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舍廊房

만년 꼴찌를 사랑한 한국인에 열광한 미국

淸潭 2014. 10. 18. 15:32

만년 꼴찌를 사랑한 한국인에 열광한 미국

-서울의 '로열스' 골수팬 이성우씨
팬사이트·트위터로 20년째 응원
29년만에 월드시리즈 진출하자… 캔자스시티 市長·구단 "꼭 와달라"
ESPN은 다큐 제작팀 한국 급파… 이씨 "긴 시간 승패 떠난 애정 덕"

미국이 한국인 야구팬 한 명 때문에 열광하고 있다.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ESPN은 지난 16일 제작진을 한국에 급파했다. 미 프로야구의 챔피언을 가리는 월드시리즈에 그를 데려가기 위해서다.

주인공은 서울 신세계면세점 MD부문 과장 이성우(38)씨다.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골수팬'인 이씨는 곧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로 떠난다. ESPN 측이 1등석 항공권, 체류비 등 비용을 모두 부담하기로 했다.

이씨는 오는 22일(한국 시각) 로열스가 홈구장인 카우프만 스타디움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벌이는 월드시리즈(7전4선승제) 1차전부터 참관한다. 연차 휴가를 이용해 우승팀이 가려질 때까지 미국에 머물다가 돌아올 예정이다.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골수팬 이성우(오른쪽)씨가 17일 서울 중구의 환구단에서 미국 ESPN의 조시 스웨이드 PD와 인터뷰하고 있다.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골수팬 이성우(오른쪽)씨가 17일 서울 중구의 환구단에서 미국 ESPN의 조시 스웨이드 PD와 인터뷰하고 있다. ESPN 제작진은 이씨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지난 16일 한국에 왔다. 스웨이드 PD가 입은 티셔츠가 로열스 구단에서 이씨를 기념해 특별 제작한 옷이다. /이덕훈 기자
ESPN은 이씨의 일거수일투족을 취재하며 방송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 조시 스웨이드(39) ESPN PD는 "로열스 역사적인 가을 야구에 이성우씨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어 제작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1995년부터 로열스를 응원하고 있다. 대학생 시절 AFKN(주한미군방송)을 통해 로열스 경기를 보고 열성팬이 됐다고 한다. 그는 "처음엔 카우프만 스타디움의 아름다움에 매력을 느껴 관심 갖게 됐다"고 말했다. '20년 로열스 사랑'의 시작이었다.

이씨는 본격적으로 로열스의 역사를 공부했다. 1990년대에는 PC통신으로 자료를 모았고, 2000년대 들어서는 로열스 인터넷 팬사이트에서 'Korea Fan'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했다. 처음에 "정말 한국인 맞느냐"고 의심하던 눈길도 점차 사라졌다. 로열스는 1985년 월드시리즈 우승 후 작년까지 28년간 한 번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약체 팀이다. 이런 팀을 변함없이 응원해온 한국인은 특이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이씨는 2011년부터 트위터를 통해 현지 팬들과 교류했다. 이직(移職)을 준비하던 지난 8월엔 팬들의 도움을 받아 처음 캔자스시티를 방문했다. 이 사실이 현지 언론에 알려지자 캔자스시티 공항엔 취재진이 몰렸다. 이씨는 로열스 홈구장인 카우프만 스타디움에서 시구하는 영예도 누렸다.

그가 미국에 머문 11일간 로열스는 9승1패를 기록하며 한때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선두에 올랐다. 이씨는 "내게 '행운의 부적(luck charm)'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면서 "'여권을 뺏어야 한다', '캔자스시티 여자와 결혼시키자'는 말까지 돌았다"고 했다. 그는 기혼자다. 700명이던 트위터 팔로어 수는 미국 방문 후 2만명을 넘어섰다.

로열스 구단은 이씨를 기념하는 특별 티셔츠까지 만들었다. 그의 얼굴 사진에 팀의 상징인 왕관을 합성하고 한글로 '왕이 될'이라는 글자를 적은 옷이다. 16달러(약 1만7050원)짜리 이 티셔츠 300장이 순식간에 동났다.

로열스는 16일 29년 만의 월드시리즈 진출을 확정했다. 그러자 미국 전역에서 다시 이씨의 이름이 등장했다. 미국 트위터에는 '이씨를 다시 데려오자(bring back sungwoo)'는 트윗이 넘쳐났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닷컴, 미국 지상파 ABC의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서 그의 이야기를 다뤘다.

ESPN도 그중 하나였다. 스웨이드 PD 등 ESPN 제작진은 16일 새벽 한국에 왔다. 캔자스시티 시장과 로열스 구단의 초대장까지 들고 왔다. '로열스의 월드시리즈에 꼭 와달라'(슬라이 제임스 캔자스시티 시장), '역사적 순간을 우리와 함께하자'(로열스 구단)는 내용이다. 이씨는 "성적과 무관하게 긴 시간 변치 않고 로열스를 응원해온 진심이 미국인들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며 "20년간 기다려온 월드시리즈를 직접 보게 돼 설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