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아름(14)양은 엿새째 팽목항 부두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아름양은 21일에도 오빠 성원(단원고 2학년)군이 차가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세월호에서 빠져나와 예전처럼 같이 놀아 주길 바랐다. 진도=왕태석기자kingwang@hk.co.kr DNA 검사로 뒤늦게 찾아 "다음생엔 안전한 곳으로, 더는 힘들지 말고…" 오빠하고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고 싶어서" 날마다 부둣가에 나와 앉아 바다만 바라보던 열네 살 소녀 아름이의 꿈(본보 4월 22일자 1면)은 끝내 무너졌다. 아름이가 기다리던 오빠 성원(17ㆍ단원고2)군은 5일 전부터 목포의 한 병원에서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25일 새벽 1시쯤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가족대기소에서 아름이 어머니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드님이 목포 한국병원에 안치돼 있습니다." 지난 20일 오전 6시 20분쯤 인양된 신원 미상의 '37번' 사망자가 DNA 검사 결과 성원군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성원군이 시커먼 바다 속에 잠긴 배에서 아직 나오지 못한 줄로만 알던 가족은 할 말을 잃었다. 성원군의 부모는 사고가 난 16일 이후 줄곧 팽목항 가족대기소에서 지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인상 착의가 적힌 사망자 명단을 살폈지만, 아들과 비슷한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37번 신원 미상자는 '30대 추정 남성'이라더니 어떻게 내 아들일 수 있느냐"며 눈물을 쏟았다. '37번째 신원 미상자 특징 1. 성명: 미상(30대 추정) 2. 성별: 남…' 아름이 삼촌이 내민 A4 크기 흰색 종이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발견 당시 해경이 기록한 인상 착의는 '키 175㎝, 넓은 이마, 짧은 머리, 우측 무릎 상처, 통통한 편, 연두색 반팔 티셔츠, 반바지 운동복'이 전부였다. 그 뒤 '손목에 하늘색 패션 시계' 등이 추가됐지만, '30대 추정'이란 글귀 탓에 아름이 부모는 아들일 거라고 짐작하지 못했다. 이날 오전까지도 팽목항 가족 대책본부 천막 앞 사망자 명단 게시판에는 37번 이름란에 빨간 펜으로 '미상'으로 적혀 있었다. 성원군은 차갑게 식어 뭍으로 나온 지 5일 만에야 그렇게 그리던 가족의 품에 안겼다. 정부 대책본부가 사망자의 신원 확인을 위해 실종자 가족들의 DNA 샘플 채취에 나선 것은 지난 19일. 아름이 어머니는 바로 그날 달려가 면봉으로 입안 구강세포를 살짝 긁어내는 검사에 응했다. 당국은 24시간 안에 신원 확인이 가능하게 하겠다고 밝혔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아름이 삼촌은 "오늘까지 소식이 없으면 신원 미상자의 시신이 있는 병원을 모조리 찾아가려고 했다"면서 "아이 이마가 많이 찢어져 있어 가슴 아프다"고 전했다. 가족은 이날 경기 안산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렸다. 아버지는 "(해경의 착오가 있었지만) 자식을 일찍 찾지 못한 내 잘못도 크다"면서 "내 가슴에 다 묻고 우리 아들을 조용히 보내주고 싶다"고 말했다. 목 놓아 우는 어머니 곁을 말없이 지키던 아름이가 이날 오후 오빠에게 전하는 마지막 인사를 카톡으로 보내왔다. '오빠, 다음 생에는 웃는 모습으로, 안전한 곳으로, 가족끼리 여행 가자. 더는 힘들지 말고…. ----------------------------------------------------------------------------------------- "보고싶어요, 오빠가… 우리 오빠는 언제 올까요" 엿새째 선착장에 앉아있는 단원중 조아름양 진도=손현성기자 hshs@hk.co.kr 소녀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부둣가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앉아 있다. 검푸른 바다에 시선을 꽂은 채 두 시간이 넘도록 꼼짝도 않는다. 가만히 다가가 "누굴 기다려요?"라고 묻자, 그제서야 고개를 돌린다. 거친 바닷바람에 튼 작은 입술이 천천히 열린다. "오빠요. 오빠가 보고 싶어서…." 소녀는 손에 꼭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내 보인다. 소녀를 닮은 소년이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다. 이내 울리는 전화 벨. "여보세요. 나 지금? 바다." "또 거기 있어?" 엄마의 걱정 섞인 말에도 소녀는 자리를 뜨지 않는다. "여기 있으면 오빠하고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해요." 소녀의 시선은 다시 먼 바다로 향한다. 21일 오후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벌써 엿새째, 열네 살 소녀 아름이(단원중2)는 팽나무 숲과 흐린 바다 사이 선착장 시멘트 바닥에 앉아 오빠 조성원(17)군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외모에 한창 관심을 쏟을 나이건만, 매서운 바람이 머리칼을 마구 헝클어 놓아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빠가 봤다면 "어우 귀신 같아!" 할지도 모르는데…. 아름이는 수학여행 떠난 오빠가 탔던 세월호가 침몰한 지난 16일 부모님과 함께 팽목항으로 달려왔다. 실종자 가족들을 위한 거처가 진도 실내체육관에 마련돼 있지만, 아름이네 가족은 조금이라도 빨리 성원군 소식을 듣기 위해 팽목한 휴게실에서 지내고 있다. 세 살 터울의 성원군은 듬직하고 자상한 오빠였다. 올해 1월 박스 포장 아르바이트를 해 받은 '생애 첫 월급'에서 몇 만원을 뚝 떼 아름이와 남동생 손에 쥐어주기도 했다. 단원고 2학년 5반 부반장이었던 성원군은 부모 속 썩인 적 한 번 없는 착한 아들이었다. "우리 오빠는요, 역사 선생님이 되고 싶어 했어요. 한국사를 특히 좋아했고요, 역사 과목은 거의 다 만점이었어요.", "랩도 참 잘해요. 사실 좀 시끄럽기도 하지만 참 웃겼어요.", "휴대폰 충전기를 먼저 쓰려고 티격태격하기도 했지만…." 까만 눈망울을 굴리며 재잘재잘 오빠 자랑을 내놓던 아름이가 말을 멈췄다. 잠시 후 천천히 물었다. "우리 오빠는 언제 올까요?" 성원군은 시커먼 바닷속에 잠긴 세월호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제주도로 첫 여행을 가게 돼 들뜬 목소리로 동생에게 전화해 잘 다녀오겠노라고 했던 게 마지막 통화였다. 아름이는 눈물도 말랐는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엄마는 사고 전날 불길한 예감이 든다며 수학여행을 가지 말라고 했어요.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말이라도 할 걸…." 사고 당일 2교시 수업 때 "배 사고 났다던데 너네 오빠 저 배 타지 않았어?"라고 묻는 친구의 말이 그저 장난인 줄 알았다. 4교시 중간에 엄마가 다급하게 교실 문을 열었다. 버스 안에서 정신 없이 우느라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지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는다. "시신을 실은 배가 들어올 때면 혹시나 오빠가 아닐까 걱정돼요." 간절한 그리움과 조금씩 커가는 불안감에 입맛을 잃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지만, 아름이는 절대 지치지 않겠다고 했다. "가까운 산 같은 데 말고는 가족여행을 못 가봤거든요. 오빠가 돌아오면 꼭 같이 놀러 가고 싶어요. 안전한 곳으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상업적 등)] ▒☞[출처]한국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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