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씨 집에 든 盜賊 손님(洪氏盜客)
아주 큰 부자인 남양(南陽) 홍씨(洪氏)는 손님을 좋아했다. 하루는 어떤 나그네가 비를 피하려고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를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그는 의외로 시도 잘 짓고, 술도 잘 마시며, 바둑도 썩 잘 두었다. 밖에서는 비가 종일 내리고 있었다. 무료함을 깨뜨릴 수 있겠다고 생각한 홍씨는 아주 기뻐서 아예 그더러 비도 오는데 하룻밤 자고 가라고 했다.
그렇게 대화도 나누고 식사도 하면서 밤중이 되었을 때, 나그네는 단소를 하나 꺼내 보여주며 “이것은 황새 정강이뼈로 만든 물건이랍니다. 어른께서 한 번 들어보실 만할 겁니다”라고 말하고는 주인을 위해 한 곡 멋지게 연주했다.
단소의 맑고 우아한 소리 탓인지 내리던 비는 어느 사이 그치고 구름 속에 감추어진 달빛이 어슴푸레 비췄다. 주인은 음악과 분위기에 취해 있었다. 그때 나그네는 슬며시 품에서 단검 하나를 꺼내들었다. 서슬 퍼런 칼날이 불빛에 번쩍였다. 그 칼을 보고서 주인은 그제야 나그네가 평범한 과객이 아니라 강도임을 깨닫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그 순간 창밖에 누군가 다가와 “소인들이 이제 당도했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옆에 있는 나그네는 강도단의 두목이고, 밖에 있는 자들은 졸개들이었다. 그러고 보면, 좀 전에 주인이 들은 단소 연주는 졸개를 부른 신호였음이 틀림없었다.
마당의 졸개들에게 두목은 오른손으로는 검을, 왼손으로는 주인의 손을 잡고 “주인께서 어지시므로 차마 다 가져가지 못하겠다”고 말하고 “모든 물건을 반으로 나누되 저 검은 나귀는 나눌 수 없으므로 그대로 남겨두어 나그네를 잘 대해준 주인장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노라”라고 명령을 내렸다. 모두가 “잘 알겠습니다!” 대꾸하더니 곧 이어 “일을 다 해결하였습니다!”라고 했다. 나그네는 그제야 일어나 주인에게 예를 표하고는 자리를 떴다.
강도들이 모두 나간 뒤에 주인은 온 집안의 물건을 일일이 점점해보았다. 물건은 크기를 따질 것 없이 모두 반으로 나누어 가져갔고, 상해를 당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나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하나밖에는….
어이없게도 감쪽같이 집안이 털린 주인은 강도를 당한 사실을 비밀에 부치고 누설하지 말라고 아랫사람을 단속했다. 많은 재물을 잃기는 했으나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강도들이 재물을 몽땅 강탈할 수도 있었지만 은덕을 갚는다며 반만을 가져갔기 때문이리라. 강도임에는 분명하지만 의리와 금도(襟度)가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런 판단은 몇 시간이 지난 뒤에 사실로 드러났다.
강도떼가 물러간 그날 정오 무렵에 사라졌던 나귀가 저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나귀 등에 짚풀로 만든 포대가 실려 있었고, 포대 위에는 간단한 사연의 편지가 놓여 있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못된 졸개가 명령을 어겼기로 삼가 그놈의 머리를 보내 사죄하는 바입니다.”
역시 대범하고 의리가 있는 강도답다. 두목의 명령을 어긴 부하의 목을 베어 조직의 위계를 세웠고, 주인과 약속을 지켜 큰 도둑임을 보여주었으며, 굳이 주인에게 잘린 목을 보내 공포심을 불어넣고 뒤탈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그로서는 일거삼득이다.
기지를 발휘해 계획대로 차분하게 재물을 강탈하면서 주인을 최대한 예우한 이 강도는 평범한 도적과는 급이 다르다. 매너를 지키며 품위 있게 강도짓을 한 이 강도는 그런 자에게 기대할 수 없는 자신감과 여유와 금도가 보여 사연을 듣는 이로 하여금 상쾌함을 느끼게 만든다. 그렇기에 조수삼의 <추재기이>에까지 사연이 올랐을 것이다.
글 구성: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
秋齋集卷之七 漢陽趙秀三芝園著
洪氏盜客 南陽之洪。有豪富好客者。一日見客避雨立門前。邀之堂與之語。則客固能詩善飮工博奕。主人大喜留之。雨終日。是夜半。客出一短簫曰此鸛脛骨也。君可一聽。爲奏一曲。嘹亮截雨。雲月朣朧。主人甚喜。又出一短劒。霜芒的爍於燈光。主人方錯愕。窓外有人來告曰小的們已到。客又把劒。左執主人手曰主人賢者。吾不忍盡取之。下令曰凡物皆分半。彼黑騾不可分者。留以報賢主人好客之惠。應曰諾。而已又告曰已句當公事。客乃起揖而去。主人点視家中物。無巨細半分而去。無一人戕害。然騾顧不見。主人囑家人秘勿洩。及午騾自還。背一草帒。帒上有赫蹄書曰頑卒違令。故謹以其頭謝焉。
황새 무릎 뼈 단소 소리에 내리는 비 그치고
등불 아래 칼빛이 서릿발 비껴 번쩍이네.
재물 절반만 나누랬는데 영 어긴 졸개 있어
그 머리 베어 주인에게 사죄하였다네.
燈前揮霍舞秋濤。
鸛骨簫聲截雨高。
百物中分違令卒。
包頭騾帒謝鄕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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