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든다는
입추(立秋)가 지났다.
더위가 걷힌다는
처서(處暑)도 지나고
흰 이슬이 내린다는 백로(白露)도 지났다.
가을이다.
여름밤 내 처량히 들리던
소쩍새 울던 그 자리에
어느새
귀뚜라미가 짜드리 울고 있다.
풀벌레들이 밤새워
짝을 찾는 노래 소리가
초가을 밤 별빛만큼이나
쏟아지고 있다.
꽃들도 피었다가 지고
나뭇잎들도 낙엽으로 돌아간다.
자연의 질서를 따라
생명의 본원
본래 고향으로 돌아간다.
사람들이 사는 이승도
떠나왔던 그 곳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철새(候鳥)처럼 들러
잠깐 쉬어가는 곳이 아닐까?
철새처럼 찾아 온 이승
긴 여행길에 지친 몸 한 철 쉬었다 가자.
막걸리 한 잔 술에
정을 나누며/
잘난 사람 잘난대로
못난 사람 못난대로/
에헤야 가다 못가면
에헤야 쉬어나 가세/
호박 같이 둥근 세상
둥글둥글 삽시다/
"쉬어나 가세"는 육신만 쉴 것이 아니다.
햇볕나면
밭을 갈고/
달빛나면
퉁소 불고/
꾸룩꾸룩
비둘기야..
박목월의 시처럼 살 일이다.
탐욕심, 증오심, 분노심
출세의 절박한
이 한 마음을 쉬어야 한다.
쉴새없이 끓어오르는 온갖 상념들
그 마음을 내려놓자.
쉬운 일이 아니다.
지친 한 마음을
어디다 내려놓고 쉴까?
하늘을 믿으면 하늘님께
부처를 믿으면 부처님께,
신을 믿으면 신령님께
우비고뇌(憂悲苦惱)하는 마음을 맡겨버려라.
오늘 옳았던 일이
내일 벌써 잘못이었고
오늘의 잘못이
수십 년이 지난 후에는
그것이 옳은 일이였음이
인생사 아니던가?
-
지금 창밖에는
바람이 불고 비가 온다.
가을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태풍이 되어
큰비를 몰아 오고 있다.
나비가 날고 있다.
-
지금 창밖에는
바람이 맑고 햇살이 찬란하다.
가을나비,
고추잠자리 나는 뜰
잠자리 날개 위에
햇살이 눈부시게 반짝인다.
님이여,
가을비 그치고
산들바람 내리는
햇살이 환한 저 돌계단에 앉아
걸어온 길 돌아보며 잠시
쉬었다 가자.
꾸룩꾸룩,
꾸룩꾸룩..
- 사맛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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