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舍廊房

코리아 환타지아(중)

淸潭 2014. 10. 21. 12:50

김정일의 고교 선배 안종호 장군의 쿠데타 시도,

열병식 때 탱크포로 김일성 부자 쓸어버리려

 

 

상상 외의 발언에 두 북한 장군은 처음엔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현영철이 먼저 "대사, 이거 농담이 지나친 거 아니오?"라고 했다.
"농담 아닙니다." 중국대사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히 말했다. 그리고 양복 안주머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보였다. "이것이 시진핑 주석의 친서입니다. 어제 베이징에서 이곳에 특파된 전령이 나한테 직접 전달한 것입니다. 자 보세요."

"이거이 습근평 주석의 친서가 틀림없소?" 이번엔 리영길이 이맛살을 약간 찡그리며 묻는다. 북한에서는 시진핑을 조선식 발음대로 습근평이라 한다. “틀림없습니다.” 대사가 대답하자 두 인민군 실세는 잠시 다시 침묵했다. 이어 현영철이 다시 "그러니까 우리한테 우리의 최고 존엄에게 반역을 하라, 이 말이오?"라고 반문했다. ‘최고 존엄’이란 북한 사람들이 김정은에게 최고의 충성심을 표현할 때 쓰는 호칭이다.

"반역이 아닙니다” 중국대사가 말했다. "조선은 인민공화국이지 왕조가 아니잖습니까? 그러므로 김씨가 왕조식으로 대를 이어 독재를 하는 건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우리 중국 정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능하고 잔인한 김씨 세습정권을 제거하고 우리 중국과 같이 진정한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을 건설하는 것은 반역이 아니라 애국적인 행위가 될 것입니다."

리영길 북한군 총참모장.
리영길 북한군 총참모장.
중국대사는 유창한 조선말로 말했다. 그는 조선인들과 대화할 때는 꼭 조선말을 썼다. "알았습니다. 우리가 일단 이 문제를 검토하겠소." 대사는 리영길이 이렇게 말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의 입에선 뜻밖의 소리가 나왔다. “대사, 우리는 오늘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으로 하갔소.”

리영길 인민군 총참모장은 한국군의 합동참모본부 의장격이고,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은 한국의 국방장관에 해당하는 위치다. 이 두 사람보다 더 서열이 높은 자는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지만 그는 군인 출신이 아니라 당료 출신이다. 그래서 진짜 군인들은 속으로는 그를 경멸한다. 황병서는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으로 있을 때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사망)한테 잘 보여 출세가 빨랐다. 그는 2014년 초 인민군 대장 군복을 입고 나타나더니 열흘만에 다시 차수로 번개같이 승진함과 동시에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된다. 그 자리는 최룡해가 차지하고 있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는 인민체육담당 노동당 비서라는 한직으로 밀려났다. 그 결과 황병서는 김정은 최측근 실력자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북한에서 가장 위험한 자리가 2인자 자리이다. 옛날 남한 출신 박헌영 부수상이 미국 간첩으로 몰려 처형되었고, 김정일의 총애를 받던 리영호 장군도 숙청되었다. 그는 미사일 개발보다 인민경제 회생이 더 중요하다는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숙청당하고 최룡해한테 2인자 자리를 빼앗겼다. 그 최룡해도 황병서한테 자리를 빼앗긴 것이다.

리영길과 현영철의 태도는 중국 측이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설사 그들이 중국 측 제안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이것이 그들의 충성심을 테스트하기 위한 김정은 측 함정일 경우에 대비하여 일단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은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혹시 중국대사의 방에 비밀 녹음장치가 되어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정전협정 체결 61주년(7월27일)을 하루 앞둔 지난 7월 26일, 현영철 북한군 인민무력부장이 평양 4ㆍ25문화회관에서 열린 경축 중앙보고대회에서  연설하는 모습./로동신문
정전협정 체결 61주년(7월27일)을 하루 앞둔 지난 7월 26일, 현영철 북한군 인민무력부장이 평양 4ㆍ25문화회관에서 열린 경축 중앙보고대회에서 연설하는 모습./로동신문
"좋습니다. 시간은 충분히 드리지요. 그러나 시간을 너무 끌면 비밀이 누설될 염려가 있으므로 가능한 한 속히 거사하시기 바랍니다. 거사의 성공은 우리 중국정부가 100% 보장할 것이므로 안심하고 결행하십시오." 대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리영길과 현영철은 의례적 작별인사도 없이 서둘러 대사 방을 나갔다. 평양주재 중국대사 관저 응접실 벽시계는 2014년 10월1일 오후 2시 44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10월4일 인천>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 황병서가 그의 전임자 최룡해와 대남선동선전 책임자 김양건을 대동하고 이날 아침 갑자기 김정은이 전용기로 쓰던 비행기를 타고 인천에 나타났다. 그는 아시아 경기 폐막식에 북한 선수들과 함께 참가하기 위해 인천에 가겠다며 겨우 하루 전 남측에 통보했었다. 황병서는 동양인 체구에는 어울리지 않게 큰 러시아식 군모에 약식훈장이 잔뜩 달린 정장 군복을 입고 인천국제공항을 걸어 나왔는데 검은 썬글래스를 끼고 이어폰을 귀에 건 사복 경호원 2명이 좌우에서 그를 호위했으나 최룡해와 김양건은 경호원 없이 뒤따라 나왔다. 북한에서 황병서가 2인자임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황병서의 깜짝 등장은 쇼크였다. 최근까지도 특히 중국의 인터넷 싸이트에서는 황병서가 쿠데타를 일으켜 김정은을 몰아냈다는 소문이 난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남한 국무총리와 국가안보실장 등을 만나서 남북고위급 회담을 10월말이나 11월 초에 열자고 제안하고는 바로 그날 밤 북으로 돌아갔다. 물론 아시아경기 폐막식에는 참가했다.

북한에서 쿠데타가 가능한가? 한때 김정일 관저에서 일했다는 한 탈북자에 의하면, 김정일은 노동당 간부들의 침실 대화까지 다 도청했다고 한다. 그가 쓴 글에 이런 게 있다. “김정일은 문건비준(서류결재)을 집무실에서 하지만, 관저에 가져와서도 한다.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서 사무를 보는 날에는 부하에게 집무실에 가서 문건을 가지고 오라고 지시한다. 그러면 부하가 지하도로 달려가서 큰 서류가방을 낑낑거리며 들고 와 관저 서재에 갖다 놓는데, 분량이 너무 많아 저것을 언제 다 보나 걱정될 정도이다.

보고서는 읽고 분쇄기에 넣어서 썰어버리는데, 어느 날은 내게 분쇄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담당자가 어디 가고 없어서 내가 서류를 분쇄기에 넣으면서 읽을 수 있었는데, 당 간부들이나 측근들이 이불 속에서 마누라와 이야기하는 대화가 나와 있었다. 통신과에서 부부장(차관급)들 대화까지 엿듣는다는 걸 그때 알았다. 부부 간의 대화를 도청할 정도니, 전화 감청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북한 같이 가족끼리조차 마음 놓고 속마음을 털어놓기가 두려운 사회에서 여러 군인들이 마음과 힘을 모아야 하는 군사 쿠데타가 과연 가능할까?

불가능하지 않다. 실제로 김일성 광장 군사 퍼레이드를 이용한 쿠데타 시도가 1992년에 있었다. 쿠데타 세력은 당시 인민군 주요 요직에 배치되어 있던 프룬제(Frunze)군사대학<러시아 육군사관학교> 유학파 출신 50대 초반 장성들이었다. 주모자는 인민무력부 부총참모장 안종호 상장(남한의 중장에 해당). 당시 52세였던 안 장군은 당시 50세였던 김정일의 고등학교 2년 선배였다. 안 장군을 위시한 쿠데타 장교들은 신체적으로나 인격적으로 별 볼일 없는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의 대를 이어 국가 최고지도자가 되는 것에 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역시 프룬제 유학파인 김봉률 장군을 자신들의 정신적 지도자로 삼았다.
지난 4일 오전 인천송도국제도시 오크우드 호텔에서 북한의 황병서(가운데) 군 총정치국장, 최룡해(오른쪽) 당중앙위원회 비서 겸 국가체육지도위원장, 김양건 대남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왼쪽) 등 북한 주요 인사들이 류길재 통일부 장관 등 우리 측 대표단과 환담하는 모습./뉴시스
지난 4일 오전 인천송도국제도시 오크우드 호텔에서 북한의 황병서(가운데) 군 총정치국장, 최룡해(오른쪽) 당중앙위원회 비서 겸 국가체육지도위원장, 김양건 대남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왼쪽) 등 북한 주요 인사들이 류길재 통일부 장관 등 우리 측 대표단과 환담하는 모습./뉴시스
김 장군은 당시 60대 중반으로서 북한 군부 내 소련 유학파의 대부(代父) 격이었으며 소련의 핵기술을 북한에 들여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쿠데타를 모의한 장성들 중 30여명은 인민무력부 참모진에 포진하고 있었고, 10여명은 사단장 등 야전지휘관으로 나가 있었다. 쿠데타 주모자 안종호 장군은 인민무력부 참모진에 포진한 쿠데타 세력의 최고 선임자였다.

쿠데타 거사일은 1992년 4월25일이었다. 이날 북한 정권은 조선인민군 창군 60주년을 맞아 김일성 광장에 3만여명의 병력과 탱크·장갑차 등 중장비를 동원해 거대한 열병식(군사 퍼레이드)을 벌일 예정이었다. 사열대 주석단에는 김일성·김정일 부자 등 정권 핵심 실세 10여 명이 자리 잡고 그 아래로 40여명의 당과 군 간부들이 도열할 예정이었다. 김일성 광장 열병식에 참가하기로 되어있던 수도방위사령부 탱크사단도 쿠데타에 가담했다. 이 탱크사단이 사열대 앞을 통과할 때 탱크 포신을 주석단으로 돌려 김일성·김정일 부자 등 핵심 실세들을 향해 탱크포를 발사, 정권 핵심부를 일거에 제거하고 김봉률 장군을 혁명정권 지도자로 내세운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 계획은 뜻밖의 사태 발전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그것은 열병식에 동원할 탱크부대를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대신 인민무력부 직속 탱크사단으로 갑자기 교체한 것이다. 이것은 조선왕조 초기, 중국 사신들을 맞이하는 연회장에서 세조를 시해하고 단종을 복위시키기 위해 성삼문 등이 연회장 운검(雲劍·왕을 경호하는 무인)으로 자기 파 무인을 골라 세웠으나 세조의 충신 한명회가 육감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운검의 연회장 입장을 금지시킴으로써 성삼문 등의 쿠데타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것과 흡사했다. 다만 북한의 경우는 인민무력부가 탱크부대를 교체한 것이 수도방위사령부를 의심해서 취한 행동은 아닌 것 같다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

쿠데타 계획은 그렇게 수포로 돌아갔지만 그 비밀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가담 장교들은 다음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이 쿠데타 모의 사실이 탄로나고 말았다. 거사가 실패한지 1년이 채 안된 1993년 3월, 소련이 붕괴되고 옐친의 러시아 정권이 등장함과 함께 악명 높았던 비밀경찰 KGB가 해체되는 바람에 실직자가 된 한 전직 KGB 요원이 일자리도 알아볼 겸 해서 평양에 나타난 것이다. 그는 전부터 알고 지내던 북한 국가보위부 러시아 담당관을 찾았고, 술대접을 받는 자리에서 “안종호 장군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무심히 물었다. 북한 보위부 요원은 직감적으로 뭔가 있다 싶어 “당신도 그 사건을 알고 있었구만”하고 넘겨짚었다. 여기에 속아 넘어간 러시아인이 안종호 장군 쿠데타 음모 사실을 자기도 모르게 누설해버린 것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소련 유학파 출신 장교들의 쿠데타 모의를 당시 러시아 정권은 알고 있었고 그것을 묵시적으로 지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쿠데타 음모는 들통이 났고 안종호 장군을 비롯한 모의 가담 장교들은 재판도 없이 전원 비밀리에 총살되었다. 재판을 할 경우 반란 음모가 인민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북한 정권은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神)같은 존재인 김일성과 그 후계자 김정일에게 반기를 든다는 것은 북한 인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쿠데타 가담자 가족들은 전원 지옥같은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 짐승같이 목숨을 이어가다 죽었을 것이다. 쿠데타 세력의 정신적 지도자며 프룬제 유학파의 대부 김봉률 장군은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살려주었다는 설도 있다.

1995년 또 한차례 쿠데타 시도가 있었다. 1999년 미국의 워싱턴타임즈 신문은 비밀이 해제된 미국 정부의 극비문서 하나를 공개했다. 기사를 쓴 빌 거츠 기자에 의하면 1995년 북한 인민군 제6군단이 쿠데타를 모의하던 중 기밀이 누설되어 실패한 사실이 있다고 정부당국 문서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신문 보도와 기타 자료를 종합하면 사연은 다음과 같다.

당시 인민군 6군단은 청진에 사령부를 두고 함경북도 전체를 관할하고 있었다. 6군단은 3개 보병사단, 4개 방사포 여단, 1개 포병사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쿠데타 모의자들에 6군단 정치위원(소장에서 중장 계급) 전원과 예하 부대 대대급 지휘관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에 함경북도 도당 책임비서, 행정일꾼, 국가안전보위부, 사회안전부(현 인민보안성) 부부장 이상 간부급이 대거 가담했다. 그러니까 당시 함경북도 군·당·행정 책임자 대부분이 이 쿠데타 모의에 가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군단장 김영춘(94년 3월부임)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만경대 혁명학원 출신으로 구성된 6군단 정치위원들은 김일성과 친인척 관계에 있었던 김영춘을 왕따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김영춘은 부하들의 쿠데타 음모를 저지하는데 공을 세워 나중에 인민군 총참모장과 인민무력부장 자리까지 올라가지만 결국은 김정은에 의해 거세된다.)

이 쿠데타 시도는 한 변절자의 밀고로 탄로가 나 좌절되었다고도 하고, 쿠데타 모의자들이 거사 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꼬리를 잡혔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이 반란음모가 실패로 끝나면서 약 350명 정도의 가담자들이 총살되고, 그 가족들은 3대에 걸쳐 모두 정치범 수용소로 쫓겨났다고 한다.<계속>


It was a megaton-class bombshell to the generals. They looked at each other as if they could not believe their own ears. After a few seconds of dead silence, Hyun Young Chol, Kim Jong Un's Minister of Defense, opened his mouth first:
"Mr. Ambassador, I'm afraid your joke is out of bounds."
"No, General Hyun, I'm not joking." Ryoo calmly replied and took something out of his jacket pocket.
"This is President Xi's order which he wrote in long hand. A special courier from Beijing arrived here yesterday and delivered it to me personally. Take a look at it, please."
The generals in turn held the letter in their hands for a closer look. They could not read Chinese, but they recognized the three letters that comprised President Xi's name.
"Is this really an order from Soop Goon Pyong?" asked Gen. Ri. Soop Goon Pyong is the Korean way of pronouncing Xi Jin Ping. In South Korea, though, they pronounce Chinese names the same way as they are pronounced by Chinese.
"Believe me, General. It certainly is." confirmed Ryoo.
Another few seconds of heavy silence followed. And then Hyun spoke breaking the uncomfortable silence.
"Are you telling us to betray our supreme dignity?"
"Supreme dignity" is what the North Korean government and Workers Party members formally call Kim Jong Un when they need to show off their loyalty to Kim.
"The Chinese government does not tell you to betray Kim Jong Un. We advise you to do a good thing for your country. For you to get rid of Kim will not be a betrayal. It will be a patriotic action because the DPRK is not a dynasty, but a people's republic. We want you to overthrow this incompetent and cruel dynasty-style regime of the Kims and set up a bona fide people's republic!" said Ryoo raising his voice a little. He speaks fluent Korean. He always speaks Korean whenever he talks with Koreans.
"All right. We will give it serious thought," was what Ryoo expected to hear from them, but Gen. Ri said, "Gen. Hyun and I have NOT heard anything from you today."
Ambassador Ryoo knew why Gen. Ri said that. They suspected their conversation with the Chinese ambassador was being bugged and they had to prepare for the worst case scenario.
"All right, Generals, we will give you enough time, but don't take too much time, please. Be assured that we the Chinese government will guarantee your success a hundred percent!" Ryoo told them as they hurriedly left the room without saying the formal good-bye. The big clock on the wall indicated the time:
October 1, 2014, 2:44 p.m.

On the morning of October 4, Hwang Byung Suh, currently the No. 2 man in North Korea, suddenly flew into Incheon, South Korea, aboard Kim Jong Un's old Russian-made jet plane. He gave just a day's notice to the South Korean government that he wanted to join the North Korean athletes at the closing ceremony of the Asian Games. In an oversized Russian-style military hat and uniform decorated with a bunch of People's Army ribbons, Hwang walked out of the airport escorted by bodyguards wearing sunglasses and earphones. Choi Ryong Hae, only months ago Hwang's superior but now just a party secretary in charge of athletics, and Kim Yang Gun, long-time chief of anti-South Korean propaganda and agitation bureau, followed Hwang without any bodyguards.
Hwang's surprise appearance was a shocker because of recent rumors, flying especially wild in the Chinese social media sites, that he had ousted Kim Jong Un in a coup. But Hwang just proposed a high-level meeting between the two Koreas within a few weeks. And Kim Yang Gun told the South Korean unification minister that Kim Jong Un had no serious health problems. The North Koreans returned home the same day after the Asian Games closing ceremony.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