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옛다리를 찾아서 ~
기린교(麒麟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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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리에 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3권
〈한성부(漢城府)〉 '제택(第宅)' 조에
효령대군의 집에 대한 설명으로
"인왕산 기슭, 넓은 골짜기 깊숙한 곳에 있으니
바로 비해당(匪懈堂, 안평대군의 호)의 옛 집터이다.
시내가 흐르고 바위가 있는
경치 좋은 곳이 있어서
여름철에 노닐고 구경할 만하고,
다리가 있는데 기린교(麒麟橋)라 한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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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조 때인
1751년경 겸재(謙齋) 정선(鄭敾)이
인왕산과 백악산에 걸쳐 있는
장동(壯洞) 일대의 경승지 8곳을 화폭에 담은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 가운데
수성동(水聲洞)을 묘사한 그림에도 이 다리가 보이며,
1770년경에 제작된
《한양도성도(漢陽都城圖)》에도
'기린교'가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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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육백년'에 실린 기린교
이후 수백 년의 세월을 거쳐
1950년대까지 존재하다가
1960년대에 옥인시범아파트를 건립하면서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2007년 대통령 경호실이
청와대 부근의 문화유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옥인시범아파트 옆 계곡 암반의 벽 사이에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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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는 너비와 두께가
각각 약 35㎝, 길이는 약 3.7m인
장대석(長臺石) 2개를 붙여 만든 것으로
총 너비가 약 70㎝인 좁은 다리이다.
다리의 좌우에 난간이 박혀 있고,
흙과 풀로 덮여 있지만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자료출처:~ 두산백과
~발견당시의 T.V. 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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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9-14 19:48 양효경 기자
2 0 1 4. 1 0. 2 9. 시 곡(枾 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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