(金尙憲), 부친은 김광찬(金光燦)이다.
[주D-005]우암(尤菴) : 송시열(宋時烈 : 1607 ~ 1689)의 호이다.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영보(英甫)이다. 친척인 송준길(宋浚吉)의 집에서 함께 공부하여 두 사람이 훗날 양송(兩宋)으로 불렸으며, 기호학파의 대표이자 노론(老論)의 영수(領袖)였다.
[주D-006]지안대사(志安大師) : 1664 ~ 1729. 조선 후기의 대선사(大禪師)로 자는 삼락(三諾), 호는 환성(喚醒), 성은 정씨(鄭氏)로 춘천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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