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조계종

조계종종정 진제스님 [동안거 결제법어]

淸潭 2014. 12. 3. 19:32

진제 스님 “육조문하의 가풍 선양하라”

권오영 기자  |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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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03  17: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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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동안거 결제 앞두고 법어 발표
“향상을 알면 향하의 진리도 터득”
전국 100개 선원에서 3개월간 정진

 

   
▲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이 12월6일 불기 2558(2014)년 동안거 결제를 앞두고 전국 수행납자에게 정진을 당부하는 법어를 내렸다.

 

진제 스님은 12월3일 발표한 동안거 결제법어에서 “육조문하의 가풍을 선양하라”며 “부처님이 출세한 뜻이 어디에 있는지 잘 살펴 한 점의 허점도 보이지 않도록 마음 자세를 가다듬고 정진에 임하라”고 당부했다.

스님은 또 “육조문하의 법맥이 참으로 소중하고 더없이 귀중한 법이라는 점에서 한 번 끊어지면 다시 잇기 힘들고 스승 없이 혼자서 향상의 안목을 갖춘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것”이라며 “모든 결제대중은 이 대오 견성법을 천추만대에 끊어짐 없이 바르게 널리 선양하기 위해 혼신을 다해 정진하라”고 강조했다.

진제 스님은 이와 함께 “향상의 진리를 알게 되면 향하의 진리도 알게 되고, 향하의 진리를 알면 향상의 진리도 알게 되는 것”이라며 “이것은 둘이 아니면서 이름이 둘일 뿐이니, 정진 대중은 향상의 진리를 터득하는 데 초점을 맞춰 정진할 것”을 당부했다.

조계종은 이번 동안거 결제에 전국 100여개 선원에서 2200여명의 수좌 스님들이 방부를 들여 3개월간 용맹정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다음은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 동안거 결제 법어.

六祖門下의 家風

大韓佛敎曹溪宗 宗正 眞際法遠

[ 上堂하시어 拄杖子를 들어 大衆에게 보이신 후, ]

頓悟見性者<돈오견성자>는
爲頓除妄念<위돈제망념>이며
永絶人我<영절인아>하여
畢竟空寂<필경공적>이라
卽與佛齊等<즉여불제등>하여
無有異依也<무유이의야>로다.

심성을 몰록 깨달은 이는
중생의 망념이 몰록 제거되며
모든 인아상이 끊어지고 없어져서
필경에는 텅텅 비어서 고요함이라.
곧 모든 부처님과 더불어 동등하여
다르고 차이가 있지 아니함이로다.

心性 가운데 모든 眞理의 道가 있음이니, 누구든지 道를 닦아 心性을 보면 이러한 경지를 억만년토록 수용하는 법이로다.

今日은 甲午年 冬安居 結制日이라, 뭇 四部大衆은 부처님께서 出世하신 뜻이 어디에 있는지 잘 살펴서 한 점의 허점도 보이지 않도록 마음자세를 잘 가다듬고 정진에 임할지어다.


話頭가 있는 이는 각자 화두를 챙기되,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고?”
 

이 화두를 들고 앉으나 서나 가나오나 공양을 하나 산책을 하나 운력을 하나 오매불망 간절히 하루에도 천번 만번 의심해 나갈지어다.
 

참나 가운데 진리가 다 있음이니 ‘어떤 것이 참나던고?’하고 화두의심이 끊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다보면 간절한 화두의심 한 생각이 계곡의 흐르는 물처럼 끊어짐 없이 흘러가다가 문득 사물을 봐도 본 줄을 모르고 소리를 들어도 들은 줄을 모르는 바보가 되어버림이로다. 그렇게 한 달이고 일년이고 십년이고 시간이 흐르고 흐르다가 홀연히 사물을 보는 찰나에 소리를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남과 동시에 자기의 참 모습이 드러나게 됨이니, 한 걸음도 옮기지 않고 진리의 세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로다. 그러면 어떠한 법문을 물어도 막힘이 없어 천칠백 공안을 한 꼬챙이에 꿰어버림이니, 역대의 모든 부처님 조사스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어 억만년이 다하도록 眞理의 樂을 수용하여 天上世界와 人間世界의 眞理의 스승이 됨이로다.

옛 道人들이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이 貧寒하게 사는 것은 智慧가 짧기 때문이다”하셨으니, 모든 불자님들이 出世하고 나고 날 적마다 만인이 우러러보는 자리를 누리고자 할진대, 이 밝은 지혜를 갖추어야 함이로다.
 

일상생활 속에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고?” 이 화두를 들고 가나오나 앉으나 서나 농사를 하나 사업을 하나 산책을 하나 一念이 지속되게끔 혼신의 수양에 몰두해주시기를 바람이로다.

昔日에 六祖 慧能 禪師의 法을 이은 南嶽懷讓 禪師가 계셨는데 靑原行思 禪師와 함께 兩大禪脈을 이룬 大善知識이었다.

懷讓 禪師께서 태어나실 때 여섯 가닥의 瑞氣가 하늘로 뻗쳤는데, 당시에 이러한 祥瑞를 본 刺史 贍見이 王께 아뢰니 高宗皇帝가 물었다.
“이 祥瑞는 무슨 瑞氣인가?”
 

刺史가 대답했다.
 

“나라의 法寶가 俗世에 있지 않고 安康의 金州地方에 있다는 뜻입니다.”
“스님네 祥瑞이니 더욱 경사스러운 일이다. 臣은 직접 가서 어루만져 養育하고 각별히 위로해 드리도록 하라.”
 

이렇게 祥瑞를 나타내며 탄생한 지 다섯 살이 되자, 생김새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뛰어나게 다르고 마음에는 恩惠와 謙讓을 품어 남과 다투는 일이 없었다. 그러므로 부모는 일찍이 懷讓이라 이름지었다.

이렇게 태어날 때부터 황제의 각별한 관심과 보호를 받은 懷讓은 오직 佛經만을 좋아하였는데, 어느 날 三藏 玄靜스님이 懷讓을 보고는 부모에게 말하기를,
“이 아이는 出家하여 最上乘의 법을 얻어 지극히 微妙한 경지에 이를 것이며, 佛法의 이치를 터득할 것입니다.”하였다.

예언대로 懷讓이 15세가 되자 문득 父母님께 하직하고 出家하니, 속명 그대로 懷讓이라 법명을 받고 律藏을 익혔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스로 탄식하며 말하기를,
“내가 이제 戒를 받고 다섯 해를 지나는 동안 威儀를 널리 배워 겉모양이 점잖게 되었는데, 眞理를 배우려 해도 깨달을 길이 없구나!”
또 말하였다.
“出家한 이는 無爲의 法을 얻어야 하늘과 인간에서 견줄 이가 없으리라.”
이때 道伴이었던 坦然이라는 스님이 懷讓스님이 한탄하는 것을 보고, 여러 善知識을 찾아뵙자고 하여 함께 行脚을 떠나 崇山의 慧安 禪師께로 갔다.

慧安 禪師를 참방한 자리에서 懷讓스님이 여쭈었다.
“祖師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慧安 禪師께서 대답하셨다.
“자기 자신의 意志는 묻지 않고 다른 사람의 意志는 물어서 무엇 하려는가?”
이에 坦然스님이 물었다.
“그러면 무엇이 坦然의 意志입니까?”
“너에게 반드시 스스로 비밀한 작용이 있느니라.”
이번에는 懷讓스님이 다시 묻기를,
“엎드려 청하오니, 무엇이 비밀한 작용인지 가르쳐 주십시오.”하니, 慧安 禪師께서 주장자를 들어 보이셨다. 여기에서 懷讓스님과 坦然스님은 문득 진리의 눈이 8부가 열리게 되었다.

그 후로 坦然스님은 慧安 禪師을 섬겨 모시고 살았으나, 여기에 만족하지 못하였던 懷讓스님은 慧安 禪師의 지시대로 曹溪의 寶林寺로 가서 六祖 慧能 禪師를 참방하였다.
 

慧能 禪師를 親見하니 禪師께서 물으셨다.
“그대는 지금 어디서 오는 길인가?”
“崇山에서 일부러 禪師님께 예배하러 왔습니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懷讓스님이 여기에 꽉 막혀 아무런 말도 못하고 8년 동안 산송장이 되어 정진하다가 마침내 8년 만에 大悟見性으로 해결해내고는 곧장 慧能 禪師를 親見하여 말씀드렸다.
 

“禪師님, 한 물건이라고 말해도 맞지 않습니다.”
懷讓스님이 8년 만에 척 바른 답을 하니 곧장 물으시기를,
“그럼 그것을 닦아 證得할 수 있겠는가?”
“닦아 證得하는 일은 없지 아니하나 더럽힐 수는 없습니다.”
“그 더럽힐 수 없는 것이 부처님들께서 염려하여 護念하시는 바이니, 그대도 그렇고 나도 그러하니라. 西天의 27祖 般若多羅께서 170여 년 전에 그대에 관해 예언하셨는데 佛法이 그대로부터 크게 흥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뒤엔 한 망아지가 나와서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이리라.”

그러고는 南嶽懷讓스님에게 心印法을 전하셨다.

心地含諸種<심지함제종>하니
普雨悉皆生<보우실개생>이라.
頓悟花情已<돈오화정이>하면
菩提果自成<보리과자성>이로다.

마음 땅에 모든 종자를 머금으니
널리 비가 내림에 모두 싹이 돋아남이라.
꽃의 정을 문득 깨달음에
보리의 열매가 스스로 이루어짐이로다.

이렇게 六祖 慧能 禪師께서 懷讓스님의 깨달음을 印可하여 心印法을 부촉하심으로 인해 그 法脈이 지금까지 남아 우리나라에 내려오고 있는 것이며, 근세에 鏡虛-慧月-雲峰-香谷 그리고 산승으로 내려오는 法脈이 懷讓 禪師 이후로 1300여 년 동안 끊어짐 없이 내려온 유일한 上首法脈이로다. 참으로 소중하고 더없이 귀중한 법이라, 한 번 끊어지면 다시 잇기 힘들고 스승없이 혼자서 向上의 眼目을 갖춘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것이니, 모든 결제대중은 이 大悟見性法을 천추만대에 끊어짐 없이 바르게 널리 선양하기 위해 혼신을 다해 정진해주기를 바람이로다.

당시 慧能 禪師의 여러 제자 가운데 南嶽懷讓 禪師와 靑原行思 禪師는 上首弟子들로써 그 法이 쌍벽을 이루어 형과 아우를 가리기 어려울 만큼 훌륭한 眼目을 갖춘 분들이었다.

그래서 이후로 두 분 禪師의 法派를 좇아서 禪宗의 五宗이 벌어졌는데, 懷讓 禪師 門下에서는 臨濟宗과 潙仰宗이, 行思 禪師의 門下에서는 曹洞宗․法眼宗․雲門宗 벌어져 中國 天下를 풍미하게 되었다. 그래서 懷讓 禪師 밑으로는 馬祖․百丈․黃檗․臨濟 禪師로 이어져 내려왔고, 行思 禪師 밑으로는 石頭․道悟․龍潭․德山 禪師로 쭉 이어져 내려왔으니, 臨濟의 ?喝?과 德山의 ?棒?은 六祖門下의 양대 兒孫의 家風인 것이다.

南嶽懷讓 禪師께서는 向下의 大用의 法을 전하셨고, 靑原行思 禪師께서는 向上一路의 진리의 體性을 전하셨는데, 이 진리 자체에는 體와 用이 본시 둘이 아니어서 體가 用이 되기도 하고 用이 體가 되기도 하여 둘은 항상 하나로다.
그래서 究竟法을 깨달아 向上의 眞理를 알게 되면 向下의 眞理도 알게 되고, 向下의 眞理를 알면 向上의 眞理도 알게 되는 것이로다. 그러므로 이것은 둘이 아니면서 이름이 둘일 뿐이니, 정진대중은 먼저 向上의 眞理를 터득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정진에 임해야 함이로다.

이 같은 이치를 잘 밝히는 법문이 있으니, 行思 禪師께서 懷讓 禪師께 石頭스님을 심부름 보내어 法을 전하게 되는 기연이로다.

한 때, 懷讓 禪師와 行思 禪師 두 분이 쌍벽을 이루어 高峻한 法을 널리 펴시는데, 때가 되니 行思 禪師 門中에 제자를 封해 分家시켜야 할 인연이 도래하였다.

하루는 行思 禪師께서 弟子 石頭스님을 시켜 懷讓 禪師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르셨다.
"네가 懷讓 禪師께 가서 이 편지를 전해 드리고 돌아오면, 무딘 도끼〔鈯斧子〕를 주어 分家시켜서 다른 산에 住하게 하겠다."
石頭스님이 여러 달을 걸어서 懷讓 禪師 처소에 이르러 인사를 올리고는, 전하라는 편지는 올리지 않고 대뜸 여쭈었다.
"모든 聖人을 사모하지 않고 자기의 靈도 중요하게 여기지 아니할 때 어떠합니까?"
이렇게 高峻한 一問을 던지니, 懷讓 禪師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어찌하여 向上의 진리만 묻고 向下의 진리는 묻지 않는고?"하시었다.
그러자 石頭스님은,
"억만년토록 生死의 바다에 잠길지언정 모든 부처님과 聖人의 解脫法은 구하지 않겠습니다."하고 자기의 所見만을 고집하였다.
이 말 끝에 懷讓 禪師께서는 돌아앉아 버리시고 더이상 상대하지 않으셨다. 兩邊을 다 들어야 하는데 一邊으로만 나가니 대화의 상대가 안 된다고 돌아앉아 버리신 것이다.
 

石頭스님이 그 길로 行思 禪師께 돌아가니, 禪師께서 물으셨다.
"편지는 잘 전했느냐?"
"편지도 전하지 못하고 信도 통하지 못하였습니다."
石頭스님이 懷讓 禪師 처소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말씀 드리고는,
"편지를 전하고 오면 무딘 도끼를 주어 分家시켜 주신다고 하셨으니 도끼를 주십시오."하였다. 그러자 行思 禪師께서 아무 말 없이 一足을 들어 보이시니, 거기서 石頭스님은 큰 절을 하였다.

行思 禪師께서는 여기에서 石頭스님에게 법을 전하여 南嶽山에 住하게 하셨으니, 古人들께서는 弟子에게 법을 전하실 때, 이렇게 세밀하게 다루어 보고 마음에 흡족해야 法을 付囑하신 것이로다.
 

이 法은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을 것 같으면, 만인의 눈을 멀게 하고 佛祖의 正眼을 그르치게 되므로, 古人들께서 법을 전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세밀하고 세밀하게 지도하신 것이로다.

그러면 時會大衆은,
行思 禪師께서 分家하기 위해 심부름 보냈던 石頭스님이 돌아와서는 무딘 도끼를 달라고 하는데 行思 禪師께서 한 발을 들어 보이신 뜻을 아시겠습니까?
또, 行思 禪師께서 발을 들어 보이는데 石頭스님이 일어나서 큰 절을 한 뜻을 아시겠습니까?
이 대목은 千古에 알기 어려운 법문이로다. 여기에 無盡法門이 다 들어 있음이로다.

[ 良久云하시되, ]

了知向上句<요지향상구>하면
豈不知向下事<기부지향하사>리오.

향상의 진리를 요달해 안다면
어찌 향하의 진리를 알지 못하리오.

이렇게 行思 禪師께서는 石頭希遷이라는 弟子를 얻어 법을 전하셨고, 懷讓 禪師께서는 훗날 馬祖道一이라는 걸출한 弟子를 얻어 법을 전하셨는데, 馬祖 禪師는 84人의 道人弟子를 두어 그 법이 天下를 덮었던 위대한 善知識이셨다.

한 때 어떤 衲子가 懷讓 禪師께 물었다.
“거울로 像을 주조하여, 像이 이루어지면 거울의 밝음은 어디로 갔습니까?”
禪師께서 대답하시기를
“마치 大德이 出家하기 前의 모습과도 같으니, 그것이 어디로 갔겠느냐?”하시니, 납자가 다시 묻기를,
“像이 이루어진 뒤에는 어찌하여 비추지 못합니까?”
“비추지는 않으나 한 점도 속일 수는 없느니라.”하시며 이미 다 갖추어져 있음을 밝히셨다.

南嶽懷讓 禪師께서 이렇게 뚜렷이 부처님의 살림살이를 이루어 크게 法을 선양하시다가 涅槃에 드심이로다.

그러면 畢竟에 南嶽懷讓 禪師를 아시겠습니까?
向上向下自在用<향상향하자재용>하니
天上人間無等侶<천상인간무등려>로다.

향상의 진리와 향하의 진리를 자재하게 쓰니
천상세계와 인간세계에 짝할 자가 없음이로다.

[拄杖子로 法床을 한 번 치고 下座하시다.]
 

 

[1273호 / 2014년 12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