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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談] 왜 국시를 한다더니 수제비를 했소?

淸潭 2015. 12. 23. 10:40

왜 국시를 한다더니 수제비를 했소?

 


하루는 서산대사하고 사명당이 길을 같이 가다가 어느 나무 그늘에서 한참 쉬었어. 쉬면서 보이께네 소가 두 마리 풀밭에 눕었그덩. 한 마리는 검둥소고 한 마리는 누렁소래. 그래 어느 소가 먼저 일날지(일어날지) 궁금했단 말이래, 사명당이. 서산대사가 선생이고 사명당이 제자이께네 선생한테 사명당이 물었든 모양이래.

“저 소 두 마리가 풀을 뜯어먹다가 누(누워) 있는데, 둘 중에서 어느 소가 먼저 일어나까요?”

“글쎄, 자네가 한분 알아맞촤 보게!”

“그럼 육효를 뽑아 보겠습니다.”

사명당이 육효(六爻)를 뽑아보니 불 화(火)짜가 나오그덩. 호롱불이든 장작불이든 그 색은 누렇거나 뻘겋단 말이지.

“아, 불 화짜가 나오는 걸 보이, 누렁소가 머여(먼저) 일나겠습니다.”

서산대사가 가만 듣고 있다가, 어긋장을 놓네.

“나는 검둥쇠가 머여 일날 거 같은데.”

사명당이 자신이 있단 말이지. 불 화짠데 검둥쇠가 될 까닭이 없그덩. 그래 요번에는 선생을 이길 것 같애.

“그럼 두고 봅시다. ”

그래 잠깐 앉아서 쉬다가 보이 참 검둥쇠가 먼첨(먼저) 일나그덩. 사명당이 졌단 말이지. 도무지 알 도리가 없어.

“선생님, 어예(어떻게) 그렇습니까? 분명히 불 화짜가 나왔는데, 어띃게 그 누렁소가 아니고 검둥소입니까?”

“이 사람아 풀이를 잘 해야지. 불이 일날 때는 연기가 먼저 나고 불이 나지, 연기도 나지 않고 불부텀 나지는 아하잖는가(안 하잖는가, 안찮는가)?”

듣고 보이 그렇그덩. 확실히 졌단 말이래. ‘역시 스승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나서 또 서산대사를 앞세우고 길을 떠났다.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서 참 어느 친구 집에 찾아드갔어. 서산대사하고 같이 절에서 수도를 하다가 고만 불공드리러 온 색시하고 눈이 맞아가주고 속세에 내려와 사는 친구라. 인제는 노인이 다 됐지만 옛친구가 찾아오이 얼매나 반갑노?

“잠깐 기들리게(기다리게). 내가 안에 가서 저녁을 시켜놓고 옴세.”

주인 영감이 안에 드가고 나이 무료했든지, 사명당이 또 선생한테 묻는단 말이지.

“선생님, 오늘 저녁은 뭔 음식이 나올까요?”

“글쎄, 자네가 먼저 맞촤 보게.”

“뭐가 나오는가 육효 한분 뽑아 보겠습니다.”

“뽑아 보게!”

“뱀 사(蛇)짜가 나옵니다. 뱀이라. 옳지, 국시(국수)가 나올 거 긑니더(같습니다).”

“글쎄, 내가 보기에는 수제비가 나올 걸.”

주인이 할마이한테 저녁을 씨겨 놓고 들오다가 그 말을 들었단 말이지. 안에 가서

“저녁 준비를 뭘 할라노?”

하고 물었더니, 할마이가,

“인지(이제) 반찬도 없는데, 밥을 할 수도 없고 밀갉이(밀가루가) 쪼매(조금) 있으이 국시를 얼른 할랍니다.”

근단 말이래. 그라만(그러면) 국시를 하라 카골랑 왔는데, 사제지간에 알아맞추기를 하는 걸 들어보이 사명당은 국시를 한다 카고 서산대사는 수제비를 한다 카이, 스승이 틀렸단 말이래.

‘햐-! 선생도 늙으이(늙으니) 별 수 없구나! 사명당이 참 많이 배웠구나! 인제 스승인 서산대사를 능가하는구나! ’

카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 사랑에 들가가주고(들어가서) 자기도 그 시합에 끼어들었어.

“이 사람 서산, 요번에는 자네가 틀렸네. 사명당이 맞았네. 내가 방금 안에 가서 할마이가 국시하는 걸 보고 왔네.”

“글쎄, 맞았는지 틀렸는지 저녁상이 들오그던 보세.”

 

이카그덩. 그래 참 이런저런 이얘기를 하고 있다이, 할마이가 저녁상을 들고 오는데 보이, 국시가 아이라 수제비그덩. 영감이 깜짝 놀랬어. 분명이 국시를 한다 캐놓고 수제비를 채려 나오이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그덩. 얼른 안으로 들가서 할마이한테 물어봤어.

“할마이 아까는 국시 한다디(한다더니) 왜 국시를 아(안)하고 수제비를 했소?”

“글아이라(그렇지 않아도) 국시를 할라꼬 밀가루에다 물을 붓고 반죽을 한다는 게 물을 너무 많이 부가주고(부어서) 반죽이 물러서 국시가 안돼요. 그래 밀가루를 더 탈라 그이(그러니) 밀가루도 더 없고, 독에 있는 대로 다 털어 반죽을 했으이 어쩌겠어요? 그래 할 수 없이 수제비를 했지요.”

그래 듣고 보이, 일이 참 우연하게 그래 돼가주 수제비를 했그덩. ‘알기는 역시 참 서산대사가 아는 사람이다’ 하고 속으로 감탄을 하면서, 사랑으로 나와가주 그래 물어봤어.

“자네는 어예가주(어째서) 그러노? 뱀 사짠데 어예 국시가 안되고 수제비가 되노?”

“때를 봐야지 이 사람아, 글자만 봐서 되는강. 뱀이 낮에 국시처럼 길게 꼬리를 치고 댕기지 밤에도 그래 댕기든강. 뱀이 밤에는 따배이(또아리)를 틀고 있으이 저녁에 나오는 뱀 사짜는 국시가 아이고 수제비가 안 맞는가. 전후좌우를 헤아려가주고 풀이를 해야지 글자만 봐서 제대로 풀이가 되는강?”

서산대사가 풀이하는게 이치가 딱 맞그덩. 사명당이 ‘역시 스승님은 스승님이구나!’ 감탄을 하면서 서산대사에게 큰 절을 올리드래. 사명당이 서산대사를 그래 따라댕기메 배워가주고 참 나중에 그렇게 훌륭한 도승이 되었드래, 사명당이.

 

왜 사명당 이야기일까?

 

이 이야기는 11년 전 겨울에 예천군 개포면 우감동에서 임원기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이다. 인물전설을 듣고자 채번암과 허미수, 유이태 등의 이야기를 여쭈어 보는 과정에 사명당 이야기를 하겠다며 들려 준 것이다. 서산대사의 역량을 두드러지게 드러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사명당 이야기라고 한 까닭은 어디 있을까?

예사 사람들의 민중적 인식에는 사명당이 서산대사보다 더 훌륭한 인물로 이해된 까닭이다. 세간에는 임진왜란 때 사명당이 일본에 건너가서 탁월한 역량을 초월적으로 발휘하여 일본 천황을 굴복시켰다는 이야기가 널리 전해지고 있다. 『임진록』과 같은 옛 소설에서도 사명당의 활약은 초월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것은 사명당이 일본과 강화를 위한 사신으로 참여하여 적진에서 담판을 벌이고 그들의 죄상을 폭로하며 왜적이 요구하는 강화 조건들을 일일이 혁파한 공로가 세간에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서산대사 또한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왜적을 물리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으되, 사명당은 스승이 이끄는 승병에 참여해서 공을 세우는 것은 물론 조선의 대표로 네 차례나 적진에 들어가서 적장과 담판하여 실질적으로 임란을 유리하게 마무리 짓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사명당의 행적이 이야기 속에 부풀려서 꾸며짐에 따라 자연히 사명당 이야기가 서산대사 이야기보다 더 많이 지어지고 그 전승력도 강하게 된 것이다.

출처: http://limjh.andong.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